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산·사자산의 만개한 철쭉

 

 


 


 

 


  어느 스님과의 대화

 

  이른 새벽, 서울 지하철 2호선 양천구청역 지하구내 승강장의 의자에 앉아 전동차를 기다리는 자투리시간을 활용하여 발목을 돌리다가 손가락을 주무르는 운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옆자리의 한 스님이 이를 바라보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한마디 조언을 합니다.
  "손가락은 이렇게 주물러야 혈액순환이 잘 된다고 하더군."
그러면서 손가락 끝을 주무르는 시범을 보입니다.


  "아, 예."
  필자가 알겠다는 듯이 대답을 하자 다시 한마디합니다.
  "이는 내 말이 아니고, 한의사가 하는 말이야."
  필자도 내일 모레면 어언 환갑을 바라보는 군번이라 밖에 나가도 누가 나에게 하대를 하지는 않는데, 이 스님은 다소 특별해 보입니다. 그러나 어투는 싫지가 않습니다. 무언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듯 합니다.


  "요즈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자꾸만 기억력이 희미해지고 눈도 침침해지는 것 같아!"
   필자를 쳐다보며 넋두리를 합니다.
  "아이고, 스님, 누구나 연세가 들면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입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기억력도 팔팔하고 눈도 잘 보이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겠지요."
  필자는 당돌하게도 꼭 스님이 해야 할 말을 내 뱉고 맙니다.
  "허허, 그런가!"


  스님도 아차 싶었는지 너털웃음으로 응수합니다. 그러더니 정색을 하고는 말합니다.
  "내가 이래 보여도 한 달에 3∼4백 만원을 벌어!"
  "예?"
  스님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오자 잠시 혼란을 일으킵니다.


  "예, 큰 사찰을 운영하고 계시군요. 사찰이 어디에 있습니까?"
  "xx아파트에 살고 있어."
  "아파트에도 사찰이 있습니까?"
  "아니, 내가 사는 아파트야. 나는 지금 수원에 있는 xx사로 가는 중이야. 1주일에 한 두 번 정도 가는데, 한 달에 50만원씩 받아. 두 곳에 가니까 100만원수입이지. 그리고 고관대작들도 자주 나를 보자고 해. 만나서 식사하고 나면 용돈으로 봉투 하나씩을 줘. 열어보면 보통 50만원 정도 들어 있어. 그 외에도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는데 가는 곳마다 20∼30만원을 받아. 또한 노령연금이 몇 십 만원 씩 나와."
  "고정된 큰 수입이 있어 좋으시겠습니다."


  이때 전동차가 역구내로 들어왔으므로 객차에 올라타고는 다시 스님 곁에 앉습니다. 스님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괴나리봇짐 하나도 없이 가사적삼에 고무신만 신었습니다.
  "스님!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쓰십니까?"
  "매달 150만원은 저축하고 나머지는 내가 써. 나도 쓸데가 많아."
  "저축은 해서 뭐하시게요?"
  "내게는 출가 전 아들이 하나 있어!"


  "그러면 지금 그 아드님과 연락이 되십니까?"
  "그럼! 매일 새벽에 안부 전화가 와. 그는 나더러 휴대폰을 항상 켜 놓고 있으라고 해. 아들은 현재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데 매우 잘 살아."
  "아, 그러시군요. 아무리 아귀다툼을 하면서 돈을 벌어놓아도 돌아가실 때 이를 가져가는 것도 아닐텐데 왜 저축을 하나 했어요." 


  필자의 당돌한 대꾸에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속세를 떠난 스님은 돈 버는 이야기를, 속인인 필자는 돈을 써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누가 보아도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궁금해서 연세를 간접적으로 여쭈어 봅니다.
  "금년 연세가 고희는 지났지요?"
  "내 나이 벌써 일흔 여덟이야!"
  "연세에 비해 참으로 정정해 보이십니다."


  두 정거장이 지나 신도림역에 도착하였으므로 스님과의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스님도 일정한 사찰에 소속되지 않은 채 이처럼 소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속세를 떠나 왔지만 속세에 두고 온 자식을 잊지 못하는 끈끈한 혈육의 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암산 철쭉 축제

 

  2007. 5. 5∼5. 6 기간 중 제암산 철쭉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온 산을 붉게 물들인 철쭉 군락을 볼 수 있으리라는 부푼 희망을 안고 남쪽으로 달립니다. 호남고속국도 광주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장흥 방면으로 가는 길이 꽤나 멉니다. 전국의 주요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다고는 하지만 광주에서 장흥과 보성으로 접근하는 길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손님을 가득 태운 등산버스(A산악회 주관)가 서울을 출발한지 5시간 30분만에 전남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 금산저수지 입구에 정차합니다(12:30). 철쭉 축제를 맞이하여 찾아오는 차량들이 많아 이곳에서 출입을 통제합니다. 당국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있다고 하지만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약 1km거리를 걸어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입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잔뜩 흐린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남도에 진입하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산행준비를 하면서 일부는 비옷을 꺼내 입습니다.

 

 


  짙은 안개에 젖은 촛대바위

 

  관리사무소까지 걸어가 공동묘지를 왼쪽 옆구리에 끼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죽은 자들은 한 평 남짓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반면, 이 시각 현재 살아 있는 자들은 배낭을 양어깨에 메고 꽃구경을 하러 가는 중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도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입니다. 제암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촛불바위 방향으로 가기 위해 왼쪽의 등산로로 진입합니다. 그런데 산행을 시작하자 지금까지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는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하산을 완료할 때까지 좋은 날씨가 계속됩니다.


  별로 특징이 없는 평범한 숲길을 걸어갑니다. 철쭉은 등산로 주변에 한 두 그루씩 피어 있을 뿐 무리를 지어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설령 군락지가 있다고 해도 짙은 안개로 인하여 겨우 10여 미터만 보이는 실정이니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어 답답할 따름입니다.


  울창한 숲 속을 벗어나 뒤를 돌아보면 전혀 보이는 것이 없는 무(無)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안개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금년 연말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이합집산(離合集散)과 티격태격하는 소식을 언론에서 매일 접하는 것도 이제는 신물이 나므로 차라리 짙은 안개라도 끼여 장막 뒤에서 발생하는 일을 모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언론에서는 이처럼 짜증나는 뉴스를 연일 크게 보도해서 보통사람들이 정치에 혐오증을 가지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뾰족한 바위 한 개를 지나 숨을 헐떡이니 거대한 바위가 눈앞에 나타납니다(13:30).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 바위를 통과하고 나서야 촛대바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양쪽으로 큰 바위가 도열한 사잇길에는 굵은 로프가 매어져 있는데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제법 팔과 다리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다만 이 로프는 그 동안 내린 비로 인하여 진흙이 묻어 있어 손으로 잡을 용기가 선뜻 나지 않습니다.


  촛대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의 조망이 날씨가 좋으면 기가 막힐 테지만 짙은 안개로 인하여 바위 자체만 잘 보이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촛대바위>

 

   <뒤돌아 본 촛대바위>

 

   <짙은 안개>

 

                                                          <뒤돌아본 암봉>

 

 


  능선에 걸려있는 운무
 
  촛대바위를 지나 약 300미터 더 가니 능선 삼거리입니다. 오른쪽은 사자산으로, 왼쪽은 제암산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입니다. 북쪽의 제암산에서 남쪽으로 곰재봉을 거쳐 사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왼쪽은 맑은 반면, 능선 오른쪽은 짙은 안개에 파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오른쪽 계곡의 하얀 안개가 왼쪽의 계곡으로 흘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물론 안개가 능선을 타고 넘으며 다양한 그림을 그려주면 더욱 황홀하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이는 뜻하지 않은 수확입니다. 왜냐하면 촛대바위를 지날 때만 해도 이런 장관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바라본 제암산 정상>

 

  <곰재산~사자산 능선의 농무>

 

   <곰재와 간재 골짜기를 넘는 농무>

 

 

  천하를 호령하는 제암산 임금바위

 

  제암산 가는 능선에는 이외로 많은 철쭉이 피어 있는데 눈앞으로 점점 가까워 오는 정상의 위용에 압도당하는 기분입니다. 큰 바위에 도착하기 전 제암산을 알리는 정성표석(807m)이 서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였지만 막상 정상의 임금바위 밑에 서자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임금바위로 오르는 바위길이 매우 까다로운 암벽이어서 이곳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각기 다른 행정기관이 설치한 것입니다).  

 

   <짙은 안개가 덮혀 있는 임금바위>

 

 <제암산 표석>  

 


  제암산(帝岩山) 정상은 임금 제(帝)자 모양의 3층 형태로 높이 30m 정도 되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필자 홀로 왔으면 그냥 뒤돌아 섰을 텐데 마침 같은 산악회에서 온 동지 2명을 만나 함께 위로 올라가기로 결심합니다. 오르는 길은 두 군데가 있습니다. 전체 높이는 30m이지만 실제로 오르는 높이는 10여 미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오름 길은 오른쪽 루트보다는 왼쪽 루트를 선택합니다. 다행히 바위에 틈이 있어 바위에 붙어서 몸을 옆으로 움직이면 공간 확보가 가능해 그리 어렵지 않게 정상으로 오릅니다(14:12).    

  
  정상에 서니 다른 형태의 정상표석이 반겨줍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팔방의 조망이 매우 좋습니다. 북쪽으로는 시루봉을 거쳐 작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선명합니다. 남쪽으로는 임금바위 앞 작은 바위 너머 곰재봉을 거쳐 사자산으로 이어지는 곧 가야할 능선이 어서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 사이엔 보성군 웅치면의 넓은 경작지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임금 바위의 제암산 표석> 

 

   <임금 바위 바로 앞의 암봉>

 


  날씨가 청명한 날 정상에 서면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인 천관산, 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월출산, 전남·광주의 진산인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온다지만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제암산은 수 십 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 정상의 바위를 향하여 주변의 여러 암봉들이 임금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있는 형상이어 이 바위를 임금바위(제암)이라고 부르며, 이산을 제암산이라 한다고 전해집니다. 

 

 <임금바위를 내려와 뒤돌아본 모습>

 

 <임금바위를 내려서는 필자, 사진 좌측 맨 위쪽 노란색 배낭을 맨 여성의 바로 앞

붉은 모자를 쓴 사람이 필자임, 이 사진은 한국의 산하 saiba님 산행기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임>


 

   <안개가 걷힌 임금바위>

 

 

  형제바위의 슬픈 전설

 

  제암산 임금바위를 내려와 능선삼거리로 되돌아옵니다. 능선 곳곳에는 산을 찾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식사를 하면서 그 옛날 임금이 된 기분으로 휴일의 한 때를 즐기고 있습니다.


  삼거리에서 곰재봉 방면으로 내려서는데 오른쪽 확 트인 공터에 큰 바위가 우뚝 서 있습니다. 바로 형제바위입니다(14:40). 옛날 효성이 지극했지만 가난했던 형제가 병든 어머니를 위해 산나물을 캐러 제암산에 올랐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자리에 솟아났다고 전해지는 바위입니다. 어찌되었든 서 있는 바위의 모습은 흡사 기둥만 남아있는 로마의 유적을 연상시킵니다.     

 

   <형제바위>

 

 

  철쭉 군락이 시작되는 곰재산 능선

 

  한참을 내려서니 잘록이인 곰재입니다. 곰재는 과거 동학군이 관군에 쫓겨 넘었다는 고개입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철쭉 군락이 시작됩니다. 무리를 지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철쭉을 보려고 부산에서 온 노인그룹 중에는 평상복 차림에 구두까지 신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다리는 점점 무거워 지지만 철쭉에 취해 가슴은 벌렁거립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곰재산(614m) 바위를 지나 발걸음을 옮기니 "제암산 철쭉제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곰재산에 설치한 제단인데도 불구하고 제암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네요. 사방으로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철쭉이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그 동안 능선과 골짜기를 휘감던 안개도 어느새 말끔히 걷히고 이제는 막힘 없는 조망이 사방팔방으로 터집니다.


  되돌아보면 지나온 제암산의 능선이 거대한 산맥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운데 특히 임금바위와 그 옆의 바위봉이 매우 우뚝합니다. 남쪽으로는 가야할 사자산이 가까이 보이고, 사자산의 서쪽으로는 역시 가야할 사자두봉(獅子頭峰)이 사자머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철쭉 군락지>

 

   <철쭉 군락지 사이로 조성된 등산로> 

 

   <화려한 철쭉>

 

 <곰재산 이정표 뒤로 보이는 사자산>

 

   <곰재산 정상의 인파>

 

   <화려한 철쭉 뒤로 보이는 사자산>

 

  <철쭉 제단 표석에서>

 

   <철쭉 제단 표석 인근>

 

   <제암산 철쭉 평원표석>

 

   <간재로 가는 길>

 

 


  사자의 엉덩이에 해당하는 사자봉

 

  여기서부터 사자산(666m)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역시 철쭉의 세상입니다. 잘록이인 간재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능선이 그냥 죽 이어졌으면 편하련만 왜 꼭 이렇게 잘록이를 만들어 놓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풍진 세상도 산의 능선과 같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입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가던 능선 길도 다시 힘들여 오를 때면 입에서 단내가 납니다.


  사자산(미봉)에 서니 동쪽이 완전히 열립니다(16:02). 소위 준족들이 종주를 하는 삼비산(664m)과 일림산(627m)이 다소곳이 드러누워 있습니다. 서쪽으로 사자두봉까지 늘어진 능선은 꼭 사자의 굽은 등줄기를 닮았습니다. 곰재산에서 바라볼 때 매우 부드러워 보이던 능선도 사자산에서 보니 왼쪽은 완전히 절벽입니다. 이 기암절벽은 설악산과 월출산의 암릉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자연미를 자랑합니다.

 

   <만개한 철쭉>

 

   <가야할 사자두봉>

 

   <사자산 정상(미봉)>

 

   <사자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곰재산과 제암산>

 

 <보성군 웅치면 모습>

 

   <사자봉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사자미봉>

 


  콧노래 부르는 사자산 능선   

 

  사자산에서 사자두봉으로 이어진 능선은 한마디로 꿈의 능선입니다. 사방의 조망이 좋고 능선의 길이 매우 부드럽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는 중간 중간에 우뚝 선 바위와 절벽 그리고 활짝 핀 철쭉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야말로 기분 좋은 산길입니다.

 

   <뒤돌아본 사자봉>

 

   <동쪽의 남해 바다>

 

  <지나온 능선의 기암절벽>

 

   <가야할 사자두봉>

 


  사자두봉(560m)에서 동쪽의 사자산정상(미봉)을 거쳐 남쪽으로 뻗는 주릉의 형상이 마치 장흥벌을 향해 울부짖는 사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사자앙천형(獅子仰天型)의 산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기분 좋은 능선길입니다. 


  사자두봉 직전의 큰 바위 중턱에는 흙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철쭉 한 그루가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고 있습니다.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은 아무도 말리지 못할 것입니다. 


  저녁노을 촬영명소로 손꼽히는 사자두봉에 올라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어 비가 내릴 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16:38).

 

   <기암옆 남서쪽 경관>

 

   <바위 중턱의 고고한 철쭉>

 

                                       <사자두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과 사자산>

 

   <먹구름이 몰려오는 산하>

 

   <장흥 시가지>

 

   <제암산 능선>

 

   <첩첩한 산그리메>

 

    <톱니같은 하늘금>

 


  죽음의 내리막길

 

  사자두봉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세워 주차장으로 내려섭니다. 지금까지 능선을 따라 온 길이 따스한 햇빛이 비추는 봄날의 꽃길이었다면, 하산 길은 엄동설한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에 서있는 형국입니다.


  길바닥은 비가 온 후여서 굉장히 미끄러운 데다가 경사마저도 매우 급한 흙 길이지만 보조안전시설물이 하나도 없어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자두봉에서 함께 출발했던 산악회 회원들은 필자가 사진을 찍는 사이에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나 홀로가 되었다는 급한 마음에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부지런히 내려갑니다.


  이 와중에 중간에는 너덜지대가 나타나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합니다. 다행히 약 2개월 전부터 두 개의 스틱을 사용하게 되어 길의 조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도 길섶의 나무를 잡지 않고 스틱으로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음은 소위 쌍지팡이의 위력입니다.

 

   <너덜지대>


  임도를 건너자 길은 다시 숲 속으로 이어지는데, 이제부터는 평범한 길입니다. 바위 협곡을 통과해 계곡을 건너 주차장에 도착합니다(17:18). 오늘 산행에 4시간 48분이 소요되었습니다(산행코스 : 금산저수지/관리사무소/촛대바위/능선삼거리/제암산/능선삼거리/형제바위/곰재/곰재산/간재/사자산정상/사자두봉/관리사무소).    

 

   <계곡 옆 협곡>

 

 

 


  갑자기 쏟아지는 폭풍우

 

  주차장에는 산악회 대형버스가 몇 대 서 있지만 필자가 타고 온 버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산악회 측에서는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입구까지 봉고차(15인승)로 내려오는 등산객을 실어 나릅니다. 필자는 방금 떠나는 봉고차의 좌석이 부족하여 뒤에 남고 말았습니다.


  필자는 거의 선두그룹으로 산행을 했기에 우리 뒤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 겨우 10여명뿐이라고 합니다. 알고 봤더니 처음 제암산을 오를 때 중간그룹의 사람들은 촛대바위를 거치는 대신 바로 곰재 방향으로 오른 후 제암산이 아닌  곰재산 방면으로 산행을 했고 또 일부는 간재에서 사자산을 오르지 아니하고 오른쪽으로 탈출하였다는 것입니다.  

 

   <도로변 철쭉>


  후미그룹이 내려 올 때를 기다리다가 부부등산객이 버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기에 필자도 그들 뒤를 따릅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금방 옷이 젖을 정도입니다. 마침 그 때 후미그룹을 태운 봉고차가 내려오기에 얼른 차에 오릅니다.


  대형버스가 주차하고 있는 민가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는데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바람마저 거세게 붑니다.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국밥 한 그릇을 비우는 도중에는 지금까지 다소 조용하게 내리던 비가 폭풍우로 돌변합니다.


  우산을 펼 수 없을 지경으로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그래도 우리 회원들은 전부 안전하게 하산을 완료하였기 망정이지 산 속에 있었더라면 큰 낭패를 당했을 것입니다.

 

 


  꽃 산행(관광)은 고생길

 

  순식간에 엄청난 규모의 폭우가 쏟아져 도로에 흥건하게 물이 고이자 버스의 바퀴가 물방울 위에 떠서 굴러가는 현상이 발생하여 버스가 자주 휘청거립니다. 다만 관광버스사장이 직접 핸들을 잡고 있는 중이어서 운전에는 베테랑이라는 점이 그나마 마음이 놓이지만 그래도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당겨 멥니다.
  버스가 광주를 향해 올라 갈수록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이윽고 비가 거칩니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내리던 비가 그친 후 하산을 완료하자 다시 비가 오는 것을 보면 산악회와 오늘 산행에 참가한 회원들이 평소 선행을 많이 한 탓일 것입니다.


  호남고속국도에 들어서 기분 좋게 달리던 버스는 전주시가지 구간에 들어서자 그만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 앞에 항복을 합니다. 급히 말머리를 돌려 국도로 빠져 나와 요리 조리 달리기를 계속한 끝에 다시 논산∼천안간 고속국도로 진입합니다.


  그러나 버스가 경부고속국도의 천안에 다다르자 버스전용차로마저도 무용지물입니다. 전용차로와 일반차로의 속력이 같아져 구분이 없어집니다. 어린이날 연휴와 철쭉이 피는 계절을 맞아 지방으로 나들이 갔던 수많은 차량들이 전부 귀경길 고속국도에 몰린 탓입니다.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려는 기대가 물거품처럼 살아짐을 확인하는 순간 차라리 마음을 느긋하게 먹습니다.
 

 

 

  불안한 총알택시

 

  자정이 이미 지난 시각 서울 사당역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집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택시뿐입니다. 그래서 승차한 택시는 그야말로 과거 악명 높았던 소위 총알 택시입니다. 필자는 최근 심야에 택시를 이용한 적이 없어 아직까지 총알택시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붉은 신호등도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그냥 무시합니다. 그리고 마치 총알처럼 내달리다가도 삐삐 소리가 나면 용케도 속력을 줄여 감시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피합니다. 예로부터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였지만 자동차운행이 생활화 된 이후부터 인명은 재차(在車)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야 서울에서 총알택시를 타본 사람은 인명은 택시에 달려 있음을 금방 알게 됩니다. 1만 5천 원의 요금을 지불하고는 얼른 내리며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에필로그

 

  제암산과 사자산 철쭉은 전국의 이름난 철쭉군락 가운데 가장 빨리 꽃 소식을 전하는 곳입니다. 위도가 남쪽이고 해발이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두 산의 철쭉 군락지에 피어 있는 환상적인 꽃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아마도 다음주까지는 만발한 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암산과 사자산을 연계하는 산행은 제암산 임금바위를 비롯하여 촛대바위와 형제바위의 장관을 볼 수 있고, 제암산∼곰재산∼사자산∼사자두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에 서서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을 감상할 수 있어 사계절 어느 시기에 방문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명산입니다. 특히 철쭉이 만개한 시기에 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보너스로 "천상의 화원"이라는 큼직한 선물을 한아름 제공받게 될 것입니다(2007. 5. 6). 끝.


펜펜의 나홀로 인생
산행.여행기, 산행후기.자서전 출판, 야생화, 유머, 세계의 열쇠고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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