청  량  산


                  산행일자 : 2006년 5월18일 목요일
                  산행자 : 평택, 안성 목요산악회원
                  교통 : 서울고속관광(좋은하루투어)
                  날씨 : 흐림 (시계보통)


♣ 경북 봉화군의 청량산(870m)은 낙타 혹 같은 봉이 연립, 그 기이한 경관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이다.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이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에 위치하며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 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 시비가 있으며, 청량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청량산과 현재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청량산은 퇴계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바위병풍을 두른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또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방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 8개 굴이 있다. 특히 김생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김생이 이 굴에서 9년동안 서도를 닦은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도 9년동안 길쌈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한다.  이리하여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길쌈해 놓은 천은 한올 흐트러짐이 없는데 반해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이에 김생은 다시 1년을 더 정진한 후 세상에 나와 명필이라 칭송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를 비롯하여 어풍대, 풍혈대 등의 12대가 있고,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또 역사적 유물로 청량사와 응진전, 오산당, 청량산성 등이 있다. 오산당은 김생굴 앞에 있는데, 퇴계가 문인들과 강론하던 곳에 후학들이 세웠다고 한다. 
 
청량산 남쪽 축융봉에는 옛 산성터가 남아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았다고 하는 청량산성이다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봉, 8대(臺),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잡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법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념으로 구도열을 사를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청량산고증>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 청량사 입구 모정 부근에 주차하고 직진, 약 1.5km 올라가면 입석바위 아래 응진전 입구가 나온다. 산행은 지형상 이 응진전으로 가는 길을 시발점으로 해야 쉽게 비경 곳곳을 구경할 수 있다. 입석 안내판에서 급경사 사면길을 따라 5~6분 올라가면 '청량사 1.0km, 입석 0.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아랫길은 청량사로, 오른쪽 길은 응진전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통나무계단길로 발길을 옮겨 20분 올라가면 수십 길 절벽 중턱에 자리한 외청량사 응진전이 나온다. 68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응진전은 공민왕을 따라 피란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이다.

응진전을 뒤로하고 5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벽 아래 바위구멍에 있는 샘터인 총명수가 있다. 총명수를 뒤로하고 2분 거리에 청량사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어풍대에 닿는다. 수십 길 낭떠러지인 어풍대에서는 내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서쪽과 북쪽을 에워싸고 있는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등이 휘둘러 보인다.

어풍대를 뒤로하고 4~5분 가면 '←청량사, 김생굴→'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여기서 산행은 오른쪽 길로 이어진다. 5분 정도 올라가면 또 나오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길은 금탑봉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 길로 5분 올라가면 김생굴에 닿는다. 김생굴을 뒤로하고 왼쪽 아래가 급경사인 사면길을 따라 15분 거리에 이르면 남쪽 청량사 방면 갈림길이 있는 지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북쪽 가파른 능선길로 7~8분 올라가면 급경사 돌밭길로 들어선다. 8분 더 오르면 '의상봉 1.6km, 응진전 1.4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급경사 길로 30m 오르면 주능선 안부 철계단 아래에 닿는다. 철계단으로 발길을 옮겨 20m 올라가면 자소봉 중턱 너럭바위 전망장소에 닿는다. 자소봉 꼭대기는 20m 수직절벽이다. 북서쪽으로 비봉, 북으로 소백산 방면 백두대간이 시야에 와닿는다. 동으로는 일월산, 남으로는 축융봉이 마주보인다.

자소봉 철계단을 다시 내려와 안부에서 자소봉 남쪽 절벽 하단부 우회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탁필봉 꼭대기를 밟는다. 노송 어우러진 탁필봉에서는 지나온 자소봉이 첨탑처럼 마주보인다. 탁필봉을 내려서서 서쪽 능선길로 10분 거리에 이르러 약 20m 높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서면 뒤실고개다. 대개 여기서 청량사로 하산한다.

뒤실고개에서 계속 서쪽 능선을 타고 5분 오르면 795m봉이다. 795m봉을 뒤로하고 계단길을 지나면 자란봉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약 100m 내려가면 '의상봉 0.6km, 자소봉 1.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급경사 길을 20분 더 오르면 '의상봉 870.4m' 라고 새겨진 정상비석이 있다.  정상은 주변이 숲으로 에워싸여 시원한 조망이 안 된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더 나가면 쇠난간과 노송이 있는 전망장소가 나타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풍광이 일품이다.

하산은 전망장소에서 남쪽 두들마 마을로 내려서는 하산로가 있다. 이 코스는 워낙 급경사여서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 20 여분 내려서면 두들마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을 지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20분 더 내려오면 청량폭포 앞 폭포슈퍼민박집이다. 청량사를 구경하려면 정상에서 뒤실고개로 다시 내려와 남쪽 계곡으로 20분 내려서면 청량사 본전인 유리보전이 나온다. 청량사는 문무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전해진다. 유리보전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유리보전 현판글씨는 공민왕 친필이다.

유리보전을 뒤로하고 범종각을 지나 침목이 깔린 급경사 내리막길로 들면 왼쪽으로는 찻집 안심당이 눈길을 끈다. 산악인 이대실씨가 15년째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심당을 뒤로하고 S자로 굽돌아 내리는 급경사길로 15분 거리에 이르면 주계곡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청량사 입구 삼거리를 기점으로 입석 - 응진전 - 어풍대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뒤실고개 - 자란봉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다음, 두들마 - 폭포슈퍼민박, 또는 뒤실고개 - 청량사를 경유해 삼거리로 내려오는 산행거리는 4km 안팎으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시간이 남는 경우에는 승용차를 이용, 응진전 입구에서 약 500m 더 간 청량산휴게서 앞마당에 주차시키고, 축융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청량산휴게소에서 올라왔던 길로 40m 거리에 이르면 왼쪽에 '얼음굴'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방향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8~9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개지 바위구멍에서 찬 바람이 나오는 얼음굴이 있다. 얼음굴에서 북문터를 지나 25분 올라가면 '휴게소 1.3km, 공민왕당 0.3km, 축융봉 0.9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능선길로 들어가 10분 올라가면 무덤 1기가 나온다. 무덤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10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바위로 오르는 철계단이 나타난다. 20m 높이 철계단을 올라가면 옛날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축융봉 정상이다. 축융봉에서 북쪽 계곡 건너로는 청량산을 이루는 12봉 중 11봉을 비롯해서 자소봉 아래 내청량사와 금탑봉 아래 외청량사인 응진전 등이 마치 동화 속의 집처럼 보인다. 낙동강 모습도 장인봉(의상봉)보다 더 넓게 조망된다. 남서족 멀리 안동 방면으로 흘러가는 낙동강과 안동호 일부가 조망된다. 올라온 코스를 역으로 내려와 안내판 삼거리에서 왕복 15분이면 공민왕당도 다녀올 수 있다. 청량산휴게소를 기점으로 얼음굴 - 북문 - 안내판 삼거리를 경유하여 축융봉을 다녀오는 거리는 약 4km로,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 축융봉에서 관리사무소가 있는 쪽으로 3.1km 등산로 개발중이라 합니다




흔적 : 입석-응진전-경일봉-841봉-보살봉-탁필봉-연적봉-뒤실고개-자란봉-선학봉-의상봉-두들마-청량폭포-선학정주차장(4시간)



나를 버리러 간다
될 수 있으면 아주 깊은 골짜기에
될 수 있으면 아주 먼 곳으로
나를 버리러 간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다만 내 못난 모든 것을 버리러 먼길을 간다




밀성대(축융봉쪽)

산행 시작은 입석이다
11:10분경 입석에 도착해 맞은편 밀성대를 카매라에 담고
곧장 산으로 열리는 한가닥 고샅을 따라 오른다




어풍대에서 내려다 보는 도로와 계곡
산자락 군데군데 개간한 흔적이 흉물스럽다




어풍대 직전 오름길에서 목요회원들 제일 앞 왼쪽 우리들의 자랑 한대장님!!




어풍대에서 바라보는 금탑봉과 응진전

어풍대에서 바라보는 응진전은 허공에 매달린 듯한 아찔함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곳으로 가는 길엔 넉넉히 피어있는 풀꽃조차 무심한 길이 있었고

과연 명당이 어디일까?
상식을 순식간에 뒤엎는 기발한 착상의 꿍심 뒤에 쨘!!하고 나타난 응진전은
견딜 수 없는 신비스러움에 갇혀 그리움이 되어버린다


절마당이나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맞은편을 바라보면
보기만해도 넉넉한 축융봉이 이쪽을 굽어보고 섰다




응진전 옆 암릉은 덩굴식물의 집이다




응진전과 금탑봉 봉우리위에 곧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바위하나(동풍석)




응진전




연화봉

물오른 나무들은 암릉의 험악함을 감추려 애쓰는 듯
날마다 가지 끝으로 단물을 끌어올려 좀 더 짙은 색감에 빠지게 하고
바람 없어 가볍기만한 봄은 산정을 향해 조금은 더운 김을 뿜으며 오르는 중이다




오른쪽부터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응진전에서 바라보는 축융봉

목감기로 인한 메마른 목젓은 조금만 걸어도 타들어 가는데
어리석게 축융봉을 넘보는 마음
그 더러운 마음 버리러 멀리까지 왔는데
얼마나 더 살아야 쓸모없는 욕심으로부터 이몸 자유로워질까?


이 청량한 산에서 못된 것, 모난 것 오직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내마음과
아무데나 내던진 인간들의 쓰레기 뿐이다


날마다 반성을 했지만 끊지 못한 못난 내 안의 것을 버리려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에 버리려 한다




풍혈대에서 내려다 보는 청량사 전경




둥글레

청량한 빗줄기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처럼 티없는 몸으로 매달려
지친 몸을 다스리라 쉼표하나 던져준다


세상을 향해 터지는 꽃
내 힘듦을 다둑이는 꽃
세상을 다 받아들이는 몸짓으로 있는 힘을 다해 꽃이 터진다




지나온 경일봉능선과 탁립봉이 보인다
탁립봉 뒤로 멀리소백산 연화봉인 줄 알았더니
청산소요객님이 일월산이라 일러주셨다 감사^*^


잦은 기침으로 발걸음엔 무거운 돌덩이 매달리고
금시라도 무너질 것같은 걸음에 철쭉 한무리 달겨들어 등을 토닥여준다


고깔제비꽃이 큰무덤을 이루며 웃고있다
자소봉 1.0 km가 이리도 멀었던가?


841봉이 눈앞에 버티고 자소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대롱거리는 시그널이 내눈을 부른다
당연히 우회해야하는데...


죽으면 죽으리라(감기와 싸우는 오기로)
직벽에 붙는다
증명서를 남겨줄 후등자도 없는데


느닷없이 등뒤에서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매달린다
" 길이 그  길 밖에 없어예???" "괜찮아예?"

"아래로 우회로 있습니다"


청년은 우회로로 돌아가고
드디어 봉우리에 올라서서 자소봉을 건너다 본다


숨어서 저지른 오름 뒤에 바라보는 자소봉은  친밀감마저 느껴진다
코앞에 펼쳐지는 연화봉과 향로봉능선이 완성된 하늘금을 보여준다




841봉 위에서 담는 자소봉(보살봉)




841봉 근처에서 연화봉, 향로봉
암릉끝에 매달린 나무들은 소나무들은 별로 없음이 아쉽다




841봉에서 담은 자소봉과 오름계단
자소봉에 오르고나니 몸이 조금 가벼워진다


탁립봉은 자소봉 발치쯤에 서있다
조금은 멀 게 느껴지는 곳에 소백산 능선이 마루금을 긋고
환히 열리는 산속의 세상이 새삼 신비스럽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던 나무들이
연두로 시작 되던 옷에서 좀 더 진한 물감을 자아올리는 중이다
나무에게로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찾아간다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고운 소리로 목청을 돋우는 새들도
온갖 벌레들 마저도
흔들리는 몸짓에 지친 걸음을 걸어내는 나에게도 나무는 기댈 자리를 내어준다




연적봉에서 자소봉과 탁필봉과 뒤에 탁립봉까지




다시 연화봉, 향로봉 위로 자란봉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선학봉




선학봉 가는 길

암릉 표면이 불량레미콘을 아무데나 버려 쌓인 것처럼 그렇다
역암이라고 하던가?
타포니 지형 마이산에선 좀 더 선연한 자국들
군데군데 폭격을 맞은 것처럼 움푹 패인 자국들은 둥근 자갈들이 집에서 뛰쳐나와 그런걸까?

청량산에서도 일치되는 소견이 발견되니



(4) 청량산역암층
청량산역암층은 가송동층 위에 정합적으로 놓이며 지질도의 중앙부에 넓게 분포한다. 본층은 문명산, 청량산을 비롯한 험준한 지형을 이룬다. 본층은 주로 역암으로 구성되나 사암·셰일과 응회암이 협재된다. 역암은 흔히 화강암·편마암·석회암·편암·이암·사암 등의 역을 포함하고, 현무암·안산암·유문암 등의 화산암 역을 포함한다. 이중에 화산암역은 본층 상부로 갈수록 증가하는 경향이다. 이들 역의 직경은 5∼10㎝가 보통이나 간혹 1m에 달하는 규암 역도 있다. 역의 크기도 상부로 갈수록 증가되는 편이다. 기질은 대체로 녹회색의 사질이며, 역들과의 입도 차이가 매우 크다. 사암과 셰일은 본층 상부에서 호층을 이루면서 협재되고, 이들은 녹회색 내지 청록색을 띠며 가송동층과 거의 같다. 본층의 층리는 사암과 셰일에서 대체로 잘 발달되어 있다. 응회암은 본층 중부에서 협재되어 층리가 불량하다. 이는 암록색을 띠며 사장석 결정과 암목색 부석편이 인지되는 안산암질 응회암이다. 본층에서 역암은 상부로 갈수록 빈출빈도가 많아지고 사암과 셰일은 하부로 갈수록 많아진다. 셰일은 역암보다 상대적으로 침식저항이 약하므로 능선부에 역암을 따라 평탄한 면을 이루는 완만한 사면을 이룬다. 본층의 두께는 약 650m이다.




빼앗긴 나를 다시 훔쳐오다(출처:김광석님블로그)

자유롭지 못한 컨디션에 결국은 축융봉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길은 향로봉을 내려서면서 제법 심도 있게 굴곡을 그린다
겉보기엔 저런 지형에도 길이 있을까 싶지만
바위봉우리와 잘 타협한 길들이 제법 편안하다 싶었는데...




풀솜대




깔끔한 이정표

청량산의 기품이 단박에 드러나는 곳은 선학봉과 자란봉, 그리고 장인봉으로 가면서부터 시작된다
협곡같이 이어지는 긴 길을 조심조심 내려섰다가
0.3km의 길은 얼음골의 길인지 한없이 시원한 냉기가 준비되어 있고


나머지 자란봉 오름에서 혀를 빼문다
건장한 꾼들이라도 알량한 체력이 한계에 달했는지 서슴없이 한숨씩 돌리며 오른다


역시 자란봉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다시 되내려와 다시 장인봉으로 향한 걸음은
내림으로 시작되니 다시 되돌아 올 오름에 이몸은 정말 힘들다


그러나
바람없는 하늘에 낮게 깔린 구름처럼 심심할 뻔 했던 이 하루가
이렇게 싱싱한 청량산등성이에서 내 미운 것 다 버리고
가장 가벼워진 양심으로 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깊은 강물을 건너 오는 바람소리보다 더 청량한 일 아닌가?




선학봉 오름길에서


 

장인봉(의상봉) 전망대에서 자소봉쪽 능선을 바라본다


온몸이 다 흔들리는, 구름을 딛는 것같은 어지러움 끝에 선 이자리
이 황홀함, 나는 할말을 잃었다


걸어 온 길들이 고스란히 드러남이 고맙다

쓰러지지 않은 내 몸이 고맙고
흔들리는 몸을 끌어안고 그래도 꾸역꾸역 걸어 준  잘 살아남은 의식이 고맙다




유난히 고지대에 밭이 많아서 궁금???




장인봉에서 내려다 보는 곳에 의좋은 형제




보아라 신라가야 빛나는 역사
흐르듯 담겨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마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내 혈관에 피가 된 줄을
오~ 낙동강 오~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전통의 낙동강


소싯적에 배운 낙동강 노래를 반추해 보았다


캄캄하게 문닫힌 어린 날들이 환히 밝혀진다
특별한 감흥도, 깊은 뜻도 모르면서 그저 흥얼거리던 가락들이 되살아난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하루해가 다 저물어 여기에 서서 보는 저문 물길은 어떤 모습일까?

검은 산너머로 긴 그림자 드리운 저 너머로 붉은 기운이 넘어갈 때
그 때 저문 강을 바라보면
왠지 눈물이라도 펑펑 쏟을 것 같다

곧 어두워질 무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
세상 어느것보다 더 귀한 그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의상봉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선학봉의 모습인 것 같다


오월의 숲에서
이렇게 창창한 숲에서
나는 나를 잃고 새잎이 되어 저 나무 가지 끝에 매달리고 싶네




두들마로 내리는 길에서

가야할 길과
걸어야 할 내 두발이 아직은 남았는데
나무처럼, 저 나무처럼 바위봉우리 위에서
우두커니 바라보고 싶다
모퉁이를 돌아서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내 흥겨움끝에 묻어 나오는 노래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걸 알기에 잠시 세상일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뒤돌아 보는 곳에
의상봉 능선이 캄캄한 얼굴로 다가온다
아마 산도 저 사랑하던 이 내려가니 슬픈가보다
산을 두고
나는 간다


터무늬 없는 욕심으로 크기만 한 세상의 집으로
돌아간다




두들마 마을 녹쓴 양철지붕이 보이고 몇세대??




피와 땀으로 일군 고랭지밭




개스통은 과연 누가 지고 왔을까?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내려가는데 구불거리는 포장길을 따라 오토바이가 씩씩하게 올라 온다
그냥 눈웃음으로 인사하니 마치 날마다 대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보낸다
살펴보니 우체부아저씨 ^*^


한 세대를 위한 배려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손톱 자라듯이 자라나는 속정이 자라나서일까?
허허로운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세상소식 전해주고 받는 마음들은
옛날의 그 마음이 남아 있어서 일게다




조팝나무??



가난한 청량폭포




금탑봉과 선학정




선학정에서 올려다보는 연화봉
 


농염한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좁은 길이 있습니다

길섶에는 미나리냉이 하얀 얼굴로 지천을 이루고
또 저만치 오르다 보면 미나리아재비 노오란 몸짓으로 살랑대고
그 사이를 더러는 지칭개 몇송이 모가지를 길 게 늘여서 나를 쳐다봅니다

 
첨엔 엉겅퀴인지, 지칭개인지, 뻐꾹채인지, 고려 엉겅퀴인지 분간이 안되던 것들이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이름이 되어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옵니다


붉게 녹쓴 양철지붕 마을을 지나면
쏟아질 듯한 산자락에 열심히 삽질하고, 괭이질하고, 호미질한
꼬불꼬불 밭뙈기가 기어서 자꾸만 산으로 오릅니다


이제 물소리도 끊어진지 오래인 오르막을 따라 한없이 가팔라지는 코빼기같은 오름이 이어지고
흙바닥에 미처 자리잡지 못한 못생긴 작은 돌들이 함부로 굴러다니고
뿌연 먼지가 일어나 목젓을 타게하는 길을 지나면


풀솜대 하얗게 번지는 골짝에 닿게됩니다

깐닥깐닥, 천천히, 느릿느릿 그러나 야무진 걸음을 걸어내지 않으면
장인봉이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갑자기 열리는 선계에 차마 눈 둘 곳 몰라 한참을 헤매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낙동강줄기 청량산자락을 휘돌아 나가고
물은 길을 따라 가만히 흘러가는데
산만은 이 산만은 거느린 식솔들이 많은 탓인지 미동도 않는데...


내 못난 것 버림이 미안해서 잠시 버티다가
이 산을 내려섭니다
산이 오지 않으니
다시 들기 위해서 쓸모없이 복잡하기만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생각의 길은 장인봉을 내린 것이 아니라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작년 11월에 담은 그림입니다


유형문화재 제 47호유리보전에 있는  청량사  오층탑입니다
 

건너편 산릉이 축융봉인 듯 합니다
오늘 저기까지 들어가서 청량산 육봉의 면모를 확실히 들여다 보려고 했는데
경미한 사고를 저질러 나 하나로 인해 못가게 되어
멀리서 바라보며 침이나 삼킵니다
달콤함이 아니라 쓴내가 나네요




유리보전을 곁눈질합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불을 모신곳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귀중한 지불이라 합니다.



청량사 위쪽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청량정사와 산꾼의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층탑을 후면에서 담은 그림입니다
적나라한 모습보다 왠지 더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혼자만의 아집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역광이 만들어내는 이런 묘한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응진전이 있는 금탑봉인데 오층탑 왼쪽으로 들어옵니다



흔적



피사체를 향한 신중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분위기가 청량산을 다시 찾게 되는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느긋하게 차 한 잔을 음미할 수 있는 분위기 말입니다



청량사를 찾은 나그네를 압도하여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하는 청량산 청량사의 고루(鼓樓)입니다 



안심당(安心堂)
청량사를 오르면 우선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 일컬어지는 안심당을 볼 수 있는데  안심당은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으로 청량사와 청량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여 숨을 돌리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넉넉한 공간입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라는 주제가 눈길을 다른곳으로 돌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말속의 깊음에 잠기게 하는 여유를 주기도 합니다



세상만사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안심까지도 내려 놓는 순간 깊은 차의 향이 스며들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것을 실천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저 멋있는 굴뚝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따뜻해졌음에 안심의 여유를 가졌을 뿐입니다



산꾼의집
은 산악구조대 본부를 겸하고 있는 곳입니다
아홉 가지 약초를 달여낸 구청자를 공짜로 맛볼 수 있는데  근처에만 가도 구수한 차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데
언저리에서 맴돌다가 차 한 잔의 무거움이(?) 허락치 않아 돌아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