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억6천만 원짜리 산행 - 천황·재약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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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산외면에서 산내면 얼음골까지 화악·구만·가지·백운·천황·재약·정각산들이 휘둘러 이룬 협곡 뙈밭은 온통 사과나무단지가 됐고, 나무엔 빨·주·노랑의 가을이 탐스런 열매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그 사과는 얼음골 입구에서 천황사까지의 갓길좌판에 전시 돼 아주머니들을 호객꾼으로 만들었다.  

높은 지대의 산골에다 기온차가 심할 테니 육질도 연하고 당도도 좋아 사과산지로 둔갑했을까?

11시에 시작한 산행초엔 그것이 궁금해 한 꾸러미 살까하다가 ‘날머리에서 보자’고 외면한 채 통일신라 때 세웠다는 천황사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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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산 오르는 등산로는 여간 가팔랐고 줄곧 바위와 돌너덜로만 이뤄져 단박에 숨차게 한다.

무려 3000평이나 되는 돌밭(石田)에 난 등산로는 촌각도 딴눈을 팔수도 없이 더더욱 빡센데, 이 돌밭이 6월부턴 얼음이 얼기 시작해 삼복에 절정을 이루다가 가을에 풀려 겨울엔 온기를 뿜어낸다는 게다.

숨이 턱까지 차서 잠시 오름을 멈추고 뒤를 볼라치면 구만·억·운문산이 뒤통수까지 바짝 따라붙었다 엉거주춤해 섰고, 그 가운데 백운산이 하얀 화강암 뼈다귀를 발라내어 쏟아내고 있는 거였다.

좌우론 천길 바위벼랑이 빙 둘러 하늘 속으로 박혀들어 햇살까지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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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을 감상하다 또 오르고 다시 멈춰선 흙 한 줌 없는 돌너덜 속에서 평생을 곤고하게 살아왔을 훼훼 휜 나무들을 들여다보면 한 시간 반은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러기를 몇 번, 왼편 바위벼랑에 치마바위가 있고 거기서 허준이 스승 류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드라마속의 장소라는데 그냥 픽션일 뿐이다.

허준과 류의태는 동시대 사람이 아니어서 말이다.

암튼 얼음골은 신비한 곳임엔 틀림없다.

한 여름에 왔음 싶었다.

12시 반쯤, 가지산과 천황산을 오르는 갈림길 능선에 올랐다.

수백 년을 얼음골 지킴이를 해 왔을 고목 두 그루가 있는데, 한 놈은 덧없는 세월에 속살 나이테까지 다 내주고도 덤덤이 얼음골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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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삶에, 본분에 충직함이라. 속타버린 까만 등허릴 한 결의 햇빛이 어루만지느라 떨리고 있었다.

가지산쪽에서 온 산님들과 조우하니 떠들썩하다.

천황산을 향하는 숲길은 싸리·철쭉·떡갈나무들이 무성하게 뒤덮여 터널을 만들어 산님들의 소란을 고스란히 안아 삭히고 있다.

반시간 쯤 오르면 천황산정상(1189m)인데 아까부터 억새는 그들의 별천지를 만들었다.

키가 나보다 더 큰 억새는 마사이족들의 머리마냥 붉으스레한 볶은 몽당머리칼을 곧추세우고 서북쪽을 향에 일제히 고갯짓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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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비켜 온 한 떼의 햇살은 억새에 앉고, 몸 비벼대다 일궈진 바람결은 은빛파도를 만들어 3000평을 어르면 저만치선 물비늘이 춤을 추는 거였다.

하늘아래 흙과 바위를 1000m이상 쌓아 억새를 위한 억새에 의한 억새만의 세계를 만든 자연의 위대함에 주눅 들게 된다.

 1시를 막 넘겨 천황봉아래서 점심자릴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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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정 회장, 산님들과 오랜만에 합석했는데 나의 등을 따스하게 해주는 햇살과 나의 뱃속을 포만케 해준 또 다른 햇살이 있어 행복했다.

식도락 중에 올·코스와 단축코스 산행 얘기가 나왔는데 모두 단축코스를 택하겠단다.

시간이 빠듯하다는 이유였다.

난 애초부터 층층폭포를 경유하는 올·코스였다.

서둘렀다.

한 시간 남짓 더 산행을 해야 해서였다.

하드래도 천황산이 사자봉이라 부르는 그 사자를 지나칠 순 없어 사자 찾아 길도 없는 숲과 바위를 헤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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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거대한 사자상 옆에 서서 긴가민가 싶은 두상을 보면서 세월에 갈기 몽땅 빠진 늙은 수사자를 어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그 놈을 한 뼘 디카에 가두느라 지체하다가 사자평전 억새밭을 반시간쯤 내려오니 천황재 쉼터였다.

산님들로 빼곡하다.

억새밭 구석구석에서도 산님들이 사자처럼 쉬고 있다.

사자의 갈기가 죄다 빠진 건 결코 세월 탓만은 아닌 산님들 등쌀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다.

다시 반시간쯤 오르니 재약산(1108m)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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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의 물비늘춤사윈 리드미컬하다.

시간이 여유 있음 한 참을 늘어져 억새파도에 몸을 싣고 싶어졌다.

또 반시간을 억새밭을 헤치니 우측으로 단축코스로 들어서는 진불암 갈림길이다.

직진한다.

떠들썩했던 산님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 혼자였다.

급경사 돌너덜길에 한결 더 신경이 날 선다.

사고라도 나면 난 미운오리새끼 커녕 천덕꾸러기가 될 게 뻔하다.

며칠 전 무릎이 삐끗한 뒤라 지례 시름이 앞선다. 무릎보호대를 찼다.

허나 그런 걱정일랑 반시간 후엔 안도하게 됐다.

비록 나무데크 계단일망정 말이다.

근데 계단은 끝이 없다.

가파른 재약산을 거의 하산하여 삼거리 갈림길까지 이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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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내 잊을만함 나와 웃어 줘 기분 좋게 했던 구절초가 재약산 아래엔 더 탐스러웠고 그의 사촌뻘 쑥부쟁이까지 떼거리로 나서 퍼레이드를 펼치며 나 홀로 산행길을 영접하나 싶어 발길이 가벼웠다. 

한 시간여 하산하니 깊은 골의 물소리가 반겨주고 음침한 바위벼랑계단을 내려가니 거대한 바위웅덩이라.

깎아 세운 듯한 천길 단애는 원형으로 솟아 하늘을 찌르고 가운데 하늘 끝에서 물바람이 일고 있다.

갈수기여서인지 폭포수는 보잘 것 없지만 위용은 어마어마하다.

층층폭포라!

마침 세 명의 산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 나도 폭포수에 끼워 넣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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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에서 보는 폭포 앞에 선 인간의 왜소함에 자조케 했다.

그들이 떠난 자릴 혼자 그 커다란 공동의 가운데 한 점 미물로 서봤다.

3시 반이 돼가고 있었다.

표충사가진 3.2km라고 푯말이 일러주고 있다.

약속시간에 반시간 이상 늦진 않을 시간이라 안심이 됐다.

하산길은 산허리 4~5부 허리께 벼랑이고 상상이 절한 아래 계곡에선 물들의 속삭임소리가 요람처럼 아늑하다.

그 물이 흐르면서 일구는 미풍일가?

바람에 묻혀 오는 물소리에 귀기우리다 멀어지면 풀벌레우는 소리가 최저옥타브 음으로 귓가를 스친다.

골이 깊고 숲은 울창하여 어둠은 벌써 낮을 몰아내고 있는지 어두컴컴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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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칼진 새 울음소리가 명멸한다.

텃새 까마귀가 어스름을 알리는 전주인가! 

침잠하는 정적 속에 오직 내 발자국소리와 스틱짚는 소리뿐이라.

얼른 스틱을 접었다.

이름모를 풀벌레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태초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는, 원음은 일상에 찌든 우리들 마음의 주름을 펴게 하고 정화시키며 평정심에 이르게 한다.

음악은 무엇일까? 가장 자연스런 음의 조화일 것이다.

하여 자연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의 원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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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는 그 음을 재생해 내는 기계일 테고_.

일전에 신문에서 39억원(350만$)짜리 오디오세트가 팔렸고, 우리나라 어느 음원 메니아도 7억6천만 을 들여 그 오디오세트를 구입했다는 게다.

골드문트란 그 오디오세트는 미셀 르베르송 회장이 프랑스 특유의 감성과 스위스의 정밀공학을 버무려 만든 명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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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비싼 이유는 오디오가 원음 - 자연음을 가장 자연스럽게 복원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정직하게 말해서 인간이 자연음-원음을 듣고 싶어서 거금을 투자하는 것이라.

그 자연음을 우리 산님들은 깊은 산 속에서 원하는 만큼 들을 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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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억6천만 원을 투자하지 않고도 순수한 원음을 들을 수 있음이라.

하여 단체 산행 중에도 호젓한 숲길에 들면 홀로 떨어져 자연의 오디오전당에 들어서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청취해보라.

단 몇 십분 아님 한 시간이상이면 더 좋고 말이다.

난 산행 할 때마다 7억6천만 원짜리 오디오전당에 들르려 애쓸 테다.

산님이 아니곤 상상도 못할 찬스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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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간 반을 난 홀로 산행을 하면서 7억6천만 원짜리 자연소릴 얼마나 들었을까?

 

4시 반쯤 표충사에 들었다.

대찰 이였다.

하긴 사명대사만 떠올려도 보찰임엔 틀림없겠다.

원효대사가 창건(654년)한 가람은 임진왜란 때의 의승(義僧)인 사명, 서산, 기허 3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여 표충사라 칭하게 됐단다. 

7억6천만 원짜리 자연음악에 잠시 몸 담궜다 사찰에 드니 감동이 더 큰가?! 

영남알프스에 속한 천황산과 재약산이 풍기는 아기자기하고 수려한 산세는 단연 으뜸일 거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뿌듯한 하루였다. 

                                            2011.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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