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기맥 농다치에서 두물머리까지

2005. 9. 11. 일, 맑음

주요 경유지 : 옥산~말머리봉~된고개~청계산~벗고개~450봉~부용산~

              양수역

소요시간 : 11:15 - 20:15(9시간)

 

- 산이 부르는 소리에...

어제 노추산을 다녀오면서 내일은 집에서 그저 여유를 부리며 쉬리라고 생각했는데,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니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종일 바보상자만 들여다보며 보낼 휴일이 궁상맞을 것은 뻔할 것 같고 해서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리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오늘은 한강기맥 두물머리에서 농다치까지의 길을 이어보리라 결정을 하고 간단히 준비를 하여 집을 나선다.

양평 버스 터미널로 가면서 두물머리에서 시작할 것인지 농다치에서 시작할 것인지를 놓고 잠시 갈등하다가 농다치에서 시작하는 것이 산행 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편리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한다.

터미널로 들어서니 마침 설악면으로 가는 버스가 곧 출발을 한다고 한다.

10:40분, 곧바로 표를 사서 버스에 오른다.


11:10분, 농다치에 도착하니 한 무리의 산객들이 막 옥산 쪽으로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기맥 종주꾼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의 뒤를 따라서 고개 왼쪽의 넓은 길로 들어서서 잠시 진행을 하다가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는 듯한 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접어들어서 능선 위로 올라붙는다. 30여 미터를 올라가니 묘지 한 기가 자리 잡고 있는데 길은 그곳에서 끊어져 있다. 묘지를 지나서 제법 가파른 숲을 헤치며 능선 위로 올라선다. 그런데 처음부터 길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농다치에서 능선 오른쪽을 끼고 들어야 편하게 능선으로 오를 수가 있었다.


- 쉽게 생각한 종주길은...

두물머리를 향해서 걷기 시작하는데 왠지 무겁게 느껴지는 다리가 쉽지 않은 산행을 예고하는 것 같다. 아마 어제 산행을 하고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서 부족한 수면 탓이 아닌가 싶다.

산책로 같은 넓고 편한 길을 따라서 얼마간 진행을 한 후 고개로 내려섰다가 옥산으로 올라가는데 땀이 비 오듯 하는 것이 마치 한여름 날씨 같다.

잠시 후, 578m 높이의 옥산 정상에 올라서서는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서 벌써 메마른 목을 축인다. 그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길은 한 동안 편하게 계속 이어진다.

15분 후, 이정표 같이 조그마한 안내판이 서있는 500미터 높이의 말머리봉에 올라섰다가 다시 진행을 하는데 이곳부터는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이봉우리가 아마 운동을 겸한 가벼운 등산 코스의 반환점인 것 같았다.

여전히 오르내림은 그리 심하지 않아서 큰 힘 들이지 않고 진행을 하는데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라 내심으로는 다행스럽게 여기며 걷는다. 그리고 오늘 구간 내내 크게 힘든 코스는 없을 것이라고 섣부른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가장 높은 산이 656미터 높이의 청계산이고 그 다음부터는 500미터 이하의 산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어제 산행 후 부족한 수면에도 불구하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능선 종주 산행은 그 높이가 1000미터 대의 능선을 이어가건 500미터 대의 능선을 이어가건 일단 능선에 올라선 이후부터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매 한가지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말머리봉을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한참을 내려가는데 앞에 우뚝한 봉우리가 엄청 힘겨워 보인다. 이미 흠뻑 젖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천천히 오름짓을 하여 봉우리에 올라서는데 또 다시 가파른 내림짓이 시작된다. ‘아이고 힘들다’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마 정상적인 몸 상태였더라면 벌써부터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텐데...

다시 오름짓은 시작되고 또 다른 봉우리에 올라서서 심장이 터질 듯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배낭을 내린다. 아마 개념도에 468.6이라고 표기된 봉우리가 아닌가 싶다. 시간은 오후 한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간단히 챙겨간 먹거리들을 점심 식사 삼아 한참을 휴식한 후에 다시 출발을 하는데 졸음이 몰려온다.

이어지는 연봉에서 무심코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데 진행 방향으로 보여야 할 청계산이 오른쪽으로 골짜기를 건너서 보이고 지금 가는 이 길은 아무래도 청계리쪽으로 능선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봉우리 위로 올라가는데 정상에 다시 다다라서야 왼쪽으로 표시기 한 개가 나풀거리는 것이 보인다.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기맥길은 봉우리에서 오른쪽 아래로 뚝 떨어지는 길이었다. 몸 상태도 시원찮은데 하마터면 크게 시간을 낭비할 뻔 했다.


급하게 떨어졌던 길은 또 다시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지는데 그러고도 무려 네 개의 봉우리를 더 오르락내리락 한 후에야 청계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쉽게 생각하고 왔다가 아무래도 큰 코 다치는 날인 것 같다.

정상에는 헬기장 땡볕이라 바로 아래의 숲에서 한참을 쉬면서 더위를 물린 후 15:35분에 정상으로 올라선다. 600미터 대의 결코 높지 않은 산이지만 그 조망은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용문산과 유명산으로부터 이어지는 기맥 능선과 북쪽과 서쪽으로의 파노라마, 그리고 남쪽 발아래로 유유히  굽어 도는 남한강의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북쪽 아래로 뚝 떨어지는 길을 따라 정상에서 내려간다. 오늘 구간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을 지났으니 이제 크게 힘들지 않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위안하면서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벗고개를 내려서는데 까지도 두 개의 큰 봉우리를 더 오르내린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벗고개로 내려설 때는 가파른 경사를 마치 평지로 내려서는 것처럼 한참을 내려갔고 맞은편에 보이는 봉우리가 너무 높아 보였다. 남은 구간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450봉, 저 봉우리만 넘으면 더 이상 힘든 곳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벗고개로 내려선다. 벗고개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나있고 절개지를 내려가는데 우거진 나무와 미끄러운 마사토의 급경사인지라 쉽지만은 않다. 벗고개에서 다시 힘을 쏟으며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몇 번을 숨고르기를 한 후에야 봉우리에 올라선다. 그런데 건너편에는 더욱 높아 보이는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었다. ‘아, 욕 나온다.’바로 저것이 450봉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힘겨운 오름짓을 한 후 450봉에 올라서니 두물머리 잔잔한 물빛과 양수 대교가 멀리서 시야에 들어온다. 벌써 어둠의 빛깔이 강 언저리로 드리우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가 넘고 있었다. 해가 많이 짧아진 것 같다. 이제야 정말 크게 힘들이지 않고 두물머리까지 진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봉우리를 내려간다.

아래로 내려가니 공원묘지가 한창 조성 중에 있다. 닦아놓은 터를 지나서 잠시 엉뚱한 곳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되돌아 나와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 진행을 한다.

등산로는 깍아 놓은 터의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을 해야 정상적인 길로 쉽게 들어설 수가 있다.


몇 개의 연봉을 지나서 218봉을 넘어가는데 이제 이곳 능선에도 어둠이 시작되고 있다. 머지않아 두물머리에 내려서리라 기대하면서 걸음을 서두르는데 길은 매우 좋아서 걷기에 편하다. 연봉들을 넘어가는데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차 지나가는 소리가 오늘의 산행도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마음을 자꾸만 앞서게 한다. 이제 어둠이 점점 짙어지면서 길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다 왔다는 생각에 불을 밝히지 않고 계속 진행을 한다.


오른쪽으로 강이 보인다. 저기 앞에 보이는 봉우리만 넘으면 이제 아래로 내려가겠지... 그러나 그 앞에는 봉우리가 앞을 막고 있다. 다시 한번, 저곳만 넘어서면, 그러나...

그렇게 속으며 넘어간 봉우리가 수도 없이 많았고, 고갯길이 가로지르는  곳에서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야 결국은 불을 밝히고 길을 찾게 된다.


나무와 억새가 우거진 길을 지나서 통신 안테나가 검은 빛 사이로 우뚝한, 정말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를 지난다.

그곳부터는 길은 있으되 보이질 않는다. 수풀이 길을 메워나가고 있다. 

수풀을 헤치며 진행을 하는데 어쩐지 차질 없이 잘 간다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어느새 나는 가시밭 속에 들어와 있었다. 가시에 긁히며 그 곳을 뚫고 나가는데 과수원 울타리가 앞을 막고 있다. 뒤돌아 나오려고 몸을 비트는데 그만 다리에 지가 오고 만다. 밀려오는 통증에 신음소리가 절로 터져 나오고 가시나무에 싸인 몸이라 쉽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다리를 뻗어서 통증이 멈추기를 기다린다.

다행이도 통증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고 잠시 후 가시밭을 헤치고 되돌아 나와서 옆으로 빠져나오니 앞이 탁 트이며 양서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정말로 다 내려왔구나.


절개지 옆을 따라서 도로 아래로 내려선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가 지나고 있었다.

잠시 후 양수역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니 꼭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몸에서는 땀 냄새로 악취가 물씬 풍긴다.

몸 상태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쉽게만 생각하고 달려들었던 오늘 구간에서 정말 단단히 혼났다. 역시 어떤 산이라도 쉽게 생각하면 이렇게 고생한다는 또 한번의 교훈을 되새김 하면서 양수리 읍내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