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산행기


 

       *산행일자:2006. 6. 11일

       *소재지  :경북 청송

       *산높이  :가메봉 882미터

       *산행코스:절골매표소-대문다리-가메봉-내원마을-학소대-주왕굴-대전사-주차장

       *산행시간:12시25분-17시45분(5시간20분)


 

  주왕산은 오랜 전설만큼이나 깊었고 까마득한 신화만큼이나 멀었습니다.

깊고도 멀어 좀처럼 접근하기 쉽지 않은 주왕산이 한번만 다녀와도 머리 속에 생생히 기억되는 것은 아스라한 전설과 신화가 뒷사람들 가슴속에 면면히 전해와 오늘에 되살아나서 입니다. 가메봉 상봉에 올라 산세를 조망할 때에는 주왕산이라 하여 다른 산들과 구별되는 특별히 다른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내원마을로 내려와 대전사에 이르기까지 주왕산이 숨겨놓은 비경들을 들러보고 나자  떠돌아다니는 전설들이 이 산에다 자리를 틀고 내려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대지 않을 수 없었겠다 싶었습니다. 주왕산 곳곳의 절경에 걸 맞는 이야기를 정신없이 쏟아대는 바람에 어느새 이 산에 할당된 전설이 동이나 다른 곳에서라면 그럴 듯한 이름에 시 몇 수는 갖고도 남았을 폭포들이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제 1, 2, 3 폭포라고 명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깊고도 먼 주왕산 나들이는 선사시대로 세월을 거스르는 일로 시작됐습니다.

전설과 신화를 해부해 이야기는 내버리고 사실(fact)만을 찾아내어 다시 엮는 역사학자들이나 전설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산의 형상을 면밀히 관찰해 그 생성시기와 과정을 들춰내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지질학자들 모두가 이 세상을 살맛나게 만드는 이야기꾼들은 아닙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후대의 이야기꾼들이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덧칠하고 또 덧대어 신화로 발전시킬 수 있을 터인데 사실규명이라는 이유로 현실세계로 끌어내려 가르고 나누는 그들이 이 세상을 너무 메마르게 만든다 싶기도 합니다. 시생대 또는 그 전의 원생대 때에 만들어진 화강암과 편마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는 어제 오른 주왕산 곳곳에서 고생대의 조선계지층이, 그리고 계곡상류에서 고생대의 식물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넓은 지역에 걸쳐 지표가 크게 휘는 요곡운동의 결과로 생성되었다는 주왕산은 전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계곡이 잘 발달되어 있고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많아 마치 바위로 병풍을 친 것 같다하여 석병산으로도 불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왕산에 전설이 깃들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 진의 후손인 자칭 주왕(후주천왕)이 반란에 실패하고 이 산으로 숨어들어오고 나서였을 것입니다.


 

  아침 7시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주왕산 남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주산지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4시간 40분이 걸렸습니다. 바쁘게 10분을 걸어 1721년에 완공된 주산지 저수지에 다다랐으나 논에 모를 내고자 나무뿌리가 보일 만큼 저수지의 물을 빼내 사진에 나오는 물에 반쯤 몸을 담근 왕버들을 보지 못하고 이내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절골매표소로 이동했습니다.


 

  낮 12시25분 절골매표소를 출발했습니다.

5분도 안되어 계곡으로 들어섰는데 계곡 양옆으로 절애의 암벽들이 서 있어 협곡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만 얼마 안 지나 협곡은 끝나고 작은 하천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절골계곡은 경사가 급한 설악산의 천불동계곡이나 유명산의 유명계곡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계곡이 거의 끝나는 대문다리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어 올랐어도 고도차가 100미터 정도밖에 나지 않아 깊은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차 큰 폭포나 움푹 파진 깊은 소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대장 분의 얘기대로 14번을 건넌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꽤 여러 번 계곡을 건너는 중 냇가에서 짐을 풀고 다슬기를 잡거나 준비해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맛있게 점심을 들며 산천경개가 빼어난 이 골짜기에서 편히 쉬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산 사진을 찍은 지가 얼마 안 된 제가 물 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를 카메라에 잡기는 이 번이 처음이었습니다. 1급수가 분명한 맑은 물 덕분에 사진에 찍힌 물고기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3시35분 마지막으로 계곡을 건너 주왕산 상봉인 가메봉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매번 대열의 끝 쪽으로 쳐지는 제게 대장 분이 무전기를 건네주며 아예 후미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와 맨 뒤로 쳐진 몇 분들과 함께 계곡을 걸어 올라오느라 맨 꼴찌로 산등성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절골에서 3.2키로를 걸어 다다른 대문다리를 조금 지나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키가 훤칠한 낙엽송들을 바라보며 여름 산의 역동감을 느꼈습니다. 직등 길로 15분을 올라 만난 첫 번째 묘에서 일행들이 건네준 참외를 들며 산행시작 시간 반 만에  처음으로 4-5분을 쉬었습니다. 넓은잎나무 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전날 내린 비가 지열을 식혀주어 된비알의 산 오름이 그리 덥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14시36분 해발 882미터의 주왕산 상봉인 가메봉에 올라섰습니다.

첫 번 째 묘에서 30분을 걸어올라 안부사거리에 다다랐고 이 안부에서 왼쪽으로 10분을 더 올라가 가메봉에 오른 즉시 사방을 휘둘러보았습니다. 깎아지른 암벽이 동쪽 사면을 받쳐주는 꼭대기 암봉 바로 아래 이제껏 걸어 오른 절골계곡이 한눈에 잡혔고 주왕산 정상-가메봉-왕거암을 잇는 늠름한 산줄기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안부로 되돌아와 어렵게 명산순례에 참여한 1980-90년대에  함께 일했던 옛 회사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5시11분 안부사거리를 출발해 큰골계곡으로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문다리에서 가메봉으로 오르는 길이 된비알의 깔딱 고개였듯이 큰골로 내려서는 하산 길 또한 경사가 급하고 축축해 너무 서두르다가는 자칫 미끄러져 허리를 다칠까봐 그리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두주 전에 다녀온 경북 봉화의 청량산처럼 이 산도 주 수종이 참나무 등 넓은잎나무여서 소나무 숲을 걷는 것보다 훨씬 청량했고 삽상했습니다. 사거리 출발 20분이 걸려 첫 번째 나무계단을 건너고 나서부터는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편했습니다. 산행 총거리는 17키로를 조금 넘지만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내린 시간은 1시간 반가량밖에 안되어 전반적으로 산행이 편했습니다. 나무다리를 두 번 더 건너 다다른 큰골계곡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내원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관광객의 내방이 잦아지자 마을 어귀 안내목에 적힌 대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이곳 원주민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이 마을을 떠나버려 이곳에서 옛날 그대로의 때 묻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16시15분 내원분교터를 출발했습니다.

내원마을에서 조금 더 내려가 내원분교터에 들어선 찻집을 들르지는 못했으나 이 산악회의 산행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한 무리의 회원들이 바위 돌에 둘러앉아 쉬던 자리를 파하고 출발하는 것을 최종 확인하느라 15분을 머물렀습니다. 주방천을 따라 내려가며 이 분들과 함께 주왕산의 승지들을 들러보았습니다. 내원분교 출발 35분 후에 2단으로 낙하하는 제3폭포를 들러 시원한 폭포수와 가운데가 움푹 파인 아담한 소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주왕산 최고의 절경은 학소대인 듯싶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암벽위에 둥지를 틀어 함께 살다 사냥꾼에 잡혀 간 백학을 그리워하는 청학의 애틋하고도 애절한 전설이 서려있는 협곡 학소대와 여기 바위들을 휘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내리꽂아 만드는 제1폭포 또한 비경이었습니다. 요곡운동으로 치솟은 암봉 들은 주왕산의 형상을 만들었고 이 암봉 들을 어루만지며 안간 힘을 다해 바위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물줄기를 비치는 햇빛은 이 산의 색깔을 만들었습니다.


 

  17시10분 주왕굴을 찾아 올랐습니다.

큰 길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로 들어서 주왕산의 대표 암봉인 기암을 오른쪽으로 옆 질러 주왕암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암자를 스쳐본 후 철 그물 다리가 놓여진 음습한 협곡을 지나 마지막 은신처인 주왕굴에 올라서 비운의 주왕에 얽힌 전설들을 되씹어 보았습니다. 학소대에 어린 전설이 애틋한 사랑이야기라면 주왕굴에 피신해 있던 주왕이 신라의 마 일성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어가며 토한 피가 주방천을 붉게 물들였다는 이야기는 오직 힘의 논리만 들려주는 드라이한 전설입니다. 이밖에 기암과 시루봉, 그리고 연화봉 모두 나름대로 전설을 갖고 있어 주왕산이 한낱 보여주는 산으로 끝나지 않고 들려주는 산으로도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시45분 대전사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해 5시간 20분간의 명산탐방을 마쳤습니다.

주왕굴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최근에 카페에 몇 차례 산행기를 올린 여성회원 한 분과 어떻게 산행기를 쓸 것인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구라도 매번 솜씨 좋게 산행기가 써지는 것이 아니기에 산행기를 올리는 일이 겁이 나고 내키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댓글로 격려해주는 회원들의 성원을 떠 올리며 졸필을 이어가면서도 변변치 못한 글로 다른 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합니다.


 

  귀경 길의 주왕산은 마냥 깊고 먼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주왕산과의 실체적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이 산의 전설과 함께 밟은 산길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더욱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전설의 사나이 주왕은 갔어도 그가 숨어 살았던 주왕산은 그대로 남아 있어 인생은 짧고 산천은 의구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