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솔아 (tiskchoi@hanmail.net)
두타산 - 청옥산 그리고 무릉계곡을 가다  

ㅇ 산행일자 : 2006년 9월 2~3일
ㅇ 산행코스 : 댓재-두타산-청옥산-학등 – 무릉계곡(이정표상 거리 약 1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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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2일. 태백산 장군봉에서 발목 골절상으로 수술 이후 몇 회의 시험산행을 거치고 나서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산, 동해시에 직장을 가진 지인이 있어서 이번 여름에 찿아 올려고 마음을 정했던 산이었는데 때마침 충일에서 무박산행 안내를 보고 마음으로는 약간의 위험부담이 되긴 하지만 앞뒤생각 없이 훌쩍 신청을 하고 나니 두타산. 청옥산, 무릉계곡 이라는 지명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9월2일 토요일 밤 10시경, 산악회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모시러 올 터이니 집 앞으로 나와 있으란다.’ 대충 배낭을 꾸리고 환절기 새벽녘에는 좀 추울거란 생각이 들어 자켓을 챙겨 넣을까 하다가 발목도 시원찮은데 배낭까지 무거우면 더욱 힘들 거라는 생각에 최대한 가볍게 짐을 꾸려보지만 그래도 무겁다는 느낌이다.

 

버스에 올라 같이 산행을 하는 일행들을 살펴보니 그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중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만두소녀커플님, 금산119아저씨, 그리고 이름을 모르나 자주 산행을 하셨던 몇몇 분들을 제외하면 거의가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밤 11시 조금 넘어 대전 톨게이트를 빠져 나간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강릉으로 진입하여 동해시를 지나 두타산행이 시작되는 댓재에 도착하니 다음날 새벽 3시40분경이다. 

 

 

댓재에서 산행시작

버스에 내리니 짙은 어둠 속에 댓재상징탑의 조명불빛만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주변은 온통 어둠뿐이다.

재빨리 탑 앞으로 달려가서 사진 한컷 담고 산행준비를 하고 나니 새벽4시 산행시작이다.

이곳의 지명을 왜 댓재라고 이름 붙였을까? 주변을 살펴보면 해답이라도 찿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워낙 칠흑 같은 밤이라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다. 큰 넘을 목 이라고 해서 댓재라고 하는가?

 

댓재상징탑 건너 맞은편으로 오르는 표지가 있다.

댓재에서 두타산까지 6.1Km 라고 표시되어있는 표지판을 따라 앞사람 뒷발만 보고 깊은 밤 어둠 속으로 비탈길을 타고 오른다. 주변은 온통 캄캄하여 도대체 보이는 거라고는 랜턴불빛에 보이는 컴컴한 앞사람 뒷모습뿐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이제야 거의 올라왔구나 싶었는데 표지판이 이상하다. 이곳이 햇댓등인데 다시 아래로 내려가라는 방향표시가 되어있다.

햇댓등이라…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이다.

옛날에 방 안에 옷이나 물건을 걸어두기 위하여 길다란 대나무를 잘라 양쪽에 끈을 묶어 벽에 고정시켜놓고 요즘의 옷걸이 대용으로 사용했던 햇대가 기억난다. 햇댓등 이라면 틀림없이 이와 유사한 형태이거나 지명이 붙은 사연을 찿을 수 있을 텐데 칠흑 같은 어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햇댓등에서 방향을 틀어 안내표지를 따라 다시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통골 3.2km - 햇댓등 0.4km→] 이정표가 있다. 어둠 속이라 그런가? 한참을 걸었다 싶었는데 고작 햇댓등에서 400m밖에 오지 않았단 말인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며 주변으로 불빛을 비추어보니 지금 우리가 천길 낭떠러지 양쪽 벼랑 가운데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햇댓등이 이랬을지 모른다. 이래서 햇댓등 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랜턴을 아래로 비춰보니 캄캄한 어둠에 묻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조용하다

선두인지 중간인지 구분을 할 수는 없으나(후미는 분명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혼자다.

짙은 수림 사이로 올려다 보는 하늘은 어둠 속에서 별들이 반짝이고, 서늘한 솔바람 소리는 으스스한 선율로 폐부를 파고든다. 역시 이곳의 공기가 맑음을 별빛과 피부에 느껴지는 소름의 기운으로 알 수 있다.

기분이 더 좋아진다.

 

이른 새벽 여명이 감돌기 시작할 때쯤 심산유곡을 홀로 걷노라면 지나온 날들, 그리고 느닷없이,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젊었던 시절 좋아했던 글귀들이 떠 오르면서 지나온 삶에 대하여 반성을 하거나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보는 그런 감성에 누구나 빠져들게 마련일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80년대 언저리에 '시인과 촌장'의 덕규가 만든 노래 '가시나무’의 노랫말이 떠 오른다. 아마 그 당시 젊음을 가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 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내 속에 항상 '빈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이 들어오고 머물고, 새로운 지식과 지혜가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든 허겁지겁 담아 넣기가 바쁘게 살아왔다. 자꾸만 채워 넣어야 남에게 뒤지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지금 머리 속에,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빈 껍데기만 가득 차 있지는 않은가?

 

다른 이들이 들어와 쉴 수 있고, 소중한 사람들이 나와 진실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진정한 지식과 지혜가 들어올 수 있는 내 속의 빈 공간.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항상 마음 속의 일부를 비워 두어야겠다.

 

조금씩 여명이 일더니 순식간에 날이 밝는다. 통골재 표지판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두타산 2.2km 라고 표시되어있다.

두타산에서 일출을 보려고 땀 뻘뻘 흘리며 나름대로 열심히 가파른 길을 별로 쉬지도 않고 올라 왔건만 통골재를 조금 지나서니 갑자기 짙은 수림 사이로 온 산야를 붉게 물 들이며 일출이 보인다.

아래에서 보니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한 육산으로 이루어진 곳을 향하여 오르니 정상이다 정상에는 무덤인 듯한 커다란 묘지가 있고 약간 뒤편에 커다란 타원형의 바윗돌로 된 두타산(1,353m) 표지석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변을 돌아보니 저 멀리 응봉산쯤인가? 산 아래 솜털 같은 운해가 낮게 깔려있는 것이 마치 바다를 보는듯한 모양이다 

두타산에관한 자료를 찿아보니 아래와 같다.

강원도 삼척시의 미로면과 하장면, 동해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 상의 댓재[竹峙·810m]와 백복령(百福嶺·780m) 구간의 주산 두타산(頭陀山·1,352.7m)은 이 산에 드는 것 자체가 두타행인 청정 도량의 명산이다.
두타산의 ‘두타(頭陀)’는 범어(梵語) dhuta의 음역으로서, 번뇌의 티끌을 털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아니하며 청정하게 불도를 수행하는 것을 이른다. 후세에는 산야와 세상을 순력하면서 온갖 신고를 인내하는 행각의 수행, 또는 그러한 수행자를 지칭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두타산은 서울에서 원거리에 있는 동해가의 영산으로서 고도 1,300~1,400여m의 큰 산세를 이루고, 그 동북쪽 두타동천에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선경을 이룬 무릉계곡을 품에 안고 있는 심산유곡의 명산이니, 이 산에 드는 것, 이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바로 두타행이라 여겨진다. 두타 12행 중 그 첫 번째 행이 바로 인가를 멀리 떠나 산숲·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는 것, 곧 아란야처(阿蘭若處)에 머무는 것이다.
조선 중기에 삼척부사(三陟府使)를 지낸 성암(省菴) 김효원(金孝元·1532-1590)은 ‘두타산일기(頭陀山日記)’에서 명산으로서 두타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천하에 산수로서 이름난 나라는 우리나라만한 데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산수로 이름난 고을은 영동만한 데가 없다. 영동의 산수 중에서도 기이한 형승으로 이름난 것은 금강산이 최고이고, 그 다음이 두타산이다. 산의 근원이 백두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달려와 철령이 되고, 금강산이 되고, 대관령이 되었으며, 구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은 계곡이 되고, 우뚝 솟은 것은 산봉우리가 되었다. 우뚝 선 것, 급하게 기울어진 것, 높고 험한 것, 탄탄하게 뻗은 것 거의가 한두 가지 형상으로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두타산은 실로 삼척부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골짜기의 깊음과 수석의 기이함이 인구에 회자된 지 오래되었다’(성암선생유고 권2).

이른 아침 햇살이 완전히 퍼지기전의 기온이 상당히 서늘하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느라 자켓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비옷 상의를 꺼내어 입으니 한결 따뜻하다.

주변을 둘러본다. 해가 떠 오르고 있는 방향아래 동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반대방향으로는 청옥산과 멀리 백두대간을 잇는 능선 자락들, 저 멀리 산자락 아래로 낮게 깔린 하얀 운해들이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가까이 있는 산 아래로는 바람에 날리는 안개들이 숨가쁘게 밀려왔다가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숨을 돌린 선두그룹 들은 청옥산을 향해 출발하고, 한참을 기다리니 후미그룹이 당도한다.

후미그룹과 어울려 식사를 마치고 회원들 기념사진 한 컷씩 담고 청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 두타산과 멀리 보이는 서쪽의 청옥산을 길게 잇는 의가등(衣架嶝)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지고 박달재, 문바위재 에서는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 한다.
(청옥산과 두타산을 잇는 능선은 해발 1,300여m의 백두대간 능선길로서 마치 거대한 횃대 같다고 하여 옷걸이 고갯길이라는 의미로 의가등(衣架嶝)이라고도 부른다.)

 

청옥의 손짓에 이끌려 정신 없이 걷다 보니 또 혼자다.

설레임이란게 이런 것인가?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설레임도 있지만 이렇게 가보고 싶었던 산과 길도 참으로 많은 설레임을 준다. 횃대처럼 펼쳐진 평평한 능선을 따라 깊은 상념에 잠겨 한참을 걷다 보니 박달재 표지판이 있다. 여기서부터 청옥산까지 1.4km라고 표시되어있고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다.

이곳에 당도하니 앞서가던 일행들이 모여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여기서 잠시 목을 축이고 이야기 속에 파묻힌 일행들을 뒤로하고 청옥산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두타에서 청옥으로 가는 길은 완만하게 경사가 이어지는 대체로 평평한 육산이다. 순간 순간 주변을 내려다 보면 양쪽으로 깊은 계곡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그야말로 심산유곡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문바위재를 지난다.(이정표에는 청옥산 1.1km라고 표시되어있다)

 

왜 문바위재라고 이름 붙였을까? 지나면서는 의아해 했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학등(고개)을 넘어가는 재(峙.嶺)의 초입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고 문바위재 라고 붙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 청옥까지는 제법 가파른 고갯길이 이어진다. 오르는 중간중간 멧돼지인지 약초꾼들 소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저기 군데군데 수풀들이 파 헤쳐져 있다.

 

가파른 비탈길을 몇 번씩 쉼 질을 하며 오르다 보니 완만한 평탄길이다. 여기가 학등이다. 앞서간 일행 몇 분이 쉬고 있다.

“청옥산에는 다녀 오셨습니까?”

그렇단다. 약 50m만 더 가라고 하신다.

 

 

청옥산이다. ???? 여기가? 이곳이 청옥산 정상? 평평하게 파 헤쳐진 곳에 달랑 헬기장 하나 있고 주위는 온통 갈참나무들에 둘러 쌓여 주변조망을 전혀 할 수가 없다. 뒤쪽 옆에 청옥산 1,403m라는 표지석 만이 달랑 세워져 있고 그나마 주변은 온통 노오란 금마타리꽃과 분홍빛 이질풀꽃이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조금 위안이 된다.

학등으로 되돌아 나오니 아직도 일행들이 고맙게도 기다려주고 있다.

학등(鶴嶝)...

그대로 직역해 보면 학 모양의 고개란 뜻일 듯 한데, 등에 앉아서 보니 전혀 모양새를 알 수가 없다.

여기서 후미일행들을 기다리며 주변을 돌아보니 고사목 위 높은 곳에 지금은 좀처럼 보기가 쉽지 않은 잎이 긴 고란초과의 일엽초 양치식물이 이끼에 덮혀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또 그 옆에는 단풍나무 표피 속에 포자를 퍼뜨려 싱그럽고도 선명한 색깔의 우산처럼 생긴 버섯이 줄지어 자라고 있다.

(후미회원을 인솔해온 회장이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은 거의가 식용이라고 하신다)

또 옆으로 눈을 돌리면 무리 지어 피어있는 푸른빛의 보라색 투구꽃이 유난히도 탐스럽게 피어있다.

 

 

하산

왁자지껄 요란스럽게 후미그룹이 도착하는 것을 보며 학의 등을 타고 무릉계곡방향(6.7km)으로 하산을 한다.

하산방향으로 두타산에서 내려 뻗은 우측계곡너머에는 쉰움산(688m)이 자리하고 있고, 학등 산줄기와 박달골 계곡의 물이 흘러내려가는 건너편 비탈면은 크고 작은 암벽 병풍들이 금강산에 버금가는 비경을 연출하면서 선경의 무릉을 보는듯하고, 이 지류를 타고 흘러내린 물이 하류에서 좌측의 고적대, 망군대 계곡에서 흘러내린 지류와 합수하여 무릉계곡을 이루고 있다.

 

좌 우측 비경에 빠져들어 내려오다 보니 또 혼자다. 내가 너무 빠른건지 너무 느린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갑자기 발목이 뻐근해지며 경미한 통증이 온다. 발목을 조심하느라 나도 모르게 너무 힘이 들어갔는지 발가락에 물집이 터져 쓰라리다.

갑자기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면서 시야에 계곡너머 맞은 산의 암벽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같은 제법 넓은 바위가 나온다. 신비스럽고도 황홀한 대자연의 경관을 초라한 카메라에 몇컷 담아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히 흘러가는 맑은 구름에 눈을 맞춘다. 마음마저 여유로움을 느낀다.

 

 

너무나도 유명한 무학대사의 스승이신 나옹선사의 선시가 떠 오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말없이 살라 하네 푸르른 저 산들은

티없이 살라 하네 드높은 저 하늘은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 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 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세상을 살아가며 물욕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만 비로소 도의경지에 다다르고 세상을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을진대 그게 어디 생각처럼 쉬운 일인가? 여기에 앉아있으면 그렇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이곳에서 한걸음만 옮기면 또다시 가득 차는 마음의 물욕들이 아니던가?

 

멀고도 지루한 학등 능선의 하산길은 가파르게 이어지고, 발목의 통증과 껍질이 벗겨진 발가락은 계속 쓰라린다.

이곳 표지판에 적혀 있는 거리측정은 실제 도상거리가 아닌 직선거리로 표시되어있는지 가도가도 끝이 없다.

드디어 저 멀리서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무릉계곡을 이루는 한 지류의 계곡에 당도하니 넓고 깨끗한 반석위로 시원한 물줄기가 군데군데 소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다른 산악회원들이 시원하게 몸에 저린 땀을 닦아내고 있다.

 

“…이런 맛이야”

시원하다. 여름산행은 바로 이런 맛으로 산행을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약 2.2km만 더 내려가면 관음사를 지나 관리사무소 주차장이다.

관음사위 계곡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무릉계곡은 과연 무릉이라고 이름 붙일 만 하다. 넓은 계곡과, 충분한 유수량 그리고 하얀 암반과 반석들이 어우러진 계곡주변으로는 깍아지른 형형색색 암벽 단애들의 나체를 살짝 살짝 가려주고 있는 노송 군락들…

 

 

 

관음사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약 13시 전 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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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발목수술이후 오늘로 우리 산악회와 함께한 3번째 산행이다.

금산 119 내외분, 만두소녀내외분, 그리고 몇몇 분을 제외 하고는 처음대하는 회원들이 많아 아직은 생소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산행 중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걸었다. 의식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자가 된다.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 주말이면 함께 어우러져, 산에 대하여, 나무에 대하여, 야생화에 대하여, 기타 인생사에 대하여 즐겁게 이야기하며 호탕한 웃음 웃어가며 산행을 하던 사람들, 정천님, 낭만파님, 꽃을든남자님, 중절모님 등등 함께 했던 여러 사람들이 새삼 그리워진다. 다시 함께 모여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2006. 9.4. 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