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마이봉을 업고 있는 암마이봉 (팔각정에서), 삿갓봉에서 봐야 숫마이봉이 제대로 보인다는데...


 

                                                말의 두 귀가 명품이다보니  안내판도 수준급
 

MAI는 MY로 하면 더 쉬울텐데


 

첫눈이 덮여 문필봉이 된 마이산(馬耳山)

 

마이산 (馬耳山; 673m) : 전라북도 진안군 도립공원

사이버클럽 산악회 버스3대 (123명)

2005/12/04(일) 맑음, 오후 눈

 

남부주차장 (11:20) – 능선– 비룡대 (나봉암, 527m) – 봉두봉 (540m, 점심13:40-14:00) – 탑사 – 은수사 – 천황문(고개) - 화암굴 – 북부 주차장 (15:30) – 진안 음식점 출발 (16:45) –사당 (21:40)

 

             *                  *                  *

 

간밤에 내린 눈으로 기대 부풀어

 

눈이 온다거나 왔다면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더욱 더 흥분될 것이다. 가을이 끝나 나목들만이 서 있는 산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영동 산간에는 지난 10월 하순 이미 눈꽃을 피워 처음은 아니지만 들과 도심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것은 어제 밤이 처음이라 본격적인 겨울의 예고이기도 하다.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마도 스키장으로 달려가지만 나는 예정된 진안의 마이산으로 이미 마음이 먼저 가 있다.

 

123명의 일행 중 간밤에 잠 못이루고 뒤척인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설렘이 꼭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승용차 지붕과 나무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과 빙판진 아파트 단지 내 공간들…상기된 마음 한켠에 우려가 뒤따르는 이유다. 7시가 다 되어 사당역 주차장에 도착하니 회원 대부분이 와 있다. 제대로 버스가 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의 눈빛과 함께 마이산에도 눈이 있으면 하는 얼굴 표정들이다. 오늘 같은 날씨에 버스 3대가 가면서 20분 늦게 출발한다면 아주 양호한 것 같다.

 

마지막 정기산행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타나는 절개지는 눈이 두텁고 산아래 마을 집들 역시 두꺼운 솜이불을 덮은 것 같다. 산속의 앙상한 나무들도 사이사이 눈이 채워져 포근해 보인다. 해가 떠 오르는 걸 보니 날씨는 괜찮을 것 같다. 총대장님은 도로 사정 때문에 좀 늦게 산행 들머리 남부 주차장에 도착될 것 같다며 만일을 상정한다. 3시 반까지 북부 주차장에 오면 되겠단다. 지난밤 식구들과 눈을 맞으며 집 근처 뚝방을 걸었다는  총대장님은 마지막 행사가 눈이 내려 축복 받은 정기산행이 될 것이라며 기뻐한다.

 

나로서는 두 번째 참여한 정산. 최근 새 회장이 선출되어 퇴임 회장 산맹님의 간략한 인사말도 있었다. 이 클럽 전통으로 자기 소개를 한명씩 나와서 하게 한다. 사이버상에서 만나다가 등산하며 얼굴을 익히는 형태의 산악회다. 이번 산행에도 신입회원들이 절대 다수일 정도로 신진대사가 활발한 산악회란다.

 

용담댐 끝자락이 맛뵈기로 나타나

 

대전-진주 고속도로를 달리다 무주 적상인터체인지에서 30번 국도로 바꿔 달린다. 눈덮인 모습이 더욱 가까워진다. 용담댐 끝자락이 길을 따라 나타난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 크다는 용담댐은 식수와 농사철 들판에 물을 대주고 금강으로 빠져 나간단다. 댐이 있다는 이정표도 지나고 반일암, 운일암, 운장산으로 빠져나가는 길목도 지나친다.  여름에는 하늘높이 뿜어 올린 분수대가 지나는 호수에 보인다.

 

진안읍내에 들어선다. 일반적으로 “무진장”하면 “매우” 또는 많음을 강조하는 뜻으로 생각할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진안을 가는 버스안의 회원들은 무주, 진안, 장수의 첫 자의 합성어임을 쉽게 연상한다. 도로가 잘 나기 전에는 오지 중 오지의 대명사로 쓰였는데 이제는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이 곳을 지나 서울에서도 3-4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 됐다.

 

기가 센 종마의 두 귀가 정면에

 

읍내를 빠져 나오면서 정면으로 서쪽 암마이봉, 동쪽 숫마이봉이 우리가 달력에서 많이 본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선 태종때 나라제사를 지내다 말의 귀같다고 해 바뀐 이름이란다. 귀가 쫑긋 한 게  기가 센 종마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잠깐 보이다 없어졌나 싶더니 이내  신촌마을로 우회전 남부 주차장에 들어온다. 도로 양쪽에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벚나무가 우리를 환영하는 사열을 하는 것 같다. 봄이면 펼쳐질 정경이 눈에 선하다. 11시를 훌쩍 넘겼는데도 주차장에는 버스가 별로 없다. 관광 비수기라는 뜻인가 보다. 금당사의 일주문이 서 있고 금당사에 있는 보물들을 설명해 놓은 석물과 좌불도 있다. 주차장에서 정면으로 하늘 높이 정자가 보인다. 나봉암 (527m) 정상에 조망대로 지어 놓은 팔각정 비룡대란다.


               벚나무가 가로수로 서있는 남부주차장 진입로


산중턱에 있는 금당사의 일주문이 주차장 끝에



 

대장정에 들어서는 완전무장한 대원들

 

모범생들의 행군
 

조별로 (버스 1대 2개조) 인원점검 후 깃대를 든 대장의 뒤를 따라간다.  탑영제와 탑사로 난 길을 가다  이내 왼쪽 좁은 등산로로 들어선다. 발이 눈위로 올라오니 사람들이 아이젠이라도 해야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놀란다. 일렬 행군이다. 산속으로 완전히 들어서기 전  정 방향 위로 금색을 한 집이 보인다. 쉽게 짐작이 가는 일주문 주인인 금당사. 오솔길로 들어서니 조릿대가 양옆으로 깔리고 쭉쭉 뻗은 굴참나무가 많이 나타난다. 길이 가파라지면서 미끄러운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행군 속도가 뚝 떨어진다. 그렇게 한번 올라치더니 등로가 옆걸음 친다. 나무 사이로 아련하게 동쪽으로 주차장에서 보았던 팔각정이 고도를 좀 낮추면서 나타난다.

 

간밤의 눈 파노라마로 수묵화 그려 놓아

 

앙상한 낙엽수들 사이로 난 외길을 따라 가다 가파른 오르막에 스텐레스 난간 손잡이를 만난다. 난간을 잡고 포즈를 취하느라 바쁘다. 남쪽과 지나온 서쪽으로 시야가 넓어진다. 봉에 오르니 가는 길 쪽으로 멀리 팔각정이 오똑 정상에 서 있다. 팔각정 오른쪽으로 툭 떨어지면서 말등 같은 수평 능선(제1 쉼터)도 또렷하다.  간밤에 애린 하얀 눈은 360도 수묵화를 그려 놓았다.  올라갔다 흘러내림을 반복하며 겹겹이 포개지는 굵은 회색능선과 허연 산사면이 그렇다. 봄, 여름, 가을과 구분되는 겨울의 다른 모습이다. 북쪽은 수묵화를 그리다 만 백지도 많다. 북서쪽으로는 들판에는 하얀 색을 더 집어 넣어 산과 달리 그려 놓았고 고가도로도 뚜렷이 해 놓았다. 화가들은 이들의 극히 일부만이 평면적으로 담아내지만 자연이 그린 수묵화는 4차원 파노라마가 돼 웅장함은 말할 수 없다.


 

선이 굵고 부드러운 남서쪽 봉우리들

북서쪽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분지 마을

수묵화는 여백(흰색)이 많아야 한다나...

             기사도 정신은 이런 때...

다시 눈이 쌓인 오솔길을 따라가다, 오르기 힘든 곳은 손을 잡아 끌어 주기도 하고 미끄러운 내리막은 발로 받침목을 만들어 주면서  팔각정 아래 제1 쉼터에 이른다. 조별 사진 찍느라 바쁘다. 동쪽에는 왼쪽 삿갓봉에서 봉두봉으로 연결된 선명한 능선 위로 눈을 뒤집어 쓴채 암마이봉이 더욱 가까워졌다. 숫마이봉은 오는 길 내내 쫑긋한 귀끝을 암마위봉 왼쪽 끝에 맛보기라는 듯이 슬쩍 조금만 내보이고 만다.


 

       원근을 적당히 잡아본 팔각정

       팔각정의 동쪽  (대포알이 뚫고 지나 갔나...)

      철사다리가 있는 팔각정 서쪽


     탑영제가 내려다보이는 제2쉼터에서 바라본 팔각정의 뒷모습이 마치 중세 유럽의 성(城)처럼

 

확 트인 팔각정에서의 조망

 

철사다리를 올라 팔각정에 오르니 팔방이 조망이 잘 된다. 벤치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바닥에 쌓인 눈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넘어지기 십상이다. 암마이봉이 더욱 또렷하다. 디카에 담아내는라 다들 바쁘다. 우리가 내린 주차장이 저 아래로 희미하게 보인다. 이곳이 주차장에서 아주 높게 보였었다. 숫마이봉은 계속 숨어 있다.


 

      암마이봉 북쪽 능선(위)과 남쪽능선(아래). 왼쪽 끝 조금 앞에 있는 둥그스런 봉이 삿갓봉


우리는 다시 암마이봉을 앞세우고 내리막길을 따라 갔다. 5분도 좀 더 가니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금당사 갈림길이 나오고,  큰 눈썹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탑영제(부부시비) 갈림길을 지나고 숫마이봉의 조망이 좋다는 삿갓봉 가는 갈림길은 알아채지도 못하고 지나 제2쉼터에 이른다. 시간이 모자라서 그런지 우리는 삿갓봉은 아예 얘기도 없이 그냥 지나쳤다. 남쪽으로 백조 보트가 하나 떠 있는 탑영제가 보인다. 팔각정의 뒷모습과  군데군데 패인 암벽 아랫자락도 다른 기분으로 다가온다. 암마이봉은 계속 가까워진다.


 


 

                                       다이빙하면 곧장 물속으로 내리꽂을 것 같은 탑영제

 


      대형 눈섭바위 (이정도는 돼야지)
 

암마이봉의 최적격 조망지인 봉두봉

 

우리는 다시 암마이봉을 앞세우고 등로를 10여분 따라가다 보니 봉두봉 (540m) 팻말이 나오면서 넓은 정상 공터에 이른다. 모두들 조별로 모여 식사를 거의 마친 상태다. 우리도 김밥을 꺼내 배를 조금 채웠다. 식사가 끝난 사람들은 암마이봉을 배경으로 디카를 눌러주고 담느라고 정신들이 없다. 이 곳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조별 사진도 찍느라 바쁘다.  말귀에 눈이 내렸으니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처음 왔는데 운이 꽤 좋은 편이다.


 

넓직한 봉두봉에서 점을 찍고나서


 

다시 일어서서 탑사로 향했다. 내리막길이다. 암마이봉 정상과 함께 벌집같이 팬인 홈들이 나무 사이로 가까이 다가선다. 조망이 좋은 곳으로 내려 서서  디카에 담아낸다. 밧데리가 나가 아쉬워 하는 일행도 있다.


 


불뚝 선 암마이봉 앞에  미녀 4인방이 환한 미소를


표정이 너무나 좋아서....


 

돌탑의 전시장인 탑사 앞마당에 서면

 

평지에 내려서 넓은 마당으로 들어오니 우리가 줄곧 앞세우고 온 암마이봉의 말의 귀 형태는 온데 간데 없고 엄청난 절벽으로 왼쪽에 나타난다. 그리고 정면으로 크고 작은 수많은 탑들이 중턱 한복판의 불당을 빙둘러 비지고 들어갈 틈만 있으면  자리를 잡고 있다. 탑이 많아 이름도 탑사(塔寺)란다. 효녕대군의 17대 손인 이갑룡 처사라는 분이 1890년대부터 30년간에 걸쳐 120기의 탑을 주위에 떨어져 내린 돌로 쌓았단다. 지금은 80여기가 남아 있는데 법당뒤의 제일 높은 두 탑은 비스듬해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데 그대로 서 있단다. 이 처사의 무덤이 우리가 지나온 봉두봉 한 켠에 자그마한 비석과 함께 있다. 마이봉이 자연의 걸작품이라면 이 탑은 인간이 만든 걸작으로 칭송하고 있다. 암마이봉의 위용과 탑의 섬세함의 조화 또한 명품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는 판이하다. 불당 아래에 섬진강의 발원지라고 쓰인 조그만 샘이 있다. 숫마이봉은 금강의 발원지라니 각각 또 하나의 대단한 역할이다.


 

                         이 갑용처사의 야외 돌탑 전시장인 탑사

  
 

                                               웅장함과 섬세함의 조화/ 흰색과 회색의 콘트라스트

 

 

             봉두봉에 있는 이갑룡처사의 묘. 수고하셨는데 술한잔도 못 따라드려서 죄송합니다...


 

                                                    섬진강 발원지 용궁물도 못 마시고

                                                                                        무제(無題)
 

마이산은 등산객과 관광객들을 지질학자로 만들어

 

이 곳 마이산에 오면 모두가 지질학자가 된단다. 멀리서 보이는 이 말의 두 귀가 국내 어느 산에서도 규모에서나 모양에서 유사함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산이기 때문이다. 공룡 때문에 중생대(약 2억 4700만 년∼약 6500만 년 전)의 가운데인 쥐라기라는 이름은 국민학생들도 잘 안다.  많은 공룡의 뼈와 알의 화석이 나오고 살을 붙여 실물처럼 만들었고 급기야 영화로 나오면서 2-3백전의 일이거나 지금도 지구상 어디쯤엔가 있을 것처럼 친근하게 여기게 돼 있다. 인간이 지금 이렇게 생겨나 번성 하리라고 당시 공룡들은 상상도 못했을 때였다. 그것도  공룡의 전성기가 지나는 백악기(6300~6500만년전)에 이 암석이 생겼다니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니고 지구학적인 숫자라고 하더라도  상상하기가 힘든 옛날이다.

 

이 때 크고 작은 자갈(돌)과  모래, 진흙이 퇴적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사역(砂轢)암석덩어리란다. 남부 주차장에서 오르면서 만났던 바위나 팔각정 아래 바위에서도 쉽게 감지되었다. 어느 날 습곡으로 물 밖으로 솟아 올라와 비바람,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 가면서 암석을 못살게 구니 단단한 자갈과 큰 모래들이 떨어져 나오면서 암석 표면에 벌집같이 구멍이 뻥뻥 뚤려졌단다.

 

이 형태를 두고 타포니(Tafoni)라는 이태리 말까지 동원하니 무슨 유명 브랜드로 착각하고 본인만 모르는 말인 줄로 생각했겠지만 사실 마이산이 아니면 지질학자나 지질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쓰고 알법한 용어다.  이 마이봉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6000만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 같고 금방이라도 공룡이 옆에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너무 광대하고 크게 이런 퇴적 현상을 보여 주어 퇴적암의 형성과정에 신뢰감이한층 더 가게 된다. 어린 학생들이 와서 보면 너도 나도 지질학을 공부하겠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봉화 청량산의 사역암봉들은 규모 뿐 아니라 벌집형 구멍의 발달 정도에서도 대학생과 유치원생 차이보다 더 난다.

 

사실 이는  모래와 자갈에 시멘트를 넣어 버무려 놓은 거와 너무 비슷하다. 석재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자연이 수 많은 세월을 흘러 보내면서 만들어 놓아 어느 누구도 별 불평이 없다. 아니 오히려 희귀한 모습과 표면으로 관광상품이 되었다.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는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방폐장 사건에서처럼 어느 건설업자가 그렇게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다면 아마 전국이 들썩들썩할 것이다.


 



 은수사의 수호봉인 숫마이봉


 


                                                        은수사의 청실배나무가 눈보라 속에서

 

눈을 맞으며 은수사, 천황문으로

 

눈발이 세지기 시작한다. 눈이 내린 것만도 고마운데 거의 다 산행이 끝난 마당에 내려주니 마냥들 좋아한다. 눈을 맞으며 산 옆구리를 돌아서서 가다보니 은수사가 나온다. 종모양이 된 숫마이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태조가 백일기도를 하러 들렀던 절로 본당 오른쪽 편에 먹다 뱉은 씨앗에서 싹을 틔웠다는 유명한 청실배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하고 눈을 맞고 있다. 뒤 쳐진 일행 일부는 눈발이 거세지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눈으로 장난도 쳐 본다.

 

400개가 넘는다는 계단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니 천황문이라는 고개에 이른다. 왼쪽에 암마이봉, 오른쪽에 숫마이봉을 끼고 있다. 다시 말해 양쪽 귀사이 정수리라면 쉬울 것 같다. 숫마이봉 골짜기 위로  5분쯤 올라가면 중턱에 화암굴이 붙어 있다. 빙판길이다. 올라갔다내려 오는 사람마다 볼게 없다며 갈 필요 없단다. 그래도 가보고나서 그런 말은 필요 한 것 같아 한 부부 뒤를 따라 올라 갔다. 감로수로 임신부가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 온단다. 그러나 지금은 식수로 부적합하다는 팻말을 써 붙이고 출입을 막는 줄을 쳐 놓았다.

 

전설이 서린 화엄굴 약수는 마실수 없는 오수가 되어


화엄굴
 

                              하늘이 열리는 가운데 밀레의 이삭줍기(?) (화엄굴안에서)   /아이젠 끼는 부부와 청소부

 

“ 본 화엄굴 약수는 신비스런 전설과 함께 그 동안 탐방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으나 최근 조류(비둘기)가 수시로 드나들고 또한 무속인의 촛불 등으로 오염되어 음료수로 사용할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어쩌면 지금은 애를 낳겠다는 여자들도 적을 뿐더러 아들인지 아닌지는 과학의 힘을 빌어 미리 알아내니 영험하다는 이 감로수도 필요하지도 않아 자연히 마시기에 부적합한 오수로 변질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천황문에 내려오니 대장님 둘이 기다리신다. 나와 한 부부가 제일 후미다.  왼쪽 암마이봉의 등산로 입구는 폐쇄, 등산을 금지한지가 1년이 넘었다. 생태계 파괴와 바위가 자꾸 떨어져 나가 2004년 10월부터 10년간 휴식을 취하도록 등로를 폐쇄시켰단다. 물론 50만원 벌금을 내겠다는 사람에게는 가능하겠지만... 숫마이봉은 진작부터 등산이 금지 됐었단다. 이런 사정을 알았다면 작년 9월로 당겨 왔을 텐데...

 

 

눈쌓인 미끄러운 계단을 엉금엉금 내려와 북부 주차장에 제일 후미로 도착하니 3시 반. 123명 모두가 무사히 내려와 차를 타고 예약된 음식점에 도착했다. 더덕, 실버섯, 삼겹살을 불판에 볶아 소주를 곁들여 점저를 먹고 나오니 눈발은 더욱 세졌다. 4시 45분.

 

조심조심 국도를 빠져나와 올 때 지나온 고속도로를 다시 탔다.  8시 뉴스를 들으니 남부의 폭설 얘기와 황우석 줄기세포 관련 M방송이 PD가 강압적 취재보도를 한 것이 밝혀져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내용이 뉴스방송시간을 거의 다 차지한다.

 

 

아쉬움 많은 마이산 산행

 

 

 

한번만 보면 어느 산보다 쉽게 식별이 가능한 산. 금강산이나 계절마다 이름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마이산도 계절 따라 이름이 바뀌니 보통 유명한 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로 유명한 탈렌트나 모델들이라면 초상권 침해라고 난리를 부릴테지만 모델료도 안받고 달력 등 사람들의 눈길이 많이 가는 곳에 모델로 서곤 하는 마아산. 사진에서 보면 나무가 있고, 표지팻말이 있고 돌무더기가 있는 암마이봉을 오르려면 앞으로 9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너무 멀다.  그러나 휴전선처럼 물리적으로 못가게 돼 있으면 원인 제공한 사람들을 숱하게 욕해댔을 텐데 무관심하다  5학년 넘어서야 왔으니 누구 원망할 수 도 없다. 숫마이봉 전체 모습을 등산내내 보지 못한 것도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벚꽃피는 봄에 제대로 보지 못한 숫마이봉을 감상해야하는 것은 숙제로 남게 됐다.

 

그림에서 보는 것과 너무 달리 웅장한 암봉. 퇴적암 특유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크게 마마라도 앓은 사람의 얼굴처럼 움푹움푹 패인 암석 표면. 여러 곳에 부처와 보살의 미니어쳐가 안치돼 있는 걸 보면 먼 훗날 커진 구멍 하나하나에 부처님을 모셔 설악산의 천불동(千佛洞)이라는 이름이 명실상부한 이 곳의 천불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 많은 인원을 끌고 진두지휘하신 총대장님과, 조별로 앞뒤에서 신경을 쓰신 대장님들에 감사드리고 같이 한 회원님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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