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3. 11일

                  *소재지  :전남순천

                  *산높이  :장군봉884미터/연산봉851미터

                  *산행코스:선암사주차장-선암사-비로암-작은굴목재-장군봉

                            -장박골삼거리-연산봉-송광굴목재-송광사-주차장

                  *소요시간:11시15분-16시40분(5시간25분)

                 

 


 

  제가 사는 산본에서는 안양케이블방송에서 매일 “전설의 고향”을 틀어주고 있습니다.

전설의 고향은  라디오에서 시작했다가 얼마 후 TV로 옮겨져 꽤 오랫동안 방송된 장수프로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의 모든 편익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 사회의 틀을 바꿔나가는 요즈음, 더 이상 신세대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끌지 못해 공중파방송에서 사라진 한물간 “전설의 고향”을 이곳 지역케이블방송에서 누가 본다고 한 채널을 할애해 매일 방영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어제 조계산에서 어느 한 분이 산 길 곳곳에다 해놓은 전설의 해설판을 보고나서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전설과 신화, 그리고 민담을 모두 어우르는 설화는 사람들이 지어낸 최초의 픽션(fiction)입니다. 소설과 연극, 그리고 영화는 문자가 결실한 픽션이라면 설화는 문자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진 황당무계한 가공의 이야기들이 주이기에, 있음직한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 등과는 그 내용이 많이 달라도 대상이 사람과 신, 자연 어느 무엇이든 우리네 삶에 끌어들이고자 애쓰는 점에서는 설화가 현대문학의 원류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먼 옛날 글자를 모르는 우리조상들이 어떻게 자연과 더불어 살았고 영웅호걸을 찬양했으며 그리고 천지신명과 어떻게 교섭했는가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설화입니다. 어제 조계산에서 접한 그 많은 전설들이 디지털에 매몰된 우리 고유의 아나로그적 가치들을 다시 드러내 우리 문화의 원형을 일깨워주었듯이, 시청자들이 “전설의 고향”을 다시 보는 것도 이 프로가 오래 숨겨진 한류의 원형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 나름대로 그동안의 궁금증을 정리했습니다.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 오르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이제껏 미뤄온 조계산 산행을 서두른 것은 명산은 연봉들을 연결해 능선만을 오르내리는 “선의 산행”만으로는 마지막 2%의 갈증을 풀지 못함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백두대간 종주 때 덕항산을 지났어도 환선굴을 들러보지 못했고, 금북정맥 종주 시 덕숭산을 올랐어도 수덕사를 탐방하지 못해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으로 선정한 그 산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명산은 그 산 한 산만을 정해 산행하는 “점의 산행”이어야 숨겨진 비경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어제는 조계산 한 산만을 정해서 올랐기에 이 산보다 더 유명한 송광사와 선암사를 모두 들러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11시20분 선암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양재역에서 안내산악회의 조계산행 버스를 7시20분에 오른 후 4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자 하얀 눈송이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1713년에 놓고 2004년에 보수를 마친 보물400호의 아취형의 다리 승선교를 지나 봄 색이 물씬 도는 삼인당 연못가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선암사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이제껏 고즈넉한 곳에 다소곳이 자리한 암자보다 조금 큰 절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저는 처음으로 선암사의 실체를 보고나서 적지 아니 당혹했습니다. 시인 정호승님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가서 해우소에서 실컷 울라고 했던 선암사가 이렇게 큰 대찰인가 어리둥절했고, “태백산맥”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소설가 조정래님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며 문학적 자질을 키웠을지도 모를 선암사가 이렇게 북적대는 곳일 줄은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백제 때 창건된 고찰로 선교양종의 대표적 가람이 바로 선암사라는 것은 이 절에 와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사찰 이곳저곳을 들러보다가 “선암사 주지 **스님 당선을 축하합니다”라는 속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축플래카드를 보고나서 이제껏 제가 가졌던 선암사의 이미지가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어 서운했지만, 경내의 삼층석탑과 남도의 봄소식을 전해 주는 새빨간 동백꽃 그리고 분홍꽃 매화를 보고나서는 이 절에 정이가기 시작했습니다.


 

  11시50분 선암사를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 다다른 대각암에서 방향을 잘 못 잡아 북서쪽의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정서 쪽으로 길을 잡는 바람에 장군봉을 오르는데 반시간은 족히 더 걸렸습니다. 대각사의 공사장 옆 갈림길에서 서쪽 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계곡에서 물소리가 나 산악회에서 지정해 준 능선코스가 아님을 알았지만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답게 여기 저기 길이 잘 나있고 길안내도 잘 돼있어 갈림길로 되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전진했습니다. 계곡을 건넌 다음 밧줄을 걸어 놓은 작은 슬라브바위를 지나서  “비로암 길의 기형나무”라는 소제목으로 1979년 8월 “어빙”과 “주디”의 태풍의 내습으로 줄기가 처절하게 찢겨나간 참나무들이 그 후 어떻게 자라왔는가를 들려준 “조계산인 요산 잠수생 인오”님의 “생존”이라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이 산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이분의 노력은 곳곳에 해놓은 전설 안내판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이분이 채집한 전설의 내용을 찍어오지 못했습니다.


 

  13시14분 작은굴목재에 다다라 호남정맥길에 합류했습니다.

슬라브 바위를 지나서 원형이 잘 보존된 석성을 만났습니다. 석성을 지나 비로암 약수터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린 후 조금 더 올라가 갈림길에서 바로 위의 암자를 들르지 않고 돌아가라는 안내대로 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산등성으로 우회하는 중 너덜겅을 지났는데 암괴가 크고 분포면적도 넓어 마치 무등산의 너덜겅을 지나는 듯 했습니다. 승선교에 바로 닿는 삼거리를 지나 작은굴목재에 올랐습니다. 간헐적으로 내리다 말다한 눈발이 본격적으로 뿌리기 시작해 이 곳에서 바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장군봉으로 직진했습니다. 작은굴목재에서 장군봉을 거쳐 865봉까지는 호남정맥 길이어서 앞으로 2-3년 안에 다시 밟을 길이기에 눈여겨 다시 보았습니다.


 

  13시40분 해발 884미터의 조계산 정상봉인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작은굴목재에서 장군봉에 오르는 길이 이번 산행의 깔딱코스로 배바위로 올라서는 길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대홍수를 만난 사람들이 가축과 농작물 씨앗 등을 가득 실은 배를 이 바위에 묶어놓아 살아났다는 한국판 “노아의 방주”의 전설을 갖고 있는 배바위의 크기는 선운산의 배맨바위와 엇비슷해 보였습니다. 돌탑이 앉혀진 장군봉을 오르자 미친 듯이 휘날리는 눈보라가 한 겨울의 광풍과 매서운 추위를 재현했습니다. 금방 손끝이 아려오고 흰눈이 땅을 덮어 배는 고팠지만 이곳에서 점심을 꺼내 들기가 난망했습니다. 벌써부터 추위를 감지한 카메라가 태업에 들어가 조금 전에 지난 배바위는 물론 정상봉인 장군봉도 옮겨 담지 못하고 바로 연산봉으로 향했습니다.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 눈송이가 하얗게 깔려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꽃샘추위의 앙칼짐이 순하기로 이름난 능선 길 산행조차 힘들게 했습니다.  광기의 눈보라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길 섶에 앉아  후다닥 점심을 해치웠습니다.


 

  14시33분 장박골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출발 반시간이 조금 넘어 호남정맥 길에서 벗어나는 해발 865미터의 장박골몬당을 지났습니다. 장박골몬당에 관련된 전설을 해설한 “인오”님의 안내판이 있었습니다만 지금 기억나는 내용은 몬당이 산마루라는 것뿐입니다. 지나온 장군봉은 20분, 지나갈 연산봉이 45분, 직진 길 호남정맥 상의 접치고개까지 45분이 걸린다는 안내판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죽 길을 따라 2-3분을 더 걷자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장박골몬당에서 20분을 더 걸어 송광사를 4.2키로 남겨 놓은 장박골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몇 분들이 이 삼거리에서 보리밥집으로 하산했고 저 혼자 직진해 맞은편 해발787미터의 장박산에 올랐습니다.


 

  15시04분 해발851미터의 연산봉에 올랐습니다.

장박산에서 남쪽 방향의 연산봉사거리로 이어지는 호젓한 참나무 숲길이 이제까지 질펀했던 진흙이 한 낮이 지나자 기온이 내려가서인지 꾸덕꾸덕해져 걸을 만 했습니다. 연산봉사거리에서 한 부부가 건네준 쵸코파이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고 곧바로 10분을 더 걸어 헬기장이 들어선 연산봉에 올라섰습니다. 장군봉에서 865봉까지는 호남정맥 길을 따라 북진을 했고, 865봉에서 서진해 장박산에 다다른 다음,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연산봉에 이르기까지 U자를 그리며 걸어왔는데 장군봉은 조계산의 주봉답게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습니다. 연산봉에 올라 쵸코파이를 건네 준 분의 도움으로 남쪽 호남정맥 길에 위치한 고동산과 북서쪽의 산자락에 걸친 그림 같은 주암호를 확인했습니다. 연산봉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서 안부에 다다르자 넓은 잎 낙엽들이 소북이 쌓인 고즈넉한 길이 펼쳐져 이 길을 걷는 얼마동안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했습니다. 짧은 산죽 길을 지나 쉼터로 만들어진 안부사거리인 해발720미터의 굴목재에 내려선 시각은 연산봉 출발 25분 후인 15시30분이었습니다. 곧바로 가면 전설어린 쌍화수나무가 있는 천자암으로 가게 되고 목적지인 송광사 길이 오른쪽으로 갈리는 굴목재에도 “인오”님의 쌍화수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는 해설판이 세워져있었습니다.


 

  오른 쪽의 경사가 가파른 돌계단 길을 내려서 대피소를 지났고 얼마 후 계곡을 만났습니다. 대피소를 지나 조계종 송광사와 태고종 선암사의 스님들 사이를 갈라놓고자 저지른 어떤 마귀(?)의 악행을 막아냈다는 전설의 걸친바위를 지났습니다. 비룡폭포를 지나고 세 번째 나무다리를 건너 송광사 경내로 들어서기까지 순천시에서 나무줄기에 매달아 놓은 명찰덕분에 이 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산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당단풍나무, 때죽나무, 생강나무, 졸참나무, 굴졸참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쪽동백나무, 산딸나무, 나도밤나무, 비목나무, 정금나무, 물오리나무, 합다리나무, 신갈나무, 까치동백나무, 고로쇠나무와 편백나무가 조계산의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찰은 얻어달지 못했어도 사시사철 푸르른 대나무와 산죽들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산의 식구들이었습니다. 


 

  16시25분 송광사에 도착했습니다.

초장에 길을 잘 못 들어 반시간 넘게 까먹은 바람에 불보사찰 통도사 및 법보사찰 해인사와 더불어 3대사찰의 하나로 알려진 승보사찰 송광사를 세심히 들여다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대웅전의 규모에 압도된 저는 부지런히 경내를 둘러본 후 송광사를 빠져 나왔습니다. 언제고 순천에서 하루를 묵으며 순천만 갈대밭과 이번에 제대로 보지 못한 선암사와 송광사를 다시 찾아 볼 뜻이기에 아쉽기는 해도 주저하지 않고 주차장으로 내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른 분들이 올린 송광사의 사진들을 보고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위의 우화각이 주왕산 기슭의 주산저수지에 몸을 담근 왕버들처럼 다리아래 가득한 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에 감탄했습니다.    


 

  16시45분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미역국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인근 슈퍼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들며 조계산 산행을 자축했습니다. 그리고 귀경 길에 올랐습니다.


 

  꽃샘추위의 마지막 시샘으로 조계산 산행이 그리 편하지는 못했지만, 이 산에 어린 이러저러한 전설들을 채집해 해설판을 해놓은 인오님 덕분에 어렵지 않게 현세와 먼 옛날을 오갈 수 있었으며, 명찰을 걸어놓아 그 이름과 쓰임새를 일러준 순천시 덕분에 이 산의 나무들과 보다 친해질 수 있었기에 모두에 감사드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그동안 써오던 필명 비엠떠블유를 시인마뇽으로 바꾸었습니다.

저의 본 뜻인 book, mountain and work의 의미보다는 고급차종인 BMW로 알려져 BMW회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오해를 많이 받아왔습니다.  대학다닐 때 별명인 시인마뇽을  쓰기로 했는데 촌스럽기가 원시인 크로마뇽과 같다하여 붙여진 별명으로 디지탈시대를 살며 아나로그적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저와 잘 맞는 것 같아 앞으로는 원시인크로마뇽의 축어인 시인마뇽을 쓰고자 합니다. 비엠떠블유라는 필명으로 올린 졸고를 열심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번거로움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