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산행기

서울 등산 동호회에서 10월 정기산행지로 정한 청송 주왕산을 가려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그곳은 거리가 멀어 아침 일찍 떠나 밤 늦게 돌아올 각오를 해야 한다. 근래 이것저것 감당하느라 분주히 생활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더 없어지고 좋아하는 산마저 자주 갈 마음을 먹기 어렵게 되었다. 그 산은 올봄에 한번 다녀 온 적이 있는데 다시 그 먼 거리를 다녀오며 여로에 시달릴 것이 걱정되어 참가를 망설였었다. 그처럼 거리가 먼 곳은 여독을 푸느라 다음날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휴일에 쓰려고 한  원고 걱정을 해야 했다.

일행이 탄 버스가 죽령 터널을 빠져 나가자 비스듬한 산 기슭에 가을빛을 받은 빨간 사과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풍기를 지나 안동을 가는 길가 들녘에는 벼가 가득 누렇게 익어 풍성한 느낌을 띠었다. 안동에서 청송을 거쳐 주산지를 가는 동안에는 도로 주변의 사과밭을 많이 보며 지났는데 그 때마다 노점석 건축사 부인과 함께 온 친구 분들이 “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안동을 거쳐 다시 한참을 가다 청송 지역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주왕산을 가기 앞서 주산지를 들렀다. 그 곳은 봄,여름,가을,겨율이라는 TV 프로로 제작되어 더 많이 알려진 듯 한데 나는 그 것을 본이 일이 없고 다면 신문에 소개된 사진을 통해서 태고적 신비로움을 느꼈었다. 주산지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한 인공 저수지인데 수령이 300년 이상 되는 왕버들이 가장자리에 자라고 있다. 그리고 주산지의 대표적인 풍경은 바로 그 거목으로 자란 왕버들이 저수지에 잠겨 태고적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번에 참가한 것은 주산지의 비경을 접해보려는 의도도 컷다. 그러나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있지 않아서 사진에 소개된 장면처럼 그윽하고 신비스런 풍경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날씨가 맑아 왕버들나무 가지에 자라난 잎이 연두빛을 띤 모습과 산들 바람에 일렁인 수면에 반사된 빛과 물살의 떨림, 그리고 주변 산세가 둘러쳐 있는 저수지의 고요하고 맑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주산지를 보고 다시 차에 오르자 박기호 재무가 사과를 하나씩 나눠 주었는데 지나올 때 눈으로만 보며 지났던 사과 맛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주산지로 가던 길을 돌아나올 때 차창 밖으로 다시 특유의 주왕산이 모습이 펼쳐 보였다. 그리고 우측 길로 접어들어 주차장에 내려 그 품으로 들어갈 차비를 했다.

주왕산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서울에 도착할 시간을 감안하여 5시에 출발키로 했는데 그를 감안하면 4시간 안에 산행을 마쳐야 했다. 그래서 대전사로 함께 이동한 다음 주왕산 정상을 갈 사람과 계곡만을 다녀올 사람으로 팀을 나누어 가기로 하고 나는 정상 코스를 택했다.

대전사 경내 바깥 울타리를 따라 조금 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주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거기서 직진하고 계곡은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가게 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나무계단이 놓인 오르막 길을 올라가다보니 주왕산 산세가 한눈에 펼쳐보이는 전망대가 나왔다. 내가 앞서 올라 스케치를 하다 있자니 일행이 올라와 함께 쉬다 앞서가면서 점심은 주왕산 정상에서 먹는다고 했다.
 
스케치를 하고 뒤따라가니 일행이 정상을 조금 지난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행은 각자 갖고 온 반찬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그처럼 산행에서 땀을 흘리고 하는 식사는 꿀맛 같다. 식사를 마친 후 정상석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내림 길을 내려갔다. 지도를 보니 주왕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의 거리가 훨씬 멀었다. 

후리 매기 삼거리가 500m 남은 지점부터는 옆에 흐르는 계곡물 따라 완만한 길이 나 있었다. 내가, 끝 마칠 때까지 그런 길이어서 힘들지 않게 갈 수 있을 거라고 하자 오늘 손님으로 오신 여성분들이 좀 싱거운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평소 산을 많이 다니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길에 절편 같은 편마암이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자 점차 힘이 부친 듯 했다.

완만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일행에게 걸음을 서둘러야겠다고 했다. 오늘처럼 코스를 나누어 진행할 때는 특히 시간을 잘 지켜야 불편이 없게 된다. 가다가 제3폭포로 가는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 다다랗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제3폭포를 들려 내려가겠다고 했다. 지난번 왔을 때 얼음이 얼어 폭포다운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곳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폭포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시 길을 돌아 나와 걷다 제2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그 곳도 들려 사진을 찍고 급히 돌아 나왔는데, 가지길로부터 폭포까지는 마치 아끼는 경치를 숨기려 한 것처럼  수직으로 선 절벽들이 병풍을 접어놓은 듯 시선을 가로 막고 있었다.  

다시 주 산행로로 나와 대전사를 행해 빠른 걸음으로 가다보니 동굴을 통과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 제 1폭포 입구가 보였다. 그 곳은 비좁은 절벽 사이를 빠져나가는 다이나믹한 공간감이 느껴지는데, 둥글게 패인 웅덩이 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그 안에 비경을 숨겨 놓은 듯 되어 있다. 제2, 3 폭포보다 특별히 큰 것은 아니지만 주변 기암절벽과 동굴처럼 일체로 되어 있어 더 장엄한 느낌을 띤다. 주변 사람들은 그 광경에 매료 되어 지나갈 줄 모르고 멈춰서 감상하고 있었다. 그 곳을 빠져 나가니 마치 특별한 공간으로 여행을 하고 난 느낌이었다.

다시 시계를 보니 시간이 빠듯해 서둘러 걸었다. 내려가는 도중에 주왕암을 들르려다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바로 내려갔다. 대신 길가에 세워 놓은 표지판을 보니 주왕암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주왕암이 표시되어 있었다. 다른 표지에는 주왕(周王)이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주왕암에서 나한봉까지 12km 길이로 쌓은 자하성(紫霞城)터라고 하는데 주왕굴을 그 중심 공간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주왕산까지 실로 먼 거리를 와서 느낀 점은 별천지이다. 속세의 삶으로부터 먼 주왕산의 빼어난 경치가 별천지이고 그 내부의 공간을 산세가 둘러친 것이 또 다른 깊이의 별천지를 이루어낸다. 아까 주왕산을 올라 전체 산세를 보았을 때 폭포와 만나며 지나가는 계곡을 기암 봉우리들이 위용을 뿜으며 둘러치고 있는 것이 흡사 성처럼 보였는데, 계곡으로 지나는 곳곳의 공간들도 마치 참호처럼 공간이 형성된 곳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의 깊이가 별천지의 별천지 모습으로 다가왔다.

대전사를 지나 음식점이 늘어선 곳을 지나가니 길 가 상점 앞에서 이 회장과 남상길 건축사 등이 서 있다가 나를 보고 큰 옹기에 사과와 함께 띄워 놓은 동동주를 한잔 떠서 권했다. 시원하고 특별히 맛이 좋았다. 막 부친 부침개 맛도 좋았다. 이 회장 일행은 제3폭포까지 갔다 왔는데, 이회장과 몇 명은 2km 더 먼 옛 마을 터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이 회장이 주차장으로 함께 걸어 나오며 자연과 잘 어울리게 지어져 있던 그 집들이 다 헐린 것을 안타까워했다. 모두 시간을 잘 맞춰 예정 시간에 서울로 출발했다. 시장할 시간이지만 가게서 준비한 막걸리와 부침개로  요기를 하고 식사는 가다 휴게소에서 하기로 했다.
(09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