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 산행 Photo 에세이/ 고도계, 산행 내비게이션 시험 운
(2008. 2월 21일/ 두문동재-> 은대봉(상함백) ->함백산정상 ->만항재 입구 ->정암사/ 고양시늘푸른산악회 따라 http://cafe.daum.net/greenalpine2030 )
*. Korea에서 6번째로 높은 함백산

백두산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에는 2,000 m 이상이 되는 산 7개가 북한에 있다.
관모봉(함북2541m), 북수백산(하남, 2522m), 차일봉(함남, 2506m), 남포태산(함남, 2435m), 백산(함남, 2379m), 대연지봉(함남/함북, 2360m)이 그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자는 무엇보다 그 높이를 탐하는 법이다.
우리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을 다섯 손가락으로 차례차례 꼽으면 한라산(1,950m), 지리산(천왕봉1,915m ), 설악산(대청봉 1,707.9m) , 덕유산(향적봉, 1,614m ), 계방산(1,577m )이다.
그 다음 여섯째가 함백산(1,573m )으로 태백산(1,566.7m ), 오대산(1,563.4m ), 가리왕산 (1,561m), 가리봉(1,519m), 남덕유산(1,507.4m)이 뒤를 잇는다.
그 함백산을 가보지 못해서 가보기를 벼르다 벼르다 우수(雨水)를 막 지내고 오늘이야 함백산 들머리인 싸리재(1,360m)에 이르렀다. 수도권 일산에서 5시간 거리였다.

*. 산악내비게이션의 안내 따라
낚시꾼이나 골프광들이 좋은 장비를 갖고 싶어 하는 것처럼 산행에 깊이 빠지다보면 등산 장비에 욕심을 내게 되기 마련이다.
모든 레저 생활이 그렇듯이 등산은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여 행복한 하루를 산에서 보내고 마감하는 것이다.
그 행복과 함께 안전한 산행을 도와주는 산행 장비는 즐거운 산행을 약속해 주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등산용 고도계와 등산용 내비게이션을 갖고 싶었다.
'망팔(望八)도 지난 이 나이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도 아닌데-.' 하면서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이러한 귀한 것이 나의 시대가 끝나면 자식들에게 훌륭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요즈음은 디지털의 세상이라서 컴퓨터처럼 하나의 물건이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기능을 절반이라도 이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 아니면 고도계를 가지고 다니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고도계 시계도 그랬다.
시간은 물론 해외 20여 개국 현지 시간, 타이머, 알람, 기압계, 고도계, 온도계, 나침반 등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는데 그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고도측정이었다.
등산용 고도계란 차고 다니다가 언제 어디서나 시계처럼 고도가 몇인가를 알아보는 기구가 아니다.
고도는 기압에 의하여 고도를 측정하는 것이고, 그 기압은 장소에 따라서 다르고 일정하지 않고 같은 장소라도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그 설명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고도계는 거의 외제인데다가 전문적인 용어가 많고, 고도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번역한 설명서여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다음 나의 글은 후학자를 위한 나의 경험담을 들려 주고자 함이니 주책없는 노인이 자기 물건을 자랑하고 다니는 소인배라고 오해하지 마시라.
-고도계 사용법
1. 등산 떠나기 전에 그 산의 들머리의 고도를 미리 알아가지고 가서 현지에서 고도를 맞춘다.
2. 일반적으로는 그 고도는 등산서적이나 등산지도를 통하여 알아야 하는데, 그 이용법을 알고 싶거나 그 자세한 등고선을 용법을 알려면 자주 다니는 큰 등산점이나 서점에 가서 등산지도를 보고 알아볼 일이다.
3. 그러나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고도보다는 현지 이정표에 고도가 쓰여 있다면 그것들을 기준으로 하여 수정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4. 산행을 하다가 도중에 만나는 이정표에 해발xxx m라는 기록이 있거든 다시 수정하는 일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고도가 가장 정확한 곳은 모든 산의 정상이다. 여기서는 반듯이 수정해 주어야 한다.
산행은 정상을 향하여 한 발씩 전진하며 남기는 발자국이지만 오르고 내림의 반복 되면서 정상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오르는 곳의 고도가 얼마인가를 알아보고 싶을 때 수시로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혹시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고도계로 등산 지도에서 등고선을 찾으면 자기의 위치를 알게 되고 위험에서 탈출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산행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 남을 도와주는 일도 된다.
그런 고도계 중에 쓸만한 것은 고가였지만 지금은 많이 대중화 되는 바람에 가격대가 많이 낮아졌다.
내가 구입한 일제 C사 제품 고도계는 인터넷에서는 21만원을 훨씬 상회하는데 서울 남대문 도깨비 시장(숭례상가 근처)에서 17만 원 대로 방수가 되는 최신형을 구입하였다.
고도계를 구입한 후 이것보다 휴대용 등산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들에게 말하였더니 'I사' 제품을 인터넷에서 찾아 소개하여 준다.
이 제품은 차량에서도 쓸 수 있는 휴대용 내비게이션으로 그 용법은 일반적인 내비게이선과 같은데 전원 절약을 위해서인지 DMB TV 기능은 없다.
대신에 [보행용] 모드가 있고 보행 시 필요한 '주변보기/대중교통/ 등산정보' 등이 있고, 외부용 배터리[별매]를 장착하여 전원을 보충해 줄 수 있게 하였다
보행자들은 대중교통으로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편리한 기능이 많았다.
이를테면 지하철 지도나 출발점과 도착점을 찾아 각각 클릭하여 놓으면 갈아타고 가야할 곳이 어느 역인지, 몇 호 차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지, 그 사이 역의 수가 몇 개인지, 걸리는 시간을 친절히 문자로 표시하여 준다.
그보다 내가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등산정보]라서 그것을 함백산에서 처음으로 시험 운행하여 보기로 하였다.

*. 들머리 싸리재에서
우리들을 태운 관광버스는 사북에서 7.5km 거리에 있는 별어곡을 지나 고한으로 해서 38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산길 우측 싸리재로 향한다.
이 길은 차량 통행이 드문 곳이라서 제설작업이 되지 않아 얼마 못 가서 도저히 버스가 오를 수 없는 눈길이었다.
하여 하릴없이 우리들은 버스를 버리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구절양장처럼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올라 가고 있다. 이 도로에는 곳곳에 우회하는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우회하여 가야 할 도로를 산길도 아닌 길로 직진하다 보니 거리를 단축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가팔라서 산길보다 더 힘들었다. 그렇게 기진맥진할 무렵에야 비로소 함백산 쉼터가 나타난다.
거기서 그 커브를 돌아 올라가니 멋진 돌무덤이 나타나고 조금 더 오르니 거기가 해발 1,268m의 백두대간 두문동재다.
여기에는 산행안내도가 있고 거창한 '백두대간두문동재'라 쓴 우람한 입석 등이 있는 것을 보아 함백산 들머리가 분명한데 두문동재라니 그렇다면 싸리재는 어디란 말인가.
이 두문동재는 길 건너 남쪽이 함백산 가는 길이요, 북쪽이 대덕산, 금대봉의 들머리가 되는 두 산의 갈림길이 되는 곳이었다.
산의 들머리는 어느 산이나 산의 정보를 가장 많이 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내가 항상 많은 사진을 찍으며 지체하게 되어 언제나 처음부터 가장 후미가 되어 등산회를 따라갔으되 온종일 단독 산행을 하게 되곤 했다. 이렇게 나에게는 그 분수령이 항상 산의 들머리였다.
두문동재가 싸리골재가 아닌가 하면서 대덕산 금대봉 입구에 있는 안내산행도를 보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보라, '두문동재(싸리재)'란 저 안내판을. 나는 위대한 발견이나 한 양 홀로환호작약하였다.
누가 한 마디만 귀띔해주면 금세 알 것을 이렇게 오랜 동안 혼자 궁금해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승은 가르쳐 주는 사람도 되지만 그 지름길을 알게 하여 주는 분이로구나 하였다.

금대봉(1418m)은 싸리재에서 1.2km요, 대덕산(1307.1m)은 금대봉에서 4.9km를 더 가야 있는 산이다.
이름만으로 보면 대덕산이 금대봉보다 더 높은 산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이 두 산은 산보다 한강의 발원지로서 더 유명한 곳이다.
- 금대봉에서 서북쪽으로 700m 내려가면 고목나무가 있는데 그 밑에 한강의 최상단 발원샘이라고 하는 '고목나무샘'(해발 950m)이 있다. 고목나무샘은 바가지 3개 만한 크기로 여기서 다시 300m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샘 '제당굴샘'이 있다.
이 두 샘은 땅 밑으로 스며 흘러 흘러가서 200m 아래의 '금대샘'에서 합류하여 암벽에서 용출하는 물줄기가 되어 용트림 형상을 하며 암반으로 쏟아져 이끼 낀 돌계단을 따라 '검룡소'란 2개의 작은 연못을 이룬다. 이 검룡소에는 예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 옛날 황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고 싶어 한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못 이름을 검룡소(儉龍沼)라 한 것이다.
-전국여행 슈퍼정보(교학사) 참조





*. 함백산 가는 길

싸리재에서 우리들의 목적지인 만항재까지는 백두대간 줄기로 총7.68km요, 함백산까지는 5.26km였다.

나는 큰맘 먹고 구입한 나의 이 내비게이션이 등산용으로서 여러 가지가 궁금한 점이 많았다. 차량에서의 내비게이션처럼 산에서 어느 쪽으로 가라는 설명까지는 기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산에서 나의 해발고도를 가르쳐 주는가.
-가는 방향을 나침반처럼 표시하여 주는가.
-정상까지의 거리를 가르쳐 주는가 등이 제일 궁금하였다.
그 시험 결과 내비게이션은 나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산은 주위에 명칭이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 등고선 상에 나의 위치를 표시하여 주고 있었다. 만약에 길을 잃었을 경우 큰길을 찾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시험으로는 지도와 함께 가지고 간다면 산행 내비게이션으로서의 역할은 어느 정도는 하여 주는 것 같았다.
다음은 나를 안내하고 있는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함백산 등산정보'다.
-함백산의 해발고도는 약 1,573m로 현재 위치에서 직선거리로 약xx km다.(현지에서는 거리가 나왔으나 기록하여 오지 못함).
인근 명소로는 강원랜드 카지노, 정암사, 몰운대, 화암동굴, 태백산, 유일사, 석탄박물관이 있다.
-함백산의 대표적인 등산코스는 주릉을 밟는 두문동재 코스와 화방재 코스이다.
고한의 두문동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등산로가 뚜렷하고 내내 조망이 시원하여 눈이 즐겁다.
제1코스: 싸리재-> 천의봉- 함백산->만항재(9.3km/3시간 30분)
제2코스: 정암사-> 적조암-> 함백산-> 만항재(9.0km/2시간 30분)가 있다.
-함백산 주릉은 동쪽의 태백시와 서쪽의 영월과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며 뻗는다.
- 테마정보로는 정상에서 태백산, 백운산 등 지역 전체와 동해 일출 전망이 가능하며, 민영탄광인 동원탄좌, 삼척탄좌 등이 있어 석탄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 볼 수도 있다.
휴대용 내비게이션도 전원을 쓰는 것이어서 구입할 때 외장 배터리를 준비하였더니 전원은 절약을 위해서 자동으로 꺼지는 절약 장치가 되어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 은대봉에 서서
 
 
 
 
 
 
 
 
 
 
 
함백산 등산길은 내내 눈길이었다.
그 눈길은 많은 사람이 다니어서 러셀이 잘 되어 있는 길인데다가 도중 도중 강원도 당국에서 정성껏 만들어 놓은 등산길 안내판이 나그네의 마음을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하게 하여 주었다. 
이 산에는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거의 없는 낙엽 진 나무들이어서 등산 내내 전망이 좋았다.
함백산 능선에서 가장 중요한 '은대봉'을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여 정보를 찾아보았다.
-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계에 있다. 해발고도 1,442m. 현재 위치에서 직선거리로 약 xxx m. 함백산의 봉우리 중 상함백산을 가리킨다.
백두대간 종주코스의 한 구간을 이룬다.
두문봉재에서 정상을 지나 화전 버스까지 4시간이 걸린다.

은대봉은 사방이 턱 트인 널찍한 헬기장으로 작은 정상석이 그 한 옆에 서있는데 여기서부터 방송탑이 요란한 함백산 정상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기 시작하였다.
은대봉 앞 바로 저 아래가 그 유명한 태백선의 정암터널이다.
출처 http://chujenstation.co.kr
-정암터널은 정선군(旌善郡) 고한역(古汗驛)과 태백시(太白市) 추전역 사이에 있는 1973년 개통된 길이 4,505m인 한국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이다. 강원도의 광산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국력을 기울여 힘들여 건설된 터널이다.
그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역이 '하늘도 땅도 3평뿐이라'는 전설의 고장 같은 해발 885m로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인 추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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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백산에서의 유감 

함백산은 두루뭉술한 육산인데 이 백두대간 그 등산로에 쌓인 눈 때문에 앉아 쉴 만한 바위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인가 은대봉에서 함백산 정상까지에는 3개의 쉼터가 있다.
제1쉼터는 은대봉서 800m 내려온 1,268m에 멋진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쉼터는 거기서 1.73 km 거리에 있는데 그 근처에 있는 샘물샘터와 적조암(해발 1,160m)과 정암사를 가는 세 갈레 갈림길이다.
정암사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몇 팀 있었다. 여기서부터가 주목군락지인지 커다란 고목이 많았다.
산행 초입에서 너무 힘을 빼서인가 오늘 등산은 유난히 힘들어서 눈길에 모자를 벗어 놓고 수없이 쉬며 가다 보니 주목이 힘들어 하는 내가 안 되어서인가 그 가지를 구부려 의자를 만들어 앉기를 권한다. 거기 털썩 앉아서 함백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 앞서 가는 사람과 제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10 분이란 사람도 있고 20 분이란 사람도 있었다. 12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라서 앞서간 우리 팀이 정상을 넘어서 점심을 먹고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따라 잡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허기가 져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잠시라도 쉴 때마다 가지고 간 김밥 몇 개로 요기를 하였다.
강원도의 C시와 경기도의 P시에서 왔다는 팀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두 팀들 다 산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버너에 불을 피워 나면을 끓여 먹고 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산에서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럴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인상을 남들에게도 줄 것이고 이들도 따라 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왜 잊고 있을까? 남 몰래 하는 행위도 아니고 여보란 듯이었다. 남대문이, 종합청사가 불탄 것을 아는 사람들일 터인데-.
지나온 은대봉은 두개의 봉우리를 이루어 뒤돌아보는 가까운 산으로는 가장 높아 보였다.
함백산 가는 길에 있는 제3쉼터인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고목과 바위들의 어울린 곳이었다. 동쪽 멀리 풍차들을 보니 지난 1월에 눈을 보러 갔다가 눈을 보지 못하고 온 선자령 같았다.
제3쉼터는 전망대였지만 여기도 앉아 쉴 자리 없이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여기서 함백산 정상까지는 1.2km였다.
함백산 정상을 오르는 길 좌측은 울타리로 보호하고 있는 주목군락지다.
이곳은 천연보호림으로 해발 700m ~ 2,500m에서도 잘 자라는 고산 성상록수로 조경수와 기념수로써 가구 건축재로 인기 있는 나무다. 그래서 그 누군가가 베어 가는지 그 주목에 대한 간절한 입간판의 부탁이 여기서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
- 백두대간 줄기의 높은 봉 함백산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눈물 속에 가슴 저미며 천년을 기다리는 보호목이건만, 누가 새 생명의 가지를 잘라 갔단 말인가.
그래 그런가.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있다.
- 산림법 제 67조에 의거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 고시된 이 저녁에서 산물을 채취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됩니다.








*. 함백산 정상에서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함백산 정상에 오르니 정상보다 더 우람한 것이 방송국 중계탑이다.
이 방송국 때문에 찻길이 이곳 정상까지 나 있어 함백산은 남한에서 6번째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산악인에게 인기 없는 산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산 정상을 다 차지하고 정상 접근을 절대로 금하고 있는 모악산(793.5m)이나 계룡산( 천황봉(845.1)등과는 달리 정상을 빗겨서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함백산 정상은 어느 산보다 전망이 좋았다.
북쪽에 있는 산이 두문동에서 오르는 대덕산(1,307m)요, 남쪽에 보이는 제일 높은 산이 태백산(1,567m), 서쪽에 백운산(1,426m) 등등을 찾다가 만항재로 하산을 하고 있다.


정상서 1시간 이내에 내려온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을 바라보았더니 높이가 불과 260m밖에 되지 않는다. 만항재는 차로 넘을 수 있는 포장도로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해발 1,313m고개이기 때문이었다.
고개로는 지리산 정령치가 해발 1,172m요, 남한에서 5번째 높은 산인 계방산 산허리를 지나 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운두령(雲頭嶺)이 해발 1,089m다.

*. 한국 5대 적멸보궁의 하나 정암사
싸리재(두문동재)에서 만항재까지는총7.68km로 가벼운 산행이라서 산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화방재로 해서 태백산과 연결하여 산행을 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들도 하산하고 보니 시간이 넉넉히 남아서 기사님의 배려로 고맙게도 정암사를 향한다. 2번이나 다녀온 곳이지만 정암사의 수마노탑을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어서였다.
요번에도 나의 내비게이션에게 그 정보를 물어 보았다.
등산하기-> -강원-> 산이름 검색-> 함백산 :1573km->목표지점 검색 ->정암사:
[사찰정보 1] 신라 27대 선덕여왕 14년에 자장율사 창건했다고 전해짐
[사찰정보2] 상원사, 통도사, 법흥사, 봉정암과 함께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
[사찰정보3] 석가모니불의 사리가 봉안된 수마노탑을 위해 건립
[사찰정보4] 등산코스 정암사- 적조암- 함백산-만항재 (2시간 30분 소요)
[사찰정보6] 수마노탑- 정암사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전체 높이 9m , 길이 30~40cm
[테마정보] 정암사는 유서가 깊은 사찰로 인근 관광지도 많아 나들이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산세가 순하고 고요해 잠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이 적멸보궁에는 . 불단(佛壇)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後彿撑畵)를 모시지 않는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직접 모셔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암사 적멸보궁 앞에다 계단(戒壇)을 설치하였고 적멸보궁 안에는 불상 없이 불상 자리에 빈 방석만이 놓여 있다. 불자들이 예불하는 적멸보궁 뒤쪽 산언덕에 부처님의 사리[치아]를 모신 수마노탑(水瑪노塔)이 있기 때문이다.
-정암사(淨암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절이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산서성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 치아, 불가사 패엽경 등을 받아 귀국하였을 때였다.
용왕이 자장을 용궁으로 모시고 가서 극진히 대접하고 마노석(瑪노石)을 주었다. 자장이 그 마노석으로 이곳에 탑을 쌓았다
하여 탑의 이름을 수마노탑(水瑪노塔)이라 하였다.

적멸보궁 옆에는 심상치 않은 주목이 있다. 자장율사 주장자(慈藏律師 주杖子)다.
- 이 주목은 약 1,300년 전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참선할 때나 설법할 때 또는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 주장자(주杖子)를 꽂아 신표로 남긴 것이 자란 나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가지 일부가 회생 성장되고 있어 당시의 자장율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이 있다.
통도사(경남 양산 영추산), 중대사(강원도 평창 오대산), 봉정암(강원도 인제 설악산), 법흥사(강원도 영월 사자산), 정암사(강원도 정선 함백산)이 그것들이다. 이 적멸보궁은 하나같이 다 명산에 모시고 있다. 옛우리들의 산악숭배 사상 때문인 것 같다.

*. 자장율사(慈藏律師)는 누구신가
자장율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 유학 가서 당태종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활약할 때 그의 설법을 듣고 한 장님이 곧 눈을 뜨는 이적을 행하여 수많은 선남선녀를 그의 주위에 모이게 하던 신라의 고승이다. 7년만에 선덕여왕의 부름을 받고 돌아올 때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의 가사 한 벌, 불두골(佛頭骨)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분황사에 머물면서 황룡사 9층탑을 짓고 황룡사의 2대 주지를 역임한 고승이다. 그가 세상에 태어날 때였다. 늦도록 자식이 없던 그의 부모는 불교에 귀의 하고 자식 점지를 기원하던 중 그의 어머니가 하늘에서 별이 품안으로 떨어지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 탄신일인 4월 초파일에 태어났다.
천성이 맑고 슬기롭고 총명한 데다가 향학열이 깊었다.
어버이를 여윈 뒤로 세상의 번거로움을 피하여 처자를 버리고 홀로 깊은 산에 들어갔다.
작은 집을 짓고 가시덤불 속에서 벗은 몸으로 도를 닦으며 머리카락을 천장에 매달아 정신의 혼미함을 물리치는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왕이 그의 인품과 학문을 사모하여 재상으로 기용하려 부르며 만약 이를  거역하면 목을 베겠다는 칙명을 내렸으나 '내 비록 하루라도 계를 지키며 살 것이요 계를 파하고 백년 살기를 원하지 않겠다.'(吾寧一日持戒死 不願百年破戒而生)고 하며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수행을 계속하다가 당나라에 가서 7년만에 돌아와서는 불교의 보급으로 국민교화와 불교 교단 기강확 립을 위해 노력하다가 59세 나이에 열반에 드신 신라의 고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