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들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부쩍 많았지만 일요일만 되면 햇빛이 쨍쨍해졌었는데 장안산을 가는 3월 21일(일요일)도 토요일까지 흐리던 날이 아침부터 반짝 맑은 날씨를 보여준다.

5시 40분에 집을 나와서 전철을 타고 서울역 8번 출구에 도착하여 일산하나산악회의 낯익은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약속된 6시 40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아서 한 분이 산악회에 전화를 해 보니 버스 운전기사가 출근을 하지 않고 연락도 없어서 다른 버스를 섭외하느라고 시간이 걸려서 버스가 한 시간쯤 늦게 도착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한데에서 서서 기다리기도 힘들고 버스 도착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산악회에 회원들을 마지막으로 태우는 서초문화회관 앞으로 간다고 일단 전화 연락을 하고 일행들과 함께 전철을 타고 양재역으로 이동하여 서초문화회관 근처의 넓은 맥도날드 가게에서 이십 분쯤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8시 10분경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는 용인의 기흥휴게소와 금산의 인삼랜드휴게소에서 쉰 후에 장수에 도착하여 고갯길을 구불구불 올라서 11시 20분경 무룡고개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의 예쁘게 잘 만들어 놓은 화장실은 고장이 났는지 문이 굳게 잠겨 있고 그 옆의 간이화장실만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계단을 올라서 짧은 터널이 설치돼 있는, 해발 1075 미터의 무룡고개에 오르니 왼쪽에는 영취산 들머리, 오른쪽에는 장안산 들머리가 있다. 금남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영취산에 오르고 싶었지만 준족이 아니라서 늦게 하산하여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장안산 들머리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산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안부인 고개에 굳이 터널을 설치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터널 위의 동물이동통로를 보니 순전히 차도를 무단 횡단하다가 참변을 당하는 야생동물들을 위한 배려로 설치한 터널인 듯하다.

들머리의 나무계단을 오르면 육산에서는 전형적인 3월의 진창길이 시작되고 들머리에서 7분쯤 올라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2층의 팔각정 전망대가 있는 977봉 정상으로 오르니 구름이 몇 점 떠 있는 맑고 푸른 하늘이 가슴을 시리게 하는데 저 멀리로는 머리에 눈을 덮어 쓴 덕유산의 긴 능선이 아스라이 보인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왼쪽의 길로 접어들면 2분 만에 작은 돌탑과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오른쪽에 괴목마을 하산 갈림길이 나 있는 괴목고개에 이른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져 능선을 따라가면 꽃이나 잎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황량한 능선길을 지나 조릿대숲길을 지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산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높이 1 미터 미만의 조릿대들을 보게 되지만 차차 높이 2 미터가 넘는 장안산 특유의 조릿대숲의 터널을 지나게 된다.

등산화의 밑창에 진흙이 두텁게 달라붙는 길을 나아가니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는 샘터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무룡고개와 장안산 정상의 중간인 지점이다.


 


무룡고개 주차장.


 


해발 1075 미터의 무룡고개와 오른쪽의 장안산 들머리.


 


팔각정이 있는 977봉 정상으로 오르는 오른쪽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


 


팔각정이 있는 977봉 정상.


 


작은 돌탑과 방향표지판, 괴목마을 하산 갈림길이 있는 괴목고개.


 


조릿대숲길.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키 큰 조릿대숲길.


 


눈이 채 다 녹지 않은 진창의 조릿대숲길.


 


샘터 갈림길 - 무룡고개까지 1.5 킬로미터, 장안산 정상까지 1.5 킬로미터.


 

샘터 갈림길을 지나서 나무계단을 오르면 장안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넓고 평평한 전망대에 오르게 되는데 여기서 덕유산과 백두대간의 백운산을 잠시 조망하다가 가을에는 억새가 한창 무성하게 피었을 억새밭길을 지나게 된다. 장안산이 산림청에서 선정한 백대 명산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여름의 덕산계곡과 가을의 억새 때문에 지정된 것이기에 겨울을 갓 지난 초봄에는 백대 명산 산행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는 게 사실이다.

목제 데크길을 지나서 억새밭길을 나아가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장안산 정상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다. 정상을 바라보며 긴 나무계단을 오르니 나무계단의 끝에는 목제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에서 잠시 덕유산과 지나온 능선길을 조망해 보다가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 몇 분 만에 또 긴 나무계단을 오르게 되고 나무계단을 다 오르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를 거쳐서 삼각점과 방향표지판, 큰 정상표지석이 설치돼 있는 헬리포트인, 해발 1237 미터의 장안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진창의 황량한 능선길.


 


장안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


 


목제 데크길.


 


장안산으로 오르는 길.


 


장안산의 지능선들.


 


장안산으로 오르는 나무계단길.


 


나무계단 위에서 바라본 백운산.


 


나무계단 위에서 바라본 덕유산.


 


지나온 능선길과 전망대.


 

영취산 정상에서 시작되어 무룡고개를 거쳐 장안산 정상에 이르는 금남호남정맥은 장안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급히 꺾어지며 이어지고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장안산 주능선은 서남쪽으로 이어져 있다.

정상에서 일행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나서 느긋하게 조망을 하며 50분쯤 쉬다가 범연동 쪽으로 내려서는데 처음에는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가파르고 미끄러운 진창의 북사면인 내리막길을 만나서 미끄러져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그 와중에 선두 그룹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서 가고 중봉과 하봉은 언제 지나쳤는지도 모르고 방향표지판이 있는 당동 갈림길에 닿는다. 그런데 이곳의 방향표지판에는 직진하는 범연동길만 3.5 킬로미터가 남았다고 표기돼 있고 당동으로 가는 길은 아크릴판을 붙여 가려 놓았는데 밑에 5.5 킬로미터가 남았다는 표기만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산악회에서 지정한 코스는 이 당동 갈림길에서 왼쪽의 주능선으로 꺾어져 가다가 어치재에서 오른쪽의 계곡길로 꺾어져 내려가서 범연동으로 하산하는 것인데 직진하는 지능선길은 잘 나 있지만 당동길은 초입부터 가파르고 두터운 낙엽이 쌓여 있다. 선두가 보이면 따라서 내려갔겠지만 어디로 내려갔는지도 모르니 좀 찜찜했지만 산악회에서 이미 지정한 코스로 내려가기로 한다.


 


장안산 정상의 방향표지판.


 


헬리포트인 장안산 정상의 전경.


 


뒤에 밀목재로 가는 길이 있는, 장안산의 정상표지석 - 해발 1237 미터.


 


장안산 정상의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장안산 정상에서 범연동으로 하산하는 길.


 


완만한 오르막길.


 


완만한 내리막길.


 


진창의 가파르고 미끄러운 내리막길.


 

그런데 당동으로 내려가는 주능선길은 낙엽이 발목 이상의 깊이로 두텁게 쌓여 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 길이다. 능선의 바로 왼쪽 옆에 멧돼지의 집인지 공수부대원의 비트인지 모를, 구덩이를 나뭇가지 등으로 살짝 덮어 놓은 곳도 한 군데 발견하면서 나아가는 길은 조릿대숲길을 지나서 가파른 비탈에 난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따라가게 되는데 미끄러지면 가파른 비탈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을 정도의 길도 지나서 둔덕을 여러 번 오르내리지만 길 같지 않은 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결국 당동 갈림길로 내려선 지 30분 만에 오던 길로 되돌아가게 된다. 15분쯤 힘겹게 되돌아가니 어치재로 추정되는 안부에 이르는데 이곳은 군용 통신선인지 TV 안테나선인지 모를 검은 전깃줄이 빨래줄처럼 어지럽게 나무줄기에 묶여져서 계곡 밑으로 내려가 있어서 이 길로 내려가려고 몇 걸음 내려서다가 세심히 내려다보니 길의 흔적이 너무 애매하다고 판단되어 내려가다가 길이 끊어지면 대형 알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확실한 길을 찾아서 당동 갈림길까지 되돌아가기로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팔밭재까지 이어지는 이 주능선길은 주민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통제를 해서 길이 거의 없어진 상태라고 한다.

어치재에서 나침반을 꺼내 방위를 측정하며 잠시 쉬는데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지 모질게도 차갑고 세찬 서북풍이 하필이면 잠시 쉴 때 끊임없이 불어와서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되어 얼른 배낭을 메고 되돌아가는데 올라갈 때는 내려갈 때보다 두터운 낙엽으로 인해 뒤로 조금씩 미끄러져서 더 힘이 든다. 결국 한 시간 10분 만에 당동 갈림길로 되돌아오는데 백해무익한 방향표지판 때문에 어이없는 고생을 하게 된 것이다. 산행객들에게 혼동을 주어 길을 잃고 헤매게 할 소지가 있는 방향표지판은 차라리 철거를 하든지 아크릴판으로 가려진 쪽에 ‘길 없음’ 또는 ‘등산로 폐쇄’라고만 표기해 놓았어도 좋았을 텐데 관리기관의 작은 성의가 아쉽다.

길을 잃고 헤매느라고 기진맥진한 탓에 당동 갈림길에서 40분 이상 걸려서야 비로소 안부 사거리인 덕천고개에 닿는다. 이 지능선길은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북사면의 가파른 내리막은 진창길이라서 꽤 미끄럽지만 짧은 거리에 불과해서 당동길에 비해서는 편하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도 많아서 심리적으로도 안정되는 길이다.


 


당동 갈림길의 백해무익한 방향표지판.


 


당동 갈림길에서 범연동으로 하산하는 길.


 


당동 갈림길에서 초입부터 가파른 내리막이고 길의 자취가 희미한 어치재 하산길.


 


두터운 낙엽 속의 희미한 주능선길.


 


30분간 헤매다가 되돌아선 지점.


 


어치재로 추정되는 곳에서 내려다본, 군용 통신선인지 TV 안테나선인지 모를 전깃줄이 어지럽게 설치돼 있는 북서쪽 계곡길.


 


한 시간 10분 만에 되돌아온 당동 갈림길.


 


안부 사거리인 덕천고개.


 


덕천고개의 방향표지판.


 


덕천고개에서 범연동으로 하산하는 남서쪽 갈림길.


 

그런데 덕천고개의 방향표지판에는 내려가려는 왼쪽 길로는 표기가 돼 있지 않은데 아마 사유지인 밭을 통과하여 내려가게 되는 길이라 표기를 하지 않은 듯하다. 일단 산악회의 책임자와의 통화에 성공하여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나서 직진하는 능선길도 1.5 킬로미터 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갈 만하지만 기다리는 일행들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려가려고 왼쪽의 지름길로 꺾어져 내려가니 처음에는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는 길을 걷게 되지만 서서히 길의 흔적이 확연해진다.

황량한 길을 내려가다가 키 큰 조릿대가 밀생해 있는 짧은 조릿대숲길을 지나니 곧 바로 밑에 넓게 조성된 무덤이 내려다보인다. 무덤으로 내려서서 짧은 오솔길을 지나니 곧 밭과 민가가 내려다보인다. 거의 다 내려왔음을 직감하고 오솔길을 지나서 밭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몇 분간 걸어 내려오니 임도와 맞닿는 날머리에 이른다. 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오니 자신을 찾아 회원 몇 사람이 올라오고 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게 된다.

함께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잠시 후에 범연동 버스 정류장 앞에 닿고 차도를 따라 5분쯤 더 내려가니 날머리에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자신이 타자마자 바로 출발한 버스는 장수의 덕유산휴게소와 용인의 죽전휴게소에서 잠시 쉬다가 어둠이 짙게 깔린 고속도로를 달려서 서울에 도착한다.

명동성당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한 후에 귀가하여 집에서 샤워를 하며 거울을 보니 쨍쨍한 햇빛의 자외선에 노출된 얼굴은 만취한 사람처럼 놀라울 정도로 새빨갛다.

오늘의 산행에서는 재작년 가을, 오서산에서 날머리를 찾지 못하고 어이없게 헤맨 이후로 처음 길을 잃고 헤매게 됐는데 첨단지식정보시대라는 오늘날에도 지적 측량과 지도, 산행정보의 공유, 관리기관의 최소한의 산행객들에 대한 배려 등의 문제가 무척 아쉽게 생각되는 부분들이었다.

심지어는 어치재가 어느 지도에는 주능선상에 있고 어느 지도에는 지능선상에 있으니 할 말을 잃게 된다.

또한 자신도 선답자의 산행기를 토대로 너무 완벽하게 산행을 하려다가 오히려 실수를 저질러서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간 듯한 생각이 들어서 내심 부끄러웠고 지도의 등로 표기나 높이 표기도 제각각 다른 우리나라의 엉성한 지식 전파에는 아직도 요원한 인터넷의 공신력이 인터넷의 부정적인 숱한 면들과 함께 인터넷을 맹신해서는 안 되겠다고 새삼 되뇌게 했다.

오늘의 산행에는 총 5시간 15분이 걸렸지만 이 중에서 식사 및 휴식시간인 약 1시간 5분을 제외하면 순수산행시간은 약 4시간 10분이 걸린 셈이다. 또한 길을 잃고 헤맨 1시간 10분을 제외하면 3시간에 불과한, 약 8.5 킬로미터의 짧고 가벼운 산행이었다.

아무튼 산행에서는 안전이 제일이라는 것을 또 한 번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또한 철저한 사전 준비만큼 닥친 상황에서의 임기응변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하루였다.

일상의 권태를 확실히 잠재워 버리는 산행의 묘미, 그러나 지나친 모험은 신상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자제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내리막길의 황량한 정경.


 


키 크고 빽빽한 조릿대숲길.


 


뒤돌아본, 무덤이 있는 내리막길.


 


밭과 민가가 있는 풍경.


 


밭 사이의 좁은 길로 내려와서 임도와 만나는 날머리.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차도의 날머리로 내려가는 길.


 


오늘의 산행로 - 헤맨 길을 포함해서 약 11 킬로미터(파란 색 선은 길을 잃고 헤매며 왕복한 구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