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의 주왕산 산행기는 일편에 이어 2편에서 다시 시작이 됩니다
수정처럼 옥수처럼 맑은 물 그리고 기암절경으로 이루어진 풍광 은 이곳 주왕산이 자연적인 유적지로의 그 멋을 자랑하고 있다.
가믐으로 수량이 상황인데도 이렇게 폭포가 장엄한 모습인데 한 여름 우 기철에 이곳에 오면 이 아름다운 폭포가 얼마나 장관일지 짐작이 된다.
이곳 폭포지대 기암 절경은 아직 중국의 황산엔 가보지 못하고 많은 분들이 다녀온 사진 감상만 하였는데 나의 생각엔 그 중국의 황산만 못하다는 생각이 안드는것이 나만의 착각일까? 그렇게 난 우리것이 더 좋아 보인다.
제 1폭포 (예찬글)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 물소리가 가장 경쾌한 폭포다. 어디서 왔는지 그 첫 시발점을 알 수 없지만 학소대를 지나면서 들리는 물소리는 휑한 마음을 쓸어가 버리는 것 같다. 폭포주위에 암벽이 둘러싸인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분위기에 폭포는 정적을 깨뜨리고 힘찬 물줄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물보라 속에는 오색무지개가 어리고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자랑하고 그 폭포수 물속에는 물고기 떼가 천하태평한 모습으로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환상의 나라에 온듯하다. 계곡에는 크고 작은 자갈이 깔려 있어 옥수를 방불케하는 깨끗한 물은 등산객이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여 준다. 암벽 틈바구니에는 꽃이 피어 있고, 암벽 사이로 트인 구만리 장천에는 신선만이 볼 수 있다는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기암절경에 취한듯한 일행들의 모습도 아름답다.
학소대
좌측으로 하늘을 찌를듯 솟아오른 절벽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쌍이 둥지를 틀고 함께 살았다는 절설의 학소대다. 어느날 백학을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 슬픔 학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지금은 학은 오간데 없고 청학과 백학의 보금자리 둥지터만 그대로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 하고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학바위 구간을 지나고 있다.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학소대 바위 그러나 학 은 보이지 않고 흰구름만 두둥실 오가고 있더라
이렇게 아름다운 제1폭포지대 (주방계곡)을 빠져나오는 마음이 아쉬움이 더 남는다 시간적 문제로 좀더 머물고 싶지만 일행들과 보조를 마추기 위하여 또 다시 기약없는 약속으로 다시 올것을 다짐하며 주방계곡을 빠저 나온다.
시루봉
학소대를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거대 시루봉이 우 뚝 힘 솟아 있다. (나의 생각엔 거대 남근바위 같음)
근디 아무리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남근석 바위가 맞네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시루봉에는 옛날 겨울 한 도사가 이 바위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때 신선이와서 불을 지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이 바위 아래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바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솟아 올랐다고 전해지고 있다."ㅋㅋㅋ 그런줄도 모르고 난 계속 남근을 닮았다고 우기고 있으니 그래서 이 도영할베는 고집불통 속물이란 소리를 듣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란 생각을 나 스스르로 자인한다.
시루봉 지대를 통과하여 우리들은 다시 주왕암과 급수대를 보기 위하여 목 계단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올라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진행가고 있다.
주왕암 가는길에 직벽을 올려다본 급수대
기암절경으로 구성된 단애지역도 통과를 하고
망월대에서 본 급수대
급수대는 망월대에서 50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급수대앞 오솔길을 지나노라면 계곡쪽으로 기울어진 깍아지른 절벽이 금새 무너질듯하여 식은 땀조차 흐르게 된다
망월대에서 급수대를 배경으로 찰칵
이제 이곳을 떠나고 나면 내 언제 또 다시 이렇게 아름다운 기암절경이 함께하는 주왕산 제3폭포 제2폭포 주방계곡(제1폭포)지대 학소대 시루봉 급수대 그리고 망월대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마도 그리 쉽게 다시 오기는 모르긴 해도 쉽지 않으리 어언 내 나이 6학년 5반이면 당장 지금은 내 스스로 건강을 자랑한다 하지만 노인의 건강을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천하 항우장사도.... 만인의 병을 낳게 해준다는 의사도 자기병 못 고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것이 순리이거늘 .... 건강이 따라 준다면 다시 온다 약속을 할것이고 그렇치 않으면 한치앞 내 인생을 내가 모르는데 어케 약속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온다는것은 공허한 마음에 내 욕심일뿐이다. 그래 맞다 " 다시 올똥말똥" 하여라 이렇게 써 두기로 하자 ㅎㅎㅎ .
나한전
주왕굴은 이곳 나한전 경내를 에돌아 다시 주왕굴 로 철계단으로 만들어진 협곡을 통과하여야 한다.
주왕굴 가는길
이곳 주왕굴가는 코스을 협곡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날씨가 좋은날임에도 불구 어둑컴컴하여 하는수 없이 디카 ISO를 400으로 올려 촬영을 한다.
주왕굴
주왕산은 신라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 까지 쫓기어 왔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하여 주왕은 이곳에서 신라장군(마장군 형제들) 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다. 주왕산의 특징은 산 이름을 주왕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주왕산은 주왕과 관련된 전설의 산이기도 하다.주왕굴에서 생을 마친 주왕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 현재 주왕산 내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주왕굴에 모신 주왕의 모습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문화유산 자료가 너무나 무관심속에 관리가 되고 있는듯 하여 염려가 된다 누구나 이곳 주왕굴에 오면 주왕의 신전을 만질 수 있도록 손이 닿게 관리가 되고 있다. 혹시 만에 하나라도 이 유산에 누가 가해 행위라도 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분명 주왕산 입구에 우리 문화 보호구역이라 커다란 홍보판도 만들어 알리고 있으면서 정작 이곳 문화재를 관리 감독하는 주왕산국립공원 관리공단의 문화유산 관리는 너무 소홀한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왜 우리는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서울 종로에 소재한 사직공원에 모신 단군상에 피해를 입힌 못된 사람들의 소행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주왕굴 앞 암벽 단애에서 낙수로 떨어지는 물이 약수라 하여 그 낙수물 약수 한 바가지 마시고 나니 정말 내가 마치 주왕이라도 된듯 세상 온갖 갖은 구경 다하며 이곳 주왕굴까지 찿아온 나도 알고 보면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소중한 약수를 맛 보기도 정말 힘든 경로이고 코스가 아닌가 ? 난 행복합니다 난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행복이 어디 먼곳에만 있나요 행복은 바로 내 마음속에 함께 하고 있는걸요 마음먹기에 따라서 똑 같은 삶을 행복이라 생각하며 기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늘 불평불만하고 투정하기로 하며 살면 늘 불행이고 불만족이고 그런거죠
주왕굴을 나서며....
나홀로 산행이라면 대낮에도 조금은 귀신이라도 나올것 갖은 음산한 코스이다.
상의탐방안내소 (대전사) 주차장으로 가는길
그러니까 벌써 11년전 내가 산행을 처음 시작 하였을때 산악회를 따라 이곳 주왕산을 찿았다가 마침 집중 호우로 인하여 간신히 주왕산 정상을 밟고 서둘러 거의 뛰다시피 하산을 하는 바람에 간신히 나는 고립을 면하였고 우리 뒤를 따르던 타 산악회 사람들은 고립이되어 하루가 지난후에 나온적이 있는데
그땐 그렇게 집중 호우로 구경은 커녕 간신히 내 몸 빠져나온것만도 다행으로 생각을 하여야 하는 산행을 하느라 주왕산을 한번 왔다 갔는데도 전혀 다른 산에 온 기분이고 모처럼 이번 산행에서는 내가 목표한 코스들을 하나같이 골고루 관람할 수 있어 나 개인적으론 정말 너무나 값지고 보람있는 산행이 되었다.그래서 이날의 주왕산 산행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을 한다.
이곳 주왕산 암질은 이상하게 붉은색 자주색을 띠고 있는것이 특이하다.
산행 시작때 만난 코스에 원점회귀 하였다.
다시 보는 기암 장군봉
대전사 앞 소원탑
대전사에서 올려다본 기암(장군봉)도 암질이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논틀에서 본 장군봉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B코스 산행을 하신분들은 벌써 하산하여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은 서둘러 오후 5시가 조금넘은 시각 주산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차창밖으로 사과밭이 보이는데 찰칵 한 장 건져 보려 했는데 그만 스틸 사진으로 되고 말았다.
청송 주산지 가는길
주차장에 도착하여 도로를 가로막은 차단기를 지나 주산지 까지 500여 미터 진행하면 주산지 인공 저수지가 나온다.
주산지 가는 코스 우측 암벽 단애에 빨간 담쟁이 넝쿨이 곱게 물들어 있고 우측 검게 눈처럼 보이는 지점에 하얀 둥그런 물체가 벌집인데 육안으로 보기에 아마 어린이용 자전거 바퀴 정도로 커다란 벌집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주산지 [주산지소개 물안개에 젖은 몽환의 신새벽 가을이 익어 별천지더라
청송 주왕산 기슭의 주산지(注山池)는 천년 전 숨어들었던 주왕의 전설을 들려줄 듯한 신비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저수지다. 특히 물안개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가을 새벽녘엔 신비스럽다. 비록 사람이 만든 인공 저수지지만, 분위기는 조물주가 이 땅을 창조할 무렵의 연못 같다.
주산지의 주인은 수백 년 묵은 왕버들
주산지는 280여년 전인 1720년(숙종 46) 착공해 이듬해 10월에 완공한 인공 저수지다. 낙동정맥 분수령 가까이 있는 덕에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이 드러난 적은 없다는 주산지. 둑에 서있는 작은 비석엔 ‘정성으로 둑을 쌓아 물을 막아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 기리기 위해 한 조각 돌을 세운다(壹障貯水 流惠萬人 不忘千秋 惟一片碣)’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저수 면적 1만여평의 결코 크지 않은 주산지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300년 묵었다는 왕버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30여종에 이르는 일반 버드나무에 비해 키가 크고 잎도 넓어 왕버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 주산지에서 왕버들은 진짜로 왕 대접을 받는다. 아마 주왕의 전설을 들려줄 듯 지키고 있는 20~30그루의 왕버들이 없었다면 주산지는 주왕산 깊이 있는 호젓한 저수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연못이든, 호수든, 저수지든 물이 가득해야만 제격이다. 주산지도 마찬가지다. 모내기철이나 갈수기에 저수지의 물이 줄어들거나, 겨울에 눈은 내리지 않고 얼음만 얼어있으면 주산지의 매력은 반감된다. 봄엔 봄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 여름엔 장마가 끝난 뒤에 찾으면 좋다. 그리고 9월이 지나면 저수지에 물을 빼지 않기 때문에 넘실대는 물결을 만날 확률이 높다.
가을날 이른 아침엔 하얀 물안개가 속세를 떠난 듯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특히 별바위 주변이 단풍으로 물들 무렵엔 별천지가 따로 없다. 올해 주산지 단풍은 10월25일을 전후해서 절정을 이룰 것이라 한다 청송 주왕산 기슭의 주산지(注山池)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가 상영된 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촬영지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이 쇄도했다. 이 영화는 2004년 제4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는데, 주산지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작품상은 주산지 덕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허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암자는 아쉽게도 환경적인 이유로 곧바로 철거되었다.
국립공원주왕산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주산지를 찾는 사람은 평일에는 1일 500명, 주말엔 무려 2,000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주왕산에 버금 가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허나 주산지는 몇 년 전만 해도 비경을 알아챈 사진작가들만이 소리소문 없이 찾아들던 곳이었다. 요즘도 주산지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갖추고 있다. 허나 기죽을 필요는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주산지는 신새벽에 카메라만 들고 가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어느 곳에 렌즈를 맞추든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자기 생애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솟대와 장승이 반기는 주산지 아랫마을
주산지를 오가다 보면 붉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과수원 풍경을쉽게 만난다. 그리고 과수원과 접한 도로변에 금방 따온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어김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 청과물시장에서 구입하는 사과보다 당연히 싱싱하고 싸다. 육즙이 달큼한 청송 꿀사과도 빼놓을 수 없지만, 기왕에 주산지를 보러 나선 길이라면 이전리 서쪽에 있는 장승과 솟대도 한번쯤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심심산골 오지마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들이 이곳 청소의 주산지를 찿아간 시간은 올 가을 가믐으로 인하여 주산지 그 유명한 왕버들 나무가 뿌리를 송두리체 드러내고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기대했던 만큼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어서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다.
주산지 소개 그림판에 나온 사진을 보는것으로 이날 주산지 방문은 만족해야 했다.
앙상하게 말라 죽은 나무 가지에 담쟁이 넝쿨이 타고 올라 곱게 단풍이 물들고 있다.이러한 담쟁이 넝쿨의 맘을 오늘은 조금은 이해를 할것 같다."서로 사랑하자 "그 정신 말이다 만약 담쟁이가 아니었다면 저 앙상한 죽은 가지 얼마나 쓸쓸했을까...?
섣불리 메말라 버린 주산지를 찿아 오히려 수량이 풍부 했던 그림의 주산지에 대한 그리움만 더욱 남게 되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주왕산 주산지 산행을 하며 무려 수백여장의 사진을 박으면서 정작 내 사진은 한 방도 못 박았으니 나도 한방 박고 보자 내 언제 이곳 주산지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마도 올똥 말똥 하여라
삼삼오오 모여 주산진에 온 기념 사진을 찍고
나와 끝까지 함께 동행을 한 일행 회원님들 단체 사진을 남기면서 주산지를 걸어 나온다.
그리고 주산지 관람모두 마치고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아니 저 연기가 뭐지 혹시 불이 난것일까....?
그런데 불은 아닌것 같은데....
다행이 집은 불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걸 보면 분명 불은 아니다.
노점상 아줌니의 모습
그런데 저 건너 농가주택쪽에서 방향에서 연막소독 소리가 난다. 올커니 맞다! 이곳을 관리하는 지자 체에서 방역 차원에서 살포하는 연막소독였다.그런줄도 모르고 난 불이난줄 알고 호들갑을 떨었네 ...
아니 근디 이 도영할베 나이가 얼만데 지금도 저 방역차 부르릉 소리를 들으며 또 달려가고 싶은걸까...? 아직도 마음은 동심의 세계에 그대로 남아 있는듯 하다.
비록 그 소리를 듣고 달려 갈 수 는 없지만 그래도 그 연막 소독 그림이 넘 좋아 몇 컷 남길 수 있어서 차를 따라간 기쁨 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생각이든다. 1시간에 걸친 주산지 방문을 마치고 오후 6시 조금은 늦은 시각 귀가길에 들어 서 그리고 나는 곧 바로 잠이 들어 버렸는데 ....어디쯤이나 달려 왔을까 눈을 떠 보니 세상이 온통 깜깜나라다 . 여기가 어디지 ...?
한참을 목을 길게 빼고 깜깜한 차창밖을 내다 보며 두리번 거리다 마침 신호에 걸린 순간 밖에 보이는 간판을 촬영 하는데 성공을 했다 "안동 간고등어" 아마도 지금 내가탄 차가 안동 시가지를 지나고 있는 모양이다. 잠결에 혹시 다 온것일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아직도 안동 시내를 맴돌고 있다니....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하여라 에라이 모르겠다 또 나는 꿈나라행을 결심하고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한 번 깬 선잠이 다시 잠들기 쉽지가 않아 자다 말다를 번복하다 보니 귓가에 쿵쿵쿵 간간히 들려오는 노래방 소리 음악이 왠지 오늘은 원거리 산행에 지루함을 달래기에 싫치 않게 들리는 날도 있다. 주사지에서 무려 5시간여 달려 귀가를 하고 보니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각인데...나는 또 다시 날 도와주는 학생에게 업무 인계받아 근무를 하는데 원거리 오가며 토끼잠을 자둔것이 새벽 2시까지 근무를 하는데 말똥말똥 하도록 도움을 받아 한결 편안한 근무를 마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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