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을 찾아서

 

10월 12일 주왕산 산행이 예정되었다. 지난 달 계룡산을 다녀오면서 어딘지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은, 이미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으니 그래도 만산홍엽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으리란 기대로 가슴을 설레게 했다가, 경기평야를 지나면서 차창을 통해 비치는 계절은 아직 여름의 끝자락이 짙게 깔려 있지를 않은가. 추석이 지난지도 한 달이 가까이 되었건만...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듣드르며,

    벼 뷘 그르헤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청구영언-


 

예정보다 좀 일찍 출발지에 도착했건만 벌써  홍보 이사를 비롯한

몇몇 산우들이 먼저와 자릴 지키고 있지 않은가. 6시면 꽤나 이른 시간인데도 다들 시간에 맞춰 나와 제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면서 松江의 싯귀를 흥얼거리고 있지 않은가. 지난 번 산행 때와는 달리, 완연히 가을로 가득한 들녘에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직나직한 산에도 노랑 빨강으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다가선다.


 

내 옆자리엔 오랜만에 동행하게 된 하일 킴이 앉아있게 되었다. 여러 산우들이 매운탕 거리 장만하느라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스치는 풍경에 다들 넋을 빼앗겼나보다. 제천 단양을 지나 어느덧 안동을 거쳐 임하호를 지난다. 내륙에 펼쳐진 바다 같은 호수가 풍요를 약속이라도 해 줬음 좋겠다. 논밭을 가꿀 저 물 때문에 실향의 쓰린 아픔으로 눈물을 흘린 무지랭이 같은 인생들은 없었을까? 임하교를 지나 꾸불꾸불한 지방도를 이리 돌고 저리 둘러 지보를 지나 청송도 지났다. 달기 약수 입구, 월외 탐방지원 센타에서 A팀을 내려놓고 와야 하는데, 우리 기사님이 그만 실수를 해서 모두가 대전사로 오게 되었다. 어쩌랴 B코스나 C코스를 택할 수밖에...


 

대전사 주차장에서 내리니 길옆 가게마다 붉은 대추를 수북히 쌓아 놓고 길손을 불러 모았다. 빨간 대추알이 튼실하니 입맛을 돋운다. 감, 사과, 대추, 그리고 밤 등 온갖 과일과 이곳 특산물들이 즐비하니 진정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한 줌씩 건네주는 풋대추의 맛이 감미로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대전사 옆 돌담을 돌아 빨갛게 물든 고운 단풍 길로 접어들었다. 우람한 나무들 사이로 주왕산의 영봉을 바라보면서 자하교 오른 쪽으로 길머릴 잡아 등로를 따라가면서, 산을 찾을 때마다 앞서 가는 사람들을 놓지지 않으려 부지런을 떨었던 기억만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멀리서 숲을 보는 맛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맛이라면, 그 속에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을 살필 수 있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아닐까.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한 숲을 이룬다는 것을

       ........................................

       .........................................

                            -안 도 현-

진정, “간격”이 이렇게 훌륭한 숲을 이루는 걸까? 사람들 또한 일정한 간격들이 모여, 우리 사는 인간이 아닐지...


 

산신령과 하일 킴이 우리와 보조를 같이하면서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는 사이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숨이 차기 시작한다. 칼등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밧줄에 의지 능선으로 접어든다. 뒤쳐진 나와 보조를 맞추느라 김하일 부회장이 계속 가다서다를 반복하여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김익구 산우가 보이질 않았다. 능선을 따라 1시간 가량을 내려오니 가메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후리메기에서  우리 일행은 점심 먹을 자릴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언덕진 위쪽에 신동화 부회장 일행이 먼저와 자릴 잡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점심때를 훌쩍 넘긴 때라 적당한 자릴 잡아 도시락을 펴기로 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그야말로 꿀맛이 따로 없었다. 산신령, 박천순 부회장, 그리고 자리한 산우들께 초인사를 차리는 하일 킴, 모두가 도시락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하더니 이슬 보따릴 펴놓자 환호성이 터진다. 김회장이 준비해 온 배추를 된장에 꾹꾹 찍어 정상주로 목을 추기니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구월이라 늦가을이니 한로 상강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느냐

     창공에 우는 소리 찬 이슬 재촉한다

     온 산 단풍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 밑 노란 국화 가을 빛깔 뽐낸다

                  -농가월령가9월령-

 

온 산에 울긋불긋 곱게 단풍이 물들어 만산홍엽이 꽃보다 아름답다. 사람도 늙으면서 저리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녹음은 싱싱한 젊음이 있어 좋고, 단풍은 또  원숙미가 있어 더욱 좋다. 한로 상강 절후를 지나니 이젠 완연 가을, 온통 원색의 산행객들의 물결이 연이어 있어 하나 같이 즐거운 얼굴들이다.


 

계단 길과 오르고 내리는 등로를 따르다 보니 길섶엔 나직나직한 산죽들이 가냘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오르다 우람한 솔숲 속으로 들어서니 태고의 정적이 우릴 감싸 안는 듯 했다. 한숨 돌리려 나무 그늘에 걸음을 멈추다 군데군데 밑둥 근처에 빗살무늬 생채기가 나 있는 걸 발견했다. 처음엔 태평양 전쟁 막바지 왜놈들의 짓이려니 생각하니 다시 한번 치가 떨려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1960년 대 자원이 부족해 송진까지 채취할 수밖에 없었다니 보릿고개를 지나온 세대라, 당시의 어려웠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머릴 스쳐지나간다.

삼거리에서 20분가량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2폭포 후리메기골 입구, 주방골 넓은 주도로와 만난다.


 

주왕산은 대전사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의 주방천 주변이 볼 만하다. 주방천 계류와 폭포, 소, 담, 그리고 죽순처럼 솟아오른 암봉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낸다.우리 일행은 역코스로 내려왔다.


 

달빛 밝은 밤에 이곳에서 시 한 수 읊는다면 이 또한 무릉도

원이 아닐까 싶다. 급수대, 학소대, 망월대, 병풍바위, 시루봉,

촛대봉이 계곡과 폭포의 물줄기와 어우러진다면 보는 이들을

압도할 것이다. 또한 연화굴, 주왕굴, 무장굴과 1,2,3폭포 등등

볼거리가 풍부하다.20분 가량 게곡을 따라 내려오니 2폭포 후리

메기골 입구, 주방골 넓은 주도로와 만난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300m정도 우측으로 오르면 3폭포가 있다. 이단폭포로 공원 폭포 중 으뜸이다. 폭포를 배경으로 모델 좀 되어주고 내려온다.  넓은 산책로에는  많은 탐방객들이 붐비고 산책로는 따라 조금 내려오니 조그만 폭포를 시작으로 1폭포 아래로 굽이도는 계곡물과 좌우로 기암괴석들이 하늘을 가리고  협곡사이로 난 탐방로는 말 그대로 그림이다. 학소대, 급수대, 망월대가 하늘높이 솟아있고 수백 미터나 되는 절벽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조금 내려오니 좌측으로 주왕암, 주왕굴로 가는 산책로가 있고 조금 더 내려오면 우측으로 연화굴로 오르는 산책로가 보인다. 등산 갈림길이었던 기암교를 건너 대전사에 이르니 연꽃차 한 잔씩 맛을 보란다. 


 

대전사와 대전사 뒤로 보이는 기암(奇岩)은 균형 잡힌 거대

한 암봉으로 주왕산을 대표할 만하다. 수 백 미터나 솟아있는

기암은 뫼산(山)자를 꼭 닮았다.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옆으로 흐르는 계곡에 복숭아꽃이 아득히 흘러가면 여기가

바로 무릉이 아닐런지...협곡에 들어설 땐 마치 도원경에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네시 반에 모두들 모여 귀로에 오를 때에야 김홍보이사를 만났다. 사과를 들고 우릴 얼마나 찾았을까. 앞으론 길이 어긋나지 않도록 하리란 생각을 하면서 저녁놀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문득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꽤나 먼 길, 산행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차중엔 여흥이 물결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