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의 추억

언제 : 2007.04.28

누구랑 : 산사모 26명

팔영산이라?...여덟 개의 그림자가 드리어진 산일테니 그림자라는 말 또한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거 아니던가? 내가 좋아하는 산 이름 중에 담양의 추월산이 있었고 봉화의 청량산이 있었으니 팔영산도 신비한 그 무엇이 있음직한 이름이다. 명심보감에 천불생무록지인하고 지부장무명지초라 했다. 세상 만물지총이 다 이름값 한다는 뜻일게다. 그래 그런지 성명학이란 학문도 있다지 않던가?

그 팔영산을 간다 하니 년중 이때쯤 미리 다녀 오신 "한산" 지인들의 선답 기록중 코스는 요산요수 유인호님, 능가사 유물은 일만 성철용님, 히어리꽃에 대해서는 권미향님의 기록을 여러 차례 읽어보고 산행준비에 임한다.

어떤 이는 산행에 신물(?)이 날 때 쯤이면 풀꽃이나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 만은 나는 아직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은 산행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체력이 넉넉지 못하니 야생화에 관심이 생기나 보다. 운이 좋으면 나도 히어리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ㅋㅋㅋ

깃대봉에서 바라 본 팔영산 전경 - 이름들을 얼마나 어렵게 지어 놨는지 머리에 쥐가 날지경이다. 1봉 491m 유영봉(儒影峰),  2봉 538m 성주봉(聖主峰), 3봉 564m 생황봉(笙簧峰), 4봉 578m 사자봉(獅子峰), 5봉  579m 오로봉(五老峰,), 6봉 596m 두류봉(頭流峰), 7봉 598m 칠성봉(七星峰), 8봉 591m 적취봉 (積翠峰)

다녀온 흔적

05:10에 평택을 출발한 버스는 06:58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한다. 운영진이 마련한 얼큰한 콩나물국과 꼬마 김밥으로 조반을 대신하는데 아무리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침 기온은 썰렁하여 까딱하면 체할까 겁이나서 유독 혼자만 김밥을 들고 버스에 오른다. 양반이 어떻게 노상에 쭈구려 앉아 밥을 먹을 수 있겠냐고 궁시렁거리며...ㅋㅋㅋ

능가사다. 어려운 능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여 옥편을 뒤져보니 멍청할 능에 절가란다. 멍청한 스님들이 계시는 절이라는 뜻인데?...아리송한 일이다. 그러나 크게 지혜롭고 현명 하다면 멍청해지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그러니 불법의 오묘한 이치를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회원들은 당연히 능가사 천왕문을 거치지 않고 왼쪽길로 빠진다.

그렇게 우리는 팔영산의 그늘 속으로 걸어간다

돌담은 언제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부도탑을 지나며

 팔영산의 서늘한 그림자가 온 산을 덮는데 정작 팔영산 능선은 꼬맹이들 공기돌처럼 앙징맞은 것이 귀엽기 그지없다.

2봉(성주봉)에서 바라본 1봉(유영봉)의 모습은 선비의 넉넉한 그림자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다른 산에도 이런 독특한 손잡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떨그렁"하며 암릉에 부딪치는 청량한 금속성이 무척 재미 있어 보이는 족족 서너번씩 암릉을 때려 본다.

 

 순천만이다

 

 

 

 

 

 

 "더 이상 굴욕적일 수 없다"!...굴욕적인 사진은 이제 사양한다는 YK의 점잖은 부탁이 있었지만 우째 또 이런 일이?...

그러나 굴욕의 순간은 잠시 지나가고 동냥 나가는 심청이와 심봉사처럼...ㅋㅋㅋ

 

 

 

 

 

 

 

 

 

 팔영산 자연휴양림 풍경이다

 

 

 

 

 

 

 

 

 

 신선대가 아닐까 싶다

 

 밋밋한 능선의 끄트머리가 깃대봉이다. 맑은 날은 대마도 까지 보인다는 산맥의 끝이 아닌가 싶다

 

 

 샘터에서

 탑재를 지나서 측백나무 숲을 지나고

 탑재 임도에서 바라본 팔영능선이다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3m, 폭 1.3m의 이 대형 사적비는 신라 때인 419년(눌지왕 3)에 아도화상이 능가사를 창건하였음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인 1690년(숙종 16)에 승려 목덕이 절 안에 세운 것이다.

 

 응진당의 서까래(화려한 단청보다 무채색이 한층 고풍스럽다

 

 능가사의 원래 이름은 보현사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1644년(인조 22)에 정현대사가 재건하면서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 하여 능가사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정면 약 10m, 측면 약 6m의 팔작기와집인 대웅전은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중수하였다. 절 안에 있는 능가사 범종(전라남도유형문화재 69)은 1698년(숙종 24)에 주조되었으며 높이 1m, 둘레 1.5m, 무게 약 900kg에 이른다. 13세기 말에 조각했다는 사천왕상도 뛰어나다. 능가사 주변에는 용의 눈이 아홉개 들어 있다는 구룡정이 있으며, 비구니들의 도량으로도 알려져 있다.

 

 범종각은 대웅전 좌측에 있었다. 그러나 눈대중으로 봐도 범종각에 모셔져 있는 범종보다 더 커보이는 범종이 왜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지 모르겠고 심지어 타종 망치는 썩어 있었다. 어느 것이 진짜 문화 사적으로 지정된 범종인지 모르겠다. 동백꽃까지 이미 다 떨어져 버렸는데....

 

 

오면 가면 달리는 버스에서 바라본 순천시내가 그렇게 단정하고 깨끗할 수가 없더라. 시쳇말로 목포에서 돈자랑 하지 말고, 벌교에서 힘자랑 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 하지 말라더니 순천의 첫인상이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이 강물을 따라가면 어디쯤 순천의 명물인 느릿한 S자 물길도 볼 수 있을테고 암 홍색의 칠면초도 볼 수 있을텐데....더우기 순천은 히어리님의 홈그라운드가 아니던가?..

할매의 추억 - 산행을 마치고 텁텁한 입속을 족발과 소주로 간단히 씻어내고 주차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 나물등속을 팔고 있는 할매들한테 걸음을 옮긴다. 내가 좋아하는 쓰디쓴 머우잎 두 움큼과 삶은 고사리 한움큼을 사는데 "내 파도 사시우?" 라며 갸냘프고 힘없는 소리가 들린다. 백발이 성성한 할매가 다 시들어 빠진 쪽파 3단을 고무다라이 안에 놓고 앉아 계신 것이다

빵과버터 : 할매요?...얼만데요?

호호할매 : 천원유...

빵과버터 : 주슈...

떠듬떠듬 비닐 봉지를 찾아서 파를 담는데 1단을 담는게 아니라 3단을 다 담아주니 쪽파의 상태가 어떤지는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래도 할매 한테 덕담을 한다고 한마디 했더니...

빵과버터 : 하이고!..할매요?...이중에서 연세가 제일 높으신거 같은데 하루종일 힘들어서 어쩐대요?....

다른할매 : 그라모...나이가 90이 다 됐는디...그래도 할매는 땅도 있고 집도 있어 부자랑게...

빵과버터 : 할매요?...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유...

호호할매 : 무슨 소리래...빨리 죽어야지...

빵과버터 : 노친네 빨리 죽고 싶다는 말 그거 다 그짓말 인거 아시죠?...ㅋㅋㅋ

할매 앞에 나도 쭈그려 앉아 덕담을 나누며 허리를 펴고 돌아서는데 할매가 한마디 더 건넨다.

호호할매 : 그래도 돈은 주고 가셔야제...

빵과버터 : 으~악!!!,,,

천원의 추억 - 집이다. 산행으로 지친 몸을 씻지도 못하고 비닐봉지를 풀어 거실 바닥에 펼쳐놓고 보니 쪽파 이파리는 누렇게 마르고 뭉그러 졌으며 파뿌리는 할매가 도끼로 다듬었는지 들쭉날쭉 쪽파 대가리가 반쯤이나 없어졌으니 거칠고 굼뜬 할매의 손길이 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할매는 절대로 자기 손으로 키운 쪽파를 버리지 못하고 오늘 못 팔면 내일 아침 다시 가지고 나올거라는 것을....그리고 할매는 하루종일 쪼그려 앉은 무릎을 펴며 몸빼 바지에 뭍은 흙먼지를 나무 껍질같은 손으로 툭툭 털면서 "그래도 오늘은 떠리미를 했네!"라고 빈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꾸부정한 허리를 끌며 가볍게 집으로 걸어 가실거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또 안다. 아내한테 혼나기 전에 아내가 집에 없을 때 "싸게싸게" 쪽파를 다듬어 놔야 한다는 것을!... 푸하하하!!!.... 천원의 행복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