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양평)


 

                                              *산행일자:2008. 10. 2일(목)

                                              *소재지  :경기양평

                                              *산높이  :소구니산800m, 옥산578m, 청계산658m

                                              *산행코스:서너치-소구니산-농다치-옥산-청계산-국수리6번국도

                                              *산행시간:9시-17시57분(8시간57분)

                                              *동행    :나홀로

 


 

  작년부터 다시 시작한 용문산 일원의 말산탐방은 어제 청계산을 마지막으로 끝났습니다.

이번 탐방 길에 처음 오른 산은 용문산 북쪽 능선의 나산, 장락산 및 왕터산과 중원계곡 위의 중원산, 봉미산 맞은 편의 소리산,  그리고 이번에 오른 옥산이 전부이고 나머지 십 수개 말산들은 이미 한번 오른 산들이어서 이번 탐방에서는 예전처럼 길을 잘 못 들어 생고생을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용문산과 21개의 말산탐방을 모두 마치며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용문산은 역시 산세가 수려하고 장대해 과연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하다는 것과 이렇게 좋은 산이 서울에서 가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는 것입니다.


 

  제가 5년 만에 청계산을 다시 오른 것은 당시에 작성 못한 산행기를 새롭게 남기고 싶어서였습니다. 산행기를 쓰는 것은 산을 한 번 더 만나보는 것입니다. 산은 오를 적마다 새로운 면모를 선보이기에 한 산을 여러 번 올라도 그 때마다 산행기의 내용이 다릅니다. 그래서 지리산처럼 큰 산들은 여러 개의 산행기가 쌓여야 그 윤곽이나마 어림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행기를 쓰지 않고 그냥 오르는 분들은 설사 산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더라도 산에서 내려오면 새까맣게 잊게 됩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오른 산들의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어 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 번도 눈살 찌푸리지 않고 언제나 저를 즐겨 맞는 산들에 산행기를 써서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아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400편이 넘는 산행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제 블로그를 보노라면 늦었지만 그 때 산행기를  잘 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산행기 작성으로 얻는 소득이 또 하나 있습니다.

산행기를 쓰는 동안 제 마음이 넉넉한 산을 닮아가 자연 즐겨 쓰는 말과 글이 넉넉하고 모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악성 댓글이 유명연예인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요즈음 자칫 인터넷에 잘 못 빠지면 자기도 모르게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 있다 싶어 평소 우리말과 글을 알맞게 골라 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확하고 넉넉한 말과 글을 갈고 닦기 위해서라도 사전을 찾아가며 적합한 우리말을 골라서 산행기를 쓰는 일을 계속할 뜻입니다.


 

  아침9시 서너치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청평 행 첫 버스가 8시30분에 양평을 출발해 서너치 고개마루에 올라서는데 20분가량 걸렸습니다. 하늘은 쾌청했고 바람은 찼습니다. "중미산3.3Km"안내판 앞에서 바로 위 숲속으로 들어선 후 절개면을 비껴 올라 풀들이 무성한 공터의 능선에 다다랐습니다. 정남쪽으로 이어지는 왼쪽 길로 잠시 내려섰다가 이내 시작된 오름 길이 반시간 넘게 계속되어 소구니산 어깨능선까지 이어졌습니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가을풀꽃들이 참으로 청아했고 왼쪽 아래 산자락을 에워싼 운해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넉넉했습니다. 길 건너 북쪽의 중미산 역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똑 바로 서있어 도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9시58분 해발800m의 소구니산을 올랐습니다.

서너치고개에서 300m가까이 고도를 높여 다다른 소구니산 어깨능선에서 높낮이의 변화가 거의 없는 능선을 7-8분 간 걸어 정상석이 서있는 소구니산에 올랐습니다. 전망 좋은 곳을 고르고자 정상석을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가 세운 것 같은데 이곳에서도 동북쪽의 유명산과 그 너머 용문산의 군사기지만 보일 뿐 다른 쪽으로는 조망되지 않았습니다. 유명산과 중미산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소구니산은 한강기맥이 지나지 않는다면 그 이름을 알리기가 쉽지 않겠다 싶은 것은 이번 산행으로 이 산을 세 번째 올랐어도 그저 조용하다는 것 외에는 이 산만의 독특한 매력이나 특이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구니산에서 서너치 쪽으로 3-4분간 되돌아가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농다치고개로 향했습니다. 다람쥐가 숨바꼭질하는 활엽수 숲길을 15분가량 내려가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와 삼각점이 서 있는 660.4봉에 이르자 왼쪽 아래로 벼들이 무르익은 누런 들판이 보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15분간 더 걸어 장병들이 주위의 나무들을 베어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11시57분 서너치 고개보다 70-80m 가량 낮은 농다치고개로 내려섰습니다.

헬기장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 37번 국도에 내려서기 직전에 오른 쪽에 서 있는 송전탑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 청계산까지 길안내는 송전탑이 맡아주어 진행방향을 어림잡기가 한결 쉬웠습니다. 길섶에 쑥부쟁이와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농다치는 시집가는 딸자식의 농을 지고 이 고개를 넘으면서 하도 길이 좁아 여기저기에 농이 부딪혀 많이 상했다 하여 붙여진 고개이름이나 이제는 국도가 지나고 간이음식점 몇 개가 들어설 정도로 고개 마루가 넓어져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차도 건너 간이음식점 뒤 시멘트 길로 올라가다 바로 오른 쪽으로 꺾어 한강기맥 마루금으로 올라섰습니다. 노루목 행 이정표가 세워진 능선에서 빵을 들으며 반시간 가까이 쉰 후 동남쪽의 말머리봉으로 향했습니다. 


 

  12시3분 해발578m의 옥산에 올랐습니다.

나무계단 길을 걸어 내려가 다다른 노루목의 안부사거리에는 의자가 놓여있었습니다. 아직도 찻길이 나있지 않아 옛 고개 그대로인 노루목에서 직진하여 무명봉 하나를 넘은 후 정상석이 세워진 좁은 공터의 옥산에 오르는데 20분이 걸렸습니다. 선채로 가쁜 숨만 고른 후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보지 못하고 곧 바로 말머리봉으로 향했습니다. 왼쪽으로 한화콘도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똑바로 내려가 송전탑을 지나면서 서쪽 멀리 높이 보이는 청계산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는데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넓은 산책로는 옥산 출발 반시간 후에 다다른 해발500m의 말머리봉에서 끝났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 길은 다시 좁아졌습니다. 말머리봉에서 내려선 말고개는 전형적인 옛 고개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안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침 한때 냉랭했던 날씨가 풀려 기온이 상승했는지 말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여름 내내 끈질기게 저를 쫓던 미물들이 다시 집적거렸습니다.


 

  13시34분 삼각점이 박혀있는 540봉을 지났습니다.

말고개에서 540봉으로 오르는 길은 농다치에서 말머리봉까지의 산책로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좁은 길에 풀숲을 지나느라 잡풀들이 심심찮게 얼굴을 때리기도 했지만 몇 곳에서 파란 투구꽃이 선을 보여 역시 오지를 지나는 기맥길이다 했습니다. 나뭇잎에 가려 기대했던 한강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답답했습니다. 오름 길에 땅바닥에 지천으로 깔린 도토리를 보자 소구니산에 걸린 스텐리스 판의 “줍는 손 고운 손 버리는 손 미운 손”이라는 한 슬로건이 생각났습니다. 이 문구 내용대로 땅바닥의 도토리를 전부 줍는다면 다람쥐가 사람 손을 고운 손으로 칭찬할 리가 만무할 텐데도 “바르게살기운동 진천읍위원회”에서 이 멀리까지 와 이런 표어를 내 걸은 것은 한 우리 말이 얼마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를 간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여나 누가 이 표어를 보고 옳다구나 하고 산 속의 도토리를 전부 주워간다면 그는 이 산의 산식구들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편리하게 문구를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왼쪽으로 한강이 보이는 밋밋한 540봉에서 평탄한 길을 따라 7-8분간 걷다가 몇 걸음 내려서면 오른 쪽 아래로 청계산 행 좁은 길이 갈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갈림길을 그냥 지나친다해 신경이 쓰였습니다.


 

  14시53분 왼쪽 아래로 중동리행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540봉 갈림길에서 북동쪽으로 내려서는 기맥 길을 따라 거목의 오리나무(?)가 자리한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 길바닥에 떨어진 밤을 주웠습니다. 지천에 깔린 것이 도토리여서 제가 밤을 좀 줍는다고 해서 산식구들이 배 골릴 일은 없겠다 싶어 한두 톨 줍기 시작하다가 아예 배낭을 내려놓고 10분 가까이 주웠더니 한 움큼이 되었습니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다다른 안부에서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산복숭아들로 나뭇가지에서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도토리보다 훨씬 둔탁했고 바닥에는 벌써 떨어진 복숭아들이 즐비했습니다. 안부에서 조금 올라서자 차가 충분히 다닐만한 임도가 오른 쪽 아래 정배리(?)로 나있었습니다. 가파르게 올라선 무명봉에서 가져간 맥주 한 캔을 들이키며 15분가량 쉰 후 다시 15분 간 걸어 “중동리등산로입구1,500m/청계산1,920m/옛길/옥산”의 표지목이 세워진 해발430m대의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는데 이 고개가 지도상의 된고개인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거리가 2Km가 다되고 해발고도를 200m이상 높여야하는 청계산에 다다르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발걸음을 조금 빨리했습니다.


 

  15시53분 해발 658m의 청계산에 올라섰습니다.

된고개에서 반시간 넘게 걸어 청계산 정상을 850m남겨 둔 무명봉에서 잠시 머무르며 왼쪽 바로 아래 송전탑신설 공사장을 지켜보았습니다. 제가 십 수 년을 살았던 과천에서는 주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고압전선이 지나게 되면 과다한 전자파 피해가 우려된다며 시당국에서 한전 측에 지중화공사를 강력히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공사장을 지켜보자 말이 쉬워 지중화공사이지 그러다가는 멀쩡한 산을 다 파헤쳐 망가트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과연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가름되지 않았습니다. 남은 거리 850m 길이 경사가 급하고 암봉도 비껴가는 등 모처럼 단조로운 산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몇 봉우리를 지나 이제 다 올랐다 했는데 청계산은 몇 십m 앞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넓은 공터의 헬기장이 자리한 정상에 올라서자 내리쬐는 햇볕이 여간 따갑지 않아 한강과 유명산 등을 서둘러 사진 찍은 후 곧바로 자리를 떴습니다. 2003년 11월 이 산을 처음 올랐을 때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 스산했던 기억을 일깨우며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16시45분 509봉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소구니산에서 시작된 한강기맥 따라 걷기는 청계산에서 끝이 나고 하산 길은 북쪽으로 이어지는 기맥 길과 정반대쪽인 남쪽의 국수리로 향했습니다. 정상에서 5-6분을 걸어 다다른 묘지 위 바위에서 10분간 쉰 후 정남쪽으로 계속 진행해 해발450m까지 고도를 낮추었습니다. 내림 길에 고개를 반짝 들고 길을 막은 살모사 한 마리를 만나 움찔했습니다. 올 한해 청계산에서 잘 지내고 월동준비를 하러 몸을 숨기기 전에 작별인사차 저를 기다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숲속으로 자리를 비켜준 뱀에 움찔해 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청계산 정상 출발 반시간이 지나서 노송 한그루와 삼각점이 박힌 509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봉우리가 이번 산행의 마지막 전망지여서 잠시 숨을 고르며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정상에서 만난 햇살의 따가움은 많이 누그러졌고 저녁햇살이 내려앉은 황금 빛 논 뜰이 참으로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17시57분 6번 국도가 지나는 국수리에서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509봉에서 20분 남짓 걸어 해발300m 가량 되는 안부사거리로 내려섰습니다. 왼쪽 아래로 정자동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에서 바로 앞의 봉우리를 오르는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 쪽 우회 길로 들어선 것은 약수터가 있어서였는데 십 수분 후에 지난 약수터는 주변정비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물맛도 별로였습니다. 잣나무 숲에 자리를 튼 어둠이 세를 더해가기 전에 일찌감치 청계산을 빠져나올 만큼 이번 산행은 시간이 넉넉해 모처럼 하산 길이 느긋했습니다. 시멘트 길로 내려선 후 20분을 더 걸어 국수리에 다다랐습니다. 맥주 한 캔을 사 든 후 정류장으로 옮겨 강변 행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이제 제가 오른 용문산 일원의 산들은 모두 산행기로 남겼습니다.

앞으로 한 두 번은 산행기를 작성하지 않고 용문산을 올라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애써 머리에 담아오는 산행이 아니고 가슴에 품어오는 산행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순간의 아름다움은 사진으로 담아오면 될 것입니다. 그도 아니면 카메라는 버려두고 그냥 가슴에 새겨놓으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델 서기를 거부하는 산새들이 혹시라도 제게 전신을 드러낼지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말과 글로 산새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진정 불가능한 것이라면 가슴을 열고 마음과 마음을 통해보는 것이 더 빠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