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때 예조와 이조판서를 두루 거친 홍우서는 젊었을적  한때는 방탕한 풍도가 적지 않았나 보다.

그가  아직 벼슬길에 오르기 전의 이야기이다.

한번은 그가 시골에 긴한일이 있어 길을 나섰는데 마침 날이 저물었다.

맞춤한 주막을 찾을 길이 없어 애를 태우던 중에 뱀허리같은 산허리를 한구비 돌아드니 낮으막한 산자락에 채마밭 두어뙤기가 궁색한 초가집 한 채가 보여 주인에게 사정을 설파하고 하룻밤 유숙을 청하니 이순(60)이 넉넉한 주인장은 선선히 응한다,

도깨비 코딱지만한 자그만 초가엔 씻고벗고 달랑 방한칸에 주인 내외와 일찍 혼자된 며느리가 거처를 같이하고 있었는데 대강의 인사 수작을 끝내고 밥상이 들어오는데 주인의 언사도 예사롭지 않지만 밥상의 찬 또한 시골집 치고는 범상치 않아 은근히 속으로 놀래더라.


 

저녁상을 물리자 늙은 주인이 짧은 담뱃대에 심심초 한꼭지를 쟁여 두어 모금을 빨고는 우원에게 건네며 부탁을 한다.

“손님에게 결례가 되는 줄 알지만 문중에 제사가 있어 우리 부부는 참례치 

 않을수 없어 며느리를 혼자 두고 가니 공께서 잠시 동안 집안을 주장해 주

 시겠소”

아닌 밤중에 홍두깨 이기는 하나 어쨌던 밥값은 해야겠기에 우서는,

“염려 놓으소서.  사립문의 개호주가 되어 굳건히 지키겠나이다.”

마침내 주인 내외는 큰동네로 제사를 모시러 떠나고 우서는 대중없는 경전을 웅얼거리다가 아랫목에 자리를 보아 누으나 며느리는 윗목에 그린 듯이 앉아  우서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느질에만 열중이다.


 

우서가 개구리를 탐하는 살모사처럼 가만히 며느리의 모색을 살피니 침선을 다듬는 손은 항아의 맵시오, 거친 옷속에 가려진 허리는 왕소군이 환생한 듯

흐드러지며 얼굴은 수풀을 헤치고 오르는 명월처럼 참으로 산중에선 보기 드문 절색이다.

젊은 우서의 가슴은 갑자기 피가 솟구치며 열꽃이 벌겋게 달아올라 모주 먹은 주정뱅이와 진배 없는데 혼자 생각 하기를,

‘일찍 청상이 되었다면 아무리 열녀라고는 하지만 필시 사내 생각이 간절할 터인데  마침 객고도 있고허니 내 한번 시험해 보아야 겠다’

그리고는 자다 몸부림 치는 척하며 한다리를 미인의 무릎에 척 걸치니 여자는 별반 놀라는 기색도 없이 가만히 내려 놓는다.


 


 

“흠,, 한번에 넘어가면 좀 싱겁긴 하지."

혼자 차치고 포치며  다시 한번 척 걸치니 역시나 가만히 밀어서 내려 놓는다.

‘허, 그 개에게 줘도 물어 가자 않을 정조는 엔간히 챙기누마’

혼자 셈평을 놓으며 또다시 다리를 슬쩍 올려 놓으니 그때까지 가만히 밀어 놓기만 하던 절색이 정색을 하며 우서를 흔들어 깨운다.

모른체  헛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우서를 향해 미인의 싸늘한 눈빛이 잠깐 번쩍 하더니,

“군자의 학문과 식견이 탁월 하기로 저의 아버님께서 뒷일을 부탁 하셨는데

 이제보니 색정의 음탕함이 도를 지나쳐 자칫 몸을 망칠까 두려 한가지 방

 책으로 군자를 구하려 합니다.”


 


 

그러고는 어른 엄지 굵기의 싸리 회초리를 가지고 오더니 종아리걷고 목침 위로 올라서라는 일갈이 가을 서리가 분분하듯 써늘해 우서는 저도 모르게 장부의 체면을 팽개치고 냉큼 목침위로 오른다.

두어대로 그치려니 했으나 웬걸 종아리에서 피가 흐르도록 매질은 계속된다.

화톳불에 익어가는 뱀장어 마냥 온몸을 꼬며 아픔을 참으려 하나 그럴수록

아픔은 더욱 옹골차게 뼛속을 파고든다.

장부 체면에 똥칠은 고사하고 이러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을까 염려 될즈음에서야 겨우 매질은 끝이난다.

부끄러움과 아픔으로 하얗게 밤을 세운 우서는 또한 주인 볼낯이 난당이였다.


 


 

홰를 치는 장닭목에 가래톳이 설 즈음해서야  기침 소리와 함께 주인 내외가 돌아온다.

며느리가 마중을 나가 저간의 사정을 미주알 고주알 소상히 설파하니 주인은 크게 놀라 며느리를 꾸짖기,

“비록 혈기방장한 객이 잠시 허물이 있었다하나 아녀자가 군자에게 매를 듦

 은 참으로 한탄할일이로다”

그리곤 황황히 방에 들어와 우서에게 사죄를 한다.

“며늘 아기가 본데없는 시골에서 생장한지라 배운겄이 없어 감히 군자의 위엄을 모독하였은즉 우선 죄를 먼저 청하고 봅니다.”

정중한 주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우서는 고개를 못들고 쥐구멍을 찾아 떠나듯  서둘러 하직 인사를 개어 올린다.

멀어지는 우서를 보며 주인이 곁에 선 부인에게 혼잣말 비슷이 뇌까린다.

“우리 며늘 아기가 이판 대감의 종아리를 쳤구려”

“아니, 그렇게 크게 되실 분입니까?”

“그렇소. 어제 얼핏 상을 보니 장차 귀하게 될상이나 눈가에 요기로운 기운

 이 있어 근심을 했는데 며늘이 종아리 몇 대로 그를 구했구려”

요즘 한참 뜨고 있는 박계동 최연희 의원이 생각나 주절거려 보았다.


 


 

태현사에서 오르는 정맥길은 이내 능선으로 올라 붙어 된비알로 이어지는데

누구랄겄도 없이 등이 휘어지라 짐을 진놈처럼 땀을 뻘뻘 거리며 용을 쓴다.

담배 두어대 태울참을 새벽 과부 감창 소리를 내며 기어 오르니 능선이 완만 해지며 이내 1090봉으로 불룩 치솟아 간다.

다래순이 얼기설기한 먼안등재는 도상에는 원통골로 빠지는 길이 뚜렷하나 실제는 잡목이 우거져 길을 찾기가 지난이다.

백병산의 안부인 고비덕재는 주변에 벌목한 나무를 차곡차곡 쟁여 놓아 한겨울 땔감 걱저은 진즉에나 들었고 헬기장이 좋은 안부는 야영하거나 쉬어가기에 그만이다. 

또한 얼레지 꽃이 얼마나 많은지 헬기장 전체가 얼레지 꽃밭으로 반짝인다.


 


 

새경 받으러 간 머슴놈처럼 허리가 부러져라 콩을 심으며 백병산 오름길로 머리를 조아리니 정맥은 백병산 정상 못미쳐서 왼편으로 서운히 등을 돌리며 내려선다.

무친김에 제사 지내고 옴덕에 보지 긁는다고 지척에 있는 백병산 구경을 한동아리로 뭉쳐서  오른다.

두어평 크기의 오뚝한 정상이 누구네 젖꼭지처럼 톡 튀어 나와 상당히 육감적인데 그렇다면 큰덕 부근에 지천으로 빽빽이 밀생한 산죽은 여인네의 신비림이란 말인가. 

백병산에서 내린 길은 큰덕을 지나 오른편으로 비스듬히 용머리를 틀어 가는데 고만 고만 한 봉우리들이 장독대 위에 쌓인 눈처럼 올망졸망 소담스럽다.


 


 

늪목을 지나자 바벨탑 만큼이나 거대한 철탑을 지나는데 철탑 끝에서 울리는 귀곡성이 등골을 써늘하게 한다.

방화선처럼 늘찍한 길은 주변에 두릅이 흔천이나 이미 순은 누군가의 손에 도적질 당했고 빈자리엔 구름만이 걸려 휑하다.

젖골로 내려서는 길이 희미한 안부를 지나면서 길은 다시 호젖한 등로로 이어진다.

1085봉을 우회하는 길엔 일출 전망대라는 간판이 보이고 토산령까지 산죽을 베어 길을 깨끗이 다듬어 놓았다.

주변엔 어마지두의 금강송이 위풍당당히 도열해 참으로 장관이다.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인해 윤임 일파로 몰려 사사된 금호 임형수는 성격이 강직하고 장부다운 기풍이 있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해 퇴계 이황에게 묻길,

“자네는 호쾌한 장부의 취미를 아는가?”

“나야 모르네만 자네는 알고 있는가?”

“하긴 자네 같은 꽁생원이 알리 있겠는가. 귀를 씻고 들어 보게나”

 이렇게 운을 뗀뒤,

“산에 흰눈이 쌓이면 돈피배자를 걸치고 백근 활을 어깨에 걸고는 천리마를 

 호령해 심산궁곡으로 내닫는다네.  일진광풍이 일어 쌓인눈을 헤치며 바위   같은 멧톧이 뛰어 나오면 한살로 쏘아 엎치고는 질좋은 금강송으로 화톳불 

 걸게 피워 멧톧을 통째로 굽지. 그리곤 드는 칼로 썸벅 베어 배를 채우며    독한 술을 동이채 마신다네 .  백설이 분분할제 취기를 못이겨 청산을 베게

 삼아 코를 우뢰 같이 골며 잠든다네. 이것이 진정한 장부의 기상이네”


 


 

백근 활도 청총마도 없어 멛톧과 섬술을 시험할 기회는 없었지만 온몸이 깊은 심연에 잠기는듯한 심산궁곡의 참맛은 제대로 느낄수 있어 운치가 대단하다.

토산령을 지나면서 길은 다시 첩첩산중의 소로로 바뀌어 한참을 내려섰다 뻐근히 올라서니 사내의 거시기와 형상이 비슷하다 하여 구랄산이란 명칭이

붙은 1072봉으로 오른다.

아무리 봐도 왜 그것과 닮은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만 어쩻던 두리봉으로  떨어지는 능선을 보노라면 한숨부터 나온다.

부랄산 아니 구랄산에서 꿩 쫓는 해동청 같이 바닥에 곤두박질 친 능선은 이후 서너개의 봉우리를 계속 넘나 드는데  구랄산에서 볼때는 두어개만 오르면 될줄 알았는데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없다,.

아예 포기하고 할닥거리며 기듯이 오르니 갑자기 눈앞이 무릉도원을 들어선 듯  아니 천상 화원에 떨어진 듯 주변이 환해지며 온통 동이나물 노란꽃이 수백평  안부에 치밀하게 돋아 벌린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길은 꽃밭을 가로질러 부드럽게 두리봉으로 올라서는데 이번엔 보라색 얼레지가  봉우리 전체를 감싸고 있어 또한번 눈둘곳을 찾지 못한다.

얼레지는 광양 백운산 가는 길에서도 많이 보았는데 거기와는 꽃의 크기나

밀생도가 비교가 되지 않아 참으로 장관을 이룬다.

지난번 성제봉  산행때 금낭화를 원없이 보았는데 이번엔 동이나물과 얼레지를  포식했으니 산복이 터졌다고는 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두리봉은 천상화원을 감추어 놓고 고된 두타행으로 사람의 인내력을 시험하는지도 모르겠다.


 


 

주위가 평평한 봉우리에 산죽이 좋은 정상은 면산이란 정상석이 자리했고 오른편으론 삼방산으로 빠지는 길이 좋다.

석개재로 기는길은 또다시 이어지는 쉼없는 봉두리의 파도를 타야한다.

다리에 경련이 일즈음에야 석개재를 넘는 차소리가 둔중하고 산신당을 지나면서 길은 끝이난다. 

허어,, 이제는 집으로 갈일이 또한 걱정이다. 

길은 비록 고되고 험했으나 노란 동이 나물과 보랏빛 얼레지  그리고 살아있는 풋풋한 원시림은 쉬이 잊혀지지 않을듯하다.

글을 쓰는 지금에도 객은 여전히 두리봉의 천상화원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2006년 5월14일.  난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