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일요일)은 예수원에서 사거리쉼터를 거쳐 지각산과 황장산을 올랐다가 댓재로 내려가는, 백두대간의 한 구간을 종주하는 날이다. 5시 45분경 집을 나와서 6시 35분경 서울역 8번 출구 앞에 도착하여 10분쯤 기다리니 일산하나산악회의 관광버스가 도착한다. 관광버스는 여주휴게소와 삼척의 국도변에서 쉰 후에 11시 30분경 태백시의 미동초등학교 하사미분교 앞에 도착한다.

몇 분간 산행 준비를 마치고 외나무골교를 건너서 왼쪽으로 꺾어져 임도를 따라가다가 예수원 입구의 다리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임도를 따라 예수원에 도착하여 산길로 접어든다.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를 건너고 짧은 나무계단을 올라 예수원의 산책로인 듯한, 바닥이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다져진 좁은 길을 잠시 걸으면 다져진 길은 짧게 끝나고 다시 계곡을 건너게 된다. 결국 예수원 앞에서 직진하는 산길로 되돌아오게 되고 그 산길은 두 자 이상 쌓인 눈밭에 폭이 좁은 러셀의 흔적만 있을 뿐이다. 완만한 오르막의 산길에서 곧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가는 갈림길로 접어들어 좁은 계곡에 통나무다리가 설치돼 있는 곳을 건너게 되는데 이 다리마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서 2주일 전, 구부시령에서 예수원으로 하산할 때 눈여겨 봐 두지 않았었다면 저기에 다리가 있는지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통나무다리를 건너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오르막은 완만해지지만 설 연휴 동안 내린 폭설(暴雪)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어서 선두가 러셀을 하며 오른 눈길은 한 자 반 이상 쌓인 눈밭에 다져지지 않은 러셀 자국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무척 힘이 들고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자신을 제외하고 백두대간을 자주 다닌 대간꾼들은 어느새 모두 자신을 앞질러가고 러셀 자국을 따라서 홀로 헤쳐 나아가는 눈길은 더 힘이 들고 적막하다.

등로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오늘의 산행을 포기하고 하사미분교 앞으로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이따금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능선에 오르면 그래도 중력과 바람에 의해 쌓인 눈이 더 깊을 수 밖에 없는 계곡길보다는 나을 듯하여 힘겹게 오르다보니 마침내 사거리쉼터가 올려다보이기 시작한다.

13시가 다 되어 덕항산과 지각산 사이의 안부인 사거리쉼터에 도착하는데 여기서부터 자암재까지는 5년 전에 한 번 다녀왔었던 길이지만 온통 두텁게 쌓인 흰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생소하기만 하다. 능선에 오르니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맑은 날씨지만 이따금 찬바람이 불어와 계곡길을 오를 때 벗어 두었던 비니를 머리에 쓰고 옷깃을 여민 후에 왼쪽으로 꺾어져 지각산을 향해 오른다.


 


오늘의 지각산 들머리인, 미동초등학교 하사미분교 앞의 외나무골교.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인 산천과 임도.


 


외나무골을 낀 임도.


 


처마에 고드름이 달려 있는 예수원의 건물.


 


다리를 건너고 짧은 나무계단을 올라서 가는 길.


 


계곡을 다시 건넌 후에 통나무다리를 건너 사거리쉼터로 오르는 입구.


 


완만한 오르막의 눈길.


 


깊이가 한 자 반은 될 듯한, 선두의 러셀 자국.


 


덕항산과 지각산 사이의 안부인 사거리쉼터가 올려다보이는 지점.


 


사거리쉼터.


 

사거리쉼터에서 지각산을 향해 오르면서 적막 속에 야생동물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나서 혹시 야생동물이 삼척 쪽의 비탈에서 능선으로 올라오면서 나뭇가지를 건드린 게 아닌가 잔뜩 긴장하게 되지만 소리의 정체가 높은 나뭇가지에 생성돼 있던 상고대가 따뜻한 햇볕에 녹아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간헐적으로 상고대가 녹아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길은 러셀이 된 등로에도 상고대가 녹아서 떨어진 얼음 조각들을 군데군데 볼 수 있다.

한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서는 길에는 두터운 눈의 무게에 휘어진 작은 나무들이 등로를 가로막아서 주저앉아서야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눈꽃 터널을 만든 구간이 나온다. 가까스로 눈꽃 터널을 지나니 안부가 나오는데 그 안부에 설치돼 있는 방향표지판에는 지각산까지 0.5 킬로미터가 남았다고 표기돼 있다.


 


따뜻한 햇볕에 녹아 바닥에 떨어지고 있는 상고대.


 


삼척 쪽의 첩첩산중.


 


오른쪽은 벼랑인 가파른 오르막.


 


눈꽃 터널을 내려서면서 바라본 지각산.


 


안부의 방향표지판.


 


안부에서 되돌아본 눈꽃 터널.


 


급사면인 삼척 쪽의 첩첩산중.


 


순백의 능선길.


 


눈앞에 다가온 지각산.


 


지각산 오름길의 기암.


 

안부를 지나니 바위가 드문드문 보이는 능선을 걷게 되고 마침내 해발 1080 미터의 지각산(환선봉) 정상에 닿는다. 지금 시각이 14시 13분.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일행이 보이지 않고 바람이 차가워서 쉬지 않고 지각산을 내려서니 눈은 더 깊이 쌓여 있고 러셀이 된 구간을 밟고 내려서도 가파른 내리막에서는 미끄러져 넘어지기 일쑤다.

지각산을 몇 분쯤 내려서다보니 식사를 마치는 중인 일행을 보게 되는데 몇 분쯤 더 내려가서 그곳에 닿으니 30분쯤 먼저 도착한 일행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떠나고 있고 후미를 맡은 두 사람만 남아서 10분쯤 자신이 샌드위치로 간단히 식사를 할 동안 기다렸다가 함께 내려가게 된다. 오늘은 러셀이 전혀 되지 않은 길을 선두가 러셀을 하며 가게 된 것인데 두터운 눈길에 해가 지기 전에 댓재까지 가는 게 불가능하여 1036봉을 지나서 귀네미골로 탈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식사를 하고 나서야 다른 사람의 지적에 의해 오른쪽 발의 체인형 아이젠이 벗겨져 나간 것을 알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왼쪽 발에만 아이젠을 찬 채로 진행하게 되는데 러셀 자국만 열심히 따라가지만 다져지지 않은 길은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허벅지까지 눈 속에 빠지기도 하고 수십 번 이상 넘어지고 자빠지며, 동심에 젖을 여유도 없었고 본의도 아니었지만 오늘처럼 눈구덩이에서 뒹군 적이 생전 처음일 정도로 원 없이 눈밭에 온몸을 맡긴 하루였다.

15시 정각에 닿은 안부에 설치돼 있는 방향표지판에는 이곳이 헬기장이고 지각산까지 0.7 킬로미터, 자암재까지 0.9 킬로미터인 지점이라고 표기돼 있다. 여기서 30여 분을 더 진행하니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자암재에 닿는데 지도상에는 여기서 귀네미골로 하산하는 등로가 나 있는 것으로 표기돼 있지만 러셀이 전혀 돼 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선두를 따라가게 된다.

자암재에서 0.7 킬로미터를 지나왔다는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곳을 5분쯤 지나니 왼쪽에 귀네미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른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가지만 비탈에서부터 러셀 자국이 끊겨 동행한 두 사람이 러셀을 하고 그 자국을 따라 귀네미마을로 탈출하게 된다.


 


지각산(환선봉) 정상 - 해발 1080 미터.


 


지각산을 내려서는 길.


 


지각산을 내려서면서 더 깊어지는 눈길.


 


비탈에 쌓인 눈.


 


지각산과 자암재의 중간쯤에 있는 안부.


 


자암재.


 


귀네미골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러셀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자암재의 방향표지판.


 


1036봉의 정상 부분.


 


등로의 방향표지판.


 


왼쪽의 귀네미골로 꺾어져 걷기 시작한 지점.


 

고랭지채소재배단지와 귀네미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비탈을 내려가는데 눈에 덮인 바닥의 보이지 않는 깊이가 많이 달라서 얇게 밟힌 발자국의 바로 옆을 디뎌도 허벅지까지 빠지는 곳이 많다.

이 귀네미마을은 근처에 있는 광동댐의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킨 광동댐 이주단지로 귀네미골이라는 계곡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어서 귀네미마을이라고 불리우나보다.

밭이 있는 산비탈을 25분 가까이 조심스럽게 내려서서야 귀네미마을의 한 주택 앞에 닿게 되고 여기서 5분을 더 내려서야 제설작업이 돼 있는 임도에 닿게 된다.

식사를 한 곳에서 10분쯤 먼저 출발한 일행은 자신이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간 능선에서 좀 더 능선길로 나아가 임도와 맞닿는 곳에서 임도로 내려왔는지 임도에 내려서서 합류하게 된다.

기와지붕들이 온통 두터운 눈으로 뒤덮여 있는 귀네미마을의 이국적인 풍경을 뒤로 하고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임도를 걷는다. 그러나 임도 주변의 침엽수로 조성된 삼림의 풍경은 수시로 변해서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고랭지채소재배단지와 귀네미마을.


 


꼭대기에 물탱크가 설치돼 있는 1058.6봉.


 


내려온 능선과 쌓인 눈의 깊이가 다른 산비탈.


 


산비탈에서 주택 앞으로 내려온 지점.


 


임도로 내려서는 길.


 


귀네미마을의 정경 1.


 


귀네미마을의 정경 2.


 


눈에 덮인 기와지붕.


 


뒤돌아본 1058.6봉과 귀네미마을.


 


귀네미마을의 정경 3. 


 

왼쪽에만 아이젠을 차고 걷는 길은 오른쪽 발로 무심코 가끔 빙판을 밟게 되어 몇 번이나 미끄러지면서 넘어질 뻔하게 되고 귀네미골이 35번 국도와 맞닿는 곳까지 내려가기 전에 후미의 사람들과 차를 얻어 타게 되는데 커브를 돌자마자 국도변의 귀네미마을 입구에 주차돼 있는 일산하나산악회의 관광버스를 보게 되고 이백 미터도 채 가지 못해서 귀네미마을 입구에서 내리게 되는데 귀네미마을에서 귀네미마을 입구까지의 임도가 약 4 킬로미터는 된다고 한다. 바쁜 걸음으로 50분쯤 내려왔으니 그 정도의 거리는 되리라.

귀네미마을 입구에서 잠시 쉬다가 17시 45분경에 출발한 버스는 19시 55분경 원주의 치악휴게소에 들러서 20시 30분경까지 단 한 차례 쉬고 나서 쉬지 않고 달려 22시경 잠실역 앞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에는 총 5시간 55분이 걸렸고 이 중에서 약 15분의 짧은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순수산행시간은 5시간 40분이 걸린 셈인데 제설작업이 잘 돼 있는 약 5 킬로미터의 임도 구간은 눈이 없을 때와 거의 같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러셀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약 5 킬로미터의 등로 구간은 눈이 없을 때에 비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 마의 구간이었다.

비록 목적지인 댓재까지 가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심설(深雪)에 발이 묶여 집단 탈출을 해야 할 정도로 험한 등로의 사정을 생각하면 자신도 이미 탈출을 마음먹고 있었기에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5년 전에 올랐었던 지각산 외에는 새로운 산을 오르는 데에도 실패했지만 혹독한 정황의 심설 산행과 이에 따른 비상 탈출은 꽤 값진 체험이었다.

그리고 날씨는 따뜻한 편이었지만 심설의 눈밭에 오래 뒹굴면서 방수 처리가 된 고어텍스의 중등산화를 신고 방수 코팅된 스패츠를 차고 있었어도 발이 시리고 두터운 울양말이 살짝 젖을 정도였으니 심설 산행에서 기본적인 장비의 구비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홀로 가기에는 무리인 오지의 심설 산행은 상당히 고생스러웠지만 본의 아니게 눈밭에서 뒹굴면서 아득히 멀어진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는 것도 또한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겠는가.


 


임도의 정경 1.


 


임도의 정경 2.


 


임도의 정경 3.


 


임도의 정경 4.


 


임도의 정경 5.


 


임도의 정경 6.


 


임도 옆, 산비탈의 정경 1.


 


임도 옆, 산비탈의 정경 2.


 


35번 국도와 맞닿은 귀네미마을 입구.


 


귀네미마을 표지석.


 


오늘의 산행로 - 3시간 30분의 거리를 러셀이 돼 있지 않은 심설 때문에 6시간 가까이 걸은 약 10 킬로미터(등로 약 5 킬로미터와 임도 약 5 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