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일기예보 때문에 산행계획을 포기하려고 하다가 오전 6시가 조금 넘어서 인터넷의 일기예보 사이트인 하우웨더에 들어가 보니 금일 오전, 오후의 강수확률이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까지 40%였었던 원주의 강수확률이 20%로 낮아져 있다. 서둘러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전철을 타고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닿으니 7시 42분. 6800원의 운임을 내고 7시 47분발 원주행 시외버스표를 끊는다.

11월 8일(토요일), 7시 47분에 정확히 출발한 버스는 주말의 차량 정체로 소요예정시간인 1시간 30분보다 11분 늦은 9시 28분에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 닿는다. 경부고속버스터미널에도 원주행 고속버스는 있지만 치악산 들머리인 구룡사 입구로 가는 41번 버스를 타려면 단계동에 있는 고속버스터미널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우산동의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원주시외버스터미널을 빠져 나와서 넓은 차도로 나아가 왼쪽으로 꺾어지면 길 건너에 구룡사로 가는 버스의 정류장이 있다. 마침 구룡사행 41번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서둘러 길을 건너 막 떠나려던 버스를 잡아타니 9시 34분경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10시 6분경 넓은 주차장이 있는 구룡사 입구의 버스 종점에 도착한다.

버스 종점 부근에서 천천히 산행 준비를 마치고 주차장 안쪽의 매표소에서 문화재구역 입장료 2천원을 내고 몇 분 걸어 들어가면 왼쪽에 자연학습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구룡사(龜龍寺)를 상징하는 거북과 용의 형상이 만들어져 있는 이채로운 약수터가 나온다. 바가지로 약수를 두 모금 마시고 구룡교를 건너 몇 분 더 가면 구룡사의 일주문인 원통문에 이른다. 원통문에서 낙엽이 잔뜩 떨어져 있는 운치 있는 길을 걷다보면 구룡사의 사천왕문이 나온다. 구룡사에 10분쯤 머무르면서 경내를 구경하다가 구룡소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임도가 끝나고 등로가 시작된다.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며 넓고 완만한 등로를 걷다보면 세렴폭포 입구의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하여 100 미터쯤 올라가면 이단폭포인 세렴폭포가 나온다. 가뭄으로 인해 물줄기는 볼품없지만 수량만 풍부하다면 꽤 멋졌을 폭포를 상상해 보다가 낙엽이 잔뜩 떨어져 있는 소를 바라보니 다가오는 겨울이 머지않았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15분쯤 쉬다가 다리를 건너니 곧 사다리병창길과 계곡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매표소 앞의 단풍 1.
 


매표소 앞의 단풍 2. 
 


구룡교 앞의 약수터.
 


구룡사의 일주문인 원통문. 
 


구룡사의 대웅전.
 


임도가 끝나고 등로가 시작되는 치악산 들머리의 구룡소. 
 


낙엽이 잔뜩 떨어져 있는, 세렴폭포의 소.
 


세렴폭포. 
 


계곡의 다리를 건넌 직후, 사다리병창길과 계곡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사다리병창길 초입의 너무나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지치고 땀도 많이 나서 잠시 쉬기로 하고 자켓을 벗어 배낭에 고정시키려고 하다가 땅바닥에 내려놓았던 디지털 카메라를 건드려 카메라가 낭떠러지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져서 자취를 찾을 수 없게 사라진다. 비록 산 지 4년이 넘은 구형의 똑딱이지만 인터넷의 온라인 쇼핑으로 샀어도 50만원이 넘게 주고 샀었고 그동안 애지중지하며 자신과 동고동락했었던, 사연도 많고 탈도 많았던, 깊은 정이 든 카메라인지라 굵고 가는 나무줄기들을 붙잡고 수십 미터쯤 내려가니 두터운 낙엽 속에 파묻혀서 은색의 몸체 일부만 낙엽 밖으로 드러나 있는 니콘 쿨픽스 5200을 찾아낸다. 안도감과 반가움이 급격하게 밀려오는 일순간이다. 카메라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낭떠러지 위에 놓아둔 배낭이 걱정스러워서 조심스럽게 급경사의 비탈을 되오르니 다행스럽게 새로 산 배낭은 그대로 있다. 맥이 빠져서 그 자리에 앉아 10분쯤 쉬다가 사다리병창길을 계속 오르는데 다행스럽게도 사다리병창길이라고 해서 무릎에 큰 부담을 주는 계단길만 계속되는 게 아니라 가파른 벼랑길 중에 계단길은 가끔 한 번씩 나타날 뿐이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중에 만난 유일한 와이어로프지대 입구에 사다리병창길 안내판이 설치돼 있는데 병창이란 영서지방의 방언으로 벼랑이나 절벽을 뜻한다고 한다. 산행객의 인내심과 체력을 시험하는 가파르고 험난한 오르막길이 지속되는 사다리병창길에서 내리막길이라고는 짧은 부분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가파른 험로에서 두 번을 더 쉰 후에 계단전망대를 거쳐서 마침내 세 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는, 해발 1288 미터의 비로봉에 닿는다. 바람이 불어서 추운 정상에서 자켓을 꺼내 입고 점심을 먹으며 30분쯤 쉬다가 방향표지판이 상원사를 가리키는 길로 내려선다.

비록 맑은 날은 아니지만 비로봉에서 내려다보는 사방의 확 트인 조망은 몇 시간 동안 사다리병창길을 땀 흘리며 올라온 노고를 순식간에 말끔히 잊게 해 주는 것이었다. 
 


사다리병창길.
 


등로의 정경 1. 
 


등로의 정경 2.
 


등로의 정경 3. 
 


등로의 정경 4.
 


비로봉 정상의 전경 1.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의 정상표지석 - 해발 1288 미터.
 


비로봉 정상의 조망. 
 


치악산 주능선과 남대봉, 시명봉, 향로봉.
 


계곡 하산길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주능선 안부와 그 위 봉우리의 헬리포트. 
 


비로봉 정상의 전경 2.
 

비로봉 정상에서 10분쯤 내려가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안부에 이른다. 오른쪽으로는 계곡길을 통해 구룡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 10분쯤 쉬다가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직진한다. 비로봉에 오른 산행객들은 대부분 원점회귀를 하기 위해 사다리병창길이나 계곡길로 내려가고 황골 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서 여기서부터 호젓한 산행을 하게 된다. 안부 바로 위의 봉우리 정상을 평평하게 깎아서 헬리포트를 만들어 놓은 곳에 이르니 지나온, 세 개의 돌탑이 있는 비로봉 정상이 확연히 보인다. 사다리병창길로 오를 때에는 볼 수 없었던 비로봉 정상의 전경이다.

헬리포트에서 10분 가까이 주능선길을 따라가면 쥐너미재에 이르는데 방향표지판은 쥐너미재 못미처의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돼 있다. 황골을 비롯한 원주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잠시 조망을 하다가 쥐너미재에서 10분 가까이 주능선을 따라가면 향로봉과 남대봉으로 가는 종주코스인 왼쪽의 주능선길과 오른쪽의 황골 하산길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15분쯤 쉬다가 가파른 지능선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등로는 능선길에서 비탈길로, 다시 계곡길로 바뀌게 되고 마침내 등로가 끝나고 임도가 시작되는 입석사에 이른다. 입석사로 내려가는 길옆의 계곡에는 이 계류가 절의 식수원이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과 철책이 설치돼 있다. 

입석사에서 계곡물을 그대로 받아 식수로 쓰는 듯한, 보온된 파이프에서 나오는 약수를 양껏 마시고 나서 입석대로 오른다. 돌탑과 거대한 선바위(立石)가 인상적인 입석대에서 황골로 내려가는, 화사한 단풍으로 채색된 임도의 계곡길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입석사로 내려온다. 
 


계곡하산길이 있는 주능선 안부. 
 


안부의 바로 위에 있는 헬리포트에서 뒤돌아본 비로봉.
 


쥐너미재. 
 


쥐너미재에서 내려다본 황골과 원주시내.
 


향로봉으로 가는 주능선과 황골 하산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 해발 1130 미터. 
 


등로의 정경 5.
 


입석사의 약수터. 
 


입석대의 돌탑.
 


입석대에서 내려다본, 황골로 내려가는 계곡길의 임도. 
 


입석대.
 


입석사의 대웅전. 
 

입석사와 입석대에서 15분쯤 머무르다가 콘크리트와 아스콘으로 포장된 임도로 내려서니 꽤 가파른 부분이 많다. 그러나 뒷걸음질을 쳐서 내려가니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고 더 빠르고 쉽게 걷게 된다. 

산의 중턱 이상은 단풍이 모두 시들었지만 산의 밑자락은 이 게 올가을을 마지막으로 불사르는 열정이라는 듯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붉은 색과 연두색이 적절히 어우러진 단풍의 배색은 이제 머지않아 다가오는 황량한 겨울의 정취를 슬그머니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입석사에서 가파른 부분이 많은 임도를 지루하게 25분 가까이 내려가니 황골탐방지원센터에 닿는다. 여기서 20분을 더 내려가야 황골의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 다다르니 황골엿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여러 군데 있고 어릴 때 어머니가 고추장이나 감주를 담글 때 만들었었던 엿기름 냄새가 머나먼 과거의 아련한 동심의 추억을 환기시키며 후각을 잡아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작년 12월, 디시인사이드 등산갤러리에 멍키렌치님이 올린 치악산 산행기를 읽고 호기심이 크게 동했었던 황골엿술을 맛보기 위해 여러 가게에 수소문해서 치악상회를 찾아가니 17시 40분경. 원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18시 15분 차를 놓치면 20시에나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황골엿술 한 뚝배기(5천원)와 순두부백반(5천원), 도토리묵무침(5천원)을 급히 시켜서 동동주처럼 뚝배기에 가득 담겨 나온 엿술을 술잔 가득 따라서 마시니 시큼하고 부드럽고 순하고 맑으면서 달착지근한 뒷맛이 살짝 감도는 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음미하면서 마실 정도로 깊은 풍미가 있는 술은 아니다. 20도나 된다는 술이 7시간 30분(순수산행시간은 5시간 10분)의 고된 산행독을 눈 녹이듯이 풀어주며 잘도 들어간다. 그러나 2홉들이 소주 한 병이 정량인 자신의 주량을 생각해 보면 20도까지는 되지 않을 듯하다. 버스 출발시각을 5분쯤 남겨 놓고 마지막 한 잔은 채 비우지 못하고 조금 밖에 먹지 못한 도토리묵무침을 포장하고 황골 조청 2 킬로그램(1만원)을 사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니 18시 15분이 조금 넘어 도착한 버스는 18시 50분경 원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18시 57분발 동서울행 시외버스를 타니 주말의 차량 정체로 소요예정시간인 1시간 40분보다 30분 이상 늦은 20시 10분경 동서울버스터미널 앞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은 가을에 안녕을 고하는 배웅의 의미를 지닌 산행이라고 할 수 있었고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픈 마음에 더 각별했다. 그리고 험하기로 유명한 산이라서 산행을 꺼려 왔었지만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체력을 안배해서 적당한 휴식을 가지며 천천히 오르면 그리 어려울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쥐너미재로 가는 오르막길과 입석대로 오르는 계단에서 왼쪽과 오른쪽의 허벅지에 각각 한 번씩 쥐가 나서 고생하기는 했지만... 쥐가 났을 때에는 더 이상 걷지 말고 그 자리에 앉거나 서서 쥐가 난 부위를 주물러서 풀어주고 씹어 먹는 바이엘 아스피린을 한 알 먹고 나서 통증이 진정될 때까지 쉬지 않으면 통증이 더 커지고 통증이 완화되는 시간도 더 길어진다.

강원도 원주와 횡성의 경계에 있는 치악산에서 사다리병창의 악명 높은 험로를 오르며 삶이란 그래도 이런 고된 산행보다는 낫고 살 만한 것이고 또한 산에서의 고행은 산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재인식하며 산행의 정취에 젖는다는 것은 사람을 사귄다는 것과는 다른, 속되지 않은 순수한 구도의 길이라는 생각에 젖어본다. 산행은 고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자연 속에 들어가 대자연의 일부가 되면서 잠시나마 범신론적인 상념에도 젖어들게 되고 속세의 찌든 때와 먼지를 깨끗이 씻어버리는 정신의 목욕도 된다. 

자연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 세속에 찌들어 잊어버린 본연의 순수한 자아를...
 


임도의 정경. 
 


산 밑자락의 단풍.
 


치악산 날머리 -황골탐방지원센터. 
 


황골의 토담집.
 


황골의 단풍. 
 


황골엿술과 순두부백반.
 


오늘의 산행로 - 약 10.5 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