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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만남과 헤어짐
사십에 도전했던 백두대간 무지원 연속 단독종주 후기
 
▲ 소백산의 주능선
ⓒ 정성필
저수령에서는 두 명의 백두대간 종주자가 백두대간의 호텔인 저수령 팔각정 안에 텐트를 치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갔다. 단독종주 중에 나와 같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문복대를 넘으면서 갈증과 더위에 지치고 힘들었던 몸에서 불끈 힘이 솟았다.

인사를 하려고 백두대간 종주자를 보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태환 형이다.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지리산에서 처음 만나고, 신풍령에서 다시 만났던 김태환 형을 여기서 또 만난 것이다.

태환 형이나 나나 반가운 마음으로 놀라운 마음으로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한참을 있었다. 태환 형의 얼굴은 그새 반쪽이 되어있었고 몸도 많이 야위어 보였다. 태환 형과 내가 백두대간 상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 번씩이나 만나다니 보통 인연이 아니었다.

또 다른 대간꾼은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가득한 두타님이었다. 두타는 이름이 아니고 두타산을 너무 좋아해서 인터넷 아이디로 사용하는 이름이라 했다. 두타님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라는 포탈사이트 카페의 회원이었고 그의 배낭에는 '산오사'라는 깃발이 붙어있었다.

▲ 저수령에서 만난 사람
ⓒ 정성필
두 사람은 오늘 일찍 저수령에 도착하여서 산중휴식으로 쉬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와 만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신기하고도 반가운 일인가. 사실 저수령휴게소는 대간꾼에게는 호텔이나 마찬가지였다. 팔각정이 있어서 편한 잠을 잘 수 있고 휴게소가 있어서 보급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오전 산행만 마치고 일찍 텐트를 치고 쉬고 있었다. 밥을 해놓은 두 사람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혼자 먹던 밥이 함께 먹는 밥으로 바뀌자 밥 먹는 일이 무슨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마냥 즐겁다. 저녁을 먹고 두타님이 저수령 휴게소에서 막걸리를 두 병 사온다.

우리는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백두대간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타님은 텐트도 없이 종주를 하신단다. 짐 무게를 줄이려고 텐트도 없이 비닐로 플라이를 만들어 침낭 하나 덮고 자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다.

나는 줄일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온갖 잡동사니를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그는 버릴 것 다 버리고 셈이다. 두타님의 말을 들으니 부끄러웠다. 저런 강인함이 어디서 나올까? 두타님의 강인함을 배우고 싶었다.

태환 형과는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환 형은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를 했단다. 태환 형은 잘 때 가스등을 켜고 잔단다. 텐트 안에 가스등을 켜놓고 있으면 밤새 추워서 떠는 일 없이 따스하고, 또 불빛 때문에 짐승들이 접근을 하지 않아 가스등을 켜고 잔다 했다. 부러울 따름이다.

태환 형은 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한 진정한 산악인처럼 보였다. 나는 산길을 밟고 다닐 뿐이었지만 태환 형은 산을 느끼며 산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며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부러웠다. 우리의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지만 내일 산행을 위해 자야만 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산이 무엇인가? 산에 대해 생각하다 잠이 든다.

▲ 이별
ⓒ 정성필
아침에 밥을 함께 먹고 우리는 이별을 고했다. 죽령으로 향하는 길, 두 사람이 가파른 산길로 오르는 그 길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보급을 위해 수산리에서 목회를 하던 김 목사님을 만나러 가기로 하고 두타님과 태환 형은 죽령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월악산 밑의 농촌교회까지 가기 위해 소백산 목장으로 내려갔다.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교회에 가서 보충을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보급을 받고 가는 길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든든하다.

태환 형을 따라 잡기는 힘들다. 산길에서는 십 분만 떨어져도 추월하는 일은 초인적인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나보다 월등히 체력이 좋고 걸음이 빠르기까지 한 사람들 아닌가?

▲ 국망봉 가는 길
ⓒ 정성필
처음 태환 형을 만났던 날, 태환 형은 고기리까지 먼저 내려가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혼자 하는 산행보다는 함께 가려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늦게 내려오니까? 너무 늦다 보니까?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수정봉으로 먼저 향했다는 것이다.

형이 내려간 시간과 내가 고기리로 내려선 시간차를 보니 한 시간 정도 시간 차이가 났다. 나는 한 마디로 거북이였고 달팽이였다. 나 같은 달팽이가 태환 형을 따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꾸준하게 걷자 마음먹고 오후부터 걷는다.

헬기장을 지나 묘적봉을 오른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도솔봉 밑 헬기장에서 막영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죽령을 향한다. 죽령에 도착한 시간은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다. 소백산 들어가기 전 백두대간 종주 이후 처음으로 국립공원 입장료를 낸다.

▲ 헬기장에서의 막영
ⓒ 정성필
날은 뜨겁다. 연화봉까지 가는 길은 시멘트 길을 따라 간다. 지루하다. 땡볕에 시멘트도로에서 복사되는 빛에 지친다. 나는 시멘트 길을 버리고 잡목이 우거진 산길로 들어간다. 덩굴과 가지 때문에 걸음에 속도가 나지 않지만 나무그늘로 위로를 받는다.

연화봉에서 비로봉가는 길은 환상적이다. 시야가 탁 트인 것이 환상적이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향한다. 국망봉에서 고치령 가는 길에 해가 떨어진다. 막영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쉬이 찾을 수 없다. 신선봉 갈림길에서 고치령쪽으로 가다 헬기장을 발견한다. 이미 해가 기울어 사방이 어둡다. 텐트를 친다.

이틀 동안 무리한 운행으로 몸이 많이 지친 듯해서 늦잠을 자려 마음을 먹었는데, 새벽 4시가 조금 지나자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일어나 보니 사람들이 헬기장에 많이 모였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오케이마운틴닷컴의 추억의백두대간(이하 추백)팀이란다.

▲ 추백팀과 함께
ⓒ 정성필
산 사람들은 산에서 만나나 보다. 나는 생각지도 않게 추백 팀에게 아침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욱국에 밥 그리고 칼국수까지 잘 얻어먹고 이미 오래전에 백두대간을 하셨다는 밤도깨비님과 에버그린님의 따듯한 격려를 받는다. 헤어지는 길 대간 꼭 성공하시라면서 참외, 오이, 오렌지를 주고 가신다.

추백 팀이 떠난 자리,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훈훈한 산사람들의 정을 느끼며 이미 깨어버린 잠을 배낭에 끄려 넣어 버리고 이른 시간 고치령을 향해 간다.
2004년 5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백두대간 연속종주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