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을 마시며 고행한 3일간의 지리산 태극종주<1>

 

지리산 태극종주기 첫날(6/3 :금)

                  <비온뒤 웅석봉의 아침운해>

 

<개요>

아무것도 이룩한 일 없이 나이만 먹어 벌써 오십대 인생길로 살아온 시간이 삼년째로 젊은 시절의 기백과 용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자꾸만 자신이 왜소 하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의 압박으로 남아 가슴을 억눌러오고 있으나 내가 아직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보여주기 위해서는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강박관념에 시달려오다 

해결책으로 어렵겠지만 순수한 자력만으로 특별한 산행 거산 지리산를 태극 종주해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으며 구체적인 시기와 계획을 확정지은 것은 한달 전<5/1(일):주왕산에서 결심을 굳힘>에 현충일연휴가 끼어있는 6월 첫째 주로 확정하고 3일(금) 휴가를 신청하기로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수집하며 본격적으로 지리산 태극종주를 결의를 다져나가던 중간에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발생하는 원인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조언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산우님들께서 아낌없이 앞 다투어 자기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셨고 무게와의 싸움이라는 처방을 내려주었다.

무게를 줄이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으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장비 버너와 코펠 그리고 비박장비와 간식 방한잠바 여벌옷과 약간의 식량과 김치 헤드랜턴등을 챙겨 배낭무게를 확인하니 13.5kg으로 준비를 완료하고 아이들의 전송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21:30)

 

<서울-지곡사>

남부터미널에 들어서니 늦은 시간이라 철시한 가게들이 대부분으로 써늘하게 느껴지는 대합실에는 심야여행을 떠나려는 손님에게 숙련된 손놀림으로 토스트와 김밥을 파는 좌판소만이 불을 밝히고 있는 곳을 지나서 산청행 심야우등버스표를 매표해보니 2번 자석이다 배정받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23시 정각에 터미널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향하고 있는 넓은 버스에는 9명만을 태우고 있어 한사람이 의자 두개이상을 차지하고 널널하게 갈 수 있어 승객은 편하고 좋지만 타산이 맞을지 걱정하는 마음인데 무심한 버스는 어둠이 깊게 깔려있는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명일 산행을 위해서 억지로 눈을 붙여보려고 노력하지만 마음뿐이고 잡념과 싸우다 늦게야 깜빡했는데 벌써 산청읍에 도착했다고 내리란다.

엉겁결에 배낭을 둘러매고 내리니 버스는 진주를 향해 달려가고 시간은 1시30분으로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선하고 상쾌한 밤공기가 싱그러움을 더해준 초여름 깊은 밤중에 산촌의 작은 읍내는 무서우리만큼 적막하다.

택시부에서는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망설이다 지곡사로 가자고 주문하고 택시에 오르니 읍내중심가를 빠져나가 한적한 외곽길에 접어드니 모내기가 완료된 논에서는 개구리가 울어대고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도로를 밝게 비추고 10여분을 달리던 택시가 멈춰서며 지곡사에 도착했다.

요금으로5,000원 지불하니 택시는 횡하니 가버리고 이젠 정말 나 홀로 있을 뿐이다.

   

<태극종주 첫발부터 GPS가 말썽>

지곡사를 밝혀주는 가로등 밑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지곡사 계단을 올라가 조용히 합장하며 무사산행을 기원하고 나침판 대신 빌려서 가져온 GPS(무선음성위치안내기)를 조작해 보았지만 작동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원하는 대로 작동이 않되 20여분을 씨름했으나 허사였다.

낭패로다 신무기를 믿고 나침판을 지참하지 않았으니 산행시작 전부터 지도와 동물적인 감각만으로 산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더구나 오늘이 음력4월 27일이니 달도 없는 칠흙 같은 어둠에다 웅석봉과 지리산 동부능선은 초행길이니 걱정이 앞서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제까지 비가 와서 개울물이 풍성하여 물소리가 우렁찬 효과음을 연출한 가운데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다잡으며 대장정의 첫발을 힘차게 옮긴다.(02:25)

                     <산청군립공원 웅석봉>


시멘트 포장길을 10여분 남짓 걸으니 심적사 표지석의 갈림길에 이르러 잠시 망설이다 심적사로 방향을 잡으니 잘 포장된 길에는 반딧불이가 광체를 발하며 날아다니고 계곡의 물소리는 청정지역이라고 노래하는 정비된길을 한참을 가니 길 안내판이 보였지만 어두운 밤이라 어렵게 길을 찾았다.

웅석봉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따라 별빛만 고요한 가파른 길을 오르니 폭포수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고 그런대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며 곳곳에 리본이 길안내를 충실하게 하고 있는 가파른 된비알과 바위의 물에 젖은 낙엽은 몹시 미끄럽다.

어둠 속을 손전등에 의지하며 신경을 등산로에만 집중하여 가다보니 물소리가 웅장한 다리위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고 식수로 목마름을 달래며 가파른 산행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손전등 밝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분명히 출발전 건전지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 한 시간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벌써 방전이 됐다니 불량품을 잘못 사왔다고 투덜거리며 산행을 계속하다 바위능선을 등산로로 착각하고 발을 내딛는 순간 미끄러지며 굴러 떨어졌다.

순간 눈에서는 별이 번쩍거리고 오른쪽 무릎에 심한 통증이 왔다. 희미하게 불빛을 발하고 있는 손전등을 배낭에 넣고 헤드랜턴을 밝히니 세상이 밝아진다.

다행히 오른쪽 무릎은 큰 부상은 아니고 가벼운 타박상으로 부어오르고 있다 파스를 뿌리고 몸을 추수려 직벽에 가까운 가파른 산행을 계속하는데, 느낌인지 사실인지 확인은 못했지만 무언가 계속하여 내뒤를 따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여러 차례 뒤돌아서 전등으로 확인해 보았지만 실체를 발견하지 못하고 애궂은 호루라기만 불어댄다.

길을 잘못 들기를 몇 번 하다보니 고도감이 느껴지고 언제 왔는지 하늘에 허연 눈썹 같은 하현달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어둠을 밝혀주지만 효과는 미약하고 가뿐숨이 턱에 차올 무렵 왕재(925m)에 다 닿았다.(04:17)

               <웅석봉의 새벽 맞이를 향하는 왕재>

 

지도와 표지판을 확인하고 호흡을 고르며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웅석봉을 향한 후에는 무언가가 따라오는 예감이 없어졌다.

 

<웅석봉에서 말썽부린 얄미운 디카>

멀리서 사납게 짖어대는 개소리와 함께 여명이 시작되니 헤드랜턴의 도움이 없이도 산행이 가능해졌고 희미하게 헬기장이 보인다.

          <웅석봉아래 공터 운해속으로 여명이 시작하고>
 

웅석봉(1,990m)에 서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금방추위가 느껴졌다(05:10) 산불감시초소 옆의 하산 길에는 많은 리본이 걸려있다.

웅석봉 정상석을 디카에 담으려고 섯터를 눌렸으나 작동을 하지 않았다 전자제품은 사전에 사용법을 충분히 숙지하고 작동방법이 손에 익숙해야 문제가 없는데 손아래동서에게 출발 전날 카메라만 달랑 빌려왔으니 평소 기계치인 나로서 작동이 서투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였을 것이다.

              <웅석봉 바람이 심해 몸이 떨려 흔들림>

 

쉽게 할 수없는 3일간의 태극종주산행을 기념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이 고작 40여장만으로 옹색하게 남겨야 된다고 생각하니 분실했던 디카(5월29일(일) 경기도 광주시 엄미리앞 버스정류장 벤치에 놓고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가다가 티카:OLYMPUS,C=750를 놓고 내린 생각이나 바로 하차하여 뛰어갔으나 그사이 없어짐)생각이 애절하고 서운함이 더욱 크다.

일출 시간이 가까운데 태양은 늦잠을 자고 있는지 보이지 않아 궁굼했는데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운해위로 살짝 얼굴을 내민다.(05:20)

 

올라왔던 헬기장으로 다시 내려가 밤머리재(5.3km)표지판를 따라 금방 지나왔던 능선으로 내려가며 바라본 비온뒷날의 운무는 말로는 적절한 표현문장을 찾지 못하도록 아름답지만 혼자보고 즐길 뿐 디카에 담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메모를 하려고 볼펜을 찾았으나 볼펜마저 없다.

아까 미끄러질 때 잃어버렸나 보다, 머리가 나빠 모든 것을 필기해야 하는 사람이 기록할 펜이 없으니 기억에만 의지해야 한다니 머리가 저려온다 금방 왕재를 지났으니 밤머리재 까지는 3km여 남았다 

  

발길은 바쁜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산능선과 계곡사이를 운무가 환상의 그림을 그리며 발목을 잡는다, 태양은 밝게 떠오르고 있으나 구름들의 심술로 골짜기 깊은 곳까지 햇빛을 비추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산청군립공원 웅석봉과 도토리봉을 경계하는 59번 지방도에 닿는다.(06:56)

             <웅석봉과 도토리봉을 구분한 지방도로>


<밤머리재-쑥밭재>

한산한 밤머리재 공터에는 매점으로 사용한 컨테이너박스는 아직 문이 닫쳐있다 아침이슬로 영롱한 가파른 초원지대를 힘든 오름짓을 하고나니 신발과 바지가 물에 빠진 것처럼 젖었고 시장끼가 느껴져 빵 한조각과 과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왕등재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등로는 뚜렷하나 조릿대와 나뭇가지가 웃자라 길을 막고 있어 손으로 헤치며 앞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고 배낭(65L)이 걸리고 나무 잎이 얼굴을 자꾸만 할퀴어 따갑다.

서왕등재(1,040m)에 도착했으나 설치된 표지판이 없어 위치확인이 쉽지 않았지만 앞서간 산우님의 명찰덕분에 정확히 내가 있는 자리를 알았다.(10:33)

 

              <태극종주를 선답한 산우님의 명찰>

 

얼굴은 땀으로 얼룩져 소금이 송글거려 수건으로 땀을 닦고 목을 축이니 소형 음료수병에 식수가 30%정도 남아있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산속에서 개구리울음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봐서 고산습지에 다가왔나 생각하며 앞으로가니 목조다리가 나오고 눈앞에 말로만 듣던 습지가 자리하고 있다 산중에 습지라니 자연의 위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목조다리 아래 미량으로 흐르는 물에 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10:45)

  

식수를 얻으려고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내려같으나 낙엽이 산화하여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물을 마시기가 내키지 않아 식수보충은 다음 샘 쑥고개에서 물을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인적없는 무더운 산길을 걸으며 부족하지만 남아있는 물과 과일로 장거리를 무난히 통과하려고 절수작전을 짜느라 머리가 복잡한데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사거리 길을 만나 고민하다가 좌측으로 방향을 정하고 한참을 가도 그 흔했던 리본하나 보이지 않아 가슴조리며 가다보니 붉은색 리본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데 얼마나 반가웠던지 아주 잠깐 이였지만 무겁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외고개로 오르는 가파르게 경사진 노면은 젖어있어 미끄럽고 한낮을 내리쬐는 유월의 태양은 메마른 육신을 땀으로 범벅을 만든다. 남은 물로 식수라기보다는 의사 처방전을 받아서 용량에 맞춰 먹는 약처럼 혓바닥으로 찍어서 입안에 바른다고 표현해야 가장 적절하도록 아낀 귀하디귀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쑥고개샘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희망과 격려하며 걷는다.

 

<식수를 확보하지 못해 탈진 까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갈증을 참느라 이를 악물어 턱까지 아파온다 걷고 또 걸다보니 리본이 한 그루의 나무에 10여개가 매달려 있다.

길안내에 도움이 안되는 공해라 생각이며 바램 같아선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고르게 매달아두면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는 주문을 하며 걷다보니“서울 북한산의 족두리바위”와 비슷한 바위가 길을 막아선 곳에(13:31)까지 왔으나 표지판 하나 없고 나침판마저 없으니 정확하게 내가 서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육안으로 관측되는 천왕봉을 바라보며 힘겹게 오르니 능선에 도착했다

지도를 보니 두류봉으로 추정되는 갈림길에 이르러 표지판이 서있다.(15:18)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 봤지만, 새재방향((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소요시간(4시간) 국골방향(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소요시간(4시간)이라고만 표시돼 있을 뿐 현 위치가 어디라는 표현은 인색하게도 표시되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식수를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쑥고개를 지나쳐 버렸다는 얘기다. 오직 물을 실컷 마셔보겠다는 희망하나로 참아왔는데 낭패다.

배낭을 풀어헤치고 물이 될만한 모든 것을 찾아 모우고 비닐봉지에 따로 담아보니 식수 약100cc(드링크1병)와 껍질 벗긴 사과 반쪽과 오렌지 반쪽이 남아있었다 이것으로 하봉을 넘어서 하봉샘을 찾아 물을 구할 때 까지 버터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빡센 된비알에 한발자국 내밀기 시작했다.

  

목마름으로 고통이 심하니 괜히 지리산 국립공원 사무소에 나도 모르게 불만이 터져 나온다 군립공원도 1km내에 표지판을 세워 내방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데 명색이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동부능선이(밤머리재에서 하봉까지) 20km를 가도록 똑바른 표지판 한곳 없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지리산 관리소장님! 아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소변을 마시며 갈증과 싸운 지옥에서 극락의 천왕봉으로>

마실 물이 완전히 고갈되어 침이 마른 육신을 이끌고 하봉인듯한 봉우리에 올랐으나 헬기장이 보이지 않아 휴대폰으로 샘 위치를 확인받으려 했으나 통화가 불가능하다는 신호음이 들려올 뿐이다 헬기장을 찾으면 물이 있다는 희망으로 험한 산길을 오르내리다보니 헬기장이 보이고 표지목이 서있다(16:57)

  

천왕봉1.7km, 치밭목산장1.8km가 전부다. 여기에다 현 위치 하봉(1,781m)라고 표시하면 좋을 것을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가없다. 치밭목 쪽을 미친 듯이 찾았지만 샘을 찾지 못한 허탕감으로 온몸이 나른해지고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앞이 캄캄했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죽더라도 물을 실컷 마셔보고 죽으려면 힘을 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이르고 천근의 무게로 다가온 배낭을 어렵게 울러 매고 일어서 보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마시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최후의 비상방법을 동원하기위해 억지로 소변을 보려고 힘써 보지만 거품과 소량의 오줌이 빈 물통에 담길뿐이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고 병목을 입에 대고  손을 들어올리니 찌릿하고 간간하며 뜻뜻한 액체가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갈증은 가시지 않았으나 짭짤한 뒷맛이 오래가고 참을만하여 중봉으로 향하는데 태양이 뜨겁고 기운이 빠져 가다 쉬기를 반복하다 휴대폰을 열어보니 통화 가능한 안테나가 3번째까지 신호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통화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희망으로 전화를 걸으니 신호음이 가고 반가운 '지다람'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치를 말하고 사정을 얘기하니 조금만 올라가면 중봉이고 좌측 험로에 위치한 중봉샘에서 물을 찾으라고 일러주어 젖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중봉(1,874m)에 이르러 일러준 안부의 험로에 당도했다.(17:49)열심히 찾았으나 고사목과 녹슨 작업장비 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정확한 샘위치를 확인하고 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 불능이다.

            <국립공원에 똑바로 설치한 최초의 표지목>

 

기진맥진한 상태로 중봉샘을 찾는데 실패하고 재통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기쁜 마음으로 얼른 받으니 통화음질이 불량하여 내용을 알 수 없는 잘못 걸려온 전화가 마지막 남은 힘마저 앗아가 버린다.

 

<화공약품인 신나를 물로 잘못알고 마셔>

다시 통화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공사장에서 다용도로 사용하려고 설치한 컨테이너박스와 대형 물통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에 가면 물이 있을 것 이라는 기대감으로 물통의 수도꼭지를 틀어봤으나 물이 나오지 않아서 위로 연결된 파이프를 잡아당기니 파이프만 빠져나오고 물을 구하지 못하고 컨테이너박스를 한바퀴 돌았으나 그토록 그리운 물은 없었다.

저쪽에 희고 깨끗한 PVC통에 물이 20%정도가 담겨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냄새가 없다 뚜껑에 가득 부어도 살펴보니 벌래도 없었다.

천천히 혀로 맛을 봄과 동시에 심하게 구역질이 나오고 눈은 충혈 되어 눈물이 쏟아지고 정신이 아찔하다 반사적으로 내뱉고 부지런히 침을 뱉어내며 속이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지금상황이 어렵지만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실패가 아닌 시련으로 극복하고 구인월에서 웃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고 파김치가 된 육신에 채찍을 가한다.

천왕봉에 오르면 샘에는 물이 넘치니 조금만 참고 오르면 된다고 자기최면을 거는 주문을 읊조리며 평소20분이면 충분히 오를 거리니 힘을 내자고 다짐해보지만 탈진한 몸은 마음을 따르지 못하고 몇 걸음 못가고 주저앉기를 반복되고 입안에는 화공약품 후유증과 갈증으로 침마저 완전히 말라버려 혓바닥에 허연 백태가 끼고 입술은 흰 가루를 뿌린 듯 타들어가는 한계상황까지 이르렀다 구조를 요청해야 할지 죽음을 무릅쓰고 전진해야 할지 두가지 생각이 마음속에서 심하게 싸움질이다

정신이 몽룡해지며 늦둥이 막내(초6년)아들 녀석이 아빠를 부르는 소리(환청)에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사력을 다하여 한시간만에 천왕봉 개념도 앞에 이르렀다(18:49)

  

천왕봉에서 산행시작 16시간만에 사람을 만났으니 반갑기 끝이 없으나 말문이 완전히 막혀 말을 못하고 손짓과 발짓으로 물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물 한통을 건넨다.

입안에 물을 머금고 입가심하고 뱉어내기를 세차래 하고나서야 닭이 물마시듯 하늘을 쳐다보며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시니 이제는 살았구나 생각이 들고 지옥에서 극락으로 돌아온 안도감이 든다.

천왕샘에서 물을 떠다 주겠다고 했으나 그냥 두라고 손사래를 친다. 빈병에 나머지 물을 붓고 병을 돌려주니 친절하게도 포즈를 잡으라고 주문하고 촬영해주며 메모리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으니 아끼라는 충고를 남기고 바람처럼 제 갈길을 재촉한다.

          <어렵게 기운을 회복하고 천왕봉에 서있는 계백>

 

충분히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려 무거운 몸으로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19:30)

 

<공동생활에서 선진시민의식 부족해 아쉬워>

태양과 구름은 술래잡기 놀이를 즐기고 긴 그림자를 그리며 장터목산장에 들어서니 관리사무소다.

인터넷 예약을 못하고 대기자명단에만 등록했는데 이용가능한가를 물었더니 오늘은 운좋게 빈자리가 있다며, 어디에서 출발했느냐? 주소는 어디냐? 어디로 하산할거냐? 집 전화는 몇 번이냐?를 묻고 방명록에 기록한 다음 대피소 사용권 한 장을 건네받고 7,000원을 지급한뒤 지정된 번호를 찾아 배낭을 내려놓고 둘러보니 빈자리가 많아 편한 잠자리가 될 것 같다.

물통2개를 들고나가 식수대에서 소변을 받았던 작은 물병을 여러번 행금질하여 식수 2병을 채우고 종일 흘린 땀으로 찌든 손수건을 흐르는 물에 주물거려 산장에 들어오니 고등학생 몇십명이 단체로 담임선생님 지휘로 극기훈련을 왔는지 삼삼오오로 몰려다니며 큰소리로 떠들고 출입문을 쾅쾅닫아 신경이 쓰인다.

빵 한조각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옆자리 산객이 말을 걸러왔으나 아직까지 목이 트이지 않아 가늘고 쉰 소리가 나와 대화를 할 수 없어 자리에 몸을 눕히고 어렵프시 소등하겠다는 안내방송이 들여온다.

 

<첫날 나들이 정리> : 2005 - 06 - 03  (金)

지나온 길목 : 지곡사주차장-심곡사입구-왕재-웅석봉-왕재-밤머리재-쑥밭재-하봉-중봉-천왕  봉-장터목산장(1박)

거리와 걸린 시간 : 34.8km(검증된 거리는 아님),  17시간 05분

누구하고 : 나 홀로

 

2005 - 06 - 23

 

계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