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을 마시며 고행한 3일간의 지리산 태극종주<2>

 

너무 많은 등산객과 교행하며 인사하기도 힘들었던 둘째 날 (6/4 :토)

            <연하봉에서 맞은 지리산의 일출 4>

 

<장터목산장의 새벽>

어수선하고 소란한 산장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을 뜬다.(03:10) 어둠 속에서 쿵쿵거리고 떠드는 소리에 가만히 누워서 방안동정을 살피니 많은 사람들이 천왕봉으로 해맞이를 가려고 준비하느라 산장은 술렁이고 산만하여 마치 새벽시장과 흡사한 분위기다.

이른 시간이라 다시 눈을 붙여보려 해보지만 한번 잠에서 깨어난지라 잠이 오질 않아 그냥 누워있었다.

잠시소란은 천왕봉의 찬란한 일출을 보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빠져나간 산장실내엔 다시고요가 찾아왔으나 분위기가 썰렁하여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가니 차가운 새벽댓바람에 한기를 느껴 몸을 움츠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며 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밝게 빛나고 학생들은 대열을 형성하여 인솔교사의 지시에 따라 제석봉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고 실내로 들어오니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산장에서 한동안 서성거리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열어보니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으며 별세는 6월3일, 발인일은 내일(6월5일)이라고 문자메시지로 알려왔다.

당연히 문상을 가야 도리지만 내처지가 여의치 못하니 먼저 서울을 향하여 큰절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린 다음 계획한 종주산행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조문하기로 마음을 정리하고 용서를 빌었다.

연양갱 2개로 간단한 요기를 끝내고 서성거리다 예정보다 서둘러 길을 뜨기로 마음먹고 배낭을 챙겼다. 어제 강행군으로 긴장한 근육을 가볍게 풀어주고 방한잠바를 걸치고 하룻밤 신세졌던 장터목산장을 뒤로 하고 어두움을 해치고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한다.(04:55)

 

<지리산 천왕봉 일출과 변덕심한 날씨>

삼대가 덕을 쌓아야 지리산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얘기가 유행할 정도로 변화가 심한 산중의 날씨도 이번 산행에서는 나에게는 참으로 우호적이다 연하봉아래 전망이 트인 바위에서니 지리산 동쪽하늘에 시뻘건 태양이 이글거리고 떠오르는 감동의 드라마를 이틀연속 목격하는 행운을 잡았으니 우리조상님께서는(적어도 증조부님까지)덕을 쌓으셨나 보다.(05:27)

           <연하봉에서 맞은 지리산의 일출 1>

            <연하봉에서 맞은 지리산의 일출 2>

             <연하봉에서 맞은 지리산의 일출 3>

 

잔잔한 감동을 가슴속에 묻고 다시 길을 재촉하니 더위가 느껴진다. 잠바를 벗어버리고 촛대봉을 지날 때는 갑자기 짙은 안개가 밀려오나 싶더니 삽시간에 온 세상을 어둠으로 삼켜버린 시각에 세석산장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다.(05:53)

휴식을 취하며 얼마 전에 있었던 아랫마을의 추억을 생각하며 미소 짖는다.

 

곧장 내려가면 지리산 끝자락 첩첩산중에 신선이 푸른 학을 타고 노닐던 곳이라는 "청학동 마을"이며 '고운 최치원'선생이 은거했던 마을에서는 21세기 첨단과학시대인 지금도 갓 쓰고 도포 입은 풍습대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청소년들에게 한학과 예절을 가르치며 조상들의 교육이념을 전하는 서당이 있는 곳의 민박집에서 하루를 유하고 청국장에 밥한 그릇 먹었던 생각이나 군침이 돈다.

시계가 30m정도에 불과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칠선봉을 지날 때(07:04)는 안개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도 그토록 밝은 환상적인 일출의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변화무쌍한 지리산의 날씨를 직접 체험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대자연의 파노라마까지 보너스로 주신 지리산신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신봉 아래에 몰려오는 잩은안개>

 

<인사 주고받기도 힘들게 몰려드는 산행인파>

선비샘 앞에서는 등산객 한팀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며 같이 먹자고 인사를 건낸다.(07:44)

 

전국각지에서 어제밤새 달려 새벽에 성삼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 대단위 산객들로 등산로가 막혀 교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체되어 인사를 주고받는 일도 오랜 시간의 산행으로 지친상태라 힘겹게 느끼며 벽소령대피소4거리에 도착하여 '음정'과 '의신'으로 가는 표지목 앞에 서있다 많은 산객들이 아침식사 하느라 다들 분주하게 움직인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배낭을 풀어 가벼운 요기로 영양을 보충했다.

황사가 심하고 벚꽃이 만개하던 어느 봄날 즐거웠던 추억으로 과거여행길을 따라 간다 의신으로 계속하산하면 쌍계사와 화계장터로 갈 수 있는 길이다.

천년고찰 쌍계사의 고즈넉한 운치가 지리산을 휘감고 흘러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에~~~ 가수'조영남'의 노래로 이미 익숙한 이름, 화개의 시골장터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장터에 나선 사람들의 인심과 장날 풍경이 가져다주는 정취는 우리네 가슴을 따사로이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하고, 풋풋한 녹차 향은 산행으로 지친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리산 차의 유래는 신라 때 당나라에서 차 씨앗을 들여와 쌍계사 부근에 심은 것이 우리나라 차의 시초로 지금도 화개장터 주변 야산에 야생녹차 밭이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처음생각을 조금 더 발전시키면 ‘좋은 시작은 성공의 반’이라는 말이며 난관이 있었지만 이제 절반의 산행을 끝냈으니 이미성공한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보름달 밤 같은 분위기가 나는 벽소령>

벽소령은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이지만 안개와 구름이 짙게 깔려 보름날 밤 같은 으슥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지리10경중 제3경인‘벽소명월’의 분위기가 느껴지며 심산유곡 고사목과 무성한 나뭇잎 사이에 깔려있는 구름이 신선놀음처럼 느껴진 벽소령을 뒤로한다.

형제봉을 경유하여 주목보호와 명성봉 출입을 막을 목적으로 설치한 철조망이 둘러처진 등산로 바로옆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등산로 한가운데 참나무 한그루가 서있고 눈높이의 작은 구멍으로 작은 새 한마리가 먹이를 물고 들어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새끼를 기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다가서니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리는 새끼새 소리를 흥분된 가슴으로 들으며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시기를 기원하며, 양쪽으로 설치된 철조망을 통과하여 연하천산장의 넓은 공터에서 마지막 남은 빵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식수를 보충하여 길을 떠난다.(10:20)

                  <연하천의 담방로 안내도>

노고단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나무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데 갯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고 턱에 숨이 차올라 중간에서 쉬며 물로 목을 적시고 힘겹게 올라와서 안내문을 보니 길이240m의 가파른 길에 계단을 설치했으니 지루하고 힘들었던 것이 당연한 일이였다 안개가 서서히 겉이기 시작하며 햇볕이 따갑다.

           <장터 처럼 인파가 몰려있는 토끼봉>

묘시방향의 토끼봉, 뱀사골계곡이나 연동골 계곡으로 갈수 있는 화개재를 넘어서고 삼도봉을 돌아서 노루목에서 반야봉 오르기를 다음기회로 미루고 임걸령에 도착했다.

    <구름이 따라다니는지 반야가 구름을 사랑하는지 >

              <푸르른 화개재가 새롭습니다>

많은 인파가 북적거려 시골에서 5일장이 서는 장터와 흡사했고 멧돼지가 보이지 않는 돼지평전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노고단능선이다.(14:30)

               <노고단을 탐방하는 사람들>

 

노고단정상(1,507m)을 탐방하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목책울타리 안으로 공단직원의 안내로 질서 있게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며 오랫동안 노고단이 우리들 곁에서 떠나 있어야 했던 기억을 반추해본다“노고단은 탐방객 모두에게 훼손방지를 위해 다소 불편 하더라도 아름다운 자연보호를 위하여 2001년부터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개방시간은 1일 4회(10시,13시,14시30분,16시)며 매회 100명씩으로 인원을 제한하고 예약은 탐방예정일 한 달 전부터 2일전까지 가능하다”

 

<산행시작 한지 다섯 끼니 만에 맛본 꿀 같은 밥>

한낮이라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은 자외선도 무척 강하다 정비된 돌길을 따라 노고단산장 취사실에 당도했다.(14:50)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오랜만에 끼니다운 식사를 해보려고 마음먹고 배낭 깊숙이 들어있던 버너와 코펠 그리고 쌀과 김치가 들어있는 보따리를 꺼내 풀어 헤치고 3식분의 쌀을 한꺼번에 씻어서 물을 맞춘 다음, 버너에 공기압을 넣고 불을 붙이고 파란 불꽃이 올라오기를 기다려 코펠을 올리고 끓기를 기다렸다.

뜸이 드는 밥 냄새가 너무나도 구수하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워 참치통조림과 김치뿐인 부식을 한입 먹어보니 입안이 감칠맛으로 가득하다.

아직 뜸이 덜든 밥이지만 다섯 끼니 만에 맛본 밥은 꿀보다 달았고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었으며 행복감을 느끼며 배부르게 먹은 다음, 저녁과 내일아침에 먹을 밥을 주먹밥으로 두 개를 만들어 비닐봉지로 포장하고 코펠에 물을 붓고 끊이니 맛있는 누룽지와 구수한 숭늉이 됐다. 배낭을 정리하고 삼일 만에 해우소에 들려 후련한 시간을 보내고 와서 매점에서 라면 하나와 식수를 넉넉하게 보충을 끝내고나니 오늘 일정을 소화하려면 서둘러야 될 것 같아 바삐 성삼재로 향한다.(16:25)

점심시간으로 1시간 30분이나 허비했으니 남은 시간에 부지런히 걸어야 예정된 시간에 일정을 소화할 것 같다. 오랜만에 포식을 해서인지 산행이 별로 힘든지 모르고 어느새 성삼재아래 만복대로 가는 초입에 이르렀다.(17:12)

              <고리봉으로 가는 길목 성삼재>

 

부드러운 흙길을 조금 오르니 급한 오르막을 만나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태양은 서쪽에서 구름사이로 익살스런 표정으로 고리봉을 비추고 있다.

작은고리봉(1,248m)은 엷은 구름이 서쪽 하늘을 덮고 있고 희미하게 내미는 태양은 붉고 둥글게 기름진 구례들녘을 비추고 초여름 오후는 아름답고 평화롭다.(17:50)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 물결에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주변의 절경들과 한데 어우러진 수정처럼 맑은 섬진강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강이 아닐까 생각하며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성삼재가 내려다보이고 너울거리며 어둡기 전에 어서가라고 손을 흔들어 준다.

마음이 바빠서 떨어지는 태양과 보조를 맞추려고 바삐 움직이다 보니 온몸이 또다시 땀으로 젖는다. 저 멀리에 희미하게 서있는 돌탑이 나보다 먼저와 기다리고 있는 만복대가 외롭게 시야에 들어온다.(19:15)

 

<안개가 감싸않은 만복대 돌탑만이 쓸쓸하다>

아직 일몰시간은 이른데 장난꾸러기 태양은 보이질 않고 표지목도 없이 만복대를 지키고 서있는 돌탑이 다가올 어둠을 기다리는 전경이 한없이 쓸쓸함이 배어난다.

          <안개와 어둠을 기다리고 있는 만복대>

돌탑을 한바퀴 돌아보며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여정도 순탄하길 마음으로 염원 드리고 바쁘게 내리막산길을 뜀박질하다시피 내려간다. 

가야할 정령치는 아직도 멀기만 한데 산중에는 점차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헤드랜턴을 준비하고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데 구름이 잠시 걷진 서쪽하늘에는 태양이 집을 찾아 떠나간 자리가 붉게 물들어 있다.

힘든 오름을 하다보니 망루처럼 서있는 산불감시초소가 눈앞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바로아래에 정령치 휴게소가 보였다.(19:56)

         <하루밤을 유했던 망루사진이 흔들렸내요>

초소 주변을 둘러보고 망루에 올라가 살펴보니 오늘하루 비박장소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좁은 계단과 통로로 배낭을 어렵게 끌어올리고 깔판과 침낭을 꺼내 잠자리를 준비하고 버너에 불을 붙여 라면을 끓여 찬밥 한 덩이로 저녁식사를 끝내고 하늘을 처다 보니 별 하나가 오랜만이라고 말을 걸어온다.

별과 고단한 세상살이를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별자리를 찾아보는 재미로 흐뭇하다.

사방의 유리창을 닫고 자리에 누웠으나 초소내부가 내 키보다 좁아 발을 펴지 못하여 불편했고 초소위에 계양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소음이 신경을 자극하여 깊은 잠을 방해하고 밤이 깊어지자 고산지대의 밤 기온이 떨어져 추위에 몸이 움추려 들어 숙면하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령치에서 3일 연속 맞은 일출>

어둠속을 더듬거려 버너에 불을 붙이니 무언가 타는 냄새가 심하여 자세히 보니 어제밤 안경을 버너위에 올려두고 잠자리에 들었던 기억을 못하고 멀쩡한 안경을 골동품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가슴이 아팠으나 기능은 이상이 없으니 오늘 산행을 끝낼 때 까지 사용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자위했다.

버너를 가열하여 실내공기를 높여 추위에서 자유로워 보려고 애써보지만 생각한대로 따뜻해지지 않는다. 시간은 이제 겨우 3시를 넘고 있으니 날이 밝으려면 한동안 기다려야 했기에 침낭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앉아 졸고 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코펠에 물을 올려 라면을 끊여 입속에 밀어 넣고 있지만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조금 남은 찬밥 한덩이를 라면국물에 말아먹고 아껴둔 김치로 입가심 하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마무리했다.

어둡던 동녘하늘이 천천히 밝아지며 뻘겋게 해오름은 시작되고 부지런한 산새들은 오래전에 일과를 시작했는지 고운 노래를 불러주어 고독한 산객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휴지로 코펠의 오물을 닦아내고 정리하여 배낭에 넣고 깔판과 침낭등을 모두 꾸렸으나 남아있는 연료를 모두 연소 시키려고 불을 붙여둔 버너는 아직도 타고 있다. 비상사태에 대비하려고 식수를 아껴 조금 남겨두고 머물던 흔적 없이 깔끔하게 청소하고 망루의 쓰레기를 봉지에 넣고 기지개를 켜는데 휴대폰이 삑삑 소리를 낸다.

열어보니 동호회원 한사람이 성삼재에서 무박으로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다며 힘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고마운 마음으로 상대에게도 전화를 걸어 건강하게 완주하라고 격려했다.

        <정령치에서 맞은 3일째 지리산의 일출>

망루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멋진 해오름이 시작되는 장관을 3일 연속으로 보는 행운의 사나이라고 자부하며, 버너를 챙기고 배낭을 꾸린 다음, 천상의 초소에서 땅을 밟으려고 내려오는데도 수순이 필요했다.

출구가 좁아서 몸이 먼저 빠져나온 후 배낭을 조심스럽게 끓어내려 등에 매고 내려오는 절차를 거치고 기분 좋은 일요일 아침을 열어간다. 

 

<둘째 날 나들이 정리> : 05 - 06 - 04  (土)

지나온 길목 : 장터목산장-촛대봉-영신봉-벽소령-연하천-토끼봉-노고단-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비박)

거리와 걸린 시간 : 33.6km(검증),  14시간 01분(노고단산장 휴식 1시간 35분 중 해우소와 상념정리를 위한 1시간은 산행시간에서 공제함)

누구하고 : 나 홀로

2005 - 06 - 24

계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