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의 봄바라기.

2월26일 7시에 서대구IC를 빠져나갔습니다.

문경세제에 접해있는 주흘산을 산행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급하게 설친까닭에 늘 가지고 다니던 디카도 빠뜨리고 나왔습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횡풍이 차를 좌우로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 바람에 많이 시달리려나 봅니다.


 

산행들머리인 제1관에 도착한 시간이 10쯤인가 봅니다.

오래전에 드라마 왕건 촬영장 셋트구경을 왔었는데..

지금은 한산한 느낌입니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와서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망루의 깃발만 바람에 나부끼고 있습니다.

셋트장의 풍경은 망해버린 왕국의 잔해처럼 얼씨년스러운데...

유독 깃발만은 항상 깨끗한 새깃발이네요...

묘한 부조화를 느낍니다....


 

오늘 가야할 주흘산 정상을 가늠해보았습니다.

제1관에서 쳐다보는 우측의 봉우리들은 모두 고만고만해서..

그렇지 않아도 길치인 제가 정상을 가늠하긴 불가능하네요

우측 주흘산 등로표시가 있는곳으로 진행합니다.

알맞은 보폭으로 조성된 등로는 걷기에 편안합니다.

수십미터의 여궁폭포앞에서 잠시 땀을 식혔습니다.

이제 봄이라는 착각을 느끼게합니다.

풍부한 수량으로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주흘산이 100대 명산에 들어간다고 하더니

과연 참 아름다운 산입니다.

수십미터의 웅장한 암반이 한쪽면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혜국사까지 가는길은 오르락내리락 왔다갔다 빙빙돌면서...

절벽을 피해다닙니다...


 

혜국사 입구에서 우측계곡을 타고 진행했습니다.

계곡이 얼어붙어서 등로가 보이질 않습니다.

10분가까이 조심조심 발길을 옮기는데...

등로가 없어져버렸습니다.

다시 내려와서 혜국사 뒤편을 살펴보았지만...

눈에 등로가 들어오질 않습니다.

분명히 올라오면서 혜국사 입구에서 주흘산 등산로라는

표지방향으로 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등로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이쪽저쪽 능선을 옮겨다니면서 등로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따라 이쪽으로 올라오는 등산객이 한명도 안보입니다...

지도 한장 준비하지 않은 게으른심성을 후회합니다.

할수없이 혜국사 뒤편으로 난 소로길을 따라서 무조건 능선으로 올라갔습니다.

20분정도 올라가니 길이 없어져버리네요...

이제 다시 내려올 수도 없고 가파른 능선을 그냥 올랐습니다.

능선에 깔린 참나무잎에 얼마나 미끄러졌는지...

그래도 다행입니다..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체력소모가 심했나봅니다..쵸쿄바 한개를 먹었습니다...

1시간 너머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능선에 올랐습니다...

올라오면서 안보이던 잔설이 아직 겨울임을 세삼 느끼게 합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북사면의 잔설위를 지나 계곡의 산죽밭에 찢어진

바람의 파편들이 비늘처럼 박혀옵니다.

몸을 흔들어 툭툭 비늘을 털어내고

능선에 연결된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다가섰습니다.

몇일전일까 지나간 산님의 발자국이 얼어붙언채 길안내를 합니다.

능선길이 많이 위험합니다..좌우측으로 깊은 낭떠러지이고

길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긴장을 해야 합니다.

얼마를 걸었을까..길이 넒어지면서 삼거리가 나타나고...

산님들 몇분이 앉아 점심을 하고 있습니다.

이정표를 보니 주흘산주봉 밑입니다...

제가 온길을 돌아보니....등로없음 표지가 있네요...

이제사 제가 처음 들어섰던 계곡쪽길이

정상 등산로임을 알게됩니다.

길이 없어진 곳에서 우측능선으로 붙어야 합니다.

이제 10분정도 거리에 있는 주봉에 올라 조망을 합니다...

탄성이 나올만큼 웅장하진 않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산임을 다시 느낍니다.

주봉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고 치맛폭마다

아담한 마을이 자리잡고..

마을을 비껴난 황토빛길은 모두 주흘산주봉을 향해있습니다.

햇볕좋은 양지에서 점심을 먹고 영봉으로 갑니다.....

영봉에서의 조망은 주봉보다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등산안내판에 의하면 영봉에서 주봉쪽으로 좀 더 진행하면

제2관문쪽으로 하산하는 소로길이 표시되어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습니다.

오늘 알바를 확실히 하는가 봅니다.

다시 영봉쪽으로 역산행을 해서 제2관문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영봉에서 하산하는길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가파른 계곡을 사이에 두고 한참을 내려왔습니다

어느순간 갑자기 산죽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드문드문 보이던 산죽은 어느틈에 산죽밭으로 보입니다

한겨울 그토록 푸르던 산죽잎이 누렇게 보이네요..

아마 벌써 봄빛속에 마음껏 푸를 주흘산 계곡을 보고 있나봅니다.


 

거의 내려왔습니다.

산죽밭을 지나면서 부터는 계곡을 밟고 내려옵니다..

북사면의 잔설과 바람은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다만 화끈거리며 열이나는 귓불에 희미한 기억이 묻어 있을뿐입니다.

아직은 한뼘깊이의 두터운 얼음이지만

흐르는 물소리에는 이미 산유화의 노란빛과

갯버들의 보드라움이 섞여 있었습니다.

맑은 햇살에 비친 계곡의 얼음은 옥색으로 푸르고...

햇살 한웅큼 쥐어든 참꽃나무는 가늘게 실눈을 뜨고 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주흘계곡의 물빛은 부유하는 봄의 원소들로 흐려질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계곡깊이 푸르를것입니다.

그때쯤 저는 가인으로 다시 주흘산을 찾겠습니다..


 

어쩌면 다시 지난 겨울을 그리워하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