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산행일시 ; 2008.2.8(금), 맑지만 연무, 춥지만 바람 없음.
o 산행구간 ; 신탄리->고대산(832.1m)->보개봉(752m)->지장산 환희봉(877.2m)->화인봉((805m)

->삼형제바위->향로봉(616m)->사기막고개->중리저수지
o 산행시간 ; 총 10시간(휴식시간 모두 포함), 도상거리 : 약 18㎞
o 교통편 ; 갈 때 동두천역에서 신탄리역까지 8시 50분발 기차,

               올 때 관인면 중리에서 포천행 9시 버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삼형제바위 아래 문바위고개에 내려섰을 때 시간이 6시 20분이었다. 날은 거의 어두워졌는데 북으로 뻗은

도로따라 지장계곡으로 가서 계곡옆 길을 따라 갈 것이냐, 그냥 향로봉(616m)을 넘어 사기막고개까지 가서

군사도로 따라 내려갈 것이냐 잠시 고민하다 결국 향로봉을 넘으면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온은 뚝뚝 떨어지고 허기는 지는데.... 내려가서도 포천 가는 차가 있긴 있을까~~~  

오랫만에 올려다 보는 하늘의 별들, 멀리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운천읍내의 불빛을 흘낏흘낏 보면서도,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희미한 랜턴불에 집중하면서도,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입에서 계속 맴돌았다~~~

"I knew if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일주일 전 금학산(947.3m)에서 고대산(831.8m)으로 건너가면서 본 지장산(877.2m)의 장쾌한 산줄기가

눈앞에 어른거려 달리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동두천역에서 8시 5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신탄리에 도착하여

1등산로 앞에 선 시각이 10시 정각이었다.  해지는 시각까지 8시간 남짓이니 출발시간이 한 시간 늦은 탓에 결국

예비시간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그저 쉬지않고 가는 수밖에~~~

 

11시까지 고대산, 12시까지 보개봉(752m)에 도착한다는 1차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오르기로 했다. 지난 주에

왔던 산인데다 지장산까지 갈 생각을 하면 한눈을 팔 여유가 없었다. 실제 작은골을 따라 가다가 2등산로쪽 능선으로

붙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궁리도 했지만 괜한 사고를 칠까봐 그냥 대도로 가기로 했다. 대광봉, 삼각봉을

연이어 지나 고대산 정상에 도착하니 11시 18분. 모노레일로 보급품을 옮기던 군인 셋이 정상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5분간 휴식.

 

정상의 탄약고 아래로 난 참호를 잠시 따라 가면 보개봉과 금학산 가는 능선길로 접어든다. 능선 우측은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좌로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이다. 이젠 눈도 별로 없어 빠른 걸음으로 가는데 금학산에서 오는지 간혹 다른

산꾼과 마주친다. 보개봉에 도착하니 12시 17분이다. 오늘 산행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1차 목표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으니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12시 50분, 드디어 지장산을 향한 출발선상에 섰다. 지장산까지 남으로 뻗은 산줄기가 거대한 파도처럼 굽이치고 있다.

4년전 초여름이었던가? 향로봉에서 시작, 북대(724m), 화인봉(805m)을 거쳐 지장산 환희봉에 올라 북으로 굽이쳐

뻗어간 산줄기를 보며 저기를 언젠가 가리라 했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보개봉을 내려서면 고도가 제법 낮아지고 능선 좌측이 포천군 관인면이 된다. 이제부턴 혹시 '군인'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사람'은 보기 힘들거다~ 잠시후 좌측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자리잡은 바위봉우리가 나타나 발길을 멈춘다.

1시 38분, 692봉을 통과하니 육군측지부대의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연이어 나온다. 역시 군사지역답게 능선상에

군벙커시설이 계속되고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 덕분에 길도 좋은 편이다.

 

2시 27분,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군사도로에 도착했다. 절개지는 가파르고 일부 무너져내린 곳도 보인다. 우측으로 잠시

도로 따라 내려가면 폐타이어와 흙으로 만든 계단길이 있고 표지기도 보인다. 이제부턴 지장산 영역에 들어선 셈이다.

 

다시 급하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부드러웠던 능선의 성격이 날카로움으로 바뀐듯 칼날같은 능선이 계속된다.

좌우 양쪽으로는 천길 낭떠러지도 보인다. 올려다 보니 봉우리 셋이 보이는데 그 중에 하나려니 하고 부지런히 오른다.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곳을 寶蓋山이라고 했다 한다. 봉우리가 중의 머리같이 생긴 바위로 되어 있고 산이 높아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의 지붕구실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지도마다 이름이 다르다. 예전에는

절도 많았으나 625전쟁의 와중에 모두 파괴되고 전후에는 군사지역으로 묶여 지금은 흔적도 찾기 힘들다고 한다.

 

3시33분, 오늘의 최고봉인 환희봉(877.2m)에 도착했다. 일망무제(一望無際), 사방이 막힘이 없고 모든 것이 발아래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歡喜가 산꾼이 산에 가는 근본 이유가 아닐까?  각흘산악회에서 세운 정상목만 있던 예전과

달리 포천시에서 정상을 잘 꾸며놓았다. 잠시 넋을 놓고 있으니 담터고개쪽에서 산님이 올라와 덕분에 지장산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환희봉에서 10여분간 조망을 즐겼지만 중리저수지까지 내려갈 일이 태산이었다. 지난번 지장산에 올랐다가  담터고개를

거쳐 관인봉(717m)능선을 따라 하산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생했던 생각을 하니 마음이 괜히 다급해졌다. 남으로

뻗은 화인봉, 북대, 삼형제바위봉(690m)을 지나 향로봉에 이르는 능선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하산을 서둘렀다.

 

환희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림길이고 잔설이 남아 있어 아이젠을 착용했다. 튼튼한 밧줄이 매어져 있어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갈림길을 지나 화인봉은 다시 가파른 바위길이지만 굵은 밧줄을 잡고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환희봉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 4시 15분이다.  

 

화인봉에서 길은 다시 길게 떨어지고 갈림길이 있는 안부(동마내미고개)에 이른 다음 다시 긴 암릉 오름길이 시작된다.

앞쪽 멀리 보이는 삼형제바위의 모습이 다정스럽다. 4시 45분, 절터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헬기장을 지나 연천 성산으로

산줄기가 갈라지는 북대는 올라보지도 않고 우회하여 지나간다.

 

삼형제바위봉에 도착하니 급경사길에 긴 밧줄이 매어져 있다. 다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서둘러 내려가는데 거의 다 내려가서

우측 아이젠이 보이지 않는다. 금방 벗겨진 것같아 되돌아가다 보니 원래 위치까지 갔으나 낙엽속에 숨었는지 급한 마음에

찾을 수 없다. 포기하고 문바위고개에 내려서니 벌써 6시 20분.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 버렸다.

 

잠시 마음의 갈등을 겪었지만 랜턴을 점검하고 정석대로 향로봉으로 향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7시 정각이다. 달은 없지만

오랫만에 하늘의 별자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허기가 지면서 탄수화물 부족증을 심하게 느꼈다. 장거리산행에서는 당분보다

탄수화물을 준비해야겠다~ 향로봉에서 중리저수지로 바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을텐데 포기하고 사기막고개로 가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간다. 갑자기 뚝 떨어지는 절벽을 우회하여 급경사 꼬부랑길이 계속된다. 생각보다 먼 길이다.

 

시 35분, 사기막고개에 도착했다. 종자산(642.8m)과 향로봉의 경계이다. 이제부터 군사도로이니 뛰어가도 되겠다고 한 시름

놓인다 했더니 갑자기 길이 안 보이고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고개로 원위치 해서 다시 찬찬히 길을 따라오는데

마찬가지로 반대로 가는 것 같아 그냥 돌아섰다. 몇 분을 헤집고 나오니 눈에 덮인 도로가 다시 나타났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나중에 다시 이 길을 와봐야겠다.

 

8시 조금 지나 중리저수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불은 환하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부지런히 걸어 87번 국도까지 나가니

8시 20분이다. 가게도, 식당도, 주유소도 모두 불이 꺼져 있고 사람그림자는 구경도 못하겠다. 포천방향에서 버스가 들어온다.

옳다구나!  저 버스가 종점에 갔다가 다시 나오겠구나 싶어 쾌재를 부르고 기다리는데 언감생심인가 당최 올 기미가 없다.

버스시간을 물어볼 사람도 없고, 배는 고픈데~~~ 이따금 지나가는 차에 구조요청해 보지만 턱도 없는 짓이라는 듯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기다리다 지쳐 하릴없이 포천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다 뒤돌아보니  버스 불빛이 비친다. 9시차란다!

 

戊子年 정월 초이튿날, 까딱 잘못했으면 산에서 아사할 뻔 했다~~~

 

 

 

고대산 제1등산로 출발점

고대산에서 바라본 보개봉과 금학산

 

고대산 바로 아래, 얼마나 감격했기에~~ 그래서 봐줬다!

보개봉 가다 돌아본 고대산

가야할 지장산 능선

보개봉 내려서자마자 근사한 능선

군사도로에 산줄기는 잘리고

용정산

지장산 환희봉

고대산(좌), 보개봉, 금학산(우)이 한눈에

관인북봉(710m) 넘어 태봉국의 진산이었던 고남산(644.2m), 멀리 명성산(922.6m)도 보인다.

白沙선생의 시조비(?)

화인봉에서 본 환희봉

우축에 삼형제봉, 가운데 향로봉, 멀리 종자산

삼형제바위

향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