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산 산행기 (060121)

                  

   오늘의 목적지는 구미에 있는 ‘천생산’이라고 한다. 평소 구미에 있는 산으로는 금오산 밖에 알지 못하던 내게 그 이름은 금시초문이다. 경부고속도로 구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공단 방향으로 향하다 보니 멀리 아파트와 건물들 위쪽으로 애벌레가 기어가고 있는 듯한 모습의 산이 눈에 뜨인다. 산의 모습이 한 눈에 보아도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저 산이 바로 하늘이 낳았다는 천생산이다.

  

   천생산 삼림욕장 표지판을 만나 좌회전을 하여 조금 더 들어가니 나무로 만든 십여 개의 장승이 반가운 듯 웃고 서 있고,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는 산의 모습이 더욱 특이하게 다가온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천생산)

  

   천생산은 높이 407m의 낮은 산이나 그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단다. 즉, 동쪽에서 보면 하늘 천(天)자로 보이고 정상이 일자봉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낳은 산이라 해서 ‘천생산(天生山)’, 함지박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방티(대야의 경상도 사투리)산’, 박혁거세가 처음 산성을 쌓았다는 전설 때문에 ‘혁거산’, 한일자로 보인다 해서 ‘일자봉’,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주차장 → 산림욕장 → 거북바위 → 천생산(미득암) → 통신바위 →  천생산(미득암) → 천룡사 → 주차장> 약 4km 정도에 이르는 가벼운 길이다. 남편도 정상까지 가는데 한 시간도 채 못 걸릴 거라고 한다. 


   천룡사로 오르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왼쪽 산길로 난 등산로 표지판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길은 넓고 좌우에 소나무가 울창한 것이 산림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하여 마치 잘 다듬어 놓은 정원석처럼 생긴 돌들이 예쁘게 배치되어 있는 아름다운 길이 펼쳐진다. 그 돌들 사이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 미안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다. 그렇게 잠시 올라가니 거북바위가 나타난다. 마치 사람이 만들어 놓은 듯 진짜 거북의 형상을 한 바위다.

 

 (거북바위)

  

   거북바위를 지나니 나뭇가지 사이로 천생산의 병풍같이 펼쳐진 암벽들이 언뜻언뜻 보이다가 어느 순간 넓은 바위가 나타나면서 시야가 확 트이고, 열두 폭 병풍이 눈앞에 펼쳐진다. 차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애벌레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은 천생산 정상부의 길게 늘어선 능선의 모습이었고, 그 아래에는 정말 상상할 수 없었던 천혜의 절벽이 진짜 하늘이 만든 병풍처럼 쫙 펼쳐져 있는 것이다.


   

 

 (천생산 정상부에 펼쳐진 단애)


   잠시 어찔하여 망연히 서 있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그 뒷편으로 한 번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미득암(未得岩)에 올라서기 전에 다시 한 번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중간중간에 말라붙은 바위솔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커다란 바위들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우리가 원시의 공간으로 되돌아가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한다.

  

   두 번째 철계단을 올라서니 이윽고 천생산 정상 부위에서 앞으로 돌출된 부분인 미득암이다. 이 바위가 처음에 산을 올려다보았을 때 애벌레의 머리 부분으로 보였던 바로 그 바위이다.


   미득암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천생산에 물이 부족함을 알아채고 산성을 포위한 다음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장기전에 들어가자 곽재우 장군이 검은 말을 미득암 위에 세워놓고 하얀 쌀을 말 등에 부어가면서 목욕을 시키자 멀리서 이를 본 왜군들이 쌀을 물로 착각하여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알고 스스로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이로 인해 이 바위를 쌀로 이익을 얻었다고 하여 미득암 또는 쌀의 덕을 보았다고 하여 미덕암(米德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득암에서는 구미 시내와 멀리 저 건너에 금오산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오른쪽, 즉 천생산의 북쪽을 보니 예의 그 병풍을 이루는 바위벽이 한층 가까운 모습으로 눈에 보인다. 그 주름진 형상까지도. 정말 신기한 모습이다. 마치 사진에서나 보던 그랜드캐년의 한 부분을 축소해 놓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에도 이런 모습이 절경이 있다니. 새삼 좁기만 하다는 우리 국토의 다양성에 대한 감탄과 내 자신의 좁은 견문에 대한 부끄러움을 함께 느낀다.


 


   (미득암에서 바라본 구미시내 및 금오산, 그리고 병풍처럼 펼쳐진 단애) 

  

   다시 미득암에서 물러서 그곳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정상을 향해 걸어가니 천생산성 석주와 커다란 천생산성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다시 정상을 지나 북쪽으로 나아간다. 병풍바위 절벽을 왼쪽으로 두고 평탄한 능선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울창한 소나무와 평탄한 길은 이곳이 산의 정상 부위에 형성된 능선길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냥 어느 시골의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일 뿐.


   약간 내리막길을 내려가 삼거리를 지나 다시 통신바위 쪽으로 간다. 정말 평화롭다. 이쪽에는 사람도 거의 없고 뒤돌아본 천생산 정상부 위에는 구름 속에 감춰진 햇빛이 구름가를 맴돌면서 고리를 만들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부처님이나 예수님 머리 뒤에 그려진 환같이 환상적이다.

   

   그렇게 통신바위에 이르니 바위 두개가 사이좋게 높이 솟아 있다. 다정한 부부처럼 느껴진다. 삼거리까지 되짚어 돌아와 이번에는 산성의 북문과 동문을 차례로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이쪽에서 보니 군데군데 성벽의 흔적이 보여 이곳에 한때 산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겠다. 지금은 아마도 보수공사를 하는지 군데군데 공사를 하는 흔적이 보인다. 중간에 들어앉아 도를 닦아도 좋을 만큼 커다란 동굴도 인상적이다.


   (통신바위)

  

   이제 다시 정상이다. 다시 한 번 구미 시내를 굽어보고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한 다음 하산한다. 하산은 다시 철계단을 내려서 한참을 가다 중간에 천룡사 가는 길로 잡는다. 길은 제법 경사가 있고 가파른 길이다. 그래도 중간에 소나무 대신 굵기는 가늘지만 대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어 그 느낌이 제법 다른 맛이 나는 길이다. 길은 바로 천룡사 뒷마당으로 이어지고 화강암으로 조성된 입불이 천생산을 뒤로 한 채 우리를 맞는다. 절은 아주 옛날에 지어진 절이라는데 중간에 소실되고 다시 지어져서 그런지 옛 맛은 거의 없다.

 

  (천룡사에서 바라본 천생산)

 

   천룡사부터 주차장까지는 잘 닦여진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주차장에 이르러 장승들에게 인사를 하고 빠져나온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 국토가 좁고 외국에 비하여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적이나 자연환경이 보잘것 없다고들 말한다. 나 자신부터도 내심 항상 그런 생각에 휩싸여 있었으니까. 그러나 산행을 거듭할수록, 우리나라의 문화유적지를 살펴볼수록 점점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의 산행도 그런 깨달음을 준 산행이다. 그저 비슷비슷하다고만 생각해왔던 우리나라의 산들 중 아주 특이하고 이국적인 형태를 가진 천생산, 정말 이름 그대로 하늘이 빚은 산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