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겨울 속으로.. [함백산]
[신년산행]
만항재 ⇒ 전망봉 ⇒ 함백산 정상 ⇒ 중함백 ⇒ 은대봉 ⇒ 두문동재 [4시간]
2013. 1. 13 [일]
평택 종주 54명
[1]
새벽 속 깊게 흐르는 터울의 시간 앞에 만물은 아스라이 어렴풋해진다. 우윳빛
겨울안개는 시간의 존속으로 멀어진지 오래인 듯하다. 그저 순간일 뿐 으슥한
새벽그림자가 겨울의 공간속으로 빠르게 흘러나와 제신을 휘감는다.
시간 속에 존재한 익숙한 방식으로 그 문을 열어야 했다. 너무 생경한 풍경과
이글어지는 세월의 문이 대조되어 산정의 여백이 없어 보였다. 묻혀버린 어느
한때, 그 시간은 망각 속에 떠오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오묘한 시간 길이
펼쳐지는 제한된 공허함이다.
눈망울을 스치는 발칙한 겨울바람은 시간의 아우름 속에 고이 잠들고 있다.
무척 온화하고 여리다. 푸른 듯 펼쳐지는 하늘가는 멀고 먼 거리감이 아니다.
겨울 색이 지나친 점도 있지만 여지없이 흐르는 것이 시기의 참을성 없는
본심이다. 변하는 만큼 산정도 깊어만 간다. 채색된 시간 속을 거니는 하얀
냉기가 너풀너풀 머리를 튼다.
봉긋한 전망대의 굽이가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락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뒤로
펼쳐지는 첩첩한 산무더기가 건조스러운 형상을 하며 구름을 이고 있다. 밀리고
밀려드는 시간 앞에서 일매지게 쌓으며 벌이는 겨울 안개는 모닥불이 피어나는
새하얀 정한 같다. 후, 빗장이 퍼지듯 바람결에 실려만 간다.
[2]
점점 순간적으로 밀려가는 산정들의 적적한 행동에 여린 생각이 든다. 동서로
뻗은 산맥줄기가 빛에 서성이다 빠르게 능선으로 치닫는다. 시간이 온 것이다.
시름시름 야위어가는 산정의 숨결도 이내 지쳤는지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는
듯하다. 달아오르는 겨울 빛만 주야장창 산정을 쏘아대고 있다.
두 분께서 함백산정의 잔잔한 흐름을 가슴속에 담으면서,
「어깻살을 후비고 드는 포근한 겨울 기운이 빛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젠 바람이 멈출 때도 되었잖아요. 그렇게 춥고 불었으면 되었지, 얼마나 더 불라고….」
「저기 보세요. 인적 없는 시간이 산마루에 걸터앉아 걸쩍지근한 요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리라도 먹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
「숨소리에 놀란 샛바람을 먹고 있겠지요.」
고문님과 선배님의 대화가 빛을 타고 고요히 들려온다.
좌초된 배처럼 비스듬히 누워있는 산봉의 모습이 겨울을 제경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흑백속의 하얀 눈이 곳곳에 들어차 설산의 세계를 이루어내며 산정을
흥건하게 겨울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하다. 그 공간속에 흐르는 겨울의 詩情이
원대하기만 하다.
[ 고문님과 존경하는 아산 선배님 ]
가냘 퍼 보이는 나목의 마름에 상념이 깃든다. 서서히 넘어가는 해와 구름이
짧게나마 심호흡을 하면서 산정에 고즈넉한 마음을 전하는 듯하다. 부드럽게
흐르는 산중의 기운이 능선을 타고 새로운 시간 속을 누비며 침묵으로 대신한다.
그 시간 속 아름다운 겨울의 선율이 흐르는 듯 사면에서 피어오르는 정취가
고즈넉하며 생기가 넘친다.
설원의 웅장함이 상봉과 능선을 포위한 채 부챗살처럼 퍼져오며 포효처럼
들려온다. 서서히 눈동자가 경직되기 시작한다. 맥없이 조여 오는 긴장의 끈에
만져지는 것은 옷의 눈을 터는 것이다. 시선을 곧은 채 각각 전개되는 새하얀
세상을 눈으로 보며 귀로 듣는다. 침묵만… 그 깊은 풍경에 나도 모르게 깊숙이
빨려드는 것은… 함백산정의 想情을 받았기 때문인가.
장엄한 대 산정의 숨결이 열린다. 거대한 산정의 풍모가 세월을 주름잡고 있다.
크고 작은 호수와 물길처럼 장대하며 끝이 없는 듯 다양한 무늬를 새겨 넣고
있다. 투명하게 긴장되는 그 풍경에 눈동자가 차디차게 멈춰진다. 그리고
그 무엇이 활화산처럼 불끈 솟아오름을 느낀다. 풍성한 생명인가… 점점 더
흐르는 이 시간의 기억을… 더욱 찬란하게….
[3]
산맥의 너울이 파고처럼 일어난다. 하얀 눈꽃송이를 뒤집어쓴 채 도도한 얼굴로
탱탱하게 몰려온다. 잔설이 일고 나뭇가지가 3계급 단계로 맞춰진다. 아스라이
형체를 드러내는 겨울 빛이 허공을 가르며 산정 속으로 내려앉는다. 멈춰지는 듯
차디찬 협곡 속으로 검은 그림자가 얼룩지기 시작한다.
무릇 하늘이 만든 시간 앞에….
「첩첩한 산맥들의 고요한 광경에 이 시간을 잊은 듯 합니다.」
「지나온 세월의 대한 생각에 잠긴 듯한 憂愁한 표정으로 이 산정을 내려보고 있습니다.」
「다가온 시간 속에 피어나는 겨울의 환상 아니겠어요.」
「저 산맥들은 짙푸른 새벽 같은, 죽비처럼 상쾌한 맑은 정신을 생성시키는
장엄한 겨울의 기둥이지요.」
함백산 상봉에서 두 분이 차분하게 이어가시는 대화의 모습에 마음이 풍성해진다.
나열된 주목의 원대한 성향을 알았다. 생 천년, 사 천년, 누워 천년, 서서 천년…
첩첩한 세월 속에서 지탱되는 힘이 자연의 원천임을 알았다. 주재된 산정의
존재로서 부각되지만 그저 평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산상에서 몸을
묻는지도 모른다. … 하늘의 이치에…. 늘 세월의 길목에 서 있을 것이다.
수수하게 기억되도록.
지나온 세월 앞에 우뚝 멈춰선 주목. 묵직한 빛자락이 에워싼다. 엄숙한 의식처럼
혼돈된 빛이 이어진다. 하얀빛에 물들어 있는 가지들이 짙게 타오르는 푸른
공기를 흡입하며 연실 맑은 빛을 내뱉는다. 고독하지만… 선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침묵처럼 흐르는 야왼 바람결이 눈꽃을 흩날리며 둥치를 타고
하얀 길로 내려온다.
새 하얀 길. 하늘아래 내려앉았다. 차디찬 동토 같이 얼어붙은 미지의 길처럼
혹한의 그림자에게 매질당하고 있다. 엎드려 서리 맞은 상림들의 겨울나기는 혹
독하지만 그 이면적 동면이기를 바래보았다. 새파란 운기가 길속을 덮는다. 질곡한
생명이 흐른다. 이 속에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그 후]
『겨울과의 소통』이라면, 당연히 살아 숨쉬는 함백의 찬연한 울림일 것이다. 유서
깊은 영산과의 이웃하며 두 신산이 품고 있는 산자락 곳곳의 기운은 온 산하를
품고 하늘로 장대하게 뻗쳐있다. 孤山처럼 고요히 잠겨 있는…, 그 내면에는
장엄한 침묵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
계사년 신년 산행. 웅장한 깊이와 장대한 스케일이 큰 산정의 색태를 간직한 곳인
함백산. 그 경외함에 경건한 침묵만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산정 속에 머물러
있어 아름답게 만 보입니다. 그 시간을 생각하며….
so - happy !!
혹시,
詩人이신가요?
이른 시간 함백산에 대한 한편의 詩를 읽는듯 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창작성이네요.
앞으로 이어지는 한편의 詩가 기다려 집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