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의 어린이날이다. 집에 어린이가 없으니 집안을 나가서 산에 갈 수 있는 좋은 날이다. 또한 오늘은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하다. 사실은 몇일 전부터 이 날을 기다려 왔었다. 오늘만이 희양산 밑 봉암사 절이 외부인에게 개방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마침 거기 가는 안내산악회가 있어 이미 예약을 해 둔 상태였기에 오늘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희양산 산행도 하고 절도 볼 계획이라고 하니 매우 기대가 된다.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마침 날씨는 청명하지는 않으나 비가 올 하늘은 아니다. 6시반까지 만나는 장소로 나가서 버스에 승차하였다. 서울시내를 돌며 산님들을 태우고 7시가 좀 지나서 버스는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충주휴게소에서 20여분 쉰 다음 오늘 산행의 들머리인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로 향한다. 연풍에서 고속도로를 나가서 좁은 도로로 주진리 은티마을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4분으로 여느 때의 산행에 비하면 빠른 편이다. 서울과 내륙 오지를 이어주는 중부내륙고속도로 덕분이다.    


버스에서 산행대장이 오늘 계획을 말해 준다. 지름티재로의 산행은 힘들 것 같으니 은티마을에서 시루봉쪽으로 산행하다가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성터를 지나 희양산 정상 쪽으로 진행하자고 한다. 버스는 산행 후 봉암사 남쪽에 있는 가은북부츨장소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보낸다.

희양산 북쪽 은티마을의 산행 안내판

 

좌측 시루봉과 우측 희양산 사이의 골짜기로 산행 시작함


마을을 진입하여 동남쪽 시루봉 쪽을 향해서 걸음을 옮긴다. 10여분 평지를 지나니 제법 가파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동안 기온이 올라가서 제법 땀이 나고 숨이 가빠왔다.


11시 18분 백두대간 능선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팻말이 있는데 왼쪽으로 20분 가면 시루봉이고 오른쪽으로 40분 가면 희양산이라고 적혀 있었다. 은티마을까지는 50분이라고 쓰여 있는데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왔기에 1시간 10분 가량 걸렸다. 어느 정도 고도를 쳐 올라왔기에 희양산으로 가는 길은 많이 완만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 더 가니 바위로 된 비탈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게 되니 힘이 든다. 오늘 산행은 다른 때의 산행에 비하면 거리가 짧아서인지 크게 힘든다고 볼 수는 없겠다. 군데 군데 발밑에선 키작은 각시붓꽃이, 머리쯤 높이에선 진달래가 피어서 인사를 한다. 왼쪽 앞으로는 희양산의 거대한 돌 덩어리가 보인다.

 

성터 가기전 백두대간 능선에서 본 돌로 된 희양산의 모습

능선에 핀 진달래

 

11시 54분 희양산의 동쪽 옆구리라고 할 수 있는 성터에 도착하였다. 돌들이 쌓여 있어 옛날의 산성터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비닐 테이프가 가로질러 있고 봉암사 명의로 출입을 금한다고 써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통과하여 정상 쪽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올라 가는데 몇 분인가 산님들이 내려오며 더 올라가 봐야 스님들이 막아서 있어 정상 쪽으로 갈 수 없다고 말씀한다. 그래도 궁금하여 스님들이 지키는 곳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성터를 동쪽으로 봄

 

12시 15분 경 성터를 떠난지 약 20분이 되어 다시 비닐 테이프가 쳐지고 세분의 스님이 지키는 정상갈림길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대간길이 되어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은 2004년 12월 말, 스님들이 지키지 않기에 지름티재로 해서 이미 한 번 와 본 곳이었다. 그때 지름티재로 험한 길을 로프를 잡고 올라와서 이 지점에서 우측 위로 꺾어져서 983.5m의 희양산 정상은 가 보았으나, 지도를 유심히 보지 않은 탓에 그 남쪽의 더 높은 지점인 999.1m의 백운대는 가보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내 생각엔 잘되면 백운대를 보고 내쳐 내려가서 봉암사로 가는 계획을 생각했는데 안 될 것 같았다. 여러 산님들이 이곳에서 정지 당해서 서 있었다. 스님들 말이 오늘 봉암사만 개방할 뿐 산길은 개방하지 않는다고 하며 우측 지름티재 쪽으로는 가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봉암사로 갈 터인데 성터로 내려가서 가면 되겠느냐고 하니 그것도 안된다고 한다. 그곳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다고 겁을 준다. 일단 정상쪽은 포기하고 절만 노리기로 작전을 수정한다. 정상에 올랐었기에 큰 미련은 없었다.


우선은 하릴없이 성터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데 많은 산님들이 불평을 하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막혀서 돌아가는 사람과 어쨌든 정상갈림길까지는 올라가 보려는 사람들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었다. 곧 성터에 도착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성터에서 쉬거나 점심을 들며 오늘 안 풀리는 산행계획에 대해 토론하느라 왁자지껄하였다.


이곳 성터는 원래 삼거리인데 정상 쪽에서 내려와서 좌측으로 가면 은티마을 쪽으로 가게 되고 직진하면 백두대간 길이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도 희미하게 길이 나 있고 이미 몇몇 사람들이 봉암사를 향하여 우측 골짜기를 향해 이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봉암사로 간다고 한다. 나도 그들 뒤를 따라 산죽을 헤치고 나아갔다. 이제 희양산의 옆구리를 통해 봉암사로 가는 길이 가능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지키고 있다던 스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은 낙엽에 뒤덥히고 산죽이 주위에 자라서 얼핏 보기엔 희미하였지만 자세히 살피면 자취를 찾을 만 하였다. 최근에 이용하지 못하게 할 뿐 옛날에는 빈번히 사용된 듯 하였다. 지도를 보니 안성골이라는 골짜기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봉암사 바로 옆마을인 성골로 내려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었다. 물이 숨어있는 돌개울의 바닥을 따라 오는데 갑자기 길이  끊어진다. 약간 당황하였으나 원체 지형이 단순한지라 걱정은 안되었다. 개울을 계속 따라가며 길을 찾기로 한다. 조금 더 가니 개울에 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주 맑은 물이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며 시내가 작은 연못을 이룬 곳에서 물을 한 모금 떠먹고 세수를 하고 있는데 왼쪽 이삼십미터 옆으로 산님 한 분이 지나간다. 길은 거기였다. 개울과 평행으로 길이 내려가고 있었다. 길이 끊어진 뒤 불과 10여분 후였다.

내려오는 계곡 옆의 길

길은 산죽과 관목들이 덮고 있어서 운행에 귀찮을 지경이었으나 주변은 아주 깨끗하게 보였다. 사람들의 출입이 적기 때문일 터였다. 가늘고 조용한 길을 계속 내려오니 오후 1시 반쯤 숲을 나오게 되고 민가들이 몇 채 있는 마을로 나오게 되었다. 한 할머니에게 봉암사 가는 길을 물어 그 길로 봉암사를 향했다. 10여분 지나서 오후 1시 42분 봉암사에 도착하여 오늘의 산행을 끝냈다. 3시간 반 정도의 짧은 산행이었다.

 

숲을 빠져 나와 산을 올려다 봄

 

마을 앞의 바위

 

희양사 입구, 배경의 산은 희양산이 아닌 서쪽편의 구왕봉임

 

이제는 그 동안 꼭 와보고 싶었던 봉암사 구경에 들어갔다. 봉암사는 태고종소속인 듯 했는데 절이른을 희양산 태고선원 봉암사라고 표기하고 있었고 거대한 선방건물에 희양선원 태고선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데에서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절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고 그 위치는 골짜기를 한참 들어온 아늑한 곳에 자리잡음은 물론 절 바로 뒤에는 1,000m 가까운 바위산인 희양산이 든든히 받치고 있었다.

입구에 새로 지은 선열당

 

관람객들이 밥을 얻어 먹는다.

 

대웅보전과 그 뒤를 엄호하는 바위산 희양산

절의 중심건물인 대웅보전은 정면이 다섯칸이나 되는 큰 규모였고 다른 건물들도 그 규모가 크고 격도 높은 듯하여 봉암사가 신라시대 구산선문이 열릴 때부터의 명찰이라는 말이 허명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초파일을 맞아 제법 커다란 하얀 등들이 수없이 빨래줄처럼 매어진 줄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 등은 등 옆에 기원하는 이들의 주소와 이름을 적은 쪽지가 달려 있어 보통의 연등과 같았으나 색깔이 색등이 아닌 흰색이고 등 안에 전구가 달려 있지 않은 것이 특이했다.

 

대웅전과 앞마당의 하얀색 연등

 

대웅전에서 앞마당과 남쪽 중문을 바라봄

 

 

넓직한 경내

 

건물 중에서 특이한 것은 극락전이었는데 가운데 한칸을 방으로 만들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 주위를 마루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건물이었다. 또한 지붕을 2중으로 하고 건물높이를 높여서 비교적 면적이 작은 건물임에도 돋보이도록 지어져 있었다.

극락전

 

다음으로 특기할 만한 것은 보물 137호인 지증대사 적조탑이다. 이 탑은 신라 헌강왕 5년(879) 이 절을 창건한 지증대사의 사리탑인데 단청이 된 건물 안에 모셔져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탑신에 새겨진 조각이었다. 탑신은 상하로 나뉘어져 있는데 아래쪽 탑신에 새겨진 8개의 조각은 아주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어떤 사람이 비파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또 다른 사람이 손을 모아 기도하는 듯한 모습인데 이들의 표현이 아주 뛰어나게 되어 있었다.

지증대사 적조탑비

 

탑신에 조각된 악기 연주자

 

탑신에 조각된 기도하는 인물상


경내에는 철쭉, 목련, 모란을 비롯한 봄꽃들이 피고 있었고 오늘 출입을 허가받은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절을 감상하고 일부는 절에서 해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 시간이 있기에 경내를 찬찬히 돌아 본다음 마지막으로 약간 북쪽 외곽에 있는 마애불을 관람하였다. 마애불은 계곡가에 있는데 그 표정이 인자하고 조용하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래서 소원을 빌고 있었다.

경내 극락전 앞의 자목련

 

겹벚꽃

 

석축 밑의 모란

 

북쪽 외곽 산쪽 계곡옆에 있는 마애불

 

약 1시간 동안 봉암사 경내에 머물면서 여러 해 동안 오고 싶은데 온 기쁨을 만끽하느라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어 버렸다. 1시간 걸음의 거리에 있는 버스를 향할 시각이었다. 봉암사를 관람하게 된 금년의 초파일은 제법 뜻있는 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희양산 백운대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약간은 아쉬웠지만.

 

(같은 버스에 동승했던 어느 산님은 성터에서 저와 같이 계곡쪽으로 내려오다가 U턴하여 백운대와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제가 내려온 계곡으로 해서 봉암사로 왔다고 합니다. 저도 그 방법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렇게 등정했을 터인데 지나간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