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바랜 치맛자락을 헤치며 - 적상산(赤裳山) ★


 

입춘이 인사한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다. “노는 놈이 더 바쁘다”는 비아냥 소린 어쩜 내게 딱일 것 같음은 눈꽃산행에 환장을 하면서도 한달 남짓 겨울산행을 못했기에 말이다.

빨간 홍치마가 어찌 됐을까도 싶고, 입춘 맞은 치마 속은 지금 어떤 부산을 떨지가 궁금하여 배낭을 챙겼다. 그런데 무주에 들어서기까지 들도 산도 내도 하늘도 몽땅 사라졌다.

 

농무(濃霧)는 십여 미터 앞부터 천지를 점령 무안홍(霧岸紅)의 세계를 만들었다. 때 아닌 일식처럼 해는  두터운 안개 옷을 입고 간신히 불그스레한 얼굴을 내보이느라 애처롭기까지 하다. 버스는 그 혼돈을 떨치느라 하얀 입김을 뱉고 있는데 목적지에 닿자 안무가 사라졌다. 안도감이 들었다. 나도 아까 내가 자초했던 스스럼에서 벗어나 한결 산뜻해질 수가 있었다.


처음 찾은 광덕산우회가 선심 쓰고 깔아준 멍석위에서 난 나의 책 <남김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를 홍보도 판촉도 요령껏 하지 못한 푼수(?)였으니 말이다. 지난 2년 여간 ‘한국의 산하’에 올렸던 나의 산행기가 책으로 탄생했고, 출판사의 대대적인 홍보에 일조하고 싶기도 하거니와 내 몫의 책 판매금액은 ‘불우이웃돕기’에 쓰기로 했으니 협조 후원해 달라는 취지의 말을 제대로 전달치 못했단 자책감 이였다.

 

인터넷 사이트 검색 창에서 <남김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 <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1066526>를 클릭하면 책 소개를 받을 수가 있다는 고지마저 전달이 됐나싶고, 누군가 “장사를 그리하면 되냐?”는 충고를 듣고도 자리에 기어들어야 했다. 좀 연습을 해가지고 나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암튼 그 얼리버리 상념에서 벗어나 산행에 들어서 좋다.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 들머리에서 시작한 돌계단 길은 한참을 계속된다. 흑갈색으로 퇴색한 치맛자락은 내리 앉는 겨울햇살을 품느라 헤벌리고 있었다. 굴참나무를 비롯한 때죽, 귀목, 층층나무가 나를 맞고 물푸레나무가 하얀 얼룩무늬로 몸단장을 한 채 폼을 잡지만 난 성이 차질 않는다. 보다는 지난 가을 맨 먼저 진노랑 옷을 입은 생강나무와 가장 화사했던 당단풍이 무슨 애착이 있던지 탈색해 말라 비틀어버린 이파리를 아직껏 달고 관심을 끌려고 추태를 부리고 있음에 시선을 멈춘다.


세상의 만물은 취할 때와 버릴 때를 분명히 해야 아름답다. 버리는 미학은 우릴 감동케 한다. 지난 3일 오바마는 또 한 번 세계를 감동케 했다. 그는 그가 오늘에 있게 한 일등공신 대슐의 보건장관 임명을 취소하며 “내가 일을 망쳤다. 전적으로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며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사과 했었다.

대슐이 과거 2년간 소득신고를 안했던바 늦게 신고하고 세금을 낸 것이 탈세의도였다는 비난 땜에 임명을 취소해 달라고 했던 거였다. 그 대슐의 사의를 접수한 오바마였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다 여섯 명이 죽었는데 누구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고, 모 장관 후보자는 들어난 신상이 ‘비리백화점’이란 데 고개 숙이지 않고 변명으로 저돌한다. 마속이 없으니 목에 깁스한 MB는 음참할 생각조차 없는가 싶다.

몇천년 전, 제갈공명이 했던 음참마속(泣斬馬謖)의 감동이 왜 우리에겐 요원하게만 느껴짐일까? 자리높은 자들이 버림의 미학을 가벼이 여긴 탓에  못난(?) 백성만 불쌍하게 됨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웬 거암이 가로막고 있다. 장도바위다.

최영장군이 제주도를 평정하고 귀경하다 여기 지나가려는데 바위가 막아 장도로 내리쳐 두 동강일 내고 빠져나갔던 바위였다. 나도 그 바위사일 빠져나가며 아까의 잡념을 턴다. 최영장군이 이곳이 요새지란 걸 간파하고 성을 쌓기를 시작한 적상산성(8143km)이 장도석 위에서 진을 치고 있다.

 

한 시간 반을 오르니 적상산릉이라. 완만한 산릉 길을 걷자 몇 백 년 묵은 신갈나무가 파죽지세로 몰려온다. 그놈들 생김세가 별다르다. 파란하늘에 실뿌리 가지를 무수히 뻗어 묻고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풍상에 시달리느라 몸뚱이에 몽니 뿔이 솟았고, 괴이한 옹두라지를 틀어 거대한 몸통의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있다.

움푹 페인 곳엔 잔설이 겨울을 붙들고 있느라 때 낀 주름이 깊다. 백설이 아름다울 땐 이미 지나친, 아직 버리지 못한 추함이 잔설에서도 묻어난다.

 

그 기고만장에 시간을 잊다보니 향로봉(1034m)이 읊조리고 있다. 향로봉은 나의 넋을 빼앗는 빼어난 묵화 한 폭을 전시하고 있었다. 첩첩운해 속에 덕유의 능선은 끊겼다 이었다를 반복하며 곡선의 미학으로 운해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저 자연의 신비경을 탐하여  화폭에 옮기려 화가들은 얼마나 노심초사하다 절필을 했던가! 



그 묵화에 정신 뺏기다보니 열두시 반이라. 아래선 시산제가 한창이다. 광덕인들이 올 한해의 안산을 빌며 정성스럽게 치성을 올리고 있다. 고수례로 요기를 하고 햇살, 개나리를 대동하고 적상산을 향한다. 저 아래 산정호수(상부저수지)가 뭐가 부끄러운지 자꾸 앙상한 나목들 뒤로 숨는다. 그는 하부저수지의 물을 퍼 올려 밤에 낙차를 하며 전력을 일으키는 양수발전소의 얼굴이라.

 

적상산을 지나치면 안국사가 2백미쯤 아래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호국사가 전란에 폐허가 되자 양수발전소를 만들면서 안국사를 그자리에 옯겨 놓은 거다. 우린 안령대로 향했다. 적상산 최고의 조망 터를 사방으로 몸을 비튼 거대한 귀목(?)이 절경의 자리까지 마련해 준다. 그의 팔들은 누굴 향함인지 사방팔방으로 흔들어대고 있다. 그의 손짓에 난 그에 안겨 허공에 붕 떠서 덕유자락을 조망한다. 디카를 꺼내지만 사진에 담아두긴 아까운 풍경이라. 다 담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털고 일어난다. 난 늘 그렇듯 꼴찌는 내 몫이라 작정을 하면서도 욕먹을까 하는 걱정은 떨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아직 충분한데도 꼴찌는 괴롭다. 너무 빨리 후다닥 산행을 끝내는 일등만을 하려는 산님들 때문에 난 불만을 어쩔 수가 없음이다.

시간 있는 만큼 느림의 미학을 챙김도 또 다른 행복의 길이다.

               

              09. 02.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