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흔적을 찾아서... 아차산


 

한강과 함께 오랜 숨결로 광진의 대지에 숨을 불어 넣어주고 광진과 함께 살아온 산이 바로 아차산이다. 그래서 아차산은 광진의 푸르름을 더욱 맑은 빛으로 우리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광진구청에서)

(아차산과 한강)

  

- 산행일 : 2005. 12. 10(토) 맑음

- 산행자 :  san001

 

- 산행요약

■ 코스 : 아차산역~영화사~아차산입구~팔각정~아차산성~제4보루성~용마봉~정자~면목동

■ 시간 : 산행시간 약2시간10분, 총시간 3시간1분

■ 구간별

아차산역~(11분)~영화사~(3분)~아차산입구~(6분)~너럭바윗길갈림길~(9분)~팔각정~(1분)~주능선~(8분)~아차산성~(4분)~낙타고개~(2분)~팔각정갈림길~(1분)~대성암갈림길~(4분)~해맞이광장~(4분)~271봉(추정)~(7분)~봉우리~(5분)~제3보루성~(10분)~제4보루성~(3분)~긴고랑갈림길~(9분)~헬기장(용마봉갈림길)~(4분)~제3헬기장~(10분)~용마봉~(8분)~갈림길~(3분)~정자~(15분)~동네~(3분)~중산주유소)(도로)

(출처 : 한국의 산하)


 

- 산행기

 

역사의 격전장 아차산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인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인 한성(풍납토성으로 추정)을 함락시킨다. 이 때 백제의 왕인 개로왕은 아차산에 붙들려와 죽임을 당하고 한성백제는 멸망한다. 백제 최대의 위기이며 웅진 천도의 계기가 된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 후 고구려는 한성이 마주보이는 한강 건너편의 산에 진지(보루)를 구축하고 군대를 주둔시킨다. 그 산이 바로 지금의 아차산이다.

 

아차산.

한강에 접하고 있는 높이 285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전략요충지로써 삼국시대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온 산이다.

아차산의 남단에 위치한 아차산성의 축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장수왕이 한성을 공격하기까지는 대체로 백제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때부터 본격적으로 남진정책을 추진하며 장수왕 때에 와서는 마침내 한성백제를 멸망시킨 후 아차산에 보루를 쌓고 약70여년(475년~6세기 중엽)간 아차산 유역을 집중적으로 관할한다.

이 후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약60년간 지속된 나제동맹이 깨어지면서 신라의 진흥왕이 553년 한강유역을 차지한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기까기 일진일퇴를 거듭되는 격전의 장.

바로 그 중심에 아차산이 있다.   


 

고구려에 대한 관심으로 찾아가다

 

아차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KBS의 역사스페셜를 보고 난 이후이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대제국 고구려. 남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구려의 유적이 아차산에서 발굴되었다니 획기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그동안 아차산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온달장군이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는 정도. 그런 역사는 전설속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하다가 현실로 다가온 고구려를 보고 아니 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 쉽게 시원한 전망을 맛보다

 

처음 찾아가는 아차산. 아차역 2번 출구로 나와 길을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냥 앞서가는 등산객을 따라 나선다. 동네를 지나 10분 정도 가면 역시 영화사가 나온다.

영화사는 신라 문무왕 12년 (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특이한 것은 조선 태조 4년(1395년)에는 이 절의 등불이 궁성에까지 비친다고 하여 절의 위치를 옮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지금의 위치는 아니지만 절의 불빛이 비친다는 것은 궁이 있는 서울 중심부까지 장애물이 없다는 뜻으로 보루성이 산재한 아차산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영화사 입구, 약20m 전에 우측으로 아차산 가는 길이 있다)

(영화사 경내)

 

영화사 입구에 있는 동의 초교 담장을 끼고 순환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아차산입구가 있다.

입구 주위에는 생태공원, 관리사무소, 만남의 광장 등이 있고 시원한 소나무길을 따라 약수터, 정자와 작은 공연장 등 주민의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좌측 동의초교 담장을 끼고 아차산입구로 가는 도로)

(아차산 입구)

(입구에 있는 아차산안내도)

 

입구에서 아차산 오르는 길은 세 가지. 첫째는 입구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아차산성으로 가는 길이고, 둘째는 계곡을 따라 낙타고개로 가는 길, 셋째는 계곡에서 좌측 너럭바윗길을 따라 가는 길이다.


 

두 번째 약수터를 지나 좌측 너럭바윗길로 오른다. 완만한 경사의 바위가 상당히 넓게 펼져진다. 대부분의 등산객들도 이 길을 따른다.

(너럭바윗길이 갈라지는 지점, 직진하면 낙타고개로 오른다)

(너럭바윗길)

(너럭바윗길에서 바라본 우측 아차산성과 가운데 파진 부분이 낙타고개)

 

곧 능선에 있는 팔각정에 도착하면 도도히 흐르는 한강과 빽빽이 들어찬 주택들이 시원하게 보인다. 낮지만 거침없는 전망. 한달음에 올라 이렇게 쉽게 정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편안하면서도 보여주는 것이 너무 많은 아차산. 매력적인 광진구민의 쉼터라 아니할 수 없다. 

팔각정 앞에는 따스한 햇볕아래 비둘기들이 한가롭게 졸고 있다. 사람들과 이미 친숙해서인지 바로 옆에 가도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팔각정자)

(팔각정자)

(졸고 있는 비둘기떼)

(팔각정자에서 바라본 강남풍경)

 

아차산 정상은 팔각정에서 좌측으로 가야 하지만 아차산성을 보기 위해 우측으로 내려간다.


 

역사의 영욕을 함께 한 아차산성

 

낙타고개를 지나 잠시 오르면 길게 울타리가 둘러싸여있는 아차산성이다. 기대와는 달리 문화재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된다.

(낙타고개)

(울타리에 둘러싸인 아차산성)

 

아차산성(阿且山城)은 삼국시대의 산성으로 한성백제시대에 고구려를 대비하여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지만 발굴된 유물과 흔적은 대부분 고구려시대의 것이며 산성축성 방법도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아단산성(阿旦山城)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며, 아차성(峨嵯城), 장한성(長漢城), 광장성(廣壯城)으로도 불린다. 현지 안내판에는 아차산성을 아단산성으로 당연시 하고 있다.

해발 203m의 산 정상을 중심으로 한강을 향해 동그랗게 축조된 형태로서 전체 길이는 1,125m, 성벽의 높이는 외부에서 보면 평균 10m, 내부에서 보면 1~2m이다.

성벽을 살피기 위해 울타리를 따라 조금 나아가면 약1.5m 높이의 성벽이 나타난다. 눈으로 처음 확인하는 고구려의 흔적. 고구려가 역사가 아닌 현실로 되어 나타난다.

(아차산성의 성벽)

 

또한 아차산성에 관해서는 두 가지 역사적 기록이 전해온다.  

하나는 한성백제가 고구려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성 아래에서 죽임을 당했으며(475년), 다른 하나는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장군이 죽령 이북의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하여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 성 아래에서 죽었다는 것(590년)이다.


 

보루성의 발자취를 따라

 

아차산성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주능선길은 편안한 바위와 소나무가 적절히 숲을 이루어 부드럽다.

(부드러운 오솔길)

 

대성암 갈림길을 지나면 해맞이광장이 나온다. 시야가 트인 장소에 해를 잘 볼 수 있도록 두 군데의 나무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유유하게 흐르는 한강과 그 뒤로 하늘금을 그리는 예봉산, 검단산, 천마산 등 경기도의 산들의 전망에 가슴이 탁 트인다.

(해맞이광장)

(해맞이광장에서 바라본 아차산성, 뒤의 봉우리가 아차산성이 있는 203봉이다)

(해맞이광장에서 바라본 한강과 예봉산)

(해맞이광장에서 바라본 구리시와 뒤의 천마산)

 

해맞이광장을 지나면 아차산 제1보루성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오른다. 가운데는 평탄하고 주위는 원형으로 둔덕을 이룬 형상이 분명 인위적인 형태로 짐작이 된다.

(아차산 제1보루성으로 추정되는 지점)

 

보루성은 주변을 조망하기 유리한 고지에 쌓은 둘레 300m 정도(최대 600m)의 소형 석축산성으로 아차산의 보루성은 모두 15개 정도로 추정된다. 이 중 아차산 주능선에 5개, 용마봉 줄기에 4개, 기타 6개이다.   

(아차산 고구려 보루성위치도, 출처 광진구청)

 

평탄한 길을 따라 7분을 가면 다시 봉우리에 오른다. 한동안 수풀에 가렸던 용마봉의 시원한 모습이 들어난다. 여기서 우측 대성암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을 따라 조금 가면 아차산 제2보루성이 위치한다. 보루성의 위치가 한결같이 전망이 좋은 곳이다.

(평탄한 주능선길)

(봉우리에서 바라본 용마봉, 뒤로 북한산이 보인다)

(당겨 바라본 북한산)

 

봉우리 바로 앞에는 아차산 제3보루성 발굴이 진행 중이다. 현재 발굴이 된 곳은 아차산 제4보루성과 시루봉 보루성 두 곳이며 진행 중이거나 계획된 곳은 아차산 제3보루성, 홍루봉(아차산입구의 남서쪽 봉우리) 제1보루성과 제2보루성 등 세 곳이다.

지정학적인 위치로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접근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루성의 발굴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아차산 제3보루성 발굴 현장)


 

아차산 제4보루성

 

발굴중인 봉우리를 우측으로 돌아서 다시 능선에 오른다. 산책로같이 편안한 길에는 등산객들이 상당히 많다.

 

10분 정도 가면 아차산 제4보루성에 오른다. 여기가 286.8봉으로 아차산의 정상이라 표시된 봉우리이다. 아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용마봉이지만 긴고랑안부를 사이에 두고 용마봉 일대를 용마산이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제4보루성이 있는 봉우리는 직사각형의 형태의 평평한 지역이다. 발굴 현장에 들어갈 수 없도록 가운데 줄을 쳐놓고 길을 만들어 놓았다.

(아차산 제4보루성)

 

제4보루성은 6세기 중엽, 백제와 신라의 연합군이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해 고구려와 대치하던 당시의 보루성이다. 성벽의 규모는 남북 75m, 동서 25m, 둘레 약300m 가량으로 오늘날의 규모가 큰 참호 또는 진지와 개념이 비슷하다.

97년과 98년 두차례의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발굴결과 7기의 건물지, 2기의 집수시설, 13기의 온돌시설, 각종 토기와 철기류 등 100명 정도의 군사가 주둔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은 성에도 고구려의 특징이 확연히 나타난다. 고구려성에서 처음 나타난 치(雉)와 우리 민족의 대표적 난방시설인 온돌. 이런 고구려를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중국민족의 변방국가로 만들려고 하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 아닌가.

특히 여기서 출토된 화살촉을 분석한 결과 오늘날의 강철과 비교해도 거의 손색이 없는 질이 좋은 강철로 만들어졌다. 그 파괴력은 왠만한 갑옷을 관통할 정도로 대단하다. 이런 우수한 철기문화와 고구려 특유의 기마문화가 당시 대제국 고구려의 힘이 아니었을까.

(현지의 안내판)

(아차산 제4보루성 유구 배치도)

 

77년 구기동 보루성이 최초 발굴될 당시만 해도 고구려라는 나라는 먼 북쪽에 위치한 국가로 생각하여 백제의 유적으로 추정했다. 그러다 서서히 밝혀지는 고구려의 비밀. 그만큼 아차산 제4보루성의 발굴은 상당히 획기적인 발굴이다.   

산 능선에 위치하여 거의 훼손이 없는 상태에서 발굴되었고,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보루성의 형태 등 고구려의 역사, 문화와 한강유역과 관련된 장수왕의 남진정책 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남한에서의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안내판의 그림과 글을 읽으며 그 당시로 빠져 들어간다. 뭔가 모르게 벅차오르는 감동. 고구려에 대한 관심으로 읽어왔던 수많은 책과 역사스페셜로 재조명된 고구려라는 실체가 빠르게 머릿속을 휘젓는다.

광개토대왕비(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라 불리는 비석에서 그 많은 글들 중 유독 일본이 주장하는 임라일본부설만 대두되고 논란이 대상이 되는 것이 비문의 전부인줄 알았다가, 나머지 글의 의미를 파악하고야 대고구려의 실체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는 사실. 고구려는 당시 백제나 신라, 왜라는 소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개 국가가 아니라 그런 나라들을 영향권하에 둔 대제국이었다. 역사의 해석에 있어서도 나무에 얽매이지 숲을 봐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내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던 계기 또한 고구려이다.

 

제4보루성을 확인하자 산행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기분으로 허탈감이 느껴진다. 원래는 용마봉을 들렸다가 망우리공원으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진로를 바꾼다. 산행보다 중요한 용마산 보루성의 확인이 머릿속을 채운다.

(아차산 제4보루성에서 바라보는 좌측 용마봉, 좌측에 용마산 제3보루성, 중앙의 봉우리에 용마산 제4보루성이 있었다)


 

용마산 제4보루성

 

용마봉으로 가는 길은 훤히 노출된 길이다.

잠시 내려가면 긴고랑 안부. 이름그대로 능선 사이에 길게 고랑이 패여 있는 형상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맞은편 보루성과 눈높이를 맞춘다. 높이는 낮아도 참으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 잡은 것이 보루성이다.

(용마봉으로 가는 길)

(긴고랑 전경)

(용마봉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길에서 뒤돌아본 아차산 제4보루성)

(아차산 제4보루성)

 

헬기장인 320봉(용마산정상 0.5km, 아차산생태공원 2.5km, 순환도로삼거리 1.5km)에 오른다.  이 봉우리가 망우리공원과 용마봉의 분기점이다.

(헬기장인 320봉, 능선의 분기점이다)

 

용마봉 방향으로 접어들면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그 봉우리(제3헬기장) 역시 용마산 제4보루성이 있던 곳이다. 겉보기에는 보루성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흙속에 역사를 간직하고 고이 잠들어있을 고구려를 기대한다.

봉우리에서는 전반적으로 고도가 약70m 낮은 아차산의 주능선이 잘 내려다보인다.

(제3헬기장에서 내려다본 아차산 능선)

(제3헬기장에서 바라본 용마봉)


 

서울동부지역의 전망대 용마봉

 

정상은 지척에 우뚝 솟아있다. 용마산체력단련장을 지나면 바로 삼각점이 있는 용마봉이다.  용마봉의 삼각점은 서울에 있는 2개의 대삼각본점 중 하나로 동서남북 방향 표시가 돌에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해발 높이를 측정하는 기준점이 되는 곳이다.

(용마봉)

(정상 직전에서 바라본 망우리공원으로 가는 능선)

(용마봉에서 바라본 남산쪽 전경)

(정상에서 바라본 강남쪽 풍경)

 

용마봉에서의 전망은 서울 근교의 산들 중 가장 대단하다. 급하게 떨어지는 산사면 아래에서부터 틈 하나 없이 들어찬 집들과 수없이 가지를 친 도로, 그리고 북한산을 비롯한 서울근교의 산까지 동부서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멋진 전망은 이 봉우리에 용마산 제3보루성을 설치하도록 만들었다.

 

정상 바로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컵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바람이 불지 않아 의외로 따스하다. 멀리 햇빛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한강에 취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용마산 보루성을 바라보는 하산길

 

용마산에서의 하산은 크게 용마돌산공원, 대원외국어고등학교, 뻥튀기골 방향이 있다. 이 중 대원외국어고교로 가는 능선상에 용마산 제2보루성과 제1보루성이 위치한다.

 

좌측 능선길을 따라 뻥튀기골 방향으로 내려간다. 뻥튀기골이란 이름이 특이하여 지료를 찾아보았지만 알 수가 없다.

하산길은 초반에만 가파르고 이내 완만해진다. 능선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용마산 제2보루성이 있던 장소이다. 용마산 제1보루성은 제2보루성 앞쪽. 아차산 전반에 걸쳐 요충지에는 반드시 보루성이 있는 것이 아차산보루성의 특징이다.

(대원외국어고교로 하산하는 능선길, 뒤의 봉우리가 용마산 제2보루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용마산 제2보루성과 제1보루성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능선, 대원외국어고교로 하산하는 능선) 

(하산도중 바라본 북한산 전경)

(하산하는 길)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용마산 정상 356m, →중랑구 구계 470m, 뻥튀기골입구 535m)에서는 우측으로만 표시가 되어 있다. 직진하는 방향은 표시는 없지만 대원외국어고교로 가는 길이다.

 

우측으로 접어들면 용마산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바위지대의 위에 새워진 멋진 전망대이다. 산허리길을 지나 다시 능선에 접어든다.

능선의 끝은 주택가. 잠시 내려오면 면목동의 중산주유소 앞이다.

(용마산정)

(용마산정에서 바라본 하산길, 바위에 철난간이 있다)

(용마산정 일대의 바위지대)

(산허리길을 지나 자시 능선에 오른다)

(하산길의 쉼터)

 

 

아차산을 다녀와

 

상상한 것보다 참으로 전망이 좋은 아차산이다. 산에서 흘린 땀만큼 보상받는 것이 전망인것에 비해서는 너무나 쉽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준다.

쉽게 오를 수 있어 산행지로서는 다소 아쉬울지는 몰라도 마음의 휴식을 취하기에는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상당히 정겹다.

고구려를 찾아 떠난 산행.

그 흔적을 느끼고 왔다는 것에 만족한다. 눈으로 보여주는 부분도 별로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1500년 전에 아차산과 함께 하였을 고구려군을 생각하며 그들이 느꼈을 자부심을 공감할 수 있었고, 지형학적으로 중요한 아차산의 의미 또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산행이 되었다.

자녀들에게 고구려의 의미를 설명해주며 산행을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은 역사의 산이다.


 

- 구간별 일정

   10:10   아차산역(5호선) 2번 출구

   10:21   영화사, 동의초교

   10:26   출발

   10:29   아차산입구, 아차산안내도

   10:32   출발

   10:34   약수터, 정자 : →능선길, ↑계곡길

   10:38   약수터, 갈림길 : ↖완만한 너럭바윗길, ↗계곡길

   10:47   팔각정

   10:51   출발

   10:52   주능선(이정표 없음)(a) : ←아차산정상, →아차산성

   10:54   낙타고개,안부(b) : →공원관리사무소697m, ↓용마산정상2704m, ↑아차산성349m

   10:58   아차산성 울타리

   11:00   돌아섬, 성벽이 보임

   11:04   낙타고개, 안부(b)

   11:06   팔각정 갈림길(a)

   11:07   대성암 갈림길 : ↑해맞이광장 200m, ↓영화사 814m, ↗대성암 741m

   11:11   해맞이광장(꿈과 희망의 쉼터) : 나무데크

   11:15   271봉 추정(아차산 제1보루성 추정)

   11:21   전망지대, 울창한 소나무 : 용마봉이 잘 보임

   11:22   봉우리 : 전망이 좋음

   11:27   아차산 제3보루성 발굴 현장

   11:37   286.8봉, 제4보루성

   11:46   출발

   11:49   긴고랑 갈림길 : ↑용마산정상 856m, ↓제4보루성터 150m, ←긴고랑입구 1323m

   11:58   320봉, 헬기장 : ←용마산정상 0.5km, ↓아차산생태공원 2.5km, ↑순환도로삼거리 1.5km

   12:02   봉우리, 제3헬기장(용마산 제4보루성 추정)

   12:12   용마봉 : 뻥튀기골입구 891m, 공원괸리사뭇 3401m, 제2헬기장 578m

   12:42   출발

   12:50   이정표 : ↓용마산 정상 356m, →중랑구 구계 470m, 뻥튀기골입구 535m, ↑대원외고 방향(표시없음)

   12:53   용마산정(정자)

   12:56   용마산약수터

   13:01   119 G6 (등선오르막 분기점)

   13:08   동네, 미성힐그릴A

   13:11   중산주유소(면목동), 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