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4. 15일

               *소재지  :경기 남양주

               *산높이  :철마산711미터

               *산행코스:내방동금단골입구-금단이고개-786.0봉-철마산

                               -과라리고개-팔현2리버스종점

               *산행시간:9시28분-16시48분(7시간20분)

               *동행       :경동 동문산악회 회원

               


 

  산을 넘는 길을 고갯길이라 하고 고갯길 중 가장 높은 지점을 고개 마루라 합니다.

이제껏 우리나라 역사가 순탄했다면 고갯길은 바로 새로운 문화교류의 실크로드이고 고개 마루는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나는 통섭의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최근까지 우리나라 역사는 그 반대여서 고갯길은 피난길이었고 고개 마루는 통곡의 현장이었습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 병날 아리랑고개를 넘는 모질게도 애절한 사연들이 단장의 미아리 눈물고개까지 그대로 이어져왔음은 우리 선조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고개가 고난과 절망만을 상징해 왔기에 조상들은 쌀이 떨어지고 보리가 여물기 전 얼마동안 초근목피를 해야 했던 춘궁기를 보리고개라 불렀을 것입니다. 


 

  어제는 철마산 산줄기를 가로 넘는 과라리고개에서 작가미상의 시 “과라리아리랑”을 읽고 난 후 작은 돌 하나를 주워 고개 마루에 자리한 아담한 돌탑 위에 던져 놓았습니다. “산다는 게 살아간다는 게 모두 구비 구비 돌아 산마루턱에 다다르는 산길과도 같아서” 많이 힘들어하는 뭇 사람들에 “그래, 많이 힘들 재? 여기 잠시 쉬었다 가거라. 긴 숨 한 번 크게 들이켰다가 쭉 내뱉어보아라. 세상사 그리 부러운 님 없을게다.”하며,  이름모르는 작가가 “그래도 어디 찐한 데가 있거든 여기 과라리 고개턱에 무심한 돌 하나를 던지거라.” 하고 권해왔습니다. 이 분이 권하는 대로 저도 돌 한 개를 던져 놓은 후 고개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고개란 우리선조들에는 굽이굽이 돌아 올라서야 하는 고난의 마루턱이자 산 오름의 종착점이었지만, 일삼아 종주산행을 계속해온 제게는 산마루에서 내려서는 편안한 쉼터이자 다시 산마루로 올라서는 희망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자, 다시 시작하거라. 가는 길에 행여 고비를 맞거든 스스럼없이 이제 나를 밟고 지나가거라. 무심하게 그냥 무심하게”라고 끝을 맺는 작가의 속삭임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아침 9시28분 금단골 입구의 공터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경동고교 동문들과 두 번째로 나선 한북천마지맥 종주구간은 금단이고개에서 과라리고개까지의 철마산 구간으로, 첫 번째 주금산 구간보다 코스가 훨씬 짧아 모처럼 느긋했습니다. 청량리역을 7시55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를 타고 마석역으로 가는 중 50대 중반의 남자들 몇 사람이 고교시절 수학여행 이후 30여년 만에 친구들과 처음으로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이라며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고 여행길에는 옛 친구 같은 기차가, 그것도 KTX가 아닌 무궁화호가 더 잘 어울린다 싶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마석역에서 하차해 시골 역사와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 역무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인근 터미널에서 금단골입구까지는 몽골문화촌 행 관내버스로 옮겼는데 기사분의 친절로 정확히 금단골 입구에서 하차할 수 있었습니다. 공터에 세워진 안내판을 일독한 후 잣나무 밭으로 나있는 산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도착한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올라선 것이 계획했던 금단골 계곡산행을 못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였음을 나중에 금단이고개에 올라 확인했습니다. 오른쪽 임도 길을 따라 수분을 걷다가 왼쪽 오름길을 따라 걸어 능선으로 올라서기까지 입구를 출발해 20분이 걸렸습니다.


 

  10시40분 1차 지맥종주를 마쳤던 금단이 고개에 다다랐습니다.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파른 길을 쉬지 않고 올랐습니다. 아침안개는 완전히 가셨지만 햇살이 퍼지지 않아 비탈길을 올랐어도 그리 땀이 나지 않았습니다. 공터에다 차를 주차한(?) 능선 길 바위에서 쉬어가는 부부 한 팀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을 앞서갔습니다. 두 헬기장 중간쯤에 우뚝 솟은 543봉에 올라 지맥 길과 합류, 왼쪽으로 내려서 헬기장을 지난 후 금단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으며 10여분을 쉰 후 2차 지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금단골계곡 길이, 오른 쪽 아래로 팔야리 골프장 길이 나있는 안부사거리인 금단이고개에서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폐타이어로 교통호를 만든 775봉까지 결코 만만찮은 된비알의 오름길이 계속되어 천천히 올랐는데도 등에 땀이 배었습니다. 능선 길 중간 중간에 소북이 쌓인 낙엽 위를 걷는 소리는 가을철이 아니어도 사각사각 여전히 리드미칼했습니다.


 

  11시51분 철마산 최상봉인 787봉에 올라섰습니다.

폐타이어의 775봉에서 8분을 더 걸어 헬기장이 들어선 787봉에 다다랐습니다. 넓은 공터의 헬기장 한 끝에 깔끔한 표지석이 세워진 이봉우리를 철마산으로 표기한 산행기가 많이 있지만 국립지리원에서 펴낸 지형도에는 남쪽으로 한참 떨어져있는 711봉을 철마산으로 표기해  혼란스러웠습니다. 대부분의 산들은 주봉과 상봉이 일치하지만 이 산뿐만 아니라 주왕산이나 노추산처럼 서로 일치하지 않은 산들도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경우 공인기관에서 펴낸 지도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제 산행기에는 작은철마산으로도 불리는 711봉을 철마산으로 적어놓습니다. 지난 10월에 오른 축령산과 서리산이 서쪽 건너에 자리 잡았고 그 반대편으로 한북정맥 상의 죽엽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면으로 해발고도 711m인 철마산 정상이, 그 뒤 왼쪽으로 조금 비껴 천마산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저희들보다 먼저 오른 부부 한분에 부탁해 저희 일행 모두를 사진 찍고 나서 787봉을 떴습니다.


 

  12시25분 733봉에 도착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787봉을 출발해 안부로 내려섰다가 또 다른 헬기장의 765봉에 이르는 동안 양지를 찾아 나선 양지꽃들이 길 섶에 즐비하게 피어있어 지맥길이 환했습니다. 철쭉과 물푸레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산길을 걸어 765봉에 올라섰다가 가파르게 내려서는 중간에 오른 쪽으로 절골로 내려서는 길이 갈라지는 절고개를 지나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철마산에서 점심을 들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대폭 당겨서 733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여럿이서 함께 하는 산행의 즐거움 중 단연 으뜸인 것은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혼자서 산행할 때는 20분을 넘기지 못하는 점심시간이 이번에는 1시간을 꽉 채운 것은 이것저것 준비해온 음식은 물론 이런저런 주고받는 이야기들도 많아서였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러도 춥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충분히 따뜻해서 가능했습니다. 오랜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13시25분에 철마산으로 향했습니다.


 

  14시8분 해발711m의 철마산 정상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733봉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밧줄을 잡고 직벽에 가까운 암벽 길을 내려섰는데 눈이 쌓인 한 겨울에는 거꾸로 올라서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안부로 내려선 다음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개 넘어 태극기가 펄럭이는 암봉에 도착했습니다. 오른 쪽 산 밑에 자리한 철마부대에서 타임캡슐을 묻어놓고 10년만인 2013년에 열어보겠다는 내용을 받침대 철판에 적어놓았는데 내용물이 뭔지는 몰라도 그 기간이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옆의 정상에는 삼각점만 있을 뿐 표지석이 따로 없어 이 봉우리를 철마산 정상으로 알아볼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싶었습니다. 철마산성의 흔적을 눈여겨보지 못한 채 정면으로 보이는 578봉을 향해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15시37분 과라리고개에 도착해 한북천마지맥의 2번째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얼마동안 낙엽이 쌓인 포근한 길을 걸었습니다.  삼거리안부인 쇠푸니고개에서 조금 더 걸어 578봉을 왼쪽으로 에돌았습니다. 다시 만난 능선 길에서 왼쪽으로 90도를 확 틀어 그동안의 남진을 끝내고 동진 길에 들어섰습니다. 578봉에서 과라리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길에는 여기 저기 만개한 연분홍 꽃 진달래가 노랑색의 생강나무 꽃들과 어우러져 꽃동산을 연출해 볼 만 했습니다.  과라리고개로 먼저 내려서서 도가니가 아파오기 시작해 뒤쳐져 쉬고 있는 한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돌탑위에 세워놓은 시문 “과라리아리랑”을 정독했습니다. 어느 분이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고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시여서 이 산행기 둘째 단락에 시 몇 구절을 인용해 옮겨놓았습니다.


 

  16시48분 팔현2리 버스종점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과라리고개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오남리저수지 방향으로 하산했습니다. 고개출발 20분 후 쯤 다다른 계곡에 흐르는 물로 손을 닦으며 십 수분을 쉬었습니다.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선 한 아주머니로부터 저녁 5시에 오남리로 나가는 마을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편안한 쉼을 끝내고 하산 길을 이어갔습니다. 계곡을 건너 큰 임도로 들어섰고 몇 분 후 산속의 요새 같은 집 한 채를 지나 마을의 시멘트길로 들어섰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10분 가까이 걸어 내려가 개천 가 쉼터에 도착해 옛 마을이름이 과라리인 팔현2리 버스 종점임을 확인 한 후 하루산행을 반추했습니다.  


 

  나뭇가지에서 막 돋아난 연두색의 잎파랑이들이 새 생명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4월의 한 가운데 서서 이제껏 걸어온 고개의 의미변화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옛 조상들이 힘들게 살았던 고난의 시대에는 고개는 갈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지만 모두의 노력으로 웬만큼 올라선 고개는 앞으로는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고 새로운 산마루로 올라서는 디딤돌로 변화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금단이고개에서 짊어진 2구간 종주의 짐을 벗어 놓은 과라리고개에다 돌 하나를 던져놓고 하산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에 이 고개에 다시 올라 3구간 종주를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