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산행기


 

        *산행일자:2006. 4. 23일

        *소재지  :대구달성/경북청도

        *산높이  :1,084미터

        *산행코스:유가사입구도로변-도통바위-비슬산-대견사지-수도골-유가사-주차장

        *산행시간:11시1분-16시4분(5시간3분)


 

  4월 한 달 늦은 즈음에 산 밑에서는 봄이여 빨리 가라고 등을 떼밀고 있고 산 위에서는 머뭇거리는 봄에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해발1,084미터의 비슬산을 찾았습니다. 대구시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을 어우르는 비슬산은 한반도 남단의 산 중에서 보기 드물게 광활한 약 30만평의 진달래 꽃 군락지가 정상 주위에 자리 잡고 있어 해마다 4월이면 참꽃 축제를 열어 불러들인 손님들을 모시느라 몸살을 앓아 왔다는데 어제도 그러했습니다. 먼저 온 수 많은 차량들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어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봄의 한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걷는 동안 아스파트가 뿜어내는 열기로 초여름의 더위를 느꼈습니다.


 

  11시1분 유가사 주차장 전방 약 3키로 지점에서 하차하여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참꽃축제가 어제로 끝나가 전국 각지의 산악회들이 비슬산으로 모여들어 산 들머리로 완전히 들어서기까지 수많은 인파와 차들로 붐비고 어수선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스팔트차도를 20분가량 걸어 유가사일주문을 지났고, 이어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극락교를 건넌 다음 오른쪽에 자리한 유가사 옆길로 계속 오르다가 얼마 후에 포장도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난 비슬산 들머리로 들어서기까지 다시 20분이 걸렸습니다.


 

  11시 40분 들머리에서 7-8분을 걸어 오르자 된비알의 나무계단 길이 시작됐습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참꽃으로 더 알려진 진달래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뜻으로 이산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산객들이 꽤 넓은 산길을 꽉 채워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무릎에는 무리가 가지 않아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발 700미터 대에 이르자 산 밑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한껏 시원했습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나무계단 길을 오르다 암릉 길도 걸었고 너덜겅도 지나는 등 길지 않은 코스가 다양하고 아기자기해 걷기에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12시40분 비슬산 정상이 선명하게 잡히는 전망 좋은 바위에 당도해 목을 축이며 십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아스팔트길을 걷는 동안 느꼈던 초여름의 더위는 소리 없이 가시고 어느새 맑게 갠 하늘, 선선한 골바람과 회색의 겨울티를 씻어내는 연초록의 나뭇잎들이 어울러 펼치는 봄의 향연이 시작되어 이 산 정상에 만개한 진달래가 더해진다면 이봄 최고의 잔치가 될 것 같다는 기대로 부푼 가슴을 안고 자리를 떴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중 길섶에 피어 있는 샛노란 노랑제비 등 청아한 풀꽃들을 만나 서울의 봄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13시27분 해발 1,084미터의 비슬산 정수리에 올라섰습니다.

억새밭을 조금 지나 왼쪽의 용연사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정상까지 10분 정도 걸리는 평평한 능선 길을 걸으며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해 애를 태우는 진달래를 보고 너무 일찍 이 산을 찾은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정상에 올라 한바퀴 휘둘러보아도 제대로 만개한 꽃이 눈에 띄지 않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제대로 꽃이 피지 않은 참꽃을 보러오라고 축제를 연 사람들의 무성의와 무능도 그러려니와 미리 현지사정을 확인하지 못한 산악회에도 서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상에서 같이 오른 몇 분들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후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늠름한 산줄기를 보고나서야 아 이것이 비슬산의 참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방금 전까지 진달래꽃이 피지 않았다고 분개했던 저의 속 좁음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내장산을 단풍을 보러 가을에만 올라가고 대야산을 용추계곡에 발을 담그고자 여름에만 찾는다면, 또 선자령에는 눈길을 걸으려 겨울나들이만 나선다면 그를  진정 산을 아끼는 산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진달래꽃이 피지 않았다고 투정을 하는 것보다 그 명성에 가려진 비슬산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 옳겠다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정상에 자리 잡은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비슬산에 올라 저 묵직한 바위를 보고 섬세한 거문고를 떠올리는 선조들의 시심을 보지 못한 것도 진달래꽃만 찾아 오른 저의 좁은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정상에서 점심을 함께 든 한 분이 서울에는 큰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열어놓은 된장독을 걱정하는 것을 보고 발효라는 과정을 거치는 우리의 고유음식 슬로우푸드가 그냥 손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그리고 착실하게(Slowly and Steadily)" 시간을 익혀가며 얻어지는 것이다 싶어서 저희들의 산행도 이와 같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48분 20분 남짓한 달콤한 점심시간을 끝내고 남쪽의 대견사지로 향했습니다.

명산 순례는 대간을 종주할 때보다 긴장감이 덜 해서인지 자연 쉬는 시간이 늘어나고 몸놀림도 둔해졌습니다.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 B코스인 오른 쪽의 수성골로 갈라지는 안부로 내려서기까지 20분이 걸렸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 톱바위로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르는 동안 오른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진달래 군락지가 펼쳐져 있었고 왼쪽으로는 경사가 급했으며 날카로운 톱바위는 북사면의 너덜겅들이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톱바위를 0.2키로 남겨 놓은 삼거리에서 반대쪽으로 3-4분을 더 걷자 왼쪽 발밑으로 넓은 공터에 자리 잡은 대견사지 3층석탑이 들러 가라고 제 소매를 잡아끌었습니다만 오후4시까지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해야 했기에 사진만 찍고 가던 길을 계속해 이어갔습니다.


 

  14시55분 조화봉을 들르는 대신에 팔각정에서 잠시 쉬며 넓디넓은 진달래 군락지를 여유롭게 조망했습니다. 저 넓은 평원에 진달래가 활짝 폈다면 온 산이 연붉은 꽃들로 화사하게 빛났을 것이고 그리되면 과연 빼어난 장관을 이뤘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자 화룡점정의 마지막 한 점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또 다시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비슬산 정상을 받쳐주는 절애의 암벽과 바위들을 유심히 바라다보았지만 거문고를 켜는 신선을 연상할만한 형상의 바위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팔각정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유가사로 하산하는 길은 급했습니다. 후미의 저를 기다리느라 버스의 서울행이 늦어지는 것이 아닐까 해서 마음이 다급했고 내림 길의 경사도 급했습니다. 고도를 낮추어 얼마큼 내려서자 길섶에 무리지어 붉게 핀 진달래꽃들이 만개해 그 동안의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이 정도의 꽃밭이라면 오랜 세월 잠자고 있을 소월을 깨워 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겠다 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시를 읊으며 사진을 몇 커트 찍었습니다.


 

  14시38분 수성골계곡을 건너 B코스에 합류했습니다.

유가사에 이르기까지 20여분간의 하산 길이  편했습니다. 넓은 흙길이 계곡을 따라 잘 나있어 하산하는 중 적당한 곳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닦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종주산행에서 맛 볼 수 없는 계곡산행의 즐거움은 모든 일상의 소리를 잊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리는 말이나 글처럼 딴 뜻이 숨어 있지 않아 듣는 이를 편하게 해줍니다. 분노나 증오의 글도, 거짓과 위선의 말도 아니 보고 아니 하고자 한다면 화음의 소리를 찾아 산길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것은  자연의 소리만한  화음의 소리를 저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귀를 째는 불협화음의 소음이 찾아 들 수 없는 심산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노라면 소리가 저렇게도 맑을 수 있는가 싶고 또 용솟음치는 힘이 온 몸에 전해지는 듯 합니다. 


 

  15시58분 유가사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사찰을 일별했습니다.

신라 흥덕왕 2년인 서기827년에 도성국사가 창건한 유가사는 일명 법상종으로도 불리는 보수적 귀족 불교로 알려진 유가종의 총 본산이었나 지금은 그저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에 지나지 않아 뭔가 조락해 보이고 새 절을 짓느라 부산한 모습이 이 절의 역사가 만만치 않았음을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16시4분 유가사앞 주차장에서 5시간 동안의 길지 않은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비슬산은 대간 길의 비경들을 올망졸망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명산임에 틀림없습니다. 소백산의 넓은 평원, 속리산의 깎아지른 암봉과 암릉길, 황철봉의 너덜겅지대 ,수정봉의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밭과 지리산의 웅장함을 모두 다 조금씩 옮겨놓은 듯한 비슬산은 정말 아름다운 산입니다. 이번 산행이 풀꽃들로 성이 차지 않아 나무 꽃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봄을 기다리는 진달래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해서 산행의 즐거움이 반감된 것은 아닙니다. 지난 주 목요일의 이상저온으로 꽃이 피고 질 때까지 나무줄기 속에서 한참을 더 숨죽이고 기다려야 하는, 그래서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하는 이른 봄꽃의 숙명을 따라야하는 진달래 잎들의 인내와 순종에 그저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언제고 신선과 거문고의 자취를 찾아보고자 다시 이 산을 오를 때를 대비해 바위의 형상과 그 이름들을 익혀나갈 뜻입니다. 그리해야 앞으로 묵묵히 서 있는 바위들과 얼마고 묵언의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