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2995. 9월 5일(토)
누구랑: 공주랑 둘이서
산행코스: 호박소입구 주차장-동북 계곡능선-안부(밀양고개)-가지산정상-서남 능선-주차장
소요시간: 휴식포함 7시간

가끔씩 산을 찾고, 조금씩 산을 배워가며, 대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이 산, 저 산을 누빈 지, 이제 2년남짓 새내기가
요즈음은 건강상, 거리상 영남알프스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가지산(1,240m)을 필두로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신불산(1,208m)
취서산(1,059m), 고헌산(1,032m), 문복산(1,013m)의 영남알프스중
취서산은 홀로 또는 여럿이 5번을 올랐었고, 운문산, 신불산을 다녀왔으니
가지산은 오히려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산행이라고나 할까?

근교산이라고 맘이 너무 느긋했던 탓일게다.
호박소입구 주차장에 애마를 쉬게 하고선,
들머리에서 첫 걸음을 뗀 시간이 이미 11시였다.
좌로 우렁찬 계곡 물소리를 뒤로하고 국제신문의 노란 리본을 따라
계곡 우측 오름길로 접어 드는데, 잔뜩 찌푸린 하늘과 휩싸인 안개로 느낌이 묘하다.
비 온 뒤의 산길은 어느 때보다도 윤기가 감돌고,
바닥엔 태풍 여파로 떨어진 도토리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쉬엄쉬엄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뒤따르던 으니공주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선 꼼짝못하고 서 있었다.
조그만 바위위에 온 몸이 새까만 줄무뉘로 수놓인 뱀이
비비 몸을 꼬고선 머리만 번쩍 든 채, 노려보듯 버티고 있다.
시골서 자란 나도 처음 보는 희귀한 놈이었다.
얼어붙은 으니를 안심시키며 옆길로 그 곳을 벗어나서
조심조심 다시 오르는데 공주가 하소연한다.
“산은 좋은데, 뱀은 정말 싫고 무서워요!”

오늘도 바람 한 점 없는 후덥지근한 날씨인지라
금새 줄줄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고, 조금 더 오르자니 바위들이 즐비하다.
이번엔 앞서가던 내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바로 눈앞 바위위 풀섶사이로 슬슬 움직이는 뱀을 또 발견한 것이다.
뒤에서 으니는 벌벌 떨고 섰고, 나도 뱀이 얌전히 사라져주길 바라며
잠시 기다리는데 가만 보니 암. 수 한 쌍이 아닌가!
아마도 데이트(?)중에 우리가 방해한 모양이다.
바위틈으로 뱀들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서 다시 조심히 나아가는데
신불산에 이어 어김없이 등장하는 연이은 뱀소동으로 인하여
이제는 완전히 뱀 노이로제에 걸려 버렸는지,
땅에 뒹구는 나뭇가지도 뱀처럼 보이곤 하여 무척이나 긴장하는 꼴이 돼버렸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완전히 올라서니 용수골로 이은 산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쉬기에 안성마춤인 반듯한 바위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나누었다.(11:40)

바위무리들도 사라지고 본격적으로 능선에 올라서서 흙길을 걷는데
이건 흡사 정글탐험(?) 같다.
인기척 하나없는 우거진 잡초를 뚫고 나아가자니 얼굴엔 거미줄이 철썩철썩 달라붙고
산모기는 앵앵대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금새 비를 뿌릴 듯이 하늘이 어두컴컴하다가는 이내 햇살이 나고
어느 순간에 온 산은 다시 한 치 앞도 분간안될 정도로 짙은 안개로 휩싸이고!
씩씩한 공주도 으시시하다며 한 마디 한다.
“앞으로는요, 산에 절~~대로 혼자 다니지 마세요.”
“그래그래~.근데 말야, 홀로 아리랑도 꽤 운치가 있고 즐길만하거든~~”
끝간데모를 잡초무성한 산길을 헤쳐나가며 제발 바람 한 줄기라도 불어줬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가끔씩 눈에 띄는 노란 안내 리본이 첫사랑 님마냥 반갑기 그지없다.
꽤 오랜 진군끝에 반대편에서 올라온 산꾼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분은 약초를 캐러 흔히 이 산엘 오른다고 하며 손에 쥐고있던 참당귀 두 뿌릴 건네었다.
그리고 갖가지 생약제로 끓인 한방차를 한 컵 가득 부어 주시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난 뱀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그 지점이 원래 뱀이 흔한데다 거의 살모사라 위험하며
특히 첫 번째 만난 까만 뱀은 독성이 제일 강한 칠점사같다란 얘기도 곁들이셨다.
아울러 이제부턴 뱀이 절대 없을 터이니 안심하라고--

지루하단 느낌이 들 정도의 정글탐험이 드디어 끝나고
안부인 밀양고개에 올라서서 좌로 꺾어 정상을 향하는데(14:10)
이 능선길은 석남사, 또는 석남터널 쪽에서 오르내리는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제법 왁자한 구간이었다.
돌부리 즐비한 거친 길을 가뿐히 올라 정상에 당도하고선
뜨거운 가슴으로 정상석에 찜하다! (14:50)
무더위속에, 변화무쌍한 기후탓에 마음 졸이며 올라온 오늘은 감회가 남달랐다.
“오늘도 해냈구나. 그래 우린 할 수 있어!”
장엄한 기개의 영남알프스 준봉들이 가지산을 호위하듯 첩첩이 둘러싼 멋진 풍광!
머리위론 여전히 운무가 너울너울 춤추듯 흘러다니고,
잠깐씩 비추이는 코발트빛 가을 하늘!
하늘거리는 억새위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녹아들고 있었다.
형만한 아우없다더니, 영남알프스의 최고봉!
과연 가지산이로구나라는 감동을 안고
꿀맛나는 점심후, 하산을 서두르기로 했다.
초가을이라 하루 해는 엄청 짧아졌고, 하늘마저 수상한지라
산행내내 시간에 쫓기어 내심 걱정인데다  으니 공주는 하산시
더욱 속도가 느려지기 일쑤인 터!
그나마 산행직전 배낭에서 빼내었다가 다시 넣어온 우비는
참으로 든든한 동행자 느낌이었다.
오늘 산행중 새삼 느낀 건, 여유로운 산행을 위해선 아침일찍
서둘러 나서야 한다는 것과, 우비, 랜턴은 필히 챙기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올라왔던 능선자락을 눈에 가득 다시 담으며, 반대편 능선따라 길을 재촉하는데
여전히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질 않고, 심히 흐린탓에 마음만 더 다급해졌다.
전망바위를 지나며 층층단애의 암봉들과 자연미 그대로의 흙길이 마냥 좋은데
음미하듯 걷질 못하고선 허겁지겁 바쁜 걸음을 내딛는다.
산에서 어두워지면?...만일의 경우 비라도 쏟아지면?...등등, 걱정은 이어지고
초행길이라 이 길이 맞긴 맞는 건지 심히 염려도 되는 등, 이래저래 노심초사였다.
드디어 세 갈래 갈림길을 안내하는 반가운 이정표가 나타났고 (운문산 12번 지점)
제일관광농원 2.5km란 팻말을 따라 우린 쏟아지듯, 아래로 아래로 진행하였다.
어느 순간 후다닥 굵은 빗소리에 결국은 우중산행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짓나보다하고선
비옷을 꺼내 입었는데 다행히 비는 금방 그치고, 안개가 잦아들면서 시야도 한결 나아졌다.
쏴아 소리에 다시 비인가 했는데 그것은 계곡의 물소리였다!
무더운 날, 낮에는 그리도 시원스레 갈증을 해소해주던 청량한 그 소리도
어둠이 낮게 깔린 이 시점에선 그저 으시시한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드디어 벽돌 건물이 보이고 청청옥수(淸淸玉水)가 휘감아흐르는 들머리 계곡에 당도하니
가족인 듯한 사람들 서넛이 물가에 앉아 있었다.
한 남자가 묻기를, “구룡소 폭포가 몇 미터쯤 돼보이던가요?”
“네엣?...저희는 하산길이 바빠서리... 폭포는 제대로 못보고 그냥 내려왔네요.”

석남터널을 벗어나니 온통 주변이 다시금 희뿌연 안개에 휩싸였고
덤덤히 침묵하는 어두워진 영남알프스를 향해 우린 안녕!~ 인살 보냈다.(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