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목요일),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정암산과 해협산을 종주하기로 한다. 어느 산행기에 귀여리에서 오르는 정암산에는 까치독사가 산다고 하여 까치독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오르려고 이 곳의 산행을 다른 곳보다 우선한 것이다.

 8시 10분에 집을 나서서 전철을 타고 강변역에 내려서 노점에서 점심용으로 개떡 한 팩을 사고 테크노마트 앞의 버스정류장에 닿으니 9시 15분. 10분 정도 기다리니 9시 25분에 광주 퇴촌으로 가는 13-2번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를 타고 하남을 지나서 광주의 퇴촌동광농협 앞에서 내리니 10시 37분. 이삼분 정도 기다리니 검천리, 수청리행 광주시내버스가 도착한다. 이 버스는 귀여교를 건너서 귀여리를 지나 남한강변의 지방도로를 달리다가 11시 5분에 검천 2리(종여울)에 도착한다. 검천 2리의 마을표지석에는 남한강이 한양(서울)으로 흐르다가 여울을 형성하면서 여울이 마을 앞에서 끝난다고 하여 종(終)여울마을이라고 전해져 온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등산화끈도 조이고 스틱을 편 후에 11시 20분 경 마을표지석이 있는 콘크리이트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동네의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 온다. 도로를 한참 오르니 길은 비포장으로 바뀌고 카페트를 깐 듯한 푹신한 감촉의 황토길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임도가 끊기고 눈이 쌓인 산이 앞을 가로막는데 선답자의 발자국도 없어서 수십 미터 쯤 산길을 걷다가 불안한 마음에 다시 마을 입구로 되내려온다. 도로를 걷다 보면 능선으로 연결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진행한 게 잘못이었다. 다시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온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지방도로까지 와서 버스가 오던 길을 수십 미터 쯤 되돌아가니 정암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려온 주능선의 끝자락인, 지방도로 옆의 오르막길인 정암산의 들머리가 나온다. 이 오르막을 오르니 전주 최씨의 묘를 비롯한 여러 개의 묘가 나타난다. 우측에 철조망이 쳐져 있는 등로는 꽤 가파르고 제대로 길도 나 있지 않지만 낙엽을 밟으며 한참 오르니 들머리에서 14분 만에 첫 번째 벙커에 닿는다.



검천 2리(종여울) 버스정류장.



검천 2리(종여울) 마을표지석.



솔잎이 카페트 처럼 깔린 푹신한 임도의 정경.



정암산 들머리 - 검천 2리(종여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오던 쪽으로 수십 미터 쯤 되돌아와서...



첫 번째 벙커.


 그 이후의 등로는 서서히 편해진다. 벙커에서 20분 쯤 더 걸으니 사거리안부가 나타나고 그 직후에 정암산 정상까지 1.55 킬로미터가 남았다는 방향표지판이 설치된 삼거리가 나타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검천 2리까지 0.75 킬로미터라는데 양지말의 지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가 내려다보인다. 삼거리에서 5분 후에 두 번째 벙커가 나타난다.



호젓한 지릉길.



사거리안부.



삼거리의 방향표지판.



양지말에서 올라오는 지능선길과 만나는 주능선상의 삼거리.



두 번째 벙커.


 낙엽이 두텁게 쌓이고 그 위로 눈이 얇게 쌓인 지릉길을 걷는다. 간간이 불어 오는 서풍에 추위를 느끼지만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따뜻한 날씨다. 눈에 덮힌 낙엽길을 걷다가 눈 위에 찍힌, 너구리인지 살쾡이인지 모를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새를 잡아 먹었는지 새의 털이 뽑혀 있는 곳도 지난다.

 눈 앞에 암릉지대가 나타나는데 선답자의 발자국은 암릉지대를 우회하고 있다. 잘 살펴보니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 암릉을 올라 본다. 아무 발자국도 나 있지 않다. 암릉 위에서 남한강과 예빈산, 예봉산을 조망한다. 그런데 암릉을 올라오다 보니 등산화가 젖어서 배낭에서 스패츠를 꺼내 착용한다. 그리고 정암산의 정상표지석이 보이는 곳까지 오니 암릉을 내려가는 게 약간 위험해 보여서 암릉지대를 되내려와서 선답자의 발자취를 따른다. 가끔 서풍이 세차게 분다.



낙엽과 눈이 쌓인 지릉길.



야생동물의 발자국 1.



정암산 정상 직전의 암릉지대 1.



정암산 정상 직전의 암릉 위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예빈산, 예봉산.


 암릉을 우회하느라고 또 20분여를 허비하고 정암산 정상에 이르니 14시 20분이다.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이 설치된 해발 403 미터의 정암산은 산의 정상에 큰 바위가 있어서 그 바위를 중심으로 검천리와 귀여리의 경계를 이룬다고 하여 정암산(正巖山)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정암산 정상에서 두물머리와 검단산을 조망한다.

 그리고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곳에 걸터 앉아 개떡과 음료수로 점심 식사를 한다. 땀이 식으며 추워져서 더 앉아 있기도 어려워 20여분간의 식사 겸 휴식을 마치고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독도를 하며 해협산으로 갈 준비를 한다. 저 멀리 동남쪽에 눈에 덮힌 해협산이 조망된다.



정암산 정상의 방향표지판.



정암산 정상의 정상표지석 - 해발 403 미터.



정암산 정상의 삼각점.



정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두물머리와 검단산.



정암산 정상의 소나무와 바위.



정암산 정상에서 바라본 해협산.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암릉지대의 우회로를 약간 되내려가다 보면 해협산으로 가는 동쪽의 지릉길이 뚜렷이 나 있다. 지릉길을 나아가다 보니 사람의 발자국은 없고 아까 본 것과 같은 형태의 야생동물의 발자국만 눈에 띄는, 어중간한 크기의 바위가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이 곳이 주능선의 방향이 동쪽에서 남쪽으로 바뀌는 404봉일까? 그러나 동쪽에서 남쪽으로 급격히 꺾어지는 능선이 아니기에 확신은 서지 않는다. 아까 내려온 북쪽의 정암산을 돌아본다. 그리고 저 멀리 앞쪽에 뾰족하게 솟은 해협산을 바라본다. 얼마나 더 가야 저 곳에 닿을까.

 오늘은 산행중 한 사람도 만나지 못 했다. 심각한 고립감과 함께 두려움이 서서히 밀려온다.



정암산 정상 직전의 암릉지대 2.



좌측(북쪽)의 종여울과 우측(남쪽)의 귀여리로 내려가는 안부사거리.



야생동물의 발자국 2.



404봉?



북쪽의 정암산을 뒤돌아보며...



남쪽의 해협산.


 한참 진행하다 보니 난해한 지형이 나타난다. 낙엽이 두텁게 쌓여 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비탈길을 무작정 내려간다. 나뭇가지 같은 장애물들을 피해 내려가서 안부 같은 곳에 도착하여 잠시 쉬며 간식을 먹고 나서 얼어붙은 개울을 건너니 오름길은 순백의 설경이 펼쳐지는 눈밭이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숫눈길을 진행하다가 사람의 발자국 위에 다시 눈이 한 겹 덮힌 눈길로 진행하면서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사람의 발자국도 끊어지고 발이 30 센티미터 정도까지 깊숙하게 푹푹 빠지는 곳을 지나게 된다. 한 발 한 발 옮기기가 무척 힘이 든다. 그러다가 다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지나친 체력 소모를 피해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길은 서서히 가파라지고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잔 나뭇가지와 바위를 붙잡고 오르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들머리의 초입이 이런 상황이었다면 산행을 포기하고 귀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우직하게 헤쳐 나아가지 않으면 달리 방도가 없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탈출로가 해협산으로 올라서 염치고개로 하산하는 것이니 되돌아가는 것은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 더 위험하다. 내가 미친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왜 이런 위험한 고행을 하고 있는지... 깊은 고립감과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듯한 두려움이 은근히 뇌리를 스치지만 이런 감정에 둔감해지려고 애써 본다.

 한참 진행하다 보니 좌측의 사면에서 러셀을 해서 올라온 흔적이 보인다. 아마 몇 시간 전의 족적 같다. 그 흔적을 따라가니 상당히 편하고 적지 않게 안도가 된다. 마침내 바로 위에 철망이 쳐진 전기시설이 보여서 해협산 정상임을 직감한다.

 오석으로 된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이 설치된 해발 531.7 미터의 해협산 정상에 오른다. 천지개벽 당시에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피난을 하던 중 정상에 있는 군두바위에 말뚝을 박고 배를 잡아 매었는데 바위가 있는 곳이 골짜기라고 해서 해협산(海峽山)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해협산 정상에서 남한강을 바라본다.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라도 앉아 있으려고 하는데 바닥은 온통 눈이 녹아서 축축하여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십분 쯤 쉬다가 남쪽으로 하산을 재촉한다.



눈밭길.



누군가의 러셀 흔적을 따라가며...



해협산 정상의 전기시설.



해협산 정상의 정상표지석 - 해발 531.7 미터.



해협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한강.



해협산 정상의 삼각점.


 남사면은 눈이 거의 다 녹아 있을 뿐더러 깨끗이 말라 있어서 내려가기가 쉽다. 해협산에서 내려선지 8분 후에 바위 위에 돌탑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방향표시판은 우측(남쪽)을 하산로로 가리키고 있다. 이 곳에서 좌측(동쪽)으로 가면 석둔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남쪽)으로 가면 염치고개로 내려가는, 가장 빠른 하산로다. 염치고개를 향해 내려간다. 무척 가파른 부분도 있지만 두텁게 쌓인 눈길을 힘겹게 오른 북사면의 해협산 오름길을 생각하면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등로 옆에 폐묘가 있는 곳을 지나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간다.



돌탑이 있는 삼거리.



돌탑이 있는 삼거리의 염치고개 하산로 방향표지판 - 좌측(동쪽)으로 가면 석둔으로 가는 길, 우측(남쪽)으로 가면 염치고개 하산길.



편한 하산길.



폐묘가 있는 등로.


 지릉길을 다 내려오니 짧은 계곡길이 기다리고 있다. 마른 개울을 좌측으로 끼고 십여분 쯤 내려가다 보니 염치고개 밑의 지방도로에서 등로가 끊기는 해협산 날머리에 닿는다. 그런데 퇴촌으로 가는, 드물게 오는 시내버스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차들이 질주하는 지방도로를 조심스럽게 건너서 음식점에서 퇴촌동광농협으로 가는 길을 물어 보니 4 킬로미터 정도이고 걸어서 40분 쯤 걸린다고 한다. 그 쯤이면 걸을 만하다 싶어서 지방도로변을 지루하게 걷다 보니 발바닥이 아파 온다. 결국 한 시간 10분 만에 닿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택시를 불러 타고 올 걸, 하는 후회도 든다.

 버스정류장 근처의 중국집에서 얼큰하고 따뜻한 고추짬뽕 한 그릇을 시켜 먹고 나서 13-2번 버스를 타고 강변역까지 와서 전철로 갈아 타고 귀가한다.



지릉길을 내려선 후의 짧은 계곡길.



해협산 날머리 - 염치고개 밑의 지방도로께.



퇴촌동광농협 앞 버스정류장의 13-2번 버스 시간표.



오늘의 산행로 - 알바 및 지방도로 보행 포함해서 약 20 킬로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