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04. 7. 11
목적산 : 주왕산(720.6m)
위 치 : 경북 청송군 부동면
인 원 : 26명
코 스:우설령-주산재-798봉헬기장-740봉-대관령-왕거암-느지미재-내원마을-제3.2.1폭포-대전사(7시간)
인 솔 : 부산 새한솔산악회
날 씨 : 흐리고 안개, 한두차례 비


주왕산 지도(클릭하면 큰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 개요
경북 청송군에 위치한 이 산은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릴 만큼 기암괴봉과 깎아지른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연이은 계곡의 담(潭)과 소(沼)는 가히 경북 제일의 절승지로 꼽을 만하다. 이 산은 1976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산 곳곳에 주왕의 전설로 가득하다.

 주왕산의 전설
신라말에 당나라의 주도라는 반란자가 반란에 실패하여 이 곳 주왕산에 숨어 들어와 은거하면서 세력을 키워 나가다가 신라의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설인가 실체인가의 애기가 많았는데 주왕사적(周王事蹟)이라는 비기(秘記)가 밝혀지면서 그 내용이 드러나고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7세 후손으로 태어난 김헌창은 장사 100여명과 함께 웅천주(웅이산)로 들어가서 만 여명의 동지를 모아 웅진성(남양고을)에 진을 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때가 신라 헌덕왕14년이었다. 스스로 국호를 장안(후주천왕)이라 부르고 금성(장안)을 침공하려고 하였으나 헌덕왕의 명령을 받은 신(마일성)을 상장군으로 하여 싸움을 걸어오자 김헌창은 이 곳으로 피했으나 많은 전사자가 생기며 최후를 맞은 곳이다. 이 때가 825년 11월 10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후 김헌창의 아들 김법문이 826-892년까지 주왕산에 은거하면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북암, 운수암, 주왕암, 대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주왕사적은 김법문의 수제자인 낭공대사가 920년에 기록하여 주왕산 석름봉(가메봉) 서쪽 사창암에 묻어놓고 승려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는 100년이 넘도록 개봉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기록은1034년 11월 11에 출토되어 개봉되었다고 한다. 

대전사(大典寺)와 기암(旗巖)
대전사는 주왕산 입구에 자리한 명찰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때 명승 나옹대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 대전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라 표기 되어 있기도 하다.
대전사 뒤에 우뚝 솟아있는 기암(旗巖)은 중국계림의 기암(奇岩)을 보는 듯 신비롭기 그지없다. 마치 주왕산 수문장, 수호신처럼 느껴지는 기암은 주왕이 신라의 토벌대인 마장군 형제와 싸운 끝에 패배, 마장군이 깃발을 꽂았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 주왕굴과 학소대
주왕암 뒤로 좁은 바위틈 길을 따라 30m쯤 들어가면 거대한 암벽에 부딪치게 되는데 약 50여m되는 절벽 하단에 세로 5m, 기로 2m정도의 주왕굴이 있다. 주왕(실제인물 김헌창)이 마장군에게 쫒겨서 숨었다는 동굴이다. 굴로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가파른 암벽이어서 쇠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주왕은 천연의 요새인 이곳에서 대망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재기를 다짐하다가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학소대에는 정상 부근에 청학과 백학 한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일본인 포수가 백학을 쏘아 잡아버린 후,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고 보금자리만 남아 있다고 전한다. 또 한 학소대 중간쯤에 수백년 묵은 멋진 회양목 한 그루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탐내 톱을 가지고 오르다가 떨어져서 즉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격자상 절리(格子狀 節理)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주왕산국립공원자연자원조사>에 의하면 이들 기암봉들의 암질은 네모나게 쪼개지는 특질 즉 격자상 절리 현상이 유난히 잘 나타나는 각력질의 안산암 때문이라고 한다. 단애의 밑부분은 계곡물 등으로 인해 파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한편 상층부는 자체무게 때문에 쪼개져 떨어지며 지금과 같은 수직 단애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 주왕산의 산명과 높이
대개의 산명은 그 산의 최고봉에 주어지는데 주왕산은 좀 색다르다. 대전사 터가 직접 맥을 대고 있는 남쪽 뒤의 산봉 720.6m봉이 상봉의 위치를 차지했다. 주왕산 국립공원 북쪽 경계선상의 태행산(933.1m)이 주왕산 국립공원 내에서는 가장 높지만 인위적 구역 설정을 배제하고 보면 907.4m봉이 주왕산에서 최고봉이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산세를 두고 보아서는 가메봉(882.7m)이 주봉 역할을 한다.
이 가메봉이란 지명은 가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애기도 있고 주왕산의 저자 김규봉은 이 산의 정상에 왕거암이란 바위가 있는데 김법문이 봉화를 호응하기 위해 3년동안 살았다고 적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882.7m봉에 가메봉, 그 북동쪽 1.5km 지점의 907.4m봉에 왕거암으로 표기했는데 907.4m봉의 정상은 바위가 아닌 밋밋한 육산봉우리로 되어 있다니 아뭏튼 청송군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주왕산 주요 봉우리들의 명칭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내원동 마을
내원동은 숨어살기 좋은 곳, 임진란 당시 왜구의 노략질을 피해 40여가구가 화전을 일구며 은신한 것이 이 마을의 시작이었다. 그 후손들이 대를 이으며 일제시대에는 70여가구, 6.25전쟁이 끝나고도 50여가구가 몰려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채 10가구가 안된다.
전화는커녕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문명의 고립지. 당연하게 여기던 도시의 편리한 문화생활이 이곳에서는 사치다. 내원동은 성벽같은 산줄기가 주변을 빙 둘러싼 마을로 분화구 속처럼 펼쳐진 커다란 분지다. 험난한 계곡과 높은 고개가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위치에 있어 많은 이들이 피난처로 삼았던 곳이다.

 주산지
주왕산 남쪽 부동면에는 전국에서 둘도 없는 기이한 풍광의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 물에 허리까지 잠긴 거목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수몰되어 물에 잠기면 거의 모든 나무들은 죽고 마는데 이 곳 주산지의 거목들은 이미 수백년을 그대로 살아남아 잎을 피우고 있다. 면적은 약 6000평, 길이 100m, 너비 50m, 수심 8m의 아담한 이 주산 저수지가 생긴 것은 조선 중기다. 1720년(경종 원년)8월 착공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지금의 왕버드나무가 그 때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수중목이 없는 주산지는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없을 것 같아 1999년 20-30년생 수목을 주산지 주변에서 솎아내어 저수지 안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위 내용은 『월간 山』등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힙니다.



 산행기

오늘 산행은 초청하는 데가 많았지만 친구들과의 정기 모임으로 주왕산으로 가기로 하고 아침 일찍 약속장소로 나갑니다. 천태산에서도 만남의 장이 마련되어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을 생각하면 몇 군데를 갈 수없는 몸이 아쉽기만 합니다. 교대앞에는 장마철 산행이라 산꾼들이 많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때는 근교산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07시 30분
부산을 출발한 차는 쉬지 않고 달려 바다가 보이는 화진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09시 21분. 화진휴게소에서


영덕을 지나 우설령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산행 중 조망이 좋지 않을 것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10시 21분. 안개 낀 산행기점인 우설령


인원점검과 간단한 안내가 있은 후 곧바로 산행이 시작됩니다.

10시 30분. 산행 시작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일행 세분은 처음부터 산행을 포기합니다.팍팍한 오르막길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능선이 이어집니다.

안개낀 능선길을 걸어갑니다.


일제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송진 채취는 1960년대 말까지 이어져 산행길 곳곳에 그 흔적이 있습니다.

11시 35분. 송진 채취 흔적 1


송진 채취 흔적 2


산행중에는 안개가 끼었다 걷혔다 하고 능선이긴 하나 숲터널로 조망은 전혀 없습니다. 바람 한점 없는데다가 흐린 날씨에 습도가 높아 땀은 비 오듯 합니다. 하늘이 보이는 묘지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11시 47분.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 1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 2


12시 30분.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도 바람 한점 없습니다. 좁은 공간에 모여 가지고 온 도시락을 풀어 배고픔을 달래고 잠시 쉰 후 다시 산행을 계속합니다.

13시 06분. 청련사, 갓바위 이정표


13시 15분. 숲속에도 초록의 물결은 넘실대고


능선길로 산행은 계속되고


13시 23 분. 기암


마지막 비지땀을 흘리며 능선에 서니 삼거리가 나타납니다. 좌측으로 오르면 왕거암을 거쳐 가메봉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느지미재로 가는 길입니다. 907.4m의 왕거암은 삼거리 보다 높은 봉이지만 나무에 가려지는데다 안개로 인해 시야가 좋지 못합니다.

14시. 삼거리


느지미재에는 아무런 안내판이 없습니다. 다만 어느 산꾼이 표시해 놓은 표시기가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직진하여 오르면 명동재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큰골을 경유하여 내원동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좌측 계곡을 따라 하산을 재촉합니다.

14시 25분. 느지미재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나무로 된 다리가 나타납니다.

15시 19분. 내원교


내원교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


아직도 상의매표소가 5.8km가 남았습니다

이정표


이렇게 깊은 골짜기안에 분지처럼 넓은 곳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15시 30분. 내원동 분지 모습


이 곳 내원동 마을은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문화 혜택이 전혀 없는 이곳에는 현재 7가구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1960년대 농촌을 보는 듯 합니다. 농경지인 듯한 곳이 보이긴 하나 전부 휴경지이고 몇 가구는 등산객과 관광객들을 상대로 음식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듯 합니다.

내원동 마을과 가게 안내판


15시 34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음을 알리는 프랑카드


내원동마을 길가에 핀 꽃


꽃과 염소


해방이후만 하더라도 수십가구가 생활한 곳이기에 학교도 생겨 났는데 이제는 모두가 떠나고 7가구밖에 없어 자연히 학교도 폐교가 되고 말았지만 그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후답자들에게 그때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15시 39분. 지금은 폐교가 된 내원분교 1


내원분교 2


아치 다리가 예쁘게 걸려있는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치고 오르면 금은광이로 오르는 길이고 내려가면 바로 제 3폭포입니다.

15시 52분. 금은광이와 왕거암 삼거리에 있는 아치교


다시 찾아보는 제3폭포. 보기만 해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비경은 학문적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15시 55분. 제 3폭포


폭포옆 비경 1


폭포옆 비경 2


2단으로 흐르는 제 3폭포


주왕산의 비경들 1


주왕산의 비경들 2






제 2폭포


16시 40분. 시루봉


시루봉 옆모습


올려다 본 기암


급수대를 지나는데 또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사진을 찍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16시 50분. 급수대


대전사 입구에 도착하니 갑자기 억수같이 비를 쏟아냅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항상 보아온 대전사와 기암들을 찍으려고 몇 번을 벼루다가 사진기에 물만 튀기고 끝내 포기 하고 주변 식당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나오니 빗줄기가 가늘어 졌습니다.

15시 32분. 멀리서 본 주왕암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니 먼저오신 산님들의 막걸리 파티에 잔 하나 더 걸치고나니 오후 6시가 다 되었습니다. 주왕산을 뒤로 한 채 내리는 빗속으로 부산으로 향하며 오늘의 산행을 끝냅니다.


▣ 永漢 - 코스가 만만찮은 거리입니다.
코스도 길거니와 날씨가 더워서 땀꽤나 흘렸습니다. 천태산에서 즐거운 시간 가지셨네요. 영한님의 천태산 산행기도 잘 보았습니다.



▣ 산초스 - 주왕산하면 기암과 1,2,3폭포군요, 이우원님께서 새한솔산악회를 이끌고 주왕산을 다녀오셨네요.수고하셨습니다^^**
산초스님 안녕하세요. 주왕산은 언제가도 좋지요. 산악회는 제가 인솔한 것이 아니고 저는 그냥 따라갔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그날 산행은 어디서 해도 땀에 흠뻑 젖었지요. 부자되시고 산행도 많이 하세요. 



▣ 운해 - 주완산의 아름다운 풍경 줄감 하고 갑니다. 1.2.3폭포의 절경에 취해서 정상에 오르다 말고 소주에 하루 일정을 마감한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 넘은 세월이 흘렀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운해님도 산에 오르다 말고 소주로 하루를 지낸적이 있었군요. 관악산에서 뵙고 이번에도 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를 못해 미안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만나뵙지요. 항상 관심 가져주시는 운해님 건강하시고 즐산하시기를.... 



▣ 권경선 - 내원분교앞에서 막걸리 마시던 때가 있었는데.... 세월은 흘렀지만 주왕산의 비경은 여전하군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요.
권총무님도 벌써 주왕산을 다녀가셨군요. 내원마을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그런 여유를 가지시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관악산에서 베풀어주신 그 고마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안산하십시오.



▣ 브르스황 - 이번에 천태산에서 뵈올 줄 알았는데 주왕산에 가셨군요. 선배님의 사진을 보니 내원동엘 가고 싶네요. 3폭포의 사진들이 걸작입니다. 저는 3폭포사진을 아무리 잘 찍으려해도 좋은 위치가 없어서 제대로 담지도 못했는데, 선배님은 사진실력이 대단하십니다. 잘 보고 갑니다. 안산, 즐산하십시요.
브르스황님 이번에는 부부동반하셨군요. 항상 가족사랑이 남다르신 황님의 따뜻한 그 마음은 어디를 가도 복도 많이 받을겁니다. 부부동반하시어 자주 산행하시면 사랑이 그만큼 돈독해질테니까 앞으로는 자주자주 그렇게 하시기를....



▣ 서디카 - 우원님.. 주왕산 정보 .. 자료 .. 사진과 잘 올려 주셨군요.... 그럼 난 사진만 올려야 겠습니다..
그래도 서디카님 덕분에 주왕암도 보고 주왕굴도 보았네요. 역시 부지런하시고 재주도 많으시고 최고라니까요.....ㅎㅎㅎㅎㅎㅎ




▣ 이수영 - 우리는 반시계 방향으로 종주를 했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이우원님이 가신 코스는 가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이 코스는 우리가 갔었던 코스 보다는 쉬었네요. 하지만 그제께 얼마나 무더웠습니까? 특히 조망도 없는 코스를 오르시느라 땀께나 흘리신 것이 눈에 선합니다. 내원마을은 가 보지 않았는데 이 산행기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설마 이 무더운 날에 손을 꼬옥 잡고 오르지는 않았겠지요? 흐험..


우리가 출발한 코스가 바로 종주코스인데 느지미재에서 좌측 큰골로 하산하지 말고 직진하여 명동재와 먹구등과 금은광이를 지나 장군봉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종주코스지요. 이수영님도 습도 높고 후덥지근한 날 땀을 많이 흘리셨더군요. 그리고 앞으로 사모님 비위 좀 잘맞추세요. 나이가 더 들면 잘못하다가는 천덕꾸러기 취급받는다니까요 ㅎㅎㅎ


 


▣ 불암산 - 인사가 늦었습니다. 항상 산과 함께 하시는 이 모습 그대로 보여주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산이 그 자리 그대로 있기에 오르듯이 우원선배님. 행복하시고 늘 즐산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불암산 드림 -
불암산님 한국의산하를 위해 애쓰시는 님의 열정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번 천태산 모임에서도 모든님들에게 님의 정성이 가득하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가슴깊이 새겨야 할 소중한 정성입니다. 항상 불암산2님과 함께 건강하시고 안산하시기를 바랍니다.


 


▣ 물안개 - 폭포도 좋지만 저는 넘실대는 초록의 물결이 너무 좋으네요.이런길을 지날때면 두팔벌려 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신답니다.산하식구들의 아름다운 만남 영원하길 바라며......


물안개님 항상 이렇게 찾아주시니 뭐라고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안개님과 함께 산을 좋아하시는 님들의 산행기도 자주 보고 있습니다.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여러 산님들과 즐거운 산행 이어 가시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산사랑 - 더운날 고생하셨군요 . 그날은 동내 친목 산악 단체의 정기총회날이어서 배내골에 묻혀 있다가 나왔슴니다 .옛날에가본 내원분교 담쟁이 넝굴같은것이 붙어 있네요 .그때는 그래도 학생이 5명이라구 들었든것 같은데....좋은 그림 보고갑니다....
내원분교 벽에 담재이 넝쿨이 어우러져 더국 멋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총 7가구가 살아가고 있는데 그래도 요즘은 오토바이로 물건등을 실어나르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하여간 공기좋고 오염되지 않아 정말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