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이 담긴 남한산성과 남한산

 

 


  마천역에서 산행 들머리 찾기

 

  이번 달부터 공공부분에 주 5일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됨을 계기로 필자의 직장에서도 휴무가 실시된 2005년 7월 2일 토요일 아침, 그 동안 전국적으로 내리던 장마가 남쪽지방으로 이동한 후 중부지방이 잠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자 배낭을 챙깁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또 다시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로 인하여 야외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다리운동을 해야 한다는 결의를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지하철에서 접근이 가능하고 산행 중에 비가 올 경우   즉시 하산이 용이한 남한산성이 있는 남한산으로 가기로 합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동쪽 끝 종점인 마천역에서 내려(09:25) 역구내에 부착되어 있는 주변약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남한산성으로 가는 출구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2번 출구로 나오니 주택가 골목으로 보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어 헷갈립니다. 지하철 출입구 어디에도 남한산성 가는 길의 이정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인근 주민에게 "한국400산행기"의 개념도에 산행 들머리로 표시되어 있는 큰 느티나무가 있는 위치를 물어 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잔뜩 흐린 하늘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산을 보며 그쪽으로 걸어가다가 큰길에서 다시 산 쪽으로 더 접근합니다. 폭이 좁은 길이 앞을 가로막자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꺾었는데 이것이 실수였습니다. 오른쪽으로 가야 산성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등산로와 만나는 것임을 나중에 알았으니 말입니다.


  한 음식점 간판이 서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가 길이 없어 발길을 돌리고, 밭으로 연결되는 곳으로 들어갔다가는 다시 나옵니다. 나중에는 틀림없이 등산로로 연결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무심코 가노라니 한 아주머니가 그쪽으로는 길이 없다고 합니다. 바로 산자락 밑에서 이렇게 바보처럼 산 오름 길을 찾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길섶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풍접초를 카메라에 담았는데 기다란 수술이 옆으로 뻗은 꽃 모양이 특이한 야생화이기에 이외의 수확은 거둔 셈입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 온 후 큰 도로를 만나 산성으로 가는 정상적인 등산로로 접어듭니다.

 

                                                       풍접초


  나중에 광주시에서 작성한 남한산성 안내도를 보니 마천역 1번 출구로 나와야 한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남한산성까지 찾아가 입장권을 구입할 때 주는 안내서에만 그렇게 기록 해 둘 것이 아니라 마천역 구내와 출입구에도 산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남한산성 연주봉옹성

 

  오른쪽에 있는 개울과 나란히 지나가는 이 길은 남한산성 서문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날씨가 흐린 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왼쪽에 창덕운사라는 이름의 사찰이 있는 데 층수를 알 수 없는 높은 탑이 그럴 듯 합니다(09:42). 사찰을 지나자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길을 피해 왼쪽의 오솔길로 접어듭니다. 조금 전 길을 잘 못 찾아 한참동안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오기가 발동한 것입니다.

 

                                                      창덕운사

 


  밭 사이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가다가 비로소 오른편에서 오르는 정상적인 등산로와 만나 위로 올라갑니다. 한 노인이 내려오면서 규칙적으로 지르는 고함소리를 듣는 것도 큰 고역입니다. 비로소 산성으로 올라가는 주능선에 도착하니(10:00)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 동안의 찌든 심신의 때를 날려버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만난 이정표에는 연주봉옹성 740m, 서문 1,090m, 수어장대 1,380m 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이제 한 중년의 사내가 라디오를 크게 틀은 채 지나가는 데 마침 가수 장윤정이 부른 "어머나"라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평소 아내는 뽕짝이라면서 이 노래를 싫어하지만 필자는 구세대라서 그런지 오히려 이런 종류의 노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산에까지 와서 그 날의 뉴스를 듣거나 속세의 유행가를 듣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연을 즐기려면 자연이 주는 분위기를 벗삼아야 합니다. 지저귀는 산세소리와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바람소리는 그야말로 때묻지 않은 자연의 선물입니다. 그런데도 어깨에 라디오를 매달아 볼륨을 크게 틀어 속세의 소리를 듣는 것은 무슨 취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듣고 싶다면 이어폰을 착용하고 혼자 조용히 들을 일입니다.


  부부등산객이 지나갑니다. 남편은 어린이를 등에 업고 부인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가는데 꼬마는 불평 없이 잘도 오릅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작은 규모의 돌로 된 능선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땀을 식히고 있습니다. 산불감시초소를 통과하자 연주봉옹성에 도착합니다(10:37). 짙은 안개로 인하여 가까이 있는 물체도 제대로 분간하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이곳의 위치로 보아 맑은 날씨에는 전망이 좋을 것 같아 무척 아쉬워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찾아야 하겠습니다.

 

                        연주봉 옹성에서 바라본 산성 (1)

 

                                             뒤돌아본 연주봉 옹성

 

 

                                               연주봉 옹성

 


  남한산성(南漢山城)


  지금부터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남한산성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서울을 지키는 외곽에 4대 요새가 있었는데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였으며, 광주에 있는 것이 바로  남한산성입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9.05km, 높이는 7.3m입니다. 


  원래 2천여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백제의 시조 온조왕 때 쌓은 토성이었으나, 이를 신라 문무왕 때 다시 쌓아 '주장성'을 만들고, 그 옛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 번 고쳐 쌓다가, 조선조 광해군 때(1621)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고 합니다.  


  석축으로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는 약 8km로 자연석을 써 큰돌을 아래로 작은 돌을 위로 쌓았고,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문과 문루 및 8개의 암문을 내었으며, 동서남북 4곳에 장대가 있었습니다. 성안에는 수어청을 두고 관아과 창고, 유사시에 임금이 거처할 행궁을 지었습니다.


  산성이 축조되고 처음으로 시행(인조 17년, 1639)된 기동 훈련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1만 2,700명이었으며, 지금 성곽에 남아 있는 건물은 불과 몇 안 되는데 그 중 4대문과 수어장대 및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사적 제57호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등산을 겸한 봄과 가을의 관광은 성남시를 거치는 남문코스가 좋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을 끼고 있는 동문코스가 좋습니다(자료 : 한국관광공사).

 

 


  서문과 수어장대

 

  연주봉옹성을 내려와 암문을 지나 서문으로 가는 길에 앞서 보았던 부부등산객을 다시 만납니다. 마침 어린 딸이 바로 앞에서 걸어가기에 필자가 나이를 물어 봅니다.


  "꼬마야, 너 정말 산을 잘 탄다. 나이가 네 살이니?"
  "아니에요!"
  대답하는 말투가 강하게 부정적입니다.


  "그럼 다섯 살이냐?"
  "아니란 말이에요!"
  "아, 이제 보니 여섯 살이구나."
  "예."


  비로소 대답하는 말이 상냥해 집니다. 어린 시절에는 한 살이라도 나이를 더 먹고 싶은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해서 어린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어느 듯 나이를 먹는 것이 점점 서러워지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가는 세월을 누가 잡을 수 있겠습니까?   


  서문(우익문)에 도착해(10:47) 입장권을 삽니다. 성문 밖으로도 길이 있을 것 같기는 한 데 아무래도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편리할 것 같아서입니다.

 

                                     남한산성 서문

 

                                       산성내 풍경

 

 

                                     잘 정비된 이정표

 


  수어장대로 가기 위해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데 도립공원이라서 그런지 성내에는 어느 고산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수어장대에 도착하니 보기 좋은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11:01).


  수어장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령이 약 180년이 되었다는 보호수인 향나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영장이 진을 친 다음 휘하장졸을 지휘하고 관측하기 위해 지은 누각으로서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483m)에 위치하고 있는데, 조선 인조 2년(1624) 단층으로 축조한 것을 영조 27년(1751) 2층 누각을 증축하고 외부편액을 수어장대, 내부편액을 무망루라 하였습니다(자료 : 광주시).


  수어장대 오른쪽에는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방문하여 기념식수하였음을 알리는 "리대통령각하 행차 기념식수"라는 팻말이 돌로 새겨져 있는 데 그 당시의 측백나무가 지금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크게 자라났습니다.

 

 

                           수령이 180년 되었다는 향나무

 

                                      수어장대 안내판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수어장대

 

                       이승만 대통령 기념식수 표석

 

                              오른쪽의 측백나무가 이대통령 식수목

 


  남문을 거쳐 동문으로
 
  수어장대에서 남문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영춘정이라는 이름의 팔각정에는 몇 명이 앉아 풍류를 즐기고 있습니다. 길섶에는 개망초와 큰까치수염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파랗게 이끼를 낀 나무와 가는 나무 줄기에 담쟁이넝쿨처럼 생긴 풀이 감고 올라가 흡사 인공적으로 만든 모양의 나무도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큰 까치수염(영)

 

                                  이끼가 낀 나무

 

 


  팔각정에서 한참을 내려오니 자동차가 통행하는 남문입니다(11:40). 남문에는 지화문(至和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데, 몇 년 전 애들이 어렸을 때 온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나들이를 나온 후 두 번째로 방문하여 감회가 매우 큽니다.


  남문에서 다시 동문을 향해 갑니다. 산성 안쪽으로 나 있는 좋은 길을 따라 가는 데 그 안쪽의 오솔길 그리고 산성 바깥쪽으로도 사람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등산로가 이어진 것 같습니다. 동문(좌익문)은 한참 보수중이라 접근 할 수 가 없어 그 옆으로 지나갑니다(12:17).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소음으로 변한 스님의 독경소리

 

  동문에서 다시 계속되는 오르막은 처음에는 통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더니 한 구비를 돌아가자 돌계단으로 연결됩니다. 멀리서 은은히 들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더니 결국은  소음으로 변합니다(12:35). 바로 장경사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하여 들려오는 염불소리입니다.

 

 

                          통나무 계단길

 

                                                 돌계단길

 


  장경사는 동문에서 약 900m 동북쪽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경내가 넓은 사찰로 봄철이면 산성 특유의 철쭉이 일품이고, 가을에는 소나무 숲에서 송이가 난다고 합니다. 당초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세웠으나 현 건물 대부분은 근래에 재건축한 것입니다.


  대웅전 안에는 자리가 모자란 듯 처마 밑에까지 신도 몇 사람들이 앉아서 소원을 빌고 있는 모습입니다. 필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접근하니 마이크의 소리가 너무 커서 한시도 머물지 못할 지경인데 이들은 이런 소음도 부처님의 소중한 말씀으로 들리는 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장경사 석탑과 대웅전

 


  산성 안쪽 길 대신 해후소 옆으로 나 있는 산 속의 오솔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해발이 500여 미터에 불과한 산인데도 산 속으로 오르는 길이 오랫동안 계속됩니다. 마이크로 들려오는 스님의 염불소리는 꼭 나를 따라 오는 것처럼 좀처럼 잦아 들 줄을 모릅니다. 다리가 뻐근하여 쉬고 싶지만 마이크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장소로 속히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기를 계속하니 드디어 동장대암문입니다(13:00).

 

                                                     동장대 암문

 


  남한산의 정상인 벌봉

 

  동장대에서 벌봉까지 600m, 한봉까지는 1,700m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데, 이곳에서 한 동안 고민에 빠집니다. 산성을 한 바퀴 일주하려면 서쪽의 북문(전승문)을 거쳐 서문(우익문)까지 가야하지만 정상인 벌봉으로 가려면 동쪽의 길을 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남한산에 온 이상 정상을 밟아보지 않고 하산하는 것은 필자의 생리에 맞지 아니하므로 벌봉으로 가기 위해 동장대암문을 나옵니다. 길이 헷갈려 먼저 왼쪽으로 가보니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오른쪽 길로 가다가는 이미 지나온 동문으로 연결될 까봐 걱정이 되어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오른쪽 길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봉암성을 지나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가니 벌봉입니다(13:20). 벌봉이 남한산의 정상이라지만 도저히 정상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펑퍼짐한 안부에 광주시에서 세운 이정표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줍니다. 이정표에는 하산길인 상사창동까지 2km, 동장대까지 0.6km, 그리고 동문까지는 1.9km라고 합니다.

 

                                                  벌봉 이정표

 


  이정표 뒤쪽에는 안개에 쌓인 바위봉우리가 보여 그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니 벌봉을 설명하는 표석이 놓여 있는 데 바위로 오르는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암문 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흡사 벌과 같다하여 벌봉이라 한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청태종이 이 바위에 정기(正氣)가 서려 있어서 침략하면서 즉시 깨뜨리므로 한성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청군이 이 봉우리에서 성내를 관찰하면서 아군을 공격하였다.」

 

                                                    벌봉 안내표석

 


  벌봉의 높이도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광주시"가 발간한 안내도에는 515m인 반면 "한국400산행기"에는 약 535m로, "한국의 산하"에는 606m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산의 높이가 다를 경우에도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남한산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어리둥절합니다.    

 

 


  상사창동으로 하산

 

  이정표 옆의 바위에 홀로 걸터앉아 간식을 꺼내 먹습니다. 간식이라고 해 봐야 오렌지뿐입니다. 오렌지도 종류가 무척 많은 지 벌써 몇 번째 맛이 없는 놈만 골라 구입했습니다. 껍질이 두꺼운 놈은 내용이 부실하고, 껍질이 얇은 놈은 안에 씨가 있거나 줄기가 매우 질겨 제 맛이 나지 않습니다. 겉모습만 보고는 속을 알 수 없어 덜렁 사고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산성밖으로 통하는 암문


  상사창동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하산하기 시작합니다.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걱정이 되지만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안심을 합니다. 한 구비를 돌아가자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야생화 산수국을 만납니다. 산수국은 둘레에 7∼8송이의 큰 하얀 꽃이 피어 있고 가운데에도 작은 꽃이 촘촘히 피는 특이한 형태의 야생화입니다. 이 꽃은 그 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오다가 이렇게 호젓한 산길에서 직접 보게되어 오늘 산행의 본전은 건지고도 남았습니다.  

 

                                           산수국(1)

 

                                                  산수국(2)

 


  남한산성서문에 올 때까지 구름 때처럼 모여들던 사람들이 남문을 돌아 동문으로 올 때는 점점 줄어들더니 벌봉에서 하산하는 길에는 3∼4명이 지나가는 한 그룹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합니다. 비록 흐린 날씨이기는 해도 서울의 근교에 이토록 한적한 산길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지경이며, 등산로도 아내가 매우 좋아할 부드러운 흙 길입니다. 묘지 위에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패랭이꽃을 카메라에 담고는 계속 내려오는 데, 고사목 등걸에 피어 있는 버섯도 하나의 작품처럼 보입니다.

 

                                  패랭이꽃

 

                            고사목 등걸에 핀  버섯

 


  인근 밭에 흰색과 남색의 꽃을 피운 도라지꽃을 보며 중촌마을 2길로 하산합니다. 중촌번영회관과 성북교회를 지나 도로변의 마을버스 정류장에 이르러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합니다(14:40). 가볍게 시작한 산행에 5시간 15분이 소요되었습니다. 산행코스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마천역/창덕운사/연주봉옹성/서문/수어장대/남문/동문/장경사/동장대암문/벌봉/상사창동 중촌마을입니다.

 

 

                                                  남색 도라지

 

                                                    흰색도라지

 


  반대방향의 버스를 탄 한심한 촌놈

 

  지나가는 마을 버스를 타고 예쁘장한 처녀에게 서울로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갈아타면 되는 지를 물어보니 자신이 알려 주는 장소에서 내려 도로 저편에서 무조건 좌회전해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합니다.


  친절하게도 처녀가 벨을 눌러 주는 장소에서 내리자마자 뒤에 차량 한대가 바로 도착했는데 행선지를 보니 잠실역이라고 써져 있어 앞뒤 생각도 없이 그냥 오릅니다. 버스가 가는 대로 몸을 내맡긴 채 있으려니 도심을 벗어난 채 한적한 길로 달리고 있습니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서울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려 눈에 익은 검단산 산행들머리인 산곡초교를 지나 버스 종점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제 보니 이 버스는 잠실역에서 출발하여 종점으로 가는 것인데 필자가 처녀의 말을 명심하지 아니하고 그냥 차에 오른 실수를 한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을 장소도 마땅하지 않아 땀에 젖은 옷을 그냥 입고 있으려니 버스의 에어컨 때문에 한기를 느낄 정도입니다. 그러나 버스를 잘 못 탄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배낭 속의 겉옷을 꺼내 입을 생각도 않고 이를 바드득바드득 갑니다.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이지만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장마를 피해 나선 남한산성 돌아보기는 날씨만 좋았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입니다. 귀로에 버스를 잘 못 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였지만 어느새 지하철 5호선 올림픽공원역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편히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다음을 기약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