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산


           *산행일자:2007. 12. 20일

           *소재지  :강원영월/충북단양

           *산높이  :1,027m

           *산행코스:오그란이-절골-산성고개-태화산-큰골-흥월초교터

           *산행시간:10시37분-15시15분(4시간38분)

           *동행    :은하수산악회

 


 

  영월의 태화산을 오르는 길에 눈 위를 기어 다니는 아주 작은 곤충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소금쟁이의 한 사촌쯤으로 보이는 이 곤충은 잠시 눈을 다른 데로 돌렸다가는 어디로 숨었는지 다시 찾기 힘들 정도로 아주 작았습니다. 이 작은 곤충이 무슨 일로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차디찬 눈 위를 거닐고 있는지 그 사유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저러다가 추운 밤을 넘기지 못하고 얼어 죽지는 않을런지, 또 새들이나 산짐승들처럼 눈 내린 산 속에서 먹이 감을 구하지 못해 헤매다가 굶어죽지는 않을런지 심히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이렇게 작은 곤충이 한 겨울에 눈 위를 기어 다니는 것을 산 아래에서도 보지를 못했기에,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 위에서 만나본 이 미물의 안위가 적지 아니 걱정됐습니다.


 

 먼 곳에서 바람에 실려 온 것이 아니라면 이 미물은 그 크기로 보아 이 산 근처에서 살아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 겨울 산속에서 고통스러운 악조건을 이겨내고 목숨을 부지해온 작은 생명체의 강인한 생명활동이,  적극적인 생활이 아니고  단순히 삶만을 이어가는 생존 그 자체에 그리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제게 새삼 생명에의 외경심을 갖게 했습니다. 어떻게 생활하든 한 생명체가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생명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닫고 나자, 이 미물의 아름다운 생명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오늘 날 어떤 생물이 이 지구상에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생물이 오랜 옛날에 태어나 지금까지 종을 잘 유지해왔음을 뜻할 것입니다. 혹시 이 곤충이 살아온 곳이 바로 저 아래 4억 년 전에 생성된 고씨동굴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은 오랜 세월 햇빛이 닿지 않는 동굴에서 살아와 지금까지 보아온 유사한 생명체보다 몸체가 훨씬 투명해 보이는 것이 아닌 가 싶어서였습니다. 4억 년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온 원동력이 바로 강인한 생명의 아름다움에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제 앞에 나타난 것이다 싶어 이 미물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아직도 영월은 이 땅의 대표적인 오지여서 수원을 출발해 영월읍의 태화산을 오르는 북쪽 길목인 오그란이에 다다르는데 3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마성터널을 지나 흩뿌렸던 눈발은 이내 멈췄지만 하늘은 여전히 찌 뿌루퉁해 언제고 눈을 뿌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 입산금지조치로 점봉산을 오르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다급하게 태화산으로 바꾸는 바람에 예약한 분들이 많이 안 나와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아이젠을 차는 동안 후미로 처져 4시간이 훨씬 넘는 긴 산행 중 흥월초교터로 하산할 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내내 분주했습니다. 산성고개에서 정상까지의 주능선 왼쪽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이 이번 산행의 가장 큰 볼거리인데 날씨가 나빠 이 산을 오른 쪽으로 휘감아 도는 강줄기를 제대로 볼 수 없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아침10시 37분 오그란이 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차도 변 팔괴교를 건너 왼쪽 위로 갈지자를 그리며 이어가는 시멘트길을 따라 10분을 걸어 오르는 동안 집 몇 채를 지났습니다. 시멘트 길에 뒤이은 임도로 들어서 15분을 걸어서야 비로소 산길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태화산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석 바로 앞에서 직진하여 숲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방금 전에 벗어났던 왼쪽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다시 만나 몇 분을 걸어 오르자 본격적인 너덜 길이 시작됐습니다. 요즘 들어 다시 몸이 불기 시작해 산 길을 오르기가 종전 같지 않았습니다. 맨 후미로 처져서 숨을 몰아가며 너덜 길을 걸어올라,  산행시작 1시간이 다 되어서 태화산성0.6Km 전방의 표지목이 서있는 산 중턱에 다다랐습니다. 구름이 잔뜩 끼어 따사로운 햇살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바람이 숨죽이고 있어 그다지 춥지 않았습니다.


 

  11시59분 산성고개에 올라섰습니다.

표지목에서 산등성을 왼쪽으로 에돈 후 절골의 지계곡을 오른 쪽으로 끼고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된비알 길을 걸어 산성고개에 올라서자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겨울이 되면 산에 사는 텃새들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자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좀처럼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는데 꾀꼬리 소리처럼 미성은 아니더라도 듣기에 좋았고 반가웠습니다. 후미로 쳐져 왼쪽으로 0.2Km 떨어진 전망암을 들러보지 못하고 반대방향인 남서쪽에 자리한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5-6분을 더 걸어 장송 3그루가 자리 잡고 있는 무명봉에 이르러서야 오그란이를 출발해 1시간 반 동안 계속된 오름길이 끝났습니다. 이쯤해서 지도에 나와 있는 태화산성의 잔해가 보일 법도 한데 하얀 눈에 덮여서인지 아무 것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바로 아래 헬기장이 들어선 넓은 공터로 내려가 선 채로 산행기록들을 정리하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여기 태화산성에 어린 전설이 청주에서 가까운 구녀산성의 그것과 하도 비슷해 전설에도 일정한 틀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간지 마운틴의 2006년10월 호에 실렸다는 이 산성에 관련된 전설의 큰 줄거리는 한 어미가 아들과 딸에 성 쌓기를 시켜놓고 먼저 쌓은 자식만 키우려 했는데 토성을 쌓는 딸이 석성을 쌓는 아들보다 먼저 끝낼 것 같아지자 토성을 무너뜨려 딸을 깔려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구녀산성의 전설 또한 상당히 이와  흡사합니다. 아들 하나와 딸 아홉을 둔 한 어미가 딸 아홉에는 성을 쌓게 하고 아들에는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게 했는데 딸들의 축성이 먼저 끝나겠다 싶어지자 팥죽을 끓여 먹이며 천천히 할 것을 종용했다 합니다. 그 사이 아들은 돌아왔고 성 쌓기를 마치지 못한 아홉 딸들은 약속대로 성위에서 몸을 던져 죽은 것을 알게 된 아들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어미는 남편 무덤 옆에 아홉 무덤을 만들어 딸들을 묻은 후 묘지에서 여생을 보냈다 합니다. 남아중시 사상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서 우리의 어머니들이 얼마나 모질게 살아왔는가를 이 두 전설에서 읽고 나서 역차별이 운위되는 요즈음에는 등장인물을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바꾸어 여존남비의 전설을 다시 써야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10분 해발1,027m의 태화산 정수리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 1시간 거리의 능선 길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남한강의 절경이 이번 산행의 진수일터인데 좋지 않은 날씨로 시야가 트이지 않아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흐릿하게나마 남한강 물줄기는 파랗게 보였지만 강변 백사장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능선 왼쪽의 동사면은 수직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이고 오른 쪽 서사면은 기울기가 완만한 전형적인 경동지괴의 지형인데다 낭떠러지 절벽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반대쪽 평평한  능선 주위에는 거의 한 아름이 되는 참나무들이 들어서있어 양 사면의 차이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후미로 한참 처져 보이지 않는 저의 건재를 확인하고자 다시 돌아온 후미대장에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간간히 태고의 음향을 재현할 듯한 삭풍이 매몰차게 불곤 했지만 이내 사그라져 산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짧은 로프 줄이 걸린 두 곳을 지나 태화산에 오르자 단양군과 영월군이 각각 삼각점을 경계로 세워놓은 정상석이 보였습니다. 여기서 20분쯤 떨어진 곳에 정상보다 4m 높은 1031봉이 자리하고 있어 쉬지 않고 내달렸습니다. 절고개에서 1031봉으로 오르는 중 눈 위를 기어 다니는 작은 곤충 한 마리를 만나보았습니다. 이 미물이 눈길에서 헤매는 것을 보고 애처로웠지만 가녀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을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13시29분에 1031봉에 다다라 점심 식사를 막 마친 일행 몇 분들을 만나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14시4분 큰골로 내려가는 산등성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1031봉에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갔으나 시야는 여전히 트이지 않아 응봉산, 완택산 및 계족산등 인근의 명산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고 영월에서 춘천을 잇는 영춘지맥 종주 차 다시 이 산을 오를 때 남한강과 명산들을 제대로 보기로 하고 정상에서 만난 한분과 함께 하산했습니다. 후미로 혼자 처진 제가 걱정이 되어 기다렸다가 등정기념사진까지 찍어 준 고마운 이 분은 저보다 3년 연배로 일찌감치 1990년대에 대간을 종주한 베테랑이었습니다. 다시 로프를 잡고 내려가는 두 곳을 지나 큰골을 1.7Km 남겨놓은 갈림길에 이르러 왼 쪽으로 급하게 내려가는 큰골 길로 들어섰습니다. 낙엽이 많이 쌓인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 큰골1리의 민가 앞 시멘트 도로에 다다른 시각이 14시48분이었습니다.


 

  15시15분 문을 닫은 흥월초교 운동장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큰골1리의 한 민가에 버텨놓은 지게와 주차해둔 승용차가 우리나라 경제의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것 같아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제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마지막으로 산을 오른 지 35년이 지난 요즈음 제 고향 파주의 시골동네에서는 더 이상 지게를 찾아볼 수 없어 반갑기도 했습니다. 시멘트길을 따라 십 여분 내려가 만난 아스팔트 차도에서 왼쪽으로 꺾어 얼마고 걸어 흥월초교에 도착, 운동장 한 쪽에 주차해놓은 버스 옆에서 산악회에서 마련한 국밥을 들었습니다. 후미에서 뒤쫓다 점심을 걸러 시장했던 차라서 국과 밥이 모두 맛있었습니다.


 

  배가 부르자 눈길에서 만난 작은 곤충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제 딴에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리 움직여서는 밤새고 가도 고씨동굴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에 밤을 어느 곳에서 어찌 샐까 궁금했습니다만, 저런 미물이 눈길에서 살고 있는 것도 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제가 나서지 않아도 문제없이 생명을 이어갈 것 같아 걱정을 접었습니다. 저희들이 오른 태화산도 기꺼이 나서 커다란 가슴으로 이 곤충을 감싸 소중한 생명을 지켜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