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석모도 해명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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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벚꽃  구름처럼  푸른 산  휘감고
운무 낀 듯 흰 배꽃 들녘을 뒤덮었네.
마음이 요동하니  세상일  잠시 놓고
가던 길  중지한 채  꽃 천지 찾아서
탁주한잔 기울이며 꽃향기에 젖어든들
그 누가  경박하다  핀잔을  주랴마는
무심한 사람들 시간에 쫓겨 달리기만하네.‘
 

지난 한 주 동안 둘째아이가 복막염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집사람 명에 따라 집을 지키느라 산행을 쉬었다.
 
그리고 3일 전 대구에 직원들과 함께 출장가면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문경새재쯤에서 산 벚꽃이 뭉게구름처럼 산을 휘감고,
상주를 지날 때는 흰 배꽃이 들녘을 하얗게 뒤덮은 광경을 보면서
주섬주섬 꿰어 맞춰본다.
 
어제부터 내리던 세찬 비바람은 잦아들었지만 하늘은 아직도 먹구름에 이슬비를 뿌린다.
 
안개 자욱한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무아원 산악회 버스와 함께
배를 타고 ‘석모도’를 향해 떠난다.(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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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席毛島)는 강화군 삼산면(三山面) 소재로 해명산과 상봉산, 상주산이 있어
삼산(三山)면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해명산과 상봉산 중간 낙가산 기슭에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인
천년고찰 ‘보문사’가 자리하고 있고
석모도 섬 주변 경관이 빼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바다는 들고나는 밀물과 썰물로 갯벌이 뒤집힌 흙탕물이다.
 
선객들은 저마다 새우깡을 든 삐끼가 되어 갈매기를 부르고
갈매기는 삐끼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쫓아 먹거리를 해결하는 단순한 노예로 전락했다.
 
생업인 고기잡이를 포기한 갈매기가 아예 배전만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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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을 쫓는 갈매기의 재롱을 사진에 담으려 카메라가 동분서주하는 10여분 새에
배는 ‘석모도’의 ‘석포리’ 포구에 도착하고 배에서 빠져나온 차가
‘석포리’에서 ‘매음리’로 넘어가는 ‘전득이 고개’에서 멈추자
‘해명산3km, 낙가산 (보문사)9km’의 표지판이 가리키는 능선을 따라
산객들에 산행은 시작된다.(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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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은 완만한 오름세고 주변은 해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오직 능선만 보고 간다.
능선길가에 밤새 비바람에 시달린 진달래와 파릇파릇 싹을 돋우는 참나무
그리고 푸른 소나무들이 있고 바닥은 낙엽이다.
 
평소 선두산행을 한 뒤 하산 식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전 총무가
초행인 듯한 성남의 아주머니 세분을 대동하고
후미 전 양규대장의 휘하에서 같이 산행을 한다.
 
오늘 산행은 마음이 어지럽다.
 
산지기들의 모임인 ‘한뫼산우회’가 정기산행을 강화도 ‘고려산’으로 떠나는데
신의를 생각해서는 ‘고려산’으로 같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지난주에 둘째아이 입원으로 무아원 산악회의 산행기를 걸렀고 
이번마저 건너뛴다면 같은 한뫼 일원이면서도 이 산악회를 운영하는 박태길 대장과
서로 간에 ‘꼭’이라는 언약은 없었지만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무언의 언약’이 있으니
어찌 마음이 심란하지 않을까.
 
변변찮은 글이지만 사진을 곁들여 새롭게 각색까지 하는 성의와
회원 분들의 분에 넘치는 관심이 너무 송구스럽지 않은가.
 
후미대장을 보고 있는 전 양규님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유행하는 말 ‘이건 아니잖아!’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에서
이런저런 마음을 한 수에 얼버무리며 무상무념으로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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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 내리막  길목에  찾아오는
견딜 수 없는 불안과 고독에 지친 몸
산은 거침없이 문을 열고 나를 품는다.
 

오십 줄 들어서야 시작한 산행에서
마음이 기쁨으로 열정을 찾아가고
자연으로 동화됨을 산을 통해 느끼면서
또 다른 세상과 새 삶을 찾았건만
세속의 인연들은 내 발길을 구속하니
마음속 한 구석이 뒤숭숭해 하는구나.
 

나의 갈길 구속함은 한분으로 족하오니
하나님이시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원컨대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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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유일한 휴식이 되는 토요일 하루 산행에서 자유하고 싶다.
 
능선은 분명히 양쪽 바다를 끼고 있을 터인데 해무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힘에 부쳐하는 성남의 여 산객들과 함께 희뿌연 구름 속 봉긋하게 솟아오른
‘해명산’을 바라보고 암반에 걸터앉아 음료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가 간다.(11:45)
 
‘해명산’ 가파른 암벽을 철주에 매인 로프를 잡고 오르는데 성남 분들이 힘들게 오른다.
 
구름에 감싸인 ‘해명산’(海明山 해발:327m) 정상에 선다.(12:12)
 
길쭉한 암반지대에 '해명산'이라 쓰인 정상목(頂上木)이 서있고
여기저기 산객들이 점심을 들고 있다.
 
온 길을 돌아보니 한 떼의 구름이 골짜기에서 오르며 빠르게 능선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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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에 젖은 진달래꽃이 널려있고 이따금 서있는 기암괴석과 이름모를 나무 군락
( 쥐똥나무 인지, 서어나무인지, 소사나무인지 도통 알 수 없는)을 보며 능선 길을 간다.
 
‘308고지’의 암봉을 지나고, 바위 두개가 머리에 큰 돌을 이고 있는 듯한
‘연인바위’를 지나서 사방이 탁 트인 ‘310고지’의 넓은 암반에 둘러앉아
떡과 김밥에 곡주를 곁들인 간식시간을 갖는데 지나가던 여 산객 한분이
원액에 가까운 진한 ‘복분자’를 한 컵씩 주고 간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넉넉하고 푸근한 인심이다.
 
가는 길 내내 이름모를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방개고개’를 넘으면서 해무가 약간 걷히자 산 아래 매음리 마을과
지금은 폐쇄된 드넓은 ‘삼량염전’이 조금씩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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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는 이미 종착지에 도달했는지 전파를 계속 날린다.
 

‘바다건너 찾아온 석모도 산행 길은
해무가 지천이니 구름 위 능선 일뿐
해명산을 지나고  낙가산 다가도록
산해절경 가로막은 야속한 구름떼가
앞뒤로 넘나들며 어-여가라 재촉하네.‘
 

지친 성남 일행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새가리 고개’를 지나고 두어 개의 봉우리를 넘다보니
어느덧 ‘낙가산 천인대’(千人臺)의 넓은 암반에 선다.(14:13)
 
낙가산(洛迦山해발:245m)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의 준말이고,
천인대(千人臺)는 1000명을 앉혀놓고 설법을 하는 장소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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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애처롭게 여긴 신의 배려가 있었는지
해무가 어느 정도 걷히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조망을 보여준다.
 
거대한 암벽이 바다를 향해 시원하게 흘러내렸고,
그 끝 안락한 산자락에 들어앉은 보문사 전경과 그 앞에 주차장
그리고 멀리 물 빠진 갯벌과 작은 섬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상봉산 쪽 방향으로 ‘낙가산’을 지나자마자 좌측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정문이 아닌 철조망 쪽문으로 보문사에 들어간다.(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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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금강산에서 내려온 화정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남해의 보리암, 낙산사의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관음도량의 하나이다.
 
수령 400년의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공덕비가 먼저 맞아준다.
 
자태가 빼어난 석탑과 북과 목어가 있는 법음루(法音樓)가 있고,
600년이나 묵은 향나무가 용트림 하듯이 굽어있는 정원 앞에
귀여운 동자승들이 오밀조밀 앉아있는 보문사 맷돌 역시
유구한 세월을 보여주고, 향나무 뒤로 거대한 바위 밑 천연석굴에 들어서니
어부가 바다에서 건졌다는 전설의 자그마한 22개의 나한상을 벽면에 모셔놓고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고 있다.
 
천장에는 수많은 신도들의 기원문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석굴의 어눌한 분위기가 신비스러울 뿐이다.
 
삼성각과 대웅전인 극락보전을 지나 마애불을 찾아가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른다.
 
108계단을 오르자 ‘관음성전계단불사공덕비’가 거북등위에 서있고
이어서 310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니 화강암의 판상절리현상으로 생긴
커다란 기와지붕 모양의 ‘눈섭바위’ 암벽에
높이 9.2m, 넓이 3.3m의 ‘마애관음보살좌상’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
후덕한 표정으로 산 아래 보문사와 바다를 지그시 내려보고 있다.(15:06)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조각하였다는
온화한 미소의 마애관음보살좌상 무릎위에 비둘기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고
그 아래 제단엔 신도들이 배(拜)를 올리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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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 때부터 앞서가던 두 분 스님이 내려올 때도 같이 행보를 한다.
 
스님들의 대화는 무슨 내용일까 궁금증에 물어보고 싶지만 너무 다정한 분위기를 깨는
실례를 범할 수가 없었고 나또한 시간에 쫒기고 있었으니까.
 
열심히 카메라에 담기를 마친 전 양규님과
나란히 벚꽃 화사한 ‘석가산 보문사’ 일주문을 나서고(15:20)
부지런히 주차장을 찾으니 먼저 온 산객들은 산악회 임원들이 장만한
닭백숙에 식사와 음료를 갖춘 하산 식을 이미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는 듯한 분위기다.
 
후미부대를 형성했던 몇몇이 부리나케 식사를 마치고 매음리 주차장을 떠난다.(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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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기다보니 성질머리가 더러워 물 밖에만 나오면 참지 못하고
금방 죽어 버린다고 해서 성질 급한 사람을 빗대 ‘밴댕이 속아지 같다’고 하는
‘밴댕이회’를 그리워하며 산행들머리로 삼았던 전등이 고개를 넘는다.
 
종주산행의 긴 능선을 뒤돌아보며 석포리 포구에 정박한 배편으로 회항하는 뱃길에
오전에 함께했던 갈매기들인가 다정다감하게 우리의 머리 위를 오락가락하며
이별을 아쉬워한다.(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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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4. 21 토요일
 
 
 
 
글:안상도    편집: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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