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 본 인

날    짜 : 2 0 0 9월 6월 28일    날 씨 : 맑음. 오후 흐림 시계 좋음

행 선 지 : 청화산(靑華山 984m)-시루봉 능선종주

산행취지 : 牛腹洞天環從走(우복동천환종주) 3구간 산행

참가인원:대나무,영시미,박선미,유진수,미광,이근욱,창바우,오영석,김종길,조명복,박순고,이옥남,더기,요산요수 14명

글 쓴 이 : 요산요수 (류 인 호)

산행시점, 종점 :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2리(밤티재) -> 경북 상주군 화북면 용유2리(회란석) 

전체코스 : 회란석-도장산-갈령-형재봉-피앗재-천왕봉-문장대-밤티재-늘재-청화산-시루봉-회란석

이번코스: 밤티재~경미산~늘재~정국기원단~청화산~도석재~시루봉~비티재~장군봉~회란석(병천)

산의 특성 : 늘재에 청화산까지 지루하고 힘든 오르막길이었고 시루봉-회란석구간은 호젓한 산길   

지점별 통과시간 및 특징 : 

-08 : 49    밤티재(백두대간 길목인 밤티재에서 북쪽으로 숲속 경사능선을 좌측길을 지난다.)

-09 : 00    묵묘봉(묵묘봉을 지나 잔솔숲길로 오르고 능선에 진입 651봉을 넘으니 바위구간 길)

-09 : 24~27 조망바위(후방 조망이 매우 훌륭한 전망터서 휴식 후 까다로운 암릉지대를 올라간다.)

-09 : 35    경미산((간이삼각점이 풀섶에 숨어 있는 봉우리를 주변엔 반공호. 15m전방에 Y자길)

-09 : 36    Y갈림길(좌측길은 백악산으로 가는 길이므로 우측길로 줄을 잡고 내려섰다 올라감.)

-09 : 41    마사토봉(전망이 약간 있는 봉우리에서 휴식 후 작은 능선길을 한동안 오르내린다.)

-10 : 09    소나무전망터(늘티마을과 화북이 보이는 조망터에서 먼저 내려가 확인을 한다.)

-10 : 24    (낙엽송 안부를 지나 오르막에 있는 묘를 지나고 능선을 따라 봉우리 2개 넘음.)

-10 : 41~50 늘재(도로에 내려섰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백두대간 표석이 있는 곳으로 올라선다.)

-10 : 52    성황당(유래비)(백두대간 유래비와 성황당사이 길로 오르자 능선산길 오르막 시작)

-11 : 00    임도 옆(우측에 늘티-신화산간 임도길 옆을 지나자 줄과 너럭바위를 지나 오른다.)

-11 : 35~40 정국기원단(우사면 길을 지나 전망이 좋은 기원단에서 휴식 후 급경사길을 오른다.)

-12 : 15    전망대(밧줄을 몇 번 오르니 후방전망이 매우 좋은 전망대 2곳을 지나 오르자 봉우리)

-12 : 26    봉우리(우측에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서 3번 밧줄을 잡고 경사길을 오른다) 

-13 : 13    헬기장(바위를 우회하고 공터를 지나자 시멘트 포장 헬기장을 거처 정상에 도착한다.) 

-13 : 16-44 청화산(좌측에 의상골길이 있는 암봉정상에서 중식후 출발. 능선길 10분 삼거리 도착) 

-13:56~14:00ㅓ자삼거리(공터삼거리 직진하여 완만한 산죽 능선길을 오르내리며 재미를 느낀다.)

-14 : 12    전망대(우측 청화산 전망대에 이어 좌측에 전망대에서 대야산쪽 전망을 즐긴다.)

-14 : 15    원적사갈림길(우측 원적사주차장 가는 길에서 직진하여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간다.)

-14 : 32    도석재(좌측에 희미한 길과 우측에 확실한 길을 확인하고 직진하여 능선을 오르내림.) 

-15 : 15~   암릉길(오르막 암릉길을 일행 두 분이 힘들어 하여 선두와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

-15 : 32    연엽산갈림길(봉우리 정상 직전에 좌측 연엽산길을 지나 전망터 봉우리를 넘어선다.)

-15 : 52~59 시루봉3봉(줄을 2번 오르고 암봉2개를 넘어 시루봉에 올라선후 전망바위서 휴식한다.)

-16 : 01~03 밧줄2번(바위슬랩에 깔린 밧줄을 2번 내려서서 봉우리를 넘자 좌사면 길을 내려간다.) 

-16 : 21    ㅏ자갈림길(일행 두 분을 좌측길로 탈출시키고 혼자서 완만한 능선길에 속도를 낸다.)

-16 : 26    ㅓ갈림길(이정표)(↑연엽산7km/청화산5.3km↓)이정표를 지나 ㅓ자 길에서 직진한다.)

-16 : 42    비티재(710봉을 비켜넘은 후 50년전에 넘었던 전봇대가 있는 비티재를 지나 오른다.)

-16 : 52    Y갈림길(안부 Y자갈림길 좌측은 쌍룡공소길이므로 우측 회란석쪽으로 봉우리를 넘음) 

-17 : 07    장군봉이정표(좌사면을 돌아 오르는 비탈길에 장군봉이정표를 지나 숨차게 오른다.)

-17 : 11    장군봉(조망도 없도 특징도 없는 바위 한 개 있는 암봉 좌측으로 지나자 또 암봉.)

-17 : 15    전망암봉(서쪽으로 내려서다 첫 번째 전망바위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서둘러 하산)

-17 : 28    바윗길(심심치 않게 바위가 뒤 엉킨 길을 지나고 기다란 바위 우측 옆을 지나간다.)

-17 : 29~32 가는밧줄2번(급경사길에 가는 줄을 잡고 2번이나 미끄러지며 내려가 개울 따라 진행)

-17 : 44    (묘 우측으로 내려가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산능선을 가로질러 돌아넘어 간다.)

-17 : 50    산길끝(산길은 끝나고 늑천정가든 뒤쪽 배수로로 내려서니 좌측이 화장실일세!)

-17 : 51    늑천정(역사 서린 늑천정 이름을 딴 늑천정가든에서 우복동천환종주를 마감한다.)


 

참 고 지 도 : 속리(俗離)(50,000/1국립지리원발행),렌덤우스중앙(5만/1).상주명산 부록지도 

예 상 시  간 : 7시간  

실제등산시간 : 08 : 49~ 17 : 51 (9시간 03분)(산행시간, 휴식시간 포함)

실제산행거리 : 약 15.33km(GPS 측정거리)

구간거리:밤티재(1.07km)-경미산(2.3km)-늘티재(1.05km)-정국기원단(0.54km)-삼거리봉(0.82km)-헬기장(0.08km)-청화산(0.4km)-대간갈림길(1.72km)-도석재(1.82km)-연엽산갈림길(0.3km)-시루봉(1.8km)-비티재(2.0km)-장군봉(1.43km)-늑천정가든  GPS 고도표 측정거리


 

산행한 동기와 개요   

 ▲ 병천마을 우복동 안내도가 있는 '전통농업문화학습관'

 

▲ 우복동시와 안내도가 그려져 있는 표지석 

靑華山南 好局開 (청화산남 호국개 : 청화산 남쪽에 좋은 형국(우복동)이 열렸으니)

梅花帳裡 自成臺 (매화장리 자성대 : 매화꽃 휘장 속에 높고 평평한 땅을 저절로 이뤄졌네)

凌雲輔弼 屛前立 (능운보필 병전립 : 구름위로 솟은 보필봉은 병풍같이 앞에 섰고)

揷漢貴人 席後來 (삽한귀인 석후래 : 은하수에 꽂힌 귀인봉은 자리 뒤로 따라 온다.)

淸水流中 情不去 (청수유중 정불거 : 맑은 물은 흘러가도 정은  따라 가지 않고)

白駒嘶處 勢方回 (백구시처 세방회 : 흰 망아지 우는 곳에 형세가 바야흐로 돌아섰다.)

平坡穴落 幾千載 (평파혈낙 기천재 : 평지들판 혈터가 이룬지가  몇 천 년이 되었는고?)

執笏仙翁 案外擡 (집물선옹 안외대 : 홀기를 잡은 듯 선선 늙은이는 안산밖에 들려있네) -출전미상

청화산에 대한 이 글은 도선국사로 불리는 옥룡자(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혜철(惠徹)에게서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을 배웠다. 그의 음양지리설,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은 조선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도선비기(道詵秘記)》등이 있다.)의 글이라고 하기도 하나, 내가 어릴때 청화산 아래 신화산에 있는 서당에 다닐때 훈장 선생님(陽澗 吳尙泳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글은 한시(漢詩)의 4대가로 알려졌던 조선후기 문신 겸 학 본관 전주(全州). 자 낙서(洛瑞), 호 척재(惕齋) ·강산(薑山)인 이서구 [李書九, 1754~1825 1774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관(史官) ·지평을 거쳐 승지 ·대사간 ·이조판서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했다. 왕명으로 《장릉지(莊陵誌)》 《춘추(春秋)》 《정조실록》 등의 편찬에 참여했다. 명문장가로서 특히 시명(詩名)이 높아 박제가(朴齊家)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과 함께 한시(漢詩)의 4대가로 알려졌으며, 오언고시(五言古詩)에 능했다. 문집으로 《척재집》 《강산초집(薑山初集)》이 전한다.<백과사전>]님이 청화산을 올라본 후 신화산 마을을 보고 지은 글이라고도 하셨다. 누구의 글이던 청화산 아래의 우복동을 잘 표현한 글이다. 이번에 산행하는 우복동천환종주 3구간인 청화산 구간은 이미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분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곳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밤티재에서 늘재까지는 통행금지 구간이여서 상당히 신경이 쓰인 부분이었다. 밤티재와 늘재에는 기대할 수 있는 이정표는 없지만 중간지점이자 이 구간에서 제일 높은 풀숲 속에 간이삼각점이 있는 경미산(692.2m)을 넘어서자 15m거리에 Y자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완전히 꺾어 내려가기만 하면 늘티재 까지는 갈림길이 거의 없다. 하지만 늩티재에서 청화산까지 거리는 2.1km(실제는 2.49km)밖에 안된다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에 얼마나 힘들고 지루한지는 대간길을 해 본이라면 실감할 것이다. 청화산 정상에서 0.5km 떨어진 대간갈림길에서는 꼭 직진하여야 하며 이 후에는 계속 능선만 타고 오르내린 후 장군봉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 산행이 끝난다. 하지만 대간길을 벗어난 후 시루봉까지는 상당히 지루하여 인내심이 필요한 산행길이다. 그리고 25,000분의1 지도나 모든 등산용 지도들이 청화산 아래에 있는 신화산과 구화산 동네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 즉 원적사 바로 아래는 구화산인데 신화산이라고 표시하고 실제 신화산을 구화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루 속히 정정이 되었으면 한다.     


 

3 구간(청화산)

밤티재(2.5km)-늘티재(2.1km)-청화산(0.5km)-대간갈림길(3.1km)-시루봉(1.3km)-비티재(1.1km)-장군봉(1.4km)-회란석까지 총 12km

 

▲ 상주시에서 발행한 우복동천 환종주 안내도

牛腹洞天(우복동천)과 環從走(환종주=둘레잇기)코스  소개

문장기운(文藏起雲)=문장대를 일어나는 구름   견훤모아(甄萱暮鴉)=견훤산성의 저녁나절 까마귀 

오송비폭(五松飛瀑)=오송폭포의 날리는 폭포수 초산목적(草山牧笛)=초산의 목동의 피리소리 

도장낙조(道藏落照)=도장산의 해지는 저녁노을 삼봉제월(三峯霽月)=삼봉산에 비 개인 후 뜨는 달 

원적효종(圓寂曉鍾)=원적사의 새벽 종소리     부소어옹(釜沼漁翁)=가마소에서 고기 잡는 늙은이

 위 글은 상주시 화북면에서 우복동 주위의 8경을 발표한 글이다. 이글이 말하는 牛腹洞天(우복동천)이란 소의 뱃속(자궁을 뜻함)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 말로 예부터 영남 일대에서 전해오는 피란지의 이름으로 상주에 있다고 하며 상주에서도 속리산에 둘러싸여 있는 화북면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으며,  전란,굶주림,천재지변을 피할 수 있는 예언의 땅 십승지(十勝地:열 군데의 유명한 곳)가운데 한 곳으로 꼽는다. 속리산 동쪽 상주시 화북면의 7개 동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동네가 진짜 우복동이라 주장 한다.실제로 화북면으로 피난 온 사람들은 한국전쟁(6.25사변) 당시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본인이 선친에게 직접 듣고 자라왔음)

여기에 나오는 십승지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면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에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한다. 鄭鑑錄(정감록)이나 格巖遺錄(격암유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굶주림,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전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어지지 않고 후세에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鄭鑑錄>, <南師古 秘訣>, <南格巖 山水 十勝寶吉之地>, <鑑訣>, <徵琵錄>, <운기구책>, <유산록> 등 60여종이 있다. 이 예언서들은 파자(破字)등으로 기록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 또한 직설법이 아닌 우회적으로 하여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책을 쓴 저자와 시기가 불분명한데 당시에는 이러한 책들이 나라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여 소지하거나 배포하는 것을 금한 금서(禁書)였기 때문이다. 또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에 따라 실수든 의도적이든 내용을 누락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보충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책이라도 내용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등 명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 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발전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이다. 따라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대를 살면서 번창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이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지만 책마다 약간씩은 틀리게 지목한도 있다.

1. 풍기(豊基) 차암(車岩) 금계촌(金鷄村)으로, 소백산 두 물곬 사이에 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2. 화산(花山) 소령(召嶺) 고기(古基)로 청양현(靑陽縣)에 있는데, 봉화(奉化)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갔다.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報恩) 속리산 사증항(四甑項)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화남면 일대) 


 

4. 운봉(雲峰) 행촌(杏村)이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5. 예천(醴泉) 금당실(金塘室)로, 이 땅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6. 공주(公州) 계룡산으로, 유구(維鳩) 마곡(麻谷)의 두 물곬의 둘레가 2백 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7. 영월(寧越) 정동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만하다. 그러나 수염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8. 무주(茂朱) 무봉산(舞鳳山) 북쪽 동방(銅傍) 상동(相洞)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扶安) 호암(壺岩)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합천(陜川) 가야산(伽倻山) 만수봉(萬壽峰)으로, 그 둘레가 2백 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위에 열거한 십승지지 가운데 3번째인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용유리일대를 우복동이라고 지칭하는데 화북면은 크게 2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용유리(龍遊里)와 장암리(壯岩里) 지구. 이곳은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견훤산성에서 현재 '우복동사적비' 가 있는 병천의 입구까지가 해당한다. 청화산(靑華山) 이 진산(鎭山) 이고 서쪽에 속리산, 동편에는 속리산에서 갈라져 나온 도장산(道藏山), 또 청화산이 남쪽으로 뻗어와 이곳의 앞산이 된 승무산(僧舞山) 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 모양은 마치 속세를 떠난 유(儒).불(佛).선(仙) 의 대가들이 모여 앉아 담론하는 형세다.

산행코스는 이 우복동을 원을 그리며 감싸고 있는 三山(도장산,속리산,청화산)과 三水(한강,낙동강,금강)에 어울린 코스는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원점회귀 코스이면서도 여러 봉우리를 엮어 산행이 가능한 곳이다. 일반적인 원점회귀 산행은 하나의 봉우리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계곡을 타고 올랐다가 능선으로 하산하거나, 서로 다른 능선을 이용해 정상에 오르는 경우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산과 산을 연결해 원점회귀 코스로 엮은 것이 특이하다. 삼산은 화북면을 둘러싼 산줄기의 속리산(1,057.7m), 청화산(984m), 도장산(827.9m)을, 삼수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낙동강, 금강, 한강이 갈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우복동천 코스는 이 세 개의 산을 하나로 엮은 산행 코스다. 상주시가 지난겨울(2007년 겨울) 개설한 이 코스는 긴 종주 산행이 가능하다. 기존 등산로 30.1km를 정비하고 도장산(5.2km)과 청화산(2.5km)의 7.7km 구간을 새롭게 개설했다. 상주시가 정비를 완료한 신규 등산로 구간은 산행에 지장이 없도록 1m 넓이로 잡목을 제거하고, 위험구간에는 밧줄과 나무 사다리를 설치했다. 현재는 임시방편의 시설물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로 좀 더 튼튼한 밧줄과 시설물을 설치할 예정이다. 예산이 편성되는 대로 도장산 7개, 속리산 3개, 청화산 4개 등 총 14개의 이정표도 설치할 계획이다. 완벽하게 능선만을 밟지는 않고, 청화산과 도장산 사이에 쌍용계곡을 건너게 되어 있다. 물을 건너야 하는 원점회귀 코스라 해도 실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지루한 능선길보다 계곡에서 쉬어가며 식수를 보충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복동천은 산행거리가 37.8km에 달하는 장거리 코스다. 오르내림도 심하고 급경사와 바위지대도 곳곳에 널려 있다. 밧줄을 이용해야하는 위험한 구간도 제법 많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코스가 아니다. 세 개의 산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넘어야 하는 크고 작은 봉우리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체력소모도 심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우복동천을 완주하려면 산행에만 20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울트라 마라톤 수준의 극한 산행인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 산은 고갯마루와 계곡으로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끊어 타기가 가능하다. 가장 긴 구간인 속리산의 경우 갈령에서 늘재까지 약 18km 거리에 달한다. 청화산은 늘재에서 쌍용계곡 회란석까지로 9.5km, 도장산은 회란석에서 갈령까지 10.3km 거리다. 세 산 모두 명산의 풍모를 지닌 아름다운 능선길 조망을 자랑한다. 이 가운데 도장산은 속리산 조망이 좋고 바위지대가 멋진 구간이다. 게다가 얼마 전 우복동천 코스 연결을 위해 5.2km의 새로운 등산로가 조성됐다. 세 구간으로 나뉘는 국내 최장의 38.7km (요물님의 산행트랙 실거리 46.87km) 원점회귀 코스

우복동천 일반적인 속리산 구간은 갈령(1.3km)-갈령 삼거리(0.7km)-형제봉(6.9km)-천왕봉(3.6km)-문장대(3.3km)-밤티(2.5km)-늘재로 총 18km에 8시간25분이 소요된다.


 

청화산 구간은 늘재(2.1km)-청화산(0.5km)-백두대간 갈림길(3.1km)-시루봉(1.3km)-비치재(1.1km)-장군봉(1.4km)-회란석으로 이어지며, 총 9.5km에 4시간50분이 소요된다.


 

도장산 구간은 회란석(1.2km)-능선교차점(1.5km)-헬기장(0.7km)-정상(3.7km)-서재(3.3km)-청계산 갈림길(0.8km)- 갈령으로 연결되며 총 10.3km에 4시간50분이 소요된다.

산행은 이 세 산을 따로 나누어 하루씩 끊어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럴 경우 우복동천 코스를 완주하는 데 2박3일이 소요된다. 한 방향으로 계속해 이어타기를 시도할 경우 갈령이나 늘재 등 고갯마루에서 시작하는 것이 산행이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어느 경우나 중간에 쌍용계곡을 건너게 되어 있다.

청화산과 도장산 산행은 쌍용계곡의 회란석을 종착지로 잡는 것이 좋다. 고도가 높은 고갯마루에서 시작해 낮은 곳으로 내려서기 때문에 산행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산행 후 시원한 계곡에서 피로를 풀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백두대간 줄기인 속리산 구간은 산길이 확실하고 뚜렷해 산행에는 큰 지장이 없다. 다만 거리가 좀 멀다는 점과 산불예방기간에는 일부 구간을 통제해 산행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걸린다. 또한 문장대부터 늘재 구간은 현재 비지정 등산로로 지정되어 있다. 이 문제는 현재 상주시와 국립공원이 협의 중에 있어 조만간 타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주시는 산불예방기간에도 청화산과 도장산은 산행이 가능하도록 개방하고 있다. 

코스문의 054-537-7207 상주시청 문화체육팀 전병순씨


 


 

우복동천환종주 3구간인 청화산 소개  

 ▲ 청화산 원경(도장산 산행시 촬영한 것)

청화산(靑華山 984m)은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와 상주시 화북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경계에 우뚝 솟아 속리산을 바라보고 서 있는 청화산 정상에 오르면 서쪽 아래로 화양동계곡과 용유동계곡이 한데 이어진 듯한 모습으로 내려다보인다. 청화산과 속리산은 별개의 산으로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청화산 아래 살짝 솟은 늘재가 보이는데 북쪽 대야산에서 남진하여 조항산을 지나온 백두대간이 청화산에 이르면 방향을 남서쪽으로 틀어 약600m 고도를 낮춰 늘재(해발380m)로 떨어지며, 백두대간이 다시 힘을 더하여 속리산 문장대를 들어 올린 백두대간 주능선이 그토록 아름다운 속리산을 만들기 위해 준비를 한 산이 바로 청화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청화산이란 이름이 지어진 유래는 수십리밖 어디에서 바라보더라도 항상 화려하고 푸르게 빛나고 있으며 시루봉도 장엄한 자세로 그 위엄을 떨치고 있다하여 청화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산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마을 이름들도 청산리, 또는 청화동으로 불리고 있으며 청화정, 청화연이란 명칭도 이산의 이름을 따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상주시 화북면 소재지에서 32번 국도를 따라 용암천 쌍용계곡으로 1.5 km 진행하면 왼쪽으로 병천마을 입구다. 병천교를 건너 포장도로를 따라 신화산, 구화산마을 갈림길에 닿으면 '청화산 우복지'라 적힌 표지석이 있다. 


 

찾아간 길: 성서나들목-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남상주 분기점 청원쪽 우측으로 청원~상주고속국도 환승 - 화서나들목-T자삼거리서 화북.상주쪽으로 우회전(좌회전 보은,청주)-ㅓ자삼거리 거리서 화북.문장대쪽으로 좌회전-하송삼거리서 좌회전-49번지방도를 따라 갈령재를 넘고 화북시장과 화북지서,화북면사무소앞을 지나고 문장대 입구인 장암교에서 직진한 후 장암2리 아랫늘티마을 입구에서 밤티쪽으로 좌회전 밤티재 정상에서 하차.


 

산행을 하기전

05:00~08:31 산행지로 이동 산행지가 멀지는 않지만 긴 산행시간이 예상되어 일찍 승용차로 출발.

이번 산행은 지난 5월 24일 속리산 2구간 산행에 이어 한 달 만에 3구간으로 행해지는 청화산 우복동천환종주 3구간으로 산행시간이 길고 유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인지 신청자가 별로 없어 승용차 3대로 이동하가로 하고 만촌동 E마트 앞에 도착하자 5시 50분이다. 각 차량별로 승차인원을 정한 후 출발하여 두류네거리에서 기다리는 친구 오영석씨를 태우고 성서홈플러스 앞에 도착하여 유진수님과 창바우님을 동승시킨 후에 출발하는데(06:38) 오늘 참석인원이 14명이라고 한다. 성서나들목으로 진입한 차는 서대구요금소를 지나 경부고속국도를 신나게 달리다가 구미를 지나서 중부내륙고속국도로 환승을 한 후 10분도 안 걸려 도착하는 선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와 휴식을 하고 다시 출발한 차는 남상주 분기점에서 상주-청원간 고속국도로 접어들어 화서나들목을 나자가자 나오는 T자 삼거리에서 화북.상주쪽으로 우회전(←보은.청주)하여 1분정도 달리다 나오는 ㅓ자 삼거리에서 화북.문장대쪽으로 좌회전하여 골짜기를 꾸불꾸불한 길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하송삼거리에서 역시 괴산.화북쪽으로 좌회전하여 49번 지방도를 따라 한창 터널 공사중인 갈령재를 넘어서고 화북시장을 지나 우측에 있는 돌탑이 있는 지서(파출소)를 지나자 있는 삼거리서 직진하여 좌측에 있는 화북면사무소 앞을 지나고 나오는 장암교 다리를 건너 문장대로 가는 좌측길을 무시하고 직진하여 2분여에 좌측에 주유소가 있는 곳에서 (←보은)좌회전 하여 달리다가 고갯마루 직전에 차를 멈춘다.  

▲ 도착한 밤티재 

 

▲ 밤티재 중간 절개를 이어주는 동물이동통로(본래는 이리로 건너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08 : 31~49 산행준비(밤티재) 밤티재서 일부는 올려 보내고 차를 한 대 늑정정 앞에 갔다 놓는다.

밤티재에서 늘티재까지는 원래 밤티재 고개 중간에 있는 동물이동통로를 건너야 하겠지만 이곳 역시 국립공원에서 정한 통행금지 구역이역서 신경이 상당히 쓰인다. 우측(북쪽) 절개지에 철망팬스가 시작하기 10여미터전 길가 시멘트 둑에 ]자로 배수로를 만들어 놓은 곳이 산길입구이다. 도로에 하차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선두를 올려 보내고 모든 차들을 하산지인 쌍룡계곡 늑천정가든 주자장에 주차시키고 내차는 도로 밤티재까지 돌아온다.

산행을 하면서  

▲ 밤티재 정상을 못 미친 우측 부근  

 

 밤티재 북편 도로가 정상에서 늘티쪽으로 첫번쨰 배수로가 산행시작 지점 

 

 ▲ 배수로에서 산쪽을 보면 표시기가 보인다.

 

▲ 산속으로 들어서자 능선에 들어선 길 

08 : 49    밤티재 백두대간 길목인 밤티재에서 북쪽으로 숲속 경사능선을 좌측길을 지난다.

밤티재 백 여미터 전에 주차시켜 놓고 오르막 아스팔트 길을 걸어 올라가 산길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치닫는 오르막 능선을 따르자 기다리고 있던 유진수 사장님외 여러분과 함께 좌측으로 굽어져 오르다 좌측 동물이동통로에서 올라오는 듯 한 좌측 길과 합쳐진 곳에서 직진(08:58)하자마자 작은 봉우리에 옆이다.  

▲ 첫번쨰 봉우리는 묵묘가 있는 봉우리다.

 

 ▲ 완반한 길로 이어진다.

 

 ▲ 드디어 암릉이 시작되자 우측으로 우회하여 올라선다.

   

▲ 바위길이 시작된다.

09 : 00    묵묘봉 묵묘봉을 지나 잔솔숲길로 오르고 능선에 진입 651봉을 넘으니 바위구간 길

길은 묵묘가 있는 이 작은 봉우리(고도 573m)을 거치지 않고 옆으로 지나가지만 나는 묵묘봉에 올랐다가 약간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잔솔이 우거진 숲길을 올라 능선과 합해진 후 다시 작은 봉우리(650m)을 넘어서자(09:14) 시작되는 첫 번째 암릉은 우측으로 우회하자(09:15) 이어지는 암릉에 조망이 좋은 조망바위에 올라선다.

 ▲ 바위 전망터

 

 ▲ 소나무와 어울린 전망터

 

 ▲ 전망터에서 휴식을 하는 일행들...

 

 ▲ 문장대와 능선 (제일 높은 곳이 문장대)

  

 ▲ 이아지는 암릉길

 

 ▲ 이런 바위틈새도 빠져야 한다.

 

 ▲ 이런 멋진 고래등 같은 바위에도 올라야 한다.

 

 ▲ 이런 바윗길은 가기가 애매하지요.

 

 ▲ 이상한 모습을 한 기암괴석도 한몫

 

 ▲ 조심하시오! 떨어질라~~~

 

 ▲ 좌측 천왕봉에서 우측 관음봉까지 속리산 주능선이 빠짐없이 보인다.

 

 ▲ 속리산 동릉길도 한번 쳐다본다.

 

 ▲ 알을 품고 있는 닭의 모양인가?

09 : 24~27 조망바위 후방 조망이 매우 훌륭한 전망터서 휴식 후 까다로운 암릉지대를 올라간다.

뒤쪽에 문장대로 올라서는 백두대간 능선이 고스란히 보이고 문장대와 서북능선이 연이어 나열 되여 시원한 풍경을 자랑한다. 아울러 주위에는 몇 그루의 고목 소나무가 어울려 있다. 잠시 휴식을을 하고 집채만 바위틈새를 이리저리 힘들여 올라서자 길이 수월해지나 싶더니 전망이 없는 봉우리를 넘어선다.  

 ▲ 692.2m인 경미산을 증명하는 풀솦 속의 간이 삼각점 

09 : 35    경미산 간이삼각점이 풀섶에 숨어 있는 봉우리를 주변엔 반공호. 15m전방에 Y자길

무심코 전망이 전혀 없는 봉우리를 넘어섰더니 Y자 갈림길이 나온다. 경미산을 지나쳤구나 하고 되돌라가 봉우리 풀 속을 살피니 기대했던 삼각점 대신 간이삼각점이 692.2m인 경미산을 대변하고 있고 봉우리 둘레에는 방공호인지 배수로인지 팠던 흔적이 보인다.   

 ▲ 경미산정상에서 북으로 15미터 정도에 있는 Y자 갈림길(우측으로 내려가야 늘재)

 

 ▲ 바위틈새를 내려가는 밧줄지대

09 : 36    Y갈림길 좌측길은 백악산으로 가는 길이므로 우측길로 줄을 잡고 내려섰다 올라감.

다시 몇 걸은 진행하자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잡목숲속에 Y자 갈림길이 있다. 좌측길은 백악산으로 가는 길이므로 우측길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내려가자 바로 바위틈에 밧줄이 있고 밧줄을 잡고 바위틈새를 내려서서 잠시 내리막이 이어지지만 다시 봉우리에 올라선다.  

 ▲ 마사토 봉우리인 전망터

 

 ▲ 금방 내려온 경미산을 뒤돌아 본다.

 

 ▲ 잡목숲속으로 이어지는 등로

 

 ▲ 올라야 할 청화산이 나무사이로 살짝 보인다.

09 : 41    마사토봉 전망이 약간 있는 봉우리에서 휴식 후 작은 능선길을 한동안 오르내린다.

조망이 제법 있고 특히 금방 지나온 경미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잘 보이는 마사토 봉우리(629m)에서 잠시 쉬었다가 미끄러지듯 내려선 후 오르내리는 능선을 따라 15분정도 진행하다 봉우리(637m)을 넘어선 후 약간 내려섰다가 올라서자 전망터에 도착한다.   

 ▲ 소나무전망터에서 늘티마을(상주시 화북면 장암2리)이 보인다.

 

 ▲ 올라가야할 청화산 주능선이 힘들어 보인다.

 

 ▲ 내려가는 참나무 숲 길

 

 ▲ 조림한 낙엽송을 보니 마을이 가까워졌나 보다.

10 : 09    소나무전망터 늘티마을과 화북이 보이는 조망터에서 먼저 내려가 확인을 한다.

키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조망터(540m)엔 확실한 조망은 없지만 가야할 청화산과 늘티마을이며 내려디 보이는 곳이다. 혹시 모를 늘티재에서 출입을 출제하는 분이 있을까봐 일행들은 잠시 후에 뒤 따라 오기로 하고 선두에 서서 내려가니 고도가 계속 나추더니 좌측에 낙엽송 숲이 보이자 농가도 좌측에 보이기 시작한다. 

 ▲ 능선 오르막에 있는 묘를 지나 간다.

 

 ▲ 늘티재로 내려서는 길

 

 ▲ 산길 끝에는 출입금지 표시가판이 섰다.

10 : 24    낙엽송 안부를 지나 오르막에 있는 묘를 지나고 능선을 따라 봉우리 2개 넘음.

길은 안부을 거쳐 오르막에 묘1기를 지나 몽우리를 넘어서자 양쪽이 간벌이 되어 있는 능선을 따르며 후미를 기다려다가 다시 봉우리(410m)을 넘어서 내려서자 출입금지 안내판 옆을 지나 늘티재에 내려선다.  

 ▲ 2차선 도로가 늘티재란다.(입석쪽에서 보고 촬영)

 

 ▲ 늘재 청화산쪽에는 보호수인 엄나무와 당집 백두대간 표석이 있다.

 

 ▲ 근간에 조성한 백두대간 표석

 

 ▲ 백두대간 표석을 세운 설명문(청화산의 淸자가 틀렸다. 푸를청(靑)라야 하는데)

 

 ▲ 보호수 옆에 당집

 

 ▲ 내려온 길을 건너다 보니 출임금지 표지판과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시판이 있다.

 

 ▲ 백두대간 표석 뒤에 적힌 김시빈님의 漢詩(한시)

10 : 41~50 늘재 도로에 내려섰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백두대간 표석이 있는 곳으로 올라선다.

늘재는 늘티재 또는 늘고개로 불려지며 상주군 화북면 장암리와 입석리 사이에 있는 고도가 380m의 고개로 경사가 완만하여 느린 걸음으로 넘을 수 있는 고개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라고 하며 고갯마루에는 2차선 49번도로 남북으로 나 있으며 남쪽은 낙동강, 북쪽은 한강의 분수령의 표시도 있고 고개 동쪽에는 약 350년 된 엄나무(품격:면나무 지정날자:1982년 10월 26일 수종 및 수령 : 엄나무, 320년 소재리: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64번지 표석 전문)와 옆에 당집이 있으며 남쪽은 장암2리인 늘티마을(아랫늘티,윗늩티)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인 입석리 송학동과 귀빈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늘재를 약간 넘어서자 우복동천이정표(↑회란석9.5km.청화산 2.6km/문장대 5.8km.갈령 18km↓ 현위치 늘재)가 서 있다.  청화산을 오르는 길은 백두대간표석이 서 있는 곳으로 오르거나, 아니면 늘재에서 웃늘티 마을쪽(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200미터정도 내려가면 이정표가 있는 좌측으로 난 신화산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도 된다. 우복동천이정표에서 동쪽으로 들어서자 근간에 새로 세워진 거창한 ‘白頭大幹’(백두대간)(4321년(서기2008년)에 이 고장 출신인 금강학원 金孟碩 이사장과 영동대학교 蔡薰寬 총장이 화북면의 후원을 받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음)표석이 세워져 있다. 뒷면을 보니 白南 金始鑌(백남 김시빈) 지은 속리산에 대한 한시가 적혀 있다.

白頭嫡脉走東陲(백두적맥주동수 : 백두대간 큰 산맥이 동으로 뻗어와서)

兄是金剛弟俗離(형시금강제속리 : 금강산이 먼저 서고 속리산 뒤에 섰네)

彌勒觀音寬世界(미륵관음관세계 : 미륵관음 양봉 높아 자비세계 너그럽고)

忠淸慶尙壯根基(충청경상장근기 : 충청 경상도의 경계한 산 장엄하도다.)

주 : 김시빈(金始鑌)은 1684(숙종 10)∼1729(영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창(咸昌). 자는 휴백(休伯), 호는 백남(白南). 영천(榮川) 출신. 아버지는 통덕랑 정휘(鼎輝)이다. 1702년(숙종 28)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필선을 거쳐 1724년(영조 즉위년) 장령이 되어 영조의 탕평책을 두둔하다 오히려 화근이 되어 명천군수로 좌천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반란이 영남지방으로 확대되자 채성윤(蔡成胤)의 천거로 영남의 요충을 방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뽑혀 울산부사가 되었다. 그곳에 부임하여 폐습을 과감히 개선하는 등 선정을 베풀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백두대간비는 상당히 넓은 공터에 세워져 있고 동편 구석에는 성황당과 유리비가 세워져 있다.  

 ▲ 백두대간 표석 다음에 있는 백주대간유래비와 백두대간성황당

 

 ▲ 대두대간성황당의 모습

 

 ▲ 백두대간유래비

   

▲ 능선을 오르다 Y자 갈림길 어느길로 가도 된ek.

10 : 52    성황당(유래비) 백두대간 유래비와 성황당사이 길로 오르자 능선산길 오르막 시작

청화산을 오르는 길은 좌측 백두대간성황당유래비와 우측에  백두대간성황당 사이로 나 있다. 

비석 뒷면에는‘ 백두대간의 정기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 때는 횡액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난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신앙으로 승화되어 당(堂)도 지지(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史實)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落漢)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 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長程)의 기점이며, 고대에 라제(羅濟)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鄭起龍)장군의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온천을 비롯하여 고승(高僧)과 명장(名將)이 수련한 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 후에 의사(義士)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대장 이강년(李康秊)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늘티에 전상석(全相錫)처사가 우국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백여년이 지난 이제 그의 증손 충환(充渙)이 유지를 받들어 이상배(李相培)국회의원과 김근수(金瑾洙)상주시장이 산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당(堂)을 중창하여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수범하고 후진의 교육장이 되게하여 백두대간의 영기(靈氣)를 실감나게 하였다. 이에 그간의 유래와 성황당 중창의 경위를 약기하여 비를 세워 영원히 기념하는 바이다.’라고 적혀 있다.

휴식을 마치고 유래비와 성황당 사이로 난 길을 지나자 잣나무 밭 속 오르막을 올라 능선에 도착 후 오른쪽으로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자 이번에는 오른쪽에 임도가 보인다.  

 ▲ 우측으로 임도에 내려서는 계단길이 있는 곳.

 

 ▲ 우측에 늘티에서 신화산으로 넘어가는 임도가 보인다.

 

 ▲ 길은 오르막이지면 급경사는 아닌데 줄은 매여져 있다.

 

 ▲ 오르다 있는 쉽터 너럭바위

 

 ▲ 길은 우사면길로 줄이 매여져 있다. 그리 위험한 곳도 없는데...

  

  ▲ 우측으로 올라선 곳에 있는 쉼터 바위군

  

▲ 다시 줄이 있는 경사길을 오른다.

11 : 00    임도 옆 우측에 늘티-신화산간 임도길 옆을 지나자 줄과 너럭바위를 지나 오른다.

웃늘티에서 신화산으로 가는 임도가 우측 옆을 굽이져서 지나치고 있고 임도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친 후 밧줄이 쳐진 잔솔나무 숲길을 잠시 오르자(11:08) 너럭바위 쉼터를 지나고(11:13) 우사면길을 돌아가다 능선에 올라서길 반복하다가 전망이 좋은 전망터에 올라선다.  

 

 ▲ 전망이 좋은 곳에 단이 설치된 '정국지원단'

 

 

 ▲ 단상주위엔 경치도 좋다.

 

 ▲ 기원단에서 바라본 늘티마을과 속리산 주능선

 

 ▲ 우리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본다.

 

 ▲ 입석리 뒤쪽 백악산을 바라 본다.

 

 ▲ 기원다 주위에 경치가 좋은 곳

 

 ▲ 오르는 길

 

 ▲ 본격적인 경사길과 줄

 

 ▲ 약간 험하기도 한 길

11 : 35~40 정국기원단 우사면 길을 지나 전망이 좋은 기원단에서 휴식 후 급경사길을 오른다.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전망 공터에는 중간에 비석과 양쪽에 큼직한 돌 향로가 놓여 있는 곳이다.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 청화산 중턱에 조성한 『靖國祈願壇(정국기원단)』은 어지러운 나라를 평탄하게 진정시키기 위해 기원하는 제단이다. 비석 중간엔 ‘靖國祈願壇’이라고 큰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좌측에는 白頭大幹 中元地(백두대간 중원지 : 백두대간의 중간지점)라 적혀 있고, 우측에는 白衣民族(民族中興)聖地  不失其祖 三巴水[백의민족(민족중흥)성지 불실기조 삼파수 : 우리 민족의 중흥을 꽤하는 성지로 그 근원을 잊지 않기 위함이며, 한강, 낙동강, 금강의 세 물줄기가 갈리는 곳이다.]라고 작은 글씨로 음각되어 있다. 쉬면서 간식을 들고 나서 출발하지만 오늘 동행한 오영석씨가 뒤에 쳐지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므로 동행하자니 선두와 점점 거리가 벌어진다. 우측으로 돌아가는 사면길에 설치된 가이드 밧줄을 따라 가길 두 번 반복하다 전망이 좋은 곳에 올라선다.  

 ▲ 오르다 좌측에 있는 전망터

 

 ▲올라야 할 봉우리를 처다 본다.(중간에 전망바위도 보인다.)

 

 ▲ 전망터에서 내려다 본 풍경

 

 ▲ 멀리 천왕봉과 동릉 사모봉도 한껏 조망

 

 ▲ 다시 시작되는 경삿길

 

 ▲ 이런 바윗길도 올라야 하며

 

  ▲ 이런 바위사이도 올라서야 한다.

 

  ▲ 좌측에 있는 전망바위

 

 ▲ 전망바위에 올라 보니 공터가 있다.

12 : 15    전망대 밧줄을 몇 번 오르니 후방전망이 매우 좋은 전망대 2곳을 지나 오르자 봉우리

역시 후방 전망이 시원한 전망대를 지나 두 번 밧줄을 잡고 오르다가 다시 좌측으로 나서자 귀빈래골과 입석이나 백악산쪽의 전망이 좋은 전망터가 있지만(12:23) 가의가 오르지 않고 바로 올라간다. 경사길을 잠시 더 오르자 다른 팀 산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 우측에 갈림길이 있는 786봉을 넘어선다.

 

 ▲ 급경사에 줄을 잡고 힘들여 오르고 있는 친구

 

 ▲ 이번 길은 더 험한길

 

 ▲ 다시 줄을 잡고 오른 바위지대

 

 ▲ 봉우리 좌측으로 돌아가는 좌사면 길에 있는 돌탑

 

 ▲ 병풍바위를 우측으로 우회하는 길

 

▲ 병풍바위를 지나 올라선 공터

12 : 26   786m봉 우측에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서 3번 밧줄을 잡고 경사길을 오른다.

고도를 보니 786봉인데 넘어서자 오른쪽에 화산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다. 봉우리를 지나자 고도를 높이는 경사길과 밧줄지대가 2번 반복되는데 오영석씨는 더욱 지쳤는지 자꾸만 쉰다. 보조를 맞추자니 갑갑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은 나를 따라 온 사람인데 독촉하고 또 독촉하여 다시 줄을 잡고 바위틈새를 올라서니 숲이 가려진 870m으로 경상북도 상주시와 문경시의 경계지점이다.(12:47)우측으로 원적사나 화산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련만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지나간다. 우사면길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병풍 바위 우측으로 돌아 줄이 매여진 숲길을 오르면 나오는 공터에서 뒤쳐진 친구를 기다렸다가(13:02~05) 독촉해서 잠시 오르자 헬기장이다. 

 ▲ 헬기장에서 내려다 본 병풍바위

 

 ▲ 정상이 3분거리도 안되는 곳에 있는 헬기장

13 : 13    헬기장 바위를 우회하고 공터를 지나자 시멘트 포장 헬기장을 거처 정상에 도착한다. 

사방의 조망이 시원한 시멘트 포장 헬기장(120-4-09)에 올라섰지만 선두와 격차가 심해 잠시 사방만 둘러보고 서둘러 오르자 암릉길이 나오더니 바로 청화산 정상에 이른다.  

 ▲ 청화산 정상의 이정표

  

 ▲ 청화산 표지석

 

 ▲ 표지석을 지나 북쪽의 길에 달린 표시기들...

  

 ▲ 가야할 능선과 시루봉이 보인다.

 

 ▲ 가야할 능선만 따로 본다.

 

▲ 내려서는 길에 밧줄 

 

 ▲ 편한 능선을 간다.

13 : 16-44 청화산 좌측에 의상골길이 있는 암봉정상에서 중식후 출발. 능선길 10분 삼거리 도착 

정상을 들어서는 바위를 넘어서니 좌측에 이정표(←늘재3.5㎞ 1시간20분, 조항산10.1㎞ 1시간30분→)가 있지만 일부글씨가 희미하다. 이정표 뒤에는 의상골쪽으로 내려가는 샛길이 나 있다. 정상석은 북쪽에 바위가 자연적으로 엉성하게 쌓여 이루어진 돌무더기 축대위에 상주시청산악회에서 세워 놓았다. 길은 정상석으로 넘어서도 되고 아니면 좌측으로 돌아가는 길도 있다. 선두와 겨우 연락을 하고 둘이서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13:16~44) 서둘러 출발하여 정상석을 넘어서 내려가다 줄을 한번 잡고 내려선 후(13:48) 평탄한 능선 길을 4분정도 가자 일행들이 기다리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 이번 산행에 매우 중요한 갈림길(좌측은 대간길, 우복동천은 직진해야 한다.)

 

 ▲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 직진하면 나오는 산죽밭 속의 능선산길

13:56~14:00ㅓ자삼거리 공터삼거리 직진하여 완만한 산죽 능선길을 오르내리며 재미를 느낀다.

이정표(←조항산3.7km/↑시루봉 3.1km,회란석 6.9km/늘재 2.6km↓)가 섰는 삼거리는 능선중간에 공터로 되어 있고 좌측 대간길(조항산) 방향에는 많은 표시기가 달려 있다. 쉬고 있던 일행들과 잠시 쉬었다가 능선을 따라 직진(좌측으로 가면 백두대간길이니 주의할 것)하여 산죽밭 길을 걸어간다. 8분정도 갔을 때 우측으로 나서자 청화산이 잘 보이는 전망대 잠시 올랐다가(14:08) 4분을 진행하다 좌측으로 5미터쯤 들어가자 멋진 전망터가 있다.   

 ▲ 가다가 우측에 있는 전망대에서 본 청화산

 

 ▲ 우측전망대에서 속리산 줄기까지 보인다.

 

 ▲ 좌측에 있는 전망대에 들어서는 일행

 

 ▲ 좌측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길 조항산과 멀리 대야산, 중대봉까지...

  

 ▲ 대야산, 중대봉 부분을 줌인해 본다.

 

 ▲ 발밑 우측으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를 내려다 본다.

 

 ▲ 조망의 운치를 더해주는 고사목

14 : 12    전망대 우측 청화산 전망대에 이어 좌측에 전망대에서 대야산쪽 전망을 즐긴다.

이번에는 조항산에서 대야산까지 이어진 능선과 멀리 월악산까지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다. 장쾌한 능선에 짙푸른 수림은 어디에도 풍파를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마냥 경치를 즐기고 싶지만 갈 길이 먼지라 서둘러 등로로 돌아오자 1분도 안되어 우측에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된다.  

 

 ▲ 우측 원적사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

 

 ▲ 삼거리에서 직진하자 내려가는 급경사 길

14 : 15    원적사갈림길 우측 원적사주차장 가는 길에서 직진하여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간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목 참나무엔 ‘원적사주차장으로 가는 길입니다’란 팻찰이 달려 있는 삼거리에서 직진하자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간 후 이어지는 능선길을 가다보니 안부에 도착한다.  

 ▲ 돌들이 보도블록처럼 깔린 도석재

 

 ▲ 도석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

 

 ▲ 도석재에서 좌측으로 가는 희미한 길

 

 ▲ 도석재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자 나오는 안부

 

▲ 길은 능선이 아닌 우사면으로 돌아 간다.

14 : 32    도석재 좌측에 희미한 길과 우측에 확실한 길을 확인하고 직진하여 능선을 오르내림. 

돌들이 보도블록처럼 박혀있는 도석재 안부는 자세히 보니 사거리 길이다.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오른쪽 길은 분명하지만 좌측 길은 희미하여 없는 것 같지만 옛날 족적만 남아 있다. 잠시 휴식 후 출발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니 도석재 같은 안부에 내려섰다가(14:43) 오르막에 이어 길은 우사면길로 돌아가다 큰 바위를 우측으로 돌아올라 능선에 들어서자 암릉길이 이어진다.  

 ▲ 암릉길 시작되자 속도는 더욱 늦어지고

  

 ▲ 오늘 온 길을 뒤돌아 보니 아득하다.

15 : 15~   암릉길 오르막 암릉길을 일행 두 분이 힘들어 하여 선두와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

험하지 않은 암릉에 들어서자 선두는 이미 속도를 내여 가버리고 아침나절 처져 있는 친구 오영석씨와 동남풍님 셋이서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자 봉우리에 올라서지만(15:24) 다시 7~8분을 더 올라서야 Y자 삼거리 길에 다다른다. 

 ▲ 거의 봉우리 정상에 올라서니 Y자 갈림길이 있다.

 

 ▲ 좌측 연엽산으로 내려가는 길

 

 ▲ 좌측으로 내려갔다 능선을 타면서 이어가는 연엽산

 

 ▲ 우측으로 올라가는 봉우리 정상

 

 ▲ 비로소 시루봉이 건너다 보인다.

 

 ▲ 농암면 화산리쪽의 마을도 훤히 보인다.

 

 ▲ 연엽산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북동쪽 모습

  

 ▲ 봉우리의 동쪽 전망터

 

 ▲ 봉우리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길

 

 ▲ 안부에 내려서서 뒤돌아 본다.

 

 ▲ 능선 우측에 붙어 오르는 밧줄

 

 ▲ 좌측 능선에 있는 기암.

 

 ▲ 우측에 보니 수십길 냉떠러지

 

 ▲ 뒤돌아 본연엽산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

15 : 32    연엽산갈림길 봉우리 정상 직전에 좌측 연엽산길을 지나 전망터 봉우리를 넘어선다.

봉우리 정상 직전에 Y자 갈림길이 있는데 좌측 내리막길은 연엽산으로 가는 길이므로 오른쪽 2시방양으로 오르자 시루봉 전위봉인 연엽산쪽의 전망이 좋은 863m암봉에 오르지만 두 분 일행이 자꾸만 쳐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잠시 기다렸다가 바위사이로 안부에 내려섰다 올라서는 길은 능선 우측으로 붙어서 오를 때 Y자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 암반에 깔린 밧줄을 오르면 다시 나오는 Y자길에서 역시 우측으로  오르면 이번에 약간 큰 바위에 달려 있는 줄을 잡고 올라야 시루봉 첫 번째 암봉에 올라선다. 

 ▲ 이 바위를 오르면 중간 봉우리(2번째 봉)

 

 ▲ 두 번쨰 봉우리

 

 ▲ 2번째 봉우리에서 시루봉을 건너다 본다.

 

 ▲ 중간봉에서 본 쌍룡마을쪽

 

 ▲ 두번째 바라 본 연엽산 

 

 ▲ 두번째 봉우리에서 뒤돌아 본 걸어온 길 

 

 ▲ 시루봉을 오르는 길

 

 ▲ 시루봉이 연엽산쪽은 이렇게 절벽이다.

 

 ▲ 시루봉의 삼각점

 

 ▲ 시루봉 표지판은 비스듬이 쓰러져 있다.

 

 ▲ 시루봉 정상 모습.(삼각점과 설명문과 쓰러진 표지판이 고사목과 어울리나?)

15 : 52~59 시루봉3봉 줄을 2번 오르고 암봉2개를 넘어 시루봉에 올라선후 전망바위서 휴식한다.

시루봉을 화북시장이나 그 밖에 멀리서 보면 두 개의 바위봉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올라보니 3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다. 암봉은 모두가 동쪽인 농암면 화산리쪽과 서쪽인 화북면 화산마을쪽이 높이를 알 수 없는 절벽으로 되어 있어 시원하기는 하고 조망도 매우 좋지만 위험도 한 곳이다. 첫 번째 봉우리(868m)를 넘어 내려섰다 중간봉우리(872m)을 살짝 넘어서고 능선이 잠시 이어지다 큰 바위를 올라서니 키 작은 잡목들이 둘러싸인 시루봉 정상에 오른다. 삼각점(속리 304 2003 복구)와 삼각점 설명문이 섰고 정상을 표시하는 표목은 비스듬이 스러져 있다. 봉우리 남쪽 끝으로 내려서자 전망 좋은 바위에서 뒤에 두 분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  

 

 ▲ 시루봉에서 남쪽으로 나서자 전망 좋은 바위가 있다.(가야할 능선도 갈지자로 보인다.)

 

 ▲ 바위 좌측편에는 하산용 밧줄이 달려 있다.

 

 ▲ 광정마을과 화북시내, 그 뒤로 속리산 천왕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 시루봉 전망바위에서 내려서는 밧줄지대

 

 ▲ 두번째 밧줄이 짧아 힘들여 내려서는 동남풍님

 

 ▲ 능선이 아닌 좌측 사면을 돌아 능선으로 들어선다.

16 : 01~03 밧줄2번 바위슬랩에 깔린 밧줄을 2번 내려서서 봉우리를 넘자 좌사면 길을 내려간다. 

하산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그냥 내려갈 수 있을 정도 첫 번째 밧줄을 내려서고 바로 이어지는 2번째는 약간 힘들여 내려선 후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고 우사면길에 이어 좌사면길로 한동안 내려서다 ㅏ자 갈림길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 우측에 갈림림길로 두 분을 내려 보낸다.

16 : 21    ㅏ자갈림길 일행 두 분을 좌측길로 탈출시키고 혼자서 완만한 능선길에 속도를 낸다.

잡초가 무성한 능선안부에 오른쪽 4시 방향으로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기다리자 친구인 오영석씨와 동남풍님이 오신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두 분을 오른쪽 샛길로 탈출하기를 당부하고 나는 서둘러 직진하여 속도를 낸다. 선두에게 연락을 해보니 벌써 장군봉을 넘어서 하산하고 있다고 한다. 길은 평탄하니 쉬운 길로 이어진다. 

 

 ▲ 걸음을 재촉하자 능선중간에 있는 이정표

 

 ▲ 이정표를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갈림길이 있지만 능선따라 직진(좌측길은 화산마을에 내려가는 길인듯)

 

 ▲ 우측 광정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710m봉우리

16 : 26    ㅓ갈림길(이정표) (↑연엽산7km/청화산5.3km↓)이정표를 지나 ㅓ자 길에서 직진한다.

약간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 이정표(↑연엽산 7km/청화산 5.3km)가 세워져 있고 몇 걸음을 가자 좌측으로 내려가는 갈림림이 있는 삼거리리다. 이정표의 연엽산은 이 왼쪽 갈림길로 반송이 있는 화산마을에 내려섰다가 연엽산에 오르는 길을 가르 키는 것 같다. 능선을 따라 직진하여 서서히 오르막을 오르자 봉우리에 오른다.  

 ▲ 내려서는 곳은 전신주가 있는 비티재

 

 ▲ 싸리나무 숲속엔 서낭당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있다.

 

 ▲ 옛날에 밭자리였는 잣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 전신주에 달린 비티재 이정표

16 : 42    비티재 710봉을 비켜넘은 후 50년전에 넘었던 전봇대가 있는 비티재를 지나 오른다.

길은 지도상에 우측에 갈림길이 표시되어 있는 710봉 정상을 길은 좌측(동쪽)으로 비켜가지만 나는 정상에 잠시 올랐다가 넘어서니 내려가니 고개길에 도착한다. 우측엔 조림을 한 잣나무가 있고 전신주에 붙은 이정표(↑회란석 2.5km 현위치:비티재)가 보이며 좌측에는 돌무더기(서낭당터 인 듯)가 있다. 예전 어릴적(10살 전.후)에 아버님에 농암장에서 소를 사가지고 오실 때 마중을 이 재를 넘어 까지 갔던 기억이 나지만 비티재의 모습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때는 전봇대도 없었을 것이고... 하지만 옛날 추억에 잠겨 있을 겨를도 없이 발길을 재촉하여 작은 밋밋한 봉우리 지나 안부에서 올라서는 길 나무에 표시글씨가 붙어 있다.   

 ▲ Y자 갈림길 한배산악회 표시가 달려 있다.

 

 ▲ 평지 같은 683m봉

 

 ▲ 바위옆을 지나간다.

 

 ▲ 내려서자 약간 안부

16 : 52    Y갈림길 안부 Y자갈림길 좌측은 쌍룡공소길이므로 우측 회란석쪽으로 봉우리를 넘음 

표지글씨엔 (↖쌍룡공소(태극)/회란석↑.속리산 태극 분기점. 한배산악회)라고 되어 있다. 속리산태극분기가 있었나? 하긴 누가 또 만들었겠지...  1시 방향으로 직진하여 평지같은 683봉을 올랐다가 평탄한 길을 내려가다 안부에 내려서더니 길은 좌측 사면길로 돌아가 우측 산비탈 급경사를 오른다.  

 ▲ 붉은 화살표를 따라 좌측으로 돌아가 우측으로 오른다.

 

 ▲ 급경사 비탈에 애매하게 현위치가 장군봉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 숲속에도 어김없이 산길을 인도하는 화살표가 있다.

 

▲ 오르막 능선을 올라선다.

17 : 07    장군봉이정표 좌사면을 돌아 오르는 비탈길에 장군봉이정표를 지나 숨차게 오른다.

비탈길 중간쯤에 이정표(↑회란석1.5km. 현위치 장군봉)를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산비탈이 장군봉이라니....  아마 이 비탈을 올라가면 있는 봉우리를 말하는 것이겠지! 비탈길을 오르다 우측 바위에 ‘↑우복동천‘에서 2분정도 올라가자 봉우리 정상에 올라선다.

 

 ▲ 아마 산위에 있는 이 바위가 장군바위인가 보다.

 ▲ 장군봉의 남쪽에  위치한 바위들..

 

 ▲ 소나무도 아름다운 무용을 하는가?

17 : 11    장군봉 조망도 없도 특징도 없는 바위 한 개 있는 암봉 좌측으로 지나자 또 암봉.

시방이 나뭇가지에 가려져 전망이 전혀 없는 봉우리 우측에는 집채만 한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아마 장군바위로 생각되고 여기가 장군봉인가 보다 잠시 더 진행하자 소나무에 어울린 바위가 끝으로 길은 2시 방향(서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하고 곧 너럭바위에 다다른다.

 

 ▲ 내리막을 내려서다 있는 전망바위

 

 ▲ 시원한 조망

 

 ▲ 가까이는 승무산 그 뒤로는 경미산과 백악산이 자리하고 있다.

 

 ▲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청화산을 바라 본다.

 

 ▲ 내려가 보니 늑천정 가든과 회란석이 보인다.

17 : 15    전망암봉 서쪽으로 내려서다 첫 번째 전망바위에서 사방을 둘러보고 서둘러 하산

속리산 주능선과 도장산은 물론 오늘 걸어온 청화산 능선까지 모두 전망할 수 있는 전망바위로 또 오늘 도착할 늑천정가든이 있는 회란석도 내려다보인다. 사방을 두루 살펴 본 후 서둘러 바위 넘어로 내려선다.(바위를 넘지 않고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는 길도 있음) 

 ▲ 기차처럼 긴바위 우측을 지나내려간다.

 

 ▲ 길은 잠시 평탄한 길로 내려가지만

 

 ▲ 곧 이 암릉을 지나가야 한다.

17 : 28    바윗길 기다란 바위 우측 옆을 지나고 심심치 않게 바위가 뒤 엉킨 길을 지나니 내리막

크고 길 다란 바위 우측으로 내려가던 길이 잠시 평탄한길이 이어지다 다시 바위가 엉겨있는 바위길을 넘어서자 급경사 내리막길을 미끄러지 듯 내려간다.  

 ▲ 급경사 내리막에 설치된 가느다란 밧줄

 

 ▲ 또 한차례 밧줄을 지나 내려가고서야

 

 ▲ 잠시 평단한 길이 이어지지만

 

 ▲ 길은 곧 계곡으로 진입하여 개울 좌측편을 내려간다.

17 : 29~32 가는밧줄2번 급경사길에 가는 줄을 잡고 2번이나 미끄러지며 내려가 개울 따라 진행

미끄러운 내리막에 보호용으로 매 놓은 가느다란 밧줄 2곳을 지나자 길은 계곡 물 없는 계곡을 따라 내려가더니 묘가 나온다.  

 ▲ 이 묘 우측을 지나서서 

 

 ▲ 물도 없는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돌아 간다.

 

 ▲ 이 능선 허리길을 돌아 내려가면

 

 ▲ 늑천정가든 배수로에 내려서면서 산길은 끝이 난다.

17 : 44    묘 우측으로 내려가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산능선을 가로질러 돌아넘어 간다.

길 좌측에 있는 묘를 지나자 길은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능선 한곳을 돌아가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소리와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골을 따라 내려가자 봇도랑에 내려선다. 

 ▲ 배수로를 따라 좌측으로 나가

 

 ▲ 산길이 끝나는 부분을 뒤돌아 본다.

 

 ▲ 길은 검은 지붕과 흰색트럭 사이로 나온다.

 

 ▲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길은 농암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다 비스듬이 넘어간 전주에 표시가 있다.

 

 ▲ 전주에서 들여다 보면 아카시아와 싸리나무 사이로 표시기가 달려 있다.

17 : 50    산길끝 산길은 끝나고 늑천정가든 뒤쪽 배수로로 내려서니 좌측이 화장실일세!

늑청정가든 주차장 배수로를 따라 내려가 주차장으로 나서자 좌측에 화장실이 있는 곳이다. 새로 난 끝부분 길은 다른 곳에 있지만 통행이 많지 않아 예전에 다니던 길로 내려온 것이다. 새로 난 입구(출구)는 화장실에서 농암쪽으로 도로를 따라 50여 미터를 가면 비스듬이 넘어진 전봇대에 붉은 화살표가 그려 진 곳으로 표시기가 몇 개 달려있다. 

 ▲ 이 늑천정가든 때문에 옛 늑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실제로 늑천정 사진

 

 ▲ 현판의 전서 첫자 글씨를 알 수가 없다. (뒤에는 정기정(精)자 집실(室)자인데)

 

 ▲ 늑천정을 일명 甁泉精舍(병천정사)고 한다지요.

 

 ▲ 병천정사 기문

 

 ▲ 길에서 늑천정을 올라가는 길

 

 ▲ 늑천정가든 앞 길가에서 뒤돌아 본 장군봉

17 : 51    늑천정 역사 서린 늑천정 이름을 딴 늑천정가든에서 우복동천환종주를 마감한다.

많은 인파로 북적되는 이곳에는 그 옛날 유명한 역사가 숨어있지만 이제는 상혼에 찌들어 빛을 못보고 충절이 서린 늑천정도 퇴락한 체 식당 뒤쪽에 느티나무에 가려 숨어 방치되어 있다. 실제는 늑천정이 아니고 상수리나무력자(櫟) 력천정이라야 맞는데 언제부터 왜 늑천정으로 변경되었는지 궁금하다.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력천정(櫟泉亭): 광정에 있는 정자로 력천 송명흠(宋明欽)의 아버지 송요좌(宋堯佐)가 숙종 29년에 창건했으며,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려 하므로 이조판서요, 사도세자의 스승이던 송명흠이 극간을 하고, 이곳에 은둔하여 제자를 길러 낸 곳이다.   송명흠(宋明欽)은 1705~1768 정조의 스승으로 알려진 력천 송명흠(櫟泉 宋明欽) 선생은 조선후기 학자. 1764년 찬선(贊善) 때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정치문제를 논하다가 왕의 비위를 거슬려 파직당했다. 본관 은진(恩津). 자 회가(晦可). 호 력천(櫟泉). 시호 문원(文元). 이재(李縡)의 문인. 사화(士禍)를 피해 아버지를 따라 옥천(沃川) 등지에서 살았다. 그 뒤 천거를 받아 충청도 도사(都事) ·지평(持平)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했다. 1755년(영조 31) 노모의 간청으로 옥과현감(玉果縣監)이 되었으나 모친상을 치른 뒤 사직했다. 1764년 찬선(贊善) 때 경연관(經筵官)이 되어 정치문제를 논하다가 왕의 비위를 거슬려 파직당했다. 죽은 뒤에 복관(復官)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력천집(櫟泉集)》 《력천소말조진(櫟泉疏末條陳)》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수도 없이 소풍 와서 회란석과 늑천정을 맴돌며 보물찾기 하였던 기억이 생각난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보니 장군봉엔 흰 구름만 한가로이 흩어졌다 모이고 뜨거운 한 여름의 햇빛만 모리위로 내려 쬐인다.

有始有終(유시유종: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이라고 몇 달전에 우복동천환종주를 여기서 시작 했는 3구간을 종주를 하고나니 힘든 숙제를 하고난 개운함은 겪은 사람만 알 수 있으리라. 참석자 여러분 암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행을 하고나서

이번 산행에 밤티재 늘재는 통금구간이라 마음 조렸고 늘재에서 청화산까지 계속되는 오르막에 진땀을 빼고 상당한 힘들어 했으며 도석재에서 시루봉 구간이 상상외로 지루하였고 기대했던 장군봉은 형편없는 조망에 실망이 되었다.   


 

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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