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

 

                            *산행일자:2010. 8. 15일(일)

                            *소재지 :강원태백/정선

                            *산높이 :함백산1,573m/중함백산1,505m

                            *산행코스:만항재-함백산-제3쉼터-중함백산-제2쉼터--적조암입구 주차장

                            *산행시간:11시23분-15시24분(4시간1분)

                            *동행 :과천산사랑산악회 회원

 

 

  강원도 정선과 태백을 어우르는 함백산은 남한 땅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고산인데 5m가 더 낮은 바로 옆의 태백산에 비해 대접이 훨씬 못 미칩니다. 조선조 영조 때의 문신으로 훈민정음해제와 동국문헌비고를 지은 여암 신경준선생이 그의 저서 산경표에서 “크고 밝은 뫼”라 하여 “대박산”으로 명명한 유서 깊은 산이 바로 함백산입니다. 주탄종유(主炭從油) 시절에는 국내 최대 탄광지였고 이제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고원전지 훈련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함백산이 고스락을 단군께 내준 태백산과 달리 산자락 하나를 카지노장에 내줬다 해서 홀대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백산이 보듬었고 또 그리하고 있는 탄광과 카지노장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첫째 흘리는 땀의 양입니다. 땅속 깊은 막장에서 채탄하는 광부들은 그들이 캐낸 석탄이 구공탄으로 바뀌어 열을 내기 훨씬 앞서 지열을 받아 엄청 많은 땀을 흘리지만 공기가 자동 조절되는 카지노장에서는 설사 돈을 왕창 잃어 속에 열불이 난다해도 땀이 나지는 않습니다. 둘째 탄광은 화수분이 아니기에 언제고 고갈되어 폐광됩니다만 카지노장을 들락거리는 손님들은 인간의 욕망이 꺾이는 날까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져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사람들 욕심이기에 여기 도박장은 인류와 그 수명을 같이 할 것입니다. 셋째 주탄종유 시절에는 광부들이 스스로 일해 번 돈으로 지역경제를 살렸다면 주유종탄의 오늘에는 카지노를 출입하는 도박꾼들이 흘린 돈으로 꾸려간다는 것입니다. 함백산인들 이런 카지노장이 좋아서 땅을 내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역주민의 살림살이를 좋게 해줄 묘안이 달리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인간들에 탐욕의 장을 제공했다고 함백산만 나무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11시23분 만항재를 출발했습니다.아스팔트 차도가 나 있어 차를 타고 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는 남한에서는 만항재입니다. 정선의 고한에서 414번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진행하면 태백시와 영월군을 경계 짓는 만항재에 이르고, 이 고개를 넘어 계속 진행하면 31번 도로와 만나는 화방재에 다다릅니다. 다시 말해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군, 태백시와 영월군 등 3개 시군을 모두 어우르는 고개로 해발고도가 1,330m나 되고 고개 마루가 평원이어서 바람 쐬러 한 번 들를만한 곳입니다. 야생화와 솟대가 바람과 벗하는 만항재에서 하차하여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그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아 배낭을 커버로 씌우고 계단 길을 올라 숲속 길로 들어섰습니다. 미타리, 쑥부쟁이(?)와 이름 모르는 흰 꽃등 이런 저런 야생화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송전탑과 시멘트 건물을 지나 아스팔트 차도 삼거리에 다다른 시각이 11시45분이었습니다.

 

 

  12시34분 해발1,573m의 함백산을 올랐습니다. 만항재에서 차도삼거리까지는 고도차가 별로 나지 않는 평탄한 길이어서 편하게 걸어갔지만 삼거리에서 함백산을 오르는 길은 앞서보다 훨씬 가팔라 산에 오르는 기분이 났습니다. 커다란 돌로 만든 계단 길을 얼마간 숨 가쁘게 오르자 안개가 짙게 깔린 드넓은 평원이 나타났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거칠고 매섭다 했는데 표지석이 서있는 정상에서 맞는 바람은 그 속도가 엄청 빨라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습니다. 태풍을 몰고 오는 드센 바람도 함백산을 에워싸고 있는 짙은 안개를 걷어내지 못해 정상에 올랐어도 동쪽 가까이에 자리한 송신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상석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는 사이 정상을 겹겹이 에워싼 안개가 잠시 바람에 길을 내주어 같이 오른 몇 분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두문동재로 가는 길은 정북 쪽으로 나 있는 백두대간 길인데 몇 분은 고집 쓰고 동쪽의 중계소로 이동해 차도로 내려갔습니다.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헬기장에서 일단 다 모였으나 바람이 하도 불어 함께 점심을 드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백두대간 길로 내려섰습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주목을 보호하고자 쳐놓은 울타리를 끼고 돌아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3시50분 제3쉼터를 지났습니다. 함백산 정상에서 멀지 않은 주목지대를 지나 내려선 평평한 안부에서 다 같이 모여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제껏 이 산악회에서 회비2만3천원에 점심을 제공해 좋았는데 얼마 전부터 회비를 2만원으로 낮추고 점심은 각자 싸오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반찬 준비가 번거로워 행동식으로 달랑 떡 한 팩만 싸갖고 다니는 저로서는 점심을 성찬으로 준비해온 다른 분들과 자리를 함께 하기가 민망했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식사를 하는 동안 땀이 다 식고 등 뒤가 서늘해져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습니다. 동자 꽃이 흐드러지게 핀 능선 길을 지나 다다른 제3쉼터에 돌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어 시간만 충분하다면 쉬어가도 좋을 법 했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동행한 몇 분들 사진을 찍었는데 궂은 날씨 때문인지 사진이 어둡게 나와 이분들께 죄송했습니다. 제3쉼터에서 10분가량 가파른 비알 길을 걸어 올라선 해발1,503m의 중함백산 정상에 표지물이 하나도 없어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서는 모르고 지나치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14시27분 돌 의자가 돋보이는 제2쉼터에서 잠시 쉬어 갔습니다. 점심을 드는 동안 비는 그쳤으나 안개가 여전해 시야가 가렸는데 중함백산을 오른 후 잠시 안개가 걷히고 해가 반짝 들었습니다. 중함백산에서 4-5분간 걸어 만난 “함백산등산지도”안내판에 현 위치가 제3쉼터로 나와 있어 앞서 오른 봉이 중함백산이 아니다 했는데 이렇다 할 봉우리를 넘지 않고 제2쉼터에 이른 것으로 보아 안내판에 표시된 현 위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함백산 정상에서 제2쉼터에 이르는 2.5km의 대간 길은 이번이 세 번째여서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세 번 모두 우중에 지나 조금은 답답했지만 짙은 안개가 죽어 천년 자리를 지키는 주목들을 휘감아 연출하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웠습니다. 대간 길은 제2쉼터에서 끝났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제2쉼터에서 산허리를 질러 에돌아가는 길섶의 산죽들이 비를 맞아 한껏 푸르렀습니다. 안개는 벌써 걷혔는데 습기가 가시지 않아서인지 한창 산상음악회를 열 산새들과 매미들이 좀처럼 무대에 오르지 않아 산속이 적막했습니다.

 

 

  15시24분 적조암 입구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제2쉼터에서 20분을 걸어 다다른 고개 마루에서 잠시 쉬면서 자작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개 마루에 이르기 직전에 두 아름은 족히 될 만한 엄청 큰 자작나무를 보았습니다. 추운지방에서 자라고 수고가 20m가 되며 껍질이 희고 잘 벗겨지는 것이 특징인 자작나무가 같은 과의 거제수와 다른 점은 바로 껍질의 색깔입니다. 백두산에서 장백임해를 이루고 있는 대표 수종 자작나무는 주로 오대산 이북지방에서 자라고, 남한 땅에서 자작나무라 부르는 것들은 거의 다가 거제수로 수피가 불그스레합니다. 마침 안내판이 세워진 거목 자작나무와 4-5m 떨어진 고개 마루에 거제수 나무가 서 있어 수피의 색깔이 서로 다름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왼쪽 아래로 급하게 내려가 오전에 내린 비로 수로로 변해버린 산길을 잠시 걸어 내려갔습니다. 이어 만난 계곡에서 흙 묻은 구두를 닦아내고 왼쪽 위로 적조암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집 두 채(?)만 달랑 있는 적조암 입구 마을 앞 차도를 건너 주차장에 도착하자 하늘이 완전히 열려 목 뒤가 따가웠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을 들면서 함백산 산행을 자축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곳은 5대 적멸보궁의 한 곳인 정암사(淨岩寺)입니다. 414번 도로변에 서있는 일주문을 통과해 흘겨 쓴 選佛道場을 지나면서 스님께 무슨 자인가를 여쭈어 큰 함허스님께서 친히 쓰신 “선불도량”임을 알았습니다. 종무소를 지나 해발고도가 900m가 넘는 산 중턱에 자리한 수마노탑을 들렀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인 서기64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여기 정암사는 대사께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시고 받으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頂骨舍利) 등을 봉안하는 적멸보궁입니다. 회록색 석회암으로 된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은 수마노탑 안에 정골사리를 봉안해 많은 불도들이 이 탑을 찾아올라 예불을 드립니다. 고한읍 쪽에서 정암사로 들어오는 길을 수마노탑에 올라 내려다보자 화순의 운주사 뒷산인 영구산에 올라 조망한 운주사 입구 길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마노탑 바로 아래 자리한 적멸보궁을 둘러본 후 일주문을 빠져나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함백산의 정암사가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5대 보궁의 한 곳이어서 절이 꽤 큰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절터도 좁았고 가람도 크지 않아 수마노탑을 찾는 관람객들만 없다면 더 없이 조용할 것 같은 정암사가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탐욕의 화신들인 도박꾼들도 있기에 석가모니 같은 성인들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도덕군자로만 채워졌다면 예수나 석가께서 할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함백산이 카지노장으로 산자락하나를 내준 것도 정암사에 진신사리가 모셔진 석가의 불력을 믿어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