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야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9. 1일

                  *소재지  :경기가평

                  *산높이  :화야산755m, 뾰루봉710m, 고동산591m

                  *산행코스:뾰루식당-뾰루봉-절고개-화야산-고동산

                            -사기막골마을-고동산쉼터버스정류장

                  *산행시간:8시59분-17시55분(8시간56분)

                  *동행    :경동고 24기이규성, 29기정병기, 유한준 동문

 

     

  

  주룩주룩 끈질기게 비가 내렸습니다.

어제 하루 하늘이 한 일이라고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 세레머니 치고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비를 종일토록 퍼부은 게 전부였습니다. 9월 들어 첫 산 나들이를 떠난 저희들도 힘들었고 요 며칠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뿌리는 변덕스런 비에 시달린 우리의 산하도 똑같이 힘들었습니다. 진흙탕 물이 유입된 강물은 시뻘겋게 변했고 아침부터 비를 맞은 산속의 나무들과 바위들은 후줄근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비를 무릅쓰고 화야산을 찾은 저희들이나 이 산에서 만난 다른 산객들이나 물에 빠진 생쥐모습을 하고 있기는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맙게도 짙은 안개가 하루 종일 이 산 속 군상들의 구지레한 모습을 얼마고 감싸주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비가 세게 내리면 웬만한 안개는 먼발치로 물러서는데 이번에는 까딱도 않고 끈질기게 비에 맞서 저희들을 숨겨주었습니다.

 

  벼禾자가 들어간 화야산(禾也山)의 이름이 참으로 독특해보였습니다.

색다른 전설이라도 품음 직해 먼저 오른 몇 분들의 산행기를 검색해보다 3년 전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 제게 큰 도움을 주신 김용진님의 산행기에서 다음 대목을 발견하고 그러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화야산은 벼 화(禾), 어조사 야(也)를 산명으로 쓰는 특이한 산으로 ......중략.... ,「“화”라는 이름을 가진 연인을 부르고 기다리다 생을 마친 어느 한 많은 사람의 애끓는 사연이 담긴 지명」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기는 하나 ......”라는 이 분 글을 읽고 나자 1970년대 사월과 오월이 부른 제가 좋아하는 “화”라는 노래가 바로 이 산에서 노랫말의 시상을 얻은 것이 아닌 가 했습니다. “화”라는 주인공도 그렇고 젖은 짚단의 등장으로 벼 禾가 연상되어서였습니다. 혹시나 어제가 “화”라는 연인을 기다렸던 사람이 기다리다 지쳐 생을 마친 날이라면 어제 내린 굵은 비는 통곡의 눈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 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애태우며

       또 너를 생각했다 오늘도 애태우며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 되면 화- 안 된다 떠나지 마

       .........................후략............................

  

  아침 8시59분 뾰루식당 근처 들머리에 들어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천행 버스를 타고 가다 청평에서 하차해 택시로 들머리까지 옮겼습니다. 산본 집을 나설 때부터 지분적댄 빗줄기가 멈추지 않아 배낭에 카버를 씌우고 비 채비를 단단히 한 후 뾰루봉 가는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물이 거의 흐르지 않은 계곡 바로 위 길로 들어서 시꺼먼 잣나무들이 빽빽한 숲길을 지났습니다. 가파른 산등성을 치고 오르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능선 길과 만나 서서히 고도를 높였습니다. 산행시작 50분 만에 456봉에 올라 10분을 쉬는 동안 가져간 물로 목을 축였습니다. 


 

  11시 정각 해발710m의 뾰루봉을 올랐습니다.

456봉에서 뾰루봉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까다로운 암릉 길로 가느다란 로프가 걸려있기는 하지만 조심해서 올라야하는 구간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2004년 3월 키나바루를 안내해준 승진이와 함께 이 길을 오를 때 잔설로 미끄러워 애를 먹은 기억이 났습니다. 그해 5월 미국으로 건너가 결혼을 한 후 지난 4월 처음으로 귀국한 녀석을 명동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들면서 오랜만에 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한 산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2.1Km의 멀지 않은 길을 걸어 두 시간 만에 오른  뾰루봉에서 캔 복숭아를 들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챙겨온 이규성회장에 고마워했습니다. 오지 깊숙이 자리해 속세와 떨어졌다 해서 속리산으로도 불렸다는 뾰루봉에 오르면 다른 때 같으면 북쪽의 호명산과 이 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청평호가 눈을 끌었을 텐데 이번에는 짙은 안개로 전망이 안 트여 기념사진만 몇 방 박은 후 4.98Km 떨어진 화야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른쪽 아래 마이다스호텔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655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비를 맞고 걸어도 마음이 느긋해지는 편안한 길이어서 오는 가을 낙엽을 밟으러 다시 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12시5분 해발420m 대의 깊숙한 안부인 절고개로 내려섰습니다.

655봉에서 무려 230m가량 고도를 낮추어 안부로 내려서기까지는 급한 내림 길이 아니어서 안부가 특별히 깊다는 생각이 별반 들지 않았는데 절고개에서 한참을 쉬었어도 670봉으로 올라서기는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왼 쪽 아래로 생수공장 길이 나뉘는 절고개는 사거리 안부로 강변 따라 찻길이 나기 전에는 양쪽 아래 마을주민들의 안부를 넘겨주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었을 것입니다. 절고개에서 2.64Km 떨어진 화야산 정상에 올라서서 점심을 든다면 이제껏 지켜온 오후 1시를 넘기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한다는 불문율을 깰 수밖에 없어 670봉을 지나 가던 길을 멈춰 섰습니다. 조금이라도 비를 가릴 만한 바위를 찾아 비좁은 곳에서 선채로 비를 맞으며 준비해간 성찬을 함께하는 것도 산행 중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13시10분 다시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13시57분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755m의 화야산을 올랐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자 힘이 다시 났습니다. 절고개에서 670봉에 오르기는 힘들었지만 670봉부터 화야산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았고 반 아름은 넘을만한 활엽수들이 들어서 지나기에 좋았습니다. 지척대며 끊이지 않고 내리는 비는 영락없는 봄비인데 빗줄기의 굵기와 세기는 틀림없이 여름비였습니다. 억척스레 퍼붓는 여름비에 굴하지 않고 화야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자욱한 산길은 차라리 몽환적이었습니다. 이 비에 저 안개마저 없다면 최악의 산행이 되었을 터인데 아스라한 안개 덕에 3년 전의 산행을 반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 3년 후에 이 산에 올라 이번 우중산행을 명징하게 머리에 떠올릴 수 있도록 체력과 더불어 기억력감퇴도 어떻게 해서든 막아 낼 뜻입니다. 비가 많이 와 화야상 정상에서 사기막골로 바로 하산할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3.6Km 거리의 고동산을 거쳐 내려 갈 것인가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예정대로 고동산을 오르기로 결론을 맺고 나서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짙은 안개로 시야가 가려 빤한 길인데도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확인한 후 길을 나섰습니다. “3.5Km 고등산 방향”의 잘못된 스텐리스 안내판을 뒤로 하고 고동산으로 향하는 남서진 길은 진달래 길을 지나 안부로 이어졌는데 안부마다 사기막골로 내려서는 하산 길이 오른 쪽으로 나 있어 힘들고 지치면 언제든 중간 탈출이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15시38분 해발600m의 고동산을 올랐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 헬기장이 들어선 599봉에 올라서기 전에 토요근무를 마치고 산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 20명은 족히 될 만한 대규모 혼성팀의 산객들을 만났습니다. 제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 회사 사장 분은 엄청 산을 좋아하는 분일 것입니다. 저도 2년 전 회사를 접기까지 한 3년 동안 매 분기마다 영업실적이 가장 저조한 영업소직원들과 함께 산행을 했는데 격려와 채찍을 함께한 산행이었기에 눈비를 가리지 않고 올랐었습니다. 뾰루봉에서 화야산까지는 활엽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화야산에서 고동산까지는 적송과 잣나무들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길가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북한강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고동산 정상은 암봉으로 비좁았지만 오른쪽 아래로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이 가깝게 보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이산의 산마루가 물이 들어온다는 수입리(水入里)에 위치해 있음을 표지석이 알려주었습니다. 맞은 편 552봉을 에워싼 운무의 몸놀림이 또 하나의 볼거리여서 카메라에 실어왔습니다.


 

  17시55분 고동산쉼터 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고동산에서 사기막골로 내려서는 하산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위를 내려섰습니다. 몇 곳에 더 있는 암봉을 바로 오르기도 에둘러 돌기도 했습니다. 1시간을 내려와 온 종일 우산을 들고 비를 가린 유한준동문이 쉬어가자고 해 쵸코렛을 꺼내들며 한참을 쉬었습니다. 암봉 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파른 흙길이 이어졌습니다. 조심해서 지났는데도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연 궁둥이는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한참 후 만난 사기막골 계곡에서 물속에 텀벙 주저앉아 흙을 씻어내고 양말의 물기도 짜냈습니다. 산행 내내 빗속에서 사진 촬영을 맡아온 정병기동문이 땅에 떨어진 잣을 주워 까먹는 것을 보고 사기막골 임도가 잣 채취를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3년 전에 여기 사기막골을 지났을 때보다 많은 집이 들어서 골짜기 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사기막 마을을 지나 고등산 쉼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내 청평가는 버스를 탔고 청평에서도 바쁘게 청량리행 기차에 올라 귀경시간과 비용을 모두 절약했습니다.


 

  청량리에 도착해 인근 음식점에 들렀습니다.

하산주를 주고받으며 되돌아본 이번 산행은 끈질기게 비가 내려 구지레하고 힘들었지만 동문들과 같이 올라 즐거운 산행이 되었음을 기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