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산 떡갈봉 산행기 (050917)

                 

   오늘은 9월 17일, 추석 전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러 떠나거나 혹은 돌아올 가족들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는 그런 날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이번 추석에는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남편은 전에도 가본 적이 있는 장태산에 다녀오자고 하였다. 공휴일이라 학교를 쉬게 된 막내도 데리고 오전에 집을 나섰다.

어젯밤 늦게 잠들었더니 차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남편이 깨워 일어나니 벌써 장태산 휴양림 앞 주차장이다. 장태산 휴양림은 그 들어가는 입구부터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메타쉐콰이어 행렬이 그 이국적 풍취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늘도 역시 주차장을 둘러싼 그 웅장한 나무들이 나를 맞는다. 휴양림이 얼마 전 부도로 그 운영자가 대전시로 이관되어 정비공사 중이라 어수선하다.


   전에 왔을 때는 휴양림으로 곧바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다른 길로 오른다고 한다. 우선 오던 방향으로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 용태울 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다리를 건넜다. 역시 용태울 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차도를 따라 걸어가니 음식점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그 음식점 사이에 떡갈봉으로 올라가는 좁은 등산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도로에서 올려다 본 등산로의 경사도가 예사롭지 않다. 물론 지난주에 갔던 철봉산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경사도였다. 그래도 길이 거기에 있으니 용감하게 한발 내딛고 산행을 시작했다. 군데군데 로프가 나무에 매어져 있어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했다. 막내도 함께 올라가는데 등산화가 없어 제 형이 신던 운동화를 신겼더니 자꾸만 미끄러졌다. 아버지가 앞에서 끌다시피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러나 다행인지 경사도가 있는 길은 그다지 길지는 않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남편이 “뱀이다”라고 소리를 쳤다. 깜짝 놀라 좇아 올라가니 정말 등산로 한 쪽에 줄지어선 나무 밑둥치에 검고 흰 얼룩뱀 한 마리가 머리를 쳐들고 남편과 대치를 하고 있다. 머리가 삼각형 모양인 것이 독사같아 보인다. 그다지 큰 뱀을 아니었지만 색깔도 선명하고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것이 무척 튼튼해 보였다. 와! 지난 몇 년간 전국의 산을 그리도 오르내렸건만 진짜 뱀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신기함도 잠시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노려보는데 섬뜩하였다. 갑자기 TV에서 추석 벌초하러 가서 뱀에 물린 사람들이 많다면서 가을산에서는 뱀을 조심해야 한다던 뉴스가 떠올랐다. “귀엽다”를 연발하는(우리 막내는 이상하게 곤충이나 파충류를 보면 귀엽다는 형용사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막내의 등을 떠밀다시피 급히 그곳을 떠났다.

  

                  

(장태산에서 만난 뱀)

 

   약간 더 오르막길을 올라선 다음부터는 순조로운 산행이다. 산 위에 오르니 바람이 분다. 왜 이 봉우리 이름이 떡갈봉인가 했더니 유난히 산에 떡갈나무가 많다.

장태산은 대전 서구 장안동과 충남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 경계의 안평산 옆에 있는 높이 374m의 비교적 낮은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경사가 심하긴 하지만 불과 10분에서 20분 남짓만 올라서면 아주 고즈넉한 오솔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도 기분이 좋아 달리다시피 걷는다.

아직 초가을이라 단풍도 들지 않았고, 바람에 떨어져 내리는 잎도 없지만, 떡갈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아주 잔잔한 파도소리를 닮은 소리를 들으며 가족과 함께 걷는 기분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그런 행복감에 젖어 걷다 보니 어느 틈에 “떡갈봉 정상입니다, 건강하세요”라고 떡갈나무 사이에 매어 놓은 안내판이 보였다. 아마도 산이 그다지 높지 않고, 사람도 많이 찾지 않으니 표지석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이리라. 그러나 낮은 산이면 어떠랴! 주위에는 날씬하고도 키 큰 멋진 떡갈나무들이 늘어서서 그지없이 평화롭고 아늑하기만 한데.

 

                

(떡갈봉 정상)


   마땅히 앉을 자리도 없어 선 채로 잠시 가지고 간 곶감과 빵을 나눠먹고 바로 하산을 하였다. 내려가는 길도 낮은 산 치고는 제법 경사가 있다. 한참을 내려가니 형제봉으로 갈라지는 곳에 벤치가 놓여 있다. 아마도 거의 다 내려 온 모양이다. 그 벤치에 잠시 앉아 쉬면서 하늘을 보았다.

빽빽한 떡갈나무 사이로 간간이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날씬한 떡갈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들은 저마다 소리를 내며 무슨 대화를 하는 것 같다. 그 풍경 속에 가을이 가만히 고개를 내밀고 웃고 있는 듯도 하다. 아니면 떠나는 여름이 아쉬워서 슬퍼하고 있는 듯도 하고. 흐르는 것은 강물과 바람과 세월이다. 엄마는 이렇듯 씁쓸한 마음인데 아이는 땅 위를 기어다니는 개미들에 정신을 빼앗겨버렸다. 개미에게 빵 부스러기를 뿌려 주고는 개미들이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빵 부스러기를 협동하여 운반하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열중한 아이를 끌고 다시 하산한다. 이제 길은 휴양림 쪽으로 연결되어 잘 닦아 놓은 임도로 이어진다. 지난번에 왔었던 곳인데도 생전 처음 오는 곳 같다. 휴양림 위쪽에 있는 정자에 들러 용태울 저수지나 관망하고 갈 생각으로 그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러나 공사중이라는 표시와 함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용태울 저수지는 그 정자에서 바라보아야 풍경이 운치가 제법인데 아쉬운 대로 바로 밑에서 용태울 저수지를 내려다본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수지의 풍경도 그런대로 좋았다.

다시 발을 돌려 휴양림 쪽으로 내려간다. 길 양쪽으로 잘 가꾸어진 메타쉐콰이어가 줄지어 서있다. 이 휴양림은 1991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해서 안에 산막, 야영장, 정자, 어린이 놀이터, 체육시설, 삼림욕장, 산책로 등을 갖춘, 한 때는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휴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곳이다. 그러나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니 사람들이 간간이 있을 뿐이어서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하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새롭게 단장하기 위하여 기존의 산막들은 모두 철거하고 여기저기 건물을 새로 짓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휴양림 입구에는 연못도 만들 생각인지 공사가 한창이다. 스산한 휴양림의 입구를 나와 다시 우리 차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가을이다. 그리고 추석이다. 추석이 되면 늘 초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나오던 글귀가 떠오른다.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감이 익어갑니다. 밤도 익어갑니다.”라던.

오늘 장태산에서도 여기저기 익어서 떨어지는 도토리들이 많이 있었다. 아이가 도토리를 주워 껍질을 까서 던지곤 하였다. 다람쥐들이 먹기 좋게 해준다면서.

지난번에 갔을 때는 휴양림 정문을 통해서 정자까지만 갔었는데 오늘은 다른 길을 통하여 떡갈봉 정상까지 갔다 올 수 있었다. 다른 길을 통하여 접근하니 산 위에서의 느낌도 사뭇 달랐다. 비록 374m 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제법 깊은 산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날씨로 봐서는 추석 보름달을 보기는 어렵겠다. 부디 추석의 풍성함이 모든 이에게 골고루 미치기를 비는 마음이다. 

  

※ 정리가 늦어져서 다녀온 지 벌써 한 달이나 되어 산행기가 시절에 뒤떨어지고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분위기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어 그냥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