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회령봉▲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인데 산정은 온통 수풀로 귀신들 만이 모일만 하다. 


- 언제 : 2007.9.9(일) 07:30~23:30
- 얼마나: 2007.9.9 13:00~16:00(3시간)
- 날 씨 : 대체로 맑음
- 몇명: 28명
- 어떻게 : 부산 마운틴클럽 동행

▷보래동마을-묘-삼거리-회령봉-능선-삼거리-임도-보래동마을(원점회귀)

- 개인산행횟수ː 2007-12[W산행기록-172 P산행기록-314/T659]
- 테마: 문학산행
- 산높이:회령봉(1,331M)
- 좋은산행 개인호감도ː★★★★


오늘은 9월 9일이다.음력으로 9월9일이면 중양절이라고 하여 영화 "황후화"에서 보듯이 국화주를 마시며 황금빛 국화밭에 놀 일이지만 양력 9월9일이 뭐 대수라고...이번 회령봉 산행을 마치고 이효석문학관에 들러 그곳에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원래 봉평의 이효석의 산소는 도로공사 때문에 이장을 하게 되었는데 후손들에 의해 경기도 파주의 실향민 통일동산에 이장되었다고 한다.그 날이 바로 9월 9일이다.

9월 초순 메밀꽃 필 무렵 효석문화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제 9회이다.숫자놀음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9월9일 9회..

이효석하면 항상 서구적인 깔끔한 옷차림 때문에 서구지향적 모더니스트라는 평과 시대적 좌절 속에서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취향대로 시대에 반응한 시대와 무관한 심미주의자라는 평이 절대적이다.

아래 글을 읽어보면 왜 그가 심미주의자인지 알 수 있다.메밀 꽃 필 무렵 단편의 일 부분이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달밤에 보았으면 메밀꽃이 더욱 하얗게 보였겠지만 낮에 보아도 충분히 눈가루를 뿌려 놓은 듯이 황홀했고 메밀꽃이 집중으로 재배되는 산허리를 따라 올라간 곳은 오지 산골의 울창한 수풀에 조망조차 쉽지 않은 곳에 신령들의 회합장소격인 회령봉(峰)이었다.

 

07:30~13:00
추석이 가까워져 벌초 행렬 때문인지 상당한 도로정체를 겪으며 산행들머리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되었다.쇠도 녹일듯한 여름의 불볕은 지났지만 아직 한낮의 더위는 제법
가학적이다.회령봉 산행입구는 혼자오면 찾기 힘들정도로 숨겨져 있는데 어느 민가의
마당을 지나 갑자가 우측으로 꺽는다.

 

13:53
처음부터 급사면 된비알이다.카메라가 속도와 노출의 함수라면 한낮의 등산도 비슷하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걷느냐와 햇볕에 노출되는 범위의 함수이다. 이때 즐기는 등산을
하려면 쉬엄쉬엄 느리게 걷는 느림의 미학의 추종 할 일이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단 숲속으로 드니 완전 오지의 밀림지대로 들러 온 느낌
이다.오히려 나무 숲을 뚫고 들어오는 햇볕이 고마울 지경이다.삼림 울창한 이곳을 쉬엄쉬엄
느리게 걸으며 흘리는 땀방울이 진짜이다.역시 땀은 운동할 때와 일할 때 흘릴 일이지
찜질방에서 가만히 앉아 강제로 흘린다는 것은 뭔가 소중한 것을 그냥 길바닥에 던져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14:09
느리게 걸으니 바위위의 이끼도 보이고 그늘진 곳의 이끼 속 일엽초도 보인다.자세히 보니
이끼라는 녀석은 욕심도 많다.축축한 곳을 좋아하니 물을 원하고 광합성을 해야하니 햇볕도
필요하다. 둘 다 너무 많거나 적으면 자살하는 까다로운 녀석들이다.
 


14:13~42
산속으로 들어 갈수록 원시림에 가깝다.이런 숲은 울릉도에서나 본 적이 있고
최근에 거의 보지 못했다.


14:47
바위와 한몸이 된 나무도 있다.어떻게 보면 나무가 전족을 신은 듯 불편 할 듯도 하거늘
어떻게 보면 바위를 쪼개며 싱싱한 나무의 생명력을 과시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15:02
두기의 묘가 있는 곳부터 우측으로 꺽으며 능선길이 시작된다.이곳 능선길까지는
아래서부터 가파른 경사면이 계속 유지되지만 이제부터는 평탄한길이다.1.1KM 더 
진행을 하니 회령봉 정상인데 강원도에서는 1,331M는 산의 축에도 끼지 않는지 
정상석도 없다.

산 정상에 올랐는데도 조망은 극히 제한적이다.
 

 

15:19~21
능선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 한 후 우측으로 꺽어 하산을 하는데 이제는 올라올 때와 반대로
급사면 하산길이 이어진다.가끔씩 보이는 나무들의 모습이 경이롭다.


 

16:00
1시간여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며 정신없이 내려오니 세계정교가 있는 임도로
내려오게 되는데 이곳이 산행 날머리이다.회령봉 산행은 짧은 시간에 비해서 상대적
으로 힘이 드는 산행코스이다.

 

16:51
버스를 타고 축제의 장소로 이동한다.말로만 듣던 섶다리를 처음 밟아본다.출렁거리지만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너무나 정겨운 다리라는 느낌이 강하다.

 

16:55
메밀밭을 바라보며 달이 떴을 때를 상상해 본다...흐뭇한 달빛..숨이 막힐 지경...

 

17:02
이효석문학관을 가기 전 하나의 비석이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달밝은 밤에 앞장 선 허생원과 조선달의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뒤로 조금
떨어져 동이가 걷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17:19
입장료 천원을 내고 문학관을 열심히 살핀다.1930년 경성제국대학 시절..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별세할 때 나이가 36살이었다.

메밀꽃에 너무 취한 탓일까? 보도블록의 역할을 하는 흙 속으로 박힌 저 통나무들도 메밀꽃
꽃망울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문학산행이므로 더욱 천천히 걸으며 많은 생각을 가진다.느리게 좀더 느리게...


SLOW(천천히)는 4개의 철자로 되어있고 LIFE(삶)도 그렇다. SPEED(속도)는 다섯개의 철자로 되어있고 DEATH(죽음)도 그렇다.
 
- 다지어링 히말라야 특급열차(Darjeering Himakayan Express)에 적혀 있는 글-
 
 
무릇 빠르게 처리하면 부패하는 법이고, 천천히 정성을 들이면 발효되어 몸에 이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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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어진 산처럼
,방랑의 은빛 달처럼

風/流/山/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