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제주도이어서 아름다운 오만가지 이유

(43년전 한라산 산행기와 43년후 제주도 일주기) 


 

43년전 제주도 한라산 산행기 


 

그러니까 대학 1학년 때,

68학번이니까 어느덧 43년 전.....

엊그제 일 같은데....

와! 정말 세월 빠르네 

그 많은 시간들이 몽땅 어디로 사라져 간 것일까 

그 시간들을 잘 채워 온 것일까 아니면 그렁저렁 보내버린 것일까. 

여하튼 열심히 살아오기는 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던 지난 것은 지난 것이고 


 

43년 전 여름방학, 빗줄기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날

A형 군용텐트에, 군용담요에, 검게 물들인 군복에 군화까지 

철모와 M1 소총만 머리에 쓰고 들지 않았지 완전한 육군 보병차림으로

서울역에 나가 부산행 통일호(?) 를 탑니다.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리라는 당시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만용을 위해... 

도대체 무슨 놈의 배짱이었을까?

4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참.....어처구니없는 짓거리입니다. 


 

부산진역에 도착(당시에는 부산역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부산항에 나가 제주도행 배를 알아보니 제주해협의 폭풍으로 며칠째

출항치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묶여 있다고 합니다. 

3일째라고 하던가.....? 


 

어찌어찌 수소문해 아는 분의 2층 적산가옥(일본인들이 살던 집)에

배가 출항할 때까지 신세를 지기로 하고 묵기로 합니다. 

헌데 그 적산가옥의 화장실이 참으로 묘하게 생겼습니다. 

변기 안에는 물이 고여 있고 뚜껑이 있고... 

일을 보려고 하니 그 사용법이 매우 불편합니다.

궁리 끝에 변기를 딛고 올라가 일을 보려하니 떨어질까 불안하기도 하고 

불안하니 일을 제대로 볼 수도 없고.....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발로 딛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걸터앉아 일을 보는

좌식 수세식 화장실이라는 것을.... 

물을 내렸는지 아니 내렸는지는 기억이 전혀 없지만 아마도 내렸겠지요. 

내렸으리라 믿습니다. 


 

드디어 출항. 오후 6시경 

제주도를 왕복하는 배는 모두 2편이 있었는데 하나는 철선(제주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무로 만든 목선 가야호였습니다. 

가야호를 타니 그야말로 인산인해, 거의 닷새동안 묶여 있었으니

제주도로 들어가려는 승객들과 그들이 육지에서 들여가려는 짐들로

송곳하나 꽂을 곳이 없습니다.

3등 객실로 들어가니 모든 승객들이 누워있어 아니된 말로 마치 시체들로 가득가득 

채워져있는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과도 같습니다. 

도저히....더구나 눈을 뜬 채 코를 고는 사람을 보고서는 질겁해 튀어나옵니다. 

해서 갑판 후미진 구석에 군용텐트를 깔고 덥고...... 

어찌어찌 제주항에 도착하니 새벽 6시경 


 

제주시내랄 것도 없는 제주시내. 

지저분한 개울물이 흐르는 개천위에 가느다란 통나무를 세워놓고

그 위에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판잣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아래 개울에는 커다란  돌하르방들이 개울물에 코를 처박고 널 부러져 있습니다. 

개울물 냄새는 코를 찌르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육지에서 난을 피해 건너온 피난민들의 삶터였답니다. 

화가 이중섭도 그들 피난민중의 한 사람이었고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를 육지에서 끌려 간 소위 깡패들이

삽과 곡괭이만으로 개설 작업 중에 있어 검문검색이 극히 까다로워 육지에서

제주도로 들어오기는 비교적 쉬었지만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증 덕분에 오고감과 보고 들음이 비교적 쉬었지만 소위 깡패의 수용소 탈출소식이

들리면 제주시내(가 아니라 제주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가 바짝 긴장하곤 했습니다. 

43년 전 바닷냄세 가득했던 검은 무채색 제주골이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 

그랬던 제주도가 제주도로 변하고 제주시로 변하고...... 

검었던 머리는 하얀색으로 변하고.....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라는 광고카피는 정말 멋진 광고 카피입니다. 

같은 광고 카피라이터로서 존경의 박수-짝짝짝. 


 

제주골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오름길은 기억하기로는 관음사 코스가 유일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치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검은 머리가 흰색으로 변했기 때문에..... 

제주골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관음사까지 1박2일이었던가 역시 정확치는 않지만

이 이유 역시 “검은 머리 흰 머리” 


 

그 때의 관음사. 

낡고 헐은 초가지붕의 깊은 산속 숲 속 아주 다 쓸어져 가는 퇴락한 암자 하나

달랑 겨우 버티고 세워져 있었습니다. 

제주도는 “절”보다도 “당”의 위세가 커 절은 감히 그 세를 키울 수가 없었고

관음사 역시 “절”이라기보다 “당”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길도 거의 없는 한라산 오름길.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의 열기 아래 밀림을 헤치듯 오르다 보면 질색할 듯 싫어하는

뱀도 만나고 그나마 없는 길도 놓쳐 숲길 헤매기를 수십번

아무리 검은 머리라고는 하지만 군용A형 텐트와 군용 담요, 먹거리용 감자와 쌀 

그리고 생명 같은 물, 가볍다고는 하지만 눈썹마저도 밀어버리고 싶은 심사에

고체 알콜 버너와 비상용 깡통 고체 알콜과 냄비 등등.....


 

더욱이 가슴 졸이는 어두운 정글 같은 숲 속의 기기괴괴한 고요와 적막의 공포, 

순간 튀어 오르는 검은 까마귀의 악마를 부르는 듯한 검은 깍깍 소리는 심장에

칼을 꽂는 듯하고 내리막길에 올려다 보이는 눈앞에 펼쳐지는 시꺼먼 웅장함은

공포와는 또 다른 두려움이 엄습하고....... 

아- 무서워라. 


 

내 다시 이곳에 오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심을 수백수천번하며

그래도 왔으니 본전 아까운 생각에 이를 앙다물고 오릅니다. 

43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꿈을 꿉니다.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을..... 


 

드디어 백록담이라고 하는 곳. 

그 곳은 흰 사슴이 떼지어 뛰놀고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채워진 푸르고 널따란 낙원같은

평원으로 꿈꾸어 왔는데 웬걸 또 다른 두려움과 공포와 경외가 어우러진 곳이었습니다. 

백록담 평원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리라했던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라도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백록담은 온갖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채워진 어둡고 음습한

굴속과도 같습니다. 

마치 “어서 내려오너라”하며 어둔 동굴 속에서 상상속의 악마가 부르는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어둡고 어둡고 어두운 공포! 


 

허겁지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