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봉산


 

           *산행일자:2009. 7. 16일(목)

           *소재지  :경기용인

           *산높이  :447m

           *산행코스:용암농협기술쎈터-문수봉-곱등고개-칠봉산-와우정사

           *산행시간:10시2분-15시58분(5시간56분)

           *동행    :나홀로

 


 

  경기도 용인 땅은 결혼 그 이듬해인 1978년 광주에서 옮겨가 13년간 산 곳으로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땅입니다.

연년생의 두 아들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고 큰 아들은 초등학교를 여기에서 졸업했으며, 집사람 또한 용인의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해, 1991년 과천으로 이사 나올 때 그동안 살면서 들었던 고운 정 미운 정을 고스란히 묻어두고 나오느라 가족들 모두가 많이 섭섭해 했습니다. 용인읍내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가지가 그리 번화하지 않았고 바로 산이 붙어 있어 읍내에 살면서도 두 아들들이 흙장난을 하며 놀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후 용인군이 수도권 최고의 위성도시인 용인시로 바뀌면서 급격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져 그 옛날 시골도시의 촌스러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다 변했습니다.


 

  저는 용인에서 13년간 살면서도 이곳의 명산들을 한 산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산하면 의례히 한라산이나 지리산, 설악산 등의 아주 높은 산들만 머리에 떠올렸을 뿐, 다른 산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때였으니 해발4-5백m 높이의 이곳 산들에 마음을 주었을 리 만무했습니다. 정 산에 가고 싶으면 서울로 올라가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등의 근교 산들을 오르내렸지 용인의 산들은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산 높이나 유명도로 산을 평가하는 잘못된 생각을 고친 것은 2004년 한북정맥을 종주하고 난 후의 일로, 용인의 명산에 발을 들인 것도 그 다음해 한남정맥을 종주할 때였습니다. 그때 석성산, 부아산, 함박산, 문수봉을 이어서 산행했고, 작년에 태화산, 마구산, 정광산을 연이어 올랐으며, 어제 칠봉산을 다녀와 이제 용인의 명산으로는 시궁산과 쌍령산 정도만 미답의 산으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오전10시2분 원삼면 용암리의 농협기술센터 앞을 출발했습니다.

벼르고 별러온 한남앵자지맥에 첫 발을 들이고자 전날 저녁 배낭을 다 꾸려놓고도 지난 가을 다친 허리가 어떨까 싶어 머뭇거리느라 아침7시가 조금 넘어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고속버스로 용인으로 가서 버스터미널을 9시30분에 출발하는 10-4번 버스를 탔습니다. 곱든고개를 넘어 시내 출발 23분 지나용암농협기술센터 앞에 도착해 산행준비를 마친 후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중소기업인력개발원으로 향했습니다. 10분 남짓 걸어 다다른 인력개발원의 주차장에서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늘진 숲속 길을 10분간 걸어 이정표가 서있는 한남정맥의 능선으로 올라서자 눈에 익은 문수봉 길이 오른쪽으로 이어졌습니다. 4년 전 이 길을 걸을 때 한남정맥에서는 좀처럼 만나보기 쉽지 않은 산죽들이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어 기억에 남았는데 아직도 여전한 그 산죽들이 제게 길을 안내했습니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 왼쪽으로 조금 비껴서있는 마애불을 다녀왔습니다. 붙어 있는 두 개의 바위에 문수보살 상을 그려 놓은 마애불을 사진 찍은 후 나무계단 길을 걸어 넓은 공터에 운동기구들을 세워놓은 문수봉에 올랐습니다. 정자에서 한 숨 돌린 후 주변을 둘러보자 오른 쪽 아래 원삼벌이 보였고 전날 내린 비로 인해  흙탕물로 변해버린 사암지도 눈에 띄었습니다.


 

  10시57분 문수봉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간 한남앵자지맥에 호기롭게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봄부터 별러온 앵자지맥 종주를 이제 정말 시작한다 하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작년 10월 허리를 다친 후 한북정맥종주, 섬진강산줄기 환주 및 한북화악지맥 종주산행을 전부 중단했다가 지난 3월 한 구간 남은 한북정맥만 마저 종주했을 뿐 아직 허리가 다 낫지 않아 나머지들은 재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이들 산줄기보다  손쉬울 것 같은 앵자지맥 종주를 재어오다가 이렇게 첫발을 들이자 저도 모르게 흥분되어 이제껏 출발지에서 잘 해온 주님께 무사완주를 비는 기도도 빼 먹었습니다. 곱든고개로 향하는 능선 길은 생각보다 부드러웠으며 조금 덥기는 해도 간간이 바람도 불어, 봉우리 하나를 왼쪽으로 에돌아 오른 쪽 아래로 삼성레포츠 길이 갈리는 분기점에 도착하기까지 아무 탈 없이 잘 걸었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제가 카피해간 산행기에 나와 있는 대로 직진을 하지 않고 왼쪽 능선을 탔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무명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진행하다가 안부에 이르자 오른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 길 방향으로 표지기가 걸려 있어 눈길이 갔지만 아무래도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같아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이 안부로 올라서기까지 1시간 넘는 알바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도 모른 채 직진해 봉우리 하나를 넘어 참호는 아닌 것 같은 웅덩이가 있는 봉우리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길이 조금 더 선명해 보였지만 직진 길이 방향이 맞을 것 같아 그 길로 한참을 걸어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웅덩이-임도 간의 능선 길에 사람 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 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임도에 내려서자 임도건너 능선에 전혀 길이 나있지 않아 웅덩이에서 왼쪽으로 난 길이 맞다고 판단하고, 임도 따라 왼쪽으로 진행하다가 그 왼쪽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이 능선을 따라 내려가 묘지 세 곳을 지나자 저 아래로 파란 지붕이 보였고 더 내려가 임도로 내려서자 찻길 건너로 와우정사 길이 보여 잘 못 내려왔음을 직감했습니다. 오른 쪽 위로 오전에 버스로 넘은 곱든고개가 보여 찻길로 내려가지 않고 임도 따라 곱든고개로 향했습니다. 길은 차 1대는 충분히 다닐 정도로 넓은데 꽤 오래전부터 차가 안 다닌 듯 풀숲 길도 여러 곳 있었습니다. 웅덩이에서 내려선 임도를 지나 12시31분 곱든고개에 도착해 점심을 든 후 13시정각에 곱든 고개를 출발해 터널 위 에코브리지로 올라섰습니다. 에코브리지에서 오른 쪽으로  6-7분을 걸어 올라 표지기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던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이번 알바의 시작점인 이 안부를 지난 지 거의 2시간이 다 지나  다시 원위치한 셈입니다.


 

  13시14분 빨간 표지기가 걸린 안부에서 앵자지맥종주를 다시 이어갔습니다.

그 5분 후 듬성듬성 침목을 깔아놓은 곱든고개의 동물이동통로를 지나자 완만한 오름 길이 이어졌습니다. 왼쪽 아래로 와우정사(?)로 가는 하산길이 갈리는 갈림길에서 직진해 무명봉에 올라서자 떼를 지어 놀고 있던 머리통 부분이 주황색인 비둘기만한 새들이 자리를 비키느라 소란을 떨었습니다. 지맥 길은 370-380m대의 올망졸망한 봉우리 몇 개를 연이어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알바로 시간을 많이 까먹어 봉우리 몇 개를 부지런히 넘었더니 400m대의 무명봉에 올라서자 기운이 많이 빠진 듯 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포도를 꺼내 먹으며 15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허리와 등 뒤로 통증이 느껴져 불안해하는 저를 잠자리 한 마리가 제 옆에 앉아 날개 짓을 하며 걱정 말라고 위로해주어 고마웠습니다.

 

  14시38분 해발447m의 칠봉산을 올랐습니다.

잠자리와 헤어진 후 조금 가팔라 보이는 봉우리를 오르는 중 왼쪽으로 “은이성지-골배마실성지”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하얀 로프가 매어진 길을 따라 447봉에 오르자 또 다시 왼쪽으로 “은이성지-골배마실성지”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삼각점이 묻힌 이 봉우리를 지형도에는 447.1m로만 표기됐으나 여기 현지에서는 칠봉산으로 부르는 듯 “칠봉산 400m”라고 쓰인 표지목이 서 있었습니다. 칠봉산 정상에서 “은이성지-골배마실성지”의 이정표를 보고나자 은이성지에서 천진암성지까지 직접 걸어보겠다는 욕심이 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바로 헤븐로드(heaven road)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왼쪽아래 은이성지로 내려갔다가 다시 은이성지를 출발해 여기 칠봉산을 오른 다음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앵자지맥을 따라 진행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아 이번의 앵자지맥 종주는 일단 칠봉산에서 접었습니다. 칠봉산 정상에서 5분을 쉰 후 왼쪽 능선을 타고 5분 남짓 내려가자 바로 왼쪽의 꽤 넓은 헬기장에서 오른 쪽 아래로 이어지는 엄청 넓은 임도 길이 나타났습니다. “은이성지-골배마실성지”안내판을 보고 임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내려가다가 전주 공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 길이 양지 파인리조트로 내려가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지형도를 꺼내  이번에도 또 엉뚱한 길로 내려선 것을 확인한 후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 칠봉산에 다시 오른 것은 칠봉산 출발 반시간이 거의 다 지난 15시11분이었습니다.


 

  15시20분 은이성지로 향하고자 다시 칠봉산을 출발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넓은 임도 길은 골배마실 성지로 가는 길이고 은이성지 가는 길은 앞서 지나온 “은이성지-골배마실성지”의 표지판이 서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갈리는 길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곱든고개 쪽으로 조금 내려가다 첫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진행했습니다. 칠봉산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내려선 안부는 신덕고개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배출한 첫 번째 신부이신 김대건 신부께서 살아계실 때는 사목활동 길이었고 순교 하셔서는 유해운구 길이었던 삼덕고개는 미리내성지 위 애덕고개와 한남정맥 상의 망덕고개, 그리고 여기 신덕고개를 이르는 것으로 카톨릭 신자라면 한 번은 넘어보고 싶은 성지순례 길의 고개들입니다. 이 고개에서 은이공소는 1.2Km, 미리내성지는 8.1Km로 적혀 있어 내친 김에 미리내성지까지 걸어보자고 마음을 굳힌 후 오른 쪽의 은이성지는 다음기회로 미루고 왼쪽 미리내성지 쪽으로 내려섰습니다.


 

  15시58분 와우정사 앞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신덕고개에서 오른 쪽으로 10분가량 내려가자 큰 길이 나타났고 그 아래로 와우정사가 보였습니다.  계곡을 건너 아래로 내려가다 길 가에 들어선 몇 채의 집들을 지나면서 풀려 있는 개들을 보고 질겁했습니다. 한 분에 물어본즉 이 개는 안 문다고 해 안심했는데  그 아래 또 한분은 자기 집개는 문다며 이 길로 다녀서는 안 된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더 내려가자 길을 가로막고 철문을 설치해놓아 문이 닫혔더라면 철문을 넘어가느라 고생할 뻔 했습니다. 물론 사유지여서 자기들 뜻대로 길을 가로막고 문을 해달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아무래도 상궤에서 벗어난 짓으로 보였습니다. 와우정사 주차장에 도착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고자 했더니 화면이 허옇게 뜨면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비오는 날에도 속 썩이지 않고 말을 잘 들어온 카메라가 큰맘 먹고 성지순례 길에 나선 제게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이고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신덕고개를 출발할 때만 해도 미리내성지 가는 길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졌겠지 했는데 그 후 이정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또 달리 성지 가는 지도를 준비하지 않아 길 찾기가 난망했습니다. 게다가 카메라까지 고장이 나 설사 길을 찾아 잘 간다 해도 큰맘 먹고 나선 성지순례 길을 사진으로 남길 수 없어 이곳 와우정사에서 순례 길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 미리내성지에서 천진암성지까지 이어지는 길을 찾아냈습니다.

미리내성지에서 애덕고개로 올라가 한남쌍령지맥으로 들어섭니다. 북쪽으로 이 지맥을 따라 진행해 한남정맥 길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 갈림길에서 한남정맥 길을 따라 왼쪽으로 20분 정도 내려가면 망덕고개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온 후  한남정맥 길을 따라 문수봉으로 가서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앵자지맥으로 들어섭니다. 곱든고개를 지나 칠봉산 바로 아래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신덕고개에 다다릅니다. 이 고개에서 오른 쪽 아래로 1.2Km 딸어진 은이공소로 내려가면 이번에 걷고자 했던 성지순례길은 아니지만 미리내성지에서 삼덕고개를 모두 거쳐 은이공소로 가는 것입니다. 은이공소에서 갈림길로 되올라와 조금 더 오르면 칠봉산을 오르게 됩니다. 칠봉산에서 천진암성지까지 가는 길은 발걸음이 그다지 빠르지 못한 저로서는 3번에 나누어 걸어야 합니다. 차도가 지나는 고개를 몇 개 지나고 군부대 옆을 사정해 지나야 앵자봉에 이르게 되는데 이 봉우리에서 천진암으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는 앵자지맥이 연결해 줍니다. 갈림길에서 1시간을 못 걸어 천진암에 내려서면 미리내성지-천진암의 산길 순례가 끝나게 됩니다. 천진암 갈림길에서 한 구간만 더 이어가면 앵자지맥의 끝점인 팔당의 한강에 이릅니다. 


 

  공인된 성지순례 길은 아니지만 미리내성지에서 천진암성지로 이어지는 이 산길을 저는 앞으로 헤븐 로드(heaven road)라 부르고자 합니다. 이번에 뜻하지 않은 알바로 목표했던 한남앵자지맥 종주를 다 해내지는 못했어도 이 헤븐로드를 찾아내자, 주님께서 저를 이 길로 안내하고자 알바를 시키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만간 이 길을 따라 헤븐 로드를 걸어보고 또 앵자지맥도 종주하겠다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