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3. 19(토)
ㅇ 위치 :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횡성군 강림면(1,288m)
ㅇ 코스 : 구룡매표소-구룡사-세렴폭포-사다리병창능선길-비로봉-계곡하산길-
         구룡사-구룡매표소(안내표지판상 약11km. 5시간 30분)
ㅇ 날씨 : 맑은 날씨였으나, 가스가 많음
ㅇ 찾아간 길 : 영동고속도로-새말 I.C-치악산(대전에서 2시간 30여분)

  
   오랜만에 땀이 흥건히 베어나는 산행을 한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르면서 아내에게 보조를 맞추느라 늘 성에 차지 않는 산행을 하였는데, 모처럼 만에 다리가 뻐근해지고 숨이 차오르는 산행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치악산이다. 산불예방기간이라 많은 구간이 통제되고, 구룡사에서 비로봉에 올랐다가 다시 원점회귀 하는 코스 밖에는 달리 코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모처럼 만에 봉다리 정예 회원들만 모여 그 험하기로 이름난 치악산을 오른다.

   

  구룡매표소를 지나 세렴폭포까지는 길도 넓고 울창한 소나무 숲과 아름다운 계곡의 연속이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마치 계룡산의 동학사 코스를 연상케 하는 길이다.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약 50여분 그 길을 걸으니 세렴폭포가 나타난다. 그런데 폭포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더군다나 폭포물도 얼어 있어 조금 긴 빙벽을 보는 느낌. 그 이상의 감흥은 일지 않는다. 폭포 앞에서 첫 번째 휴식을 간단히 취한 후 이제 본격적인 오름길로 들어선다.

  

  오름길은 세렴폭포에서 약 100여미터를 되돌아와 조그마한 다리를 지난 부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곳에서부터 갈림길이 시작된다. 사다리병창 능선길과 계곡길. 어느 곳으로 오르나 비로봉에 오르기는 마찬가지지만, 오를 때는 능선길을 택하고 내려올 때는 계곡길로 내려오기로 정하고 본격적인 오름길에 들어선다.

   

  오름길은 처음부터 계단길의 연속이다. 처음부터 수십 개의 계단이 연속하여 이어지는데 처음 계단길을 다 오르고 나자 벌써 다리가 뻐근해오기 시작한다. 조금 앞에 서서 제갈량과 내가 치고 나가고, 유비형님과 장비는 조금 뒤에 떨어져서 올라오는데 계단길을 오를 때마다 땀이 흥건히 베어나기 시작하면서 온 몸에 산을 오르는 열기가 가득 베어나기 시작한다. 가끔씩 가쁜 숨을 몰아 쉬어 보지만 얼마 만에 맛보는 내 페이스대로의 산행이냐. 오직 산에 오르는 것에만 열중하며 나의 호흡과 나의 다리 감각만을 생각하며 산행에 푹 빠지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약 1시간여를 올라 또다시 간단히 휴식을 취한다. 약 10여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 유비형님과 장비가 올라온다.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특히 어제 약주를 무리하게 하셨다는 유비형님. 오름길 내내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한다. 넷이서 같이 휴식을 취한 후 이제 조금 여유 있는 페이스로 나머지 오름길에 올라선다.

  

  험하고 가파른 비탈길과 아직도 바닥에 쌓여 있는 상당한 눈 때문에 명성대로 이쪽으로의 오름질은 상당히 힘이 든다. 처음보다는 상당히 속도를 늦추어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차분하게 오름질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만큼 왔으면 능선길로 올라서서 주변 조망도 좀 가능해지고, 오르는 길 이곳저곳 재미난 구경거리도 있어야 산행하는 맛이 나는데, 이 산은 그런 면에서는 참 재미없고 지겨운 산이다. 아무리 올라도 계속하여 비탈지고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고 주변의 조망은 전혀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멋진 암봉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을 만한 풍경도 나오지 않는다. 명성에 비하면 약간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산이다. 산에 오를수록 커지는 불만의 소리와 함께 약3시간여의 오름질 끝에 비로소 비로봉 정상에 올라선다.

  

   비로봉 정상에 올라서자 오를 때와는 달리 조망이 참 시원하다. 통제만 안된다면 한없이 걸어보고 싶은 상원사길 능선과 이름 모를 강원도의 높고 낮은 산들이 시선 가득 들어온다. 특히 약간은 밋밋한 산 정상에 운치를 더하려는 듯 멋들어지게 서 있는 세 개의 돌탑. 힘들었던 오름질의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이곳 저곳 풍경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한참을 사진 찍느라 시간을 소비하다 이제 전망 좋은 자리를 골라 점심을 먹는다. 컵라면에 정상주로 곁들인 소주 한 잔. 맛이 좋다. 그러나 무리하지는 않는다. 하산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도 가지 못하는 종주길을 한없이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다 아쉬움을 천천히 접어 배낭에 넣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길. 계곡길에 눈이 상당히 쌓여 있다.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은 제갈량이 마치 스키를 타듯 미끄럼을 타며 내려온다. 언제봐도 참 대단한 운동신경을 가진 제갈량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오를 때와는 달리 눈 쌓인 길을 미끄럼을 타듯 내려오니 상당히 빠르다. 그리고 재미있다. 그런데 오름질에 힘이 빠지셨는지 앞서가던 노인 한 분이 비탈길에서 넘어지시며 몇 바퀴 구르신다. 깜짝 놀라 지켜보는데 다행히 툭툭 털며 바로 일어나신다. 이쪽으로의 하산길은 조심하지 않으면 상당히 다치기 쉬운 하산길임이 분명하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힘이 빠진 다리는 더 미끄러지고 잘 통제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약 2시간여의 길을 내려오자 다시 구룡사다. 오름길에 들리지 않은 구룡사를 들러 경내를 관람한 후 또다시 넓고 한적한 길을 내려와 차분히 산행을 마무리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하산의 마무리는 동동주와 파전이다. 오늘 따라 파전에 파를 엄청 많이 넣어 준다. 동동주도 맛있고 파전은 특히 맛이 좋다. 약간 출출하던 배가 무척 좋아한다. 술을 하지 못하는 제갈량까지 한 잔씩 맛있게 먹고 힘들었던 그러나 모처럼 만에 내 페이스에 맞는 산행에 기분 뿌듯한 산행을 마친다.

  

   이제 귀가길이다. 장비 차 옆자리에 앉아 또다시 저물고 있는 하루를 본다. 저 산과 강과 길들을 물들이며 한 세상을 마무리하고 있는 저 황혼. 요즘은 저 황혼을 볼 때마다 내 인생의 황혼녘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내 인생의 황혼녘에 나는 내가 살아 온 길들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참 잘 살았다고 말할 자신이 있을까.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나는 너무 게을렀다. 나는 너무 나약했다. 나는 너무 인생을 허비했다. 가야 할 길과 가지 못한 길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과, 사랑하여야 할 일과 사랑하지 못한 일들. 남들 모르게 또다시 한줄기 눈물이 뜨겁다. 산다는 것이 가끔은 허하고, 산다는 것이 가끔은 부질없다. 그렇수록 또 다른 가슴 한 구석 불길이 타오른다. 남은 날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쉽다. 열심히 살자, 정말 열심히 살자-----

  
 

(등산로 입구의 한적한 등산로)


 

(구룡사 전경)


 

(구룡사 대웅전 모습)


 

(구룡폭포)


 

(세렴폭포)


 

(오름길에 돌아본 풍경)


 

(정상의 돌탑 풍경)


 

(정상의 돌탑풍경)


 

(정상에서 바라본 상원사 쪽 능선 풍경 1)
 

(정상에서 바라본 상원사 쪽 능선 풍경 2)


 

(정상에서 바라본 상원사 쪽 능선 풍경 3)


 

(정상에서 본 풍경)


 

(하산길 암봉 풍경)


 

(하산길 풍경)


 

(아직도 남아 있는 설화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