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안 산

2006년 11월 23일 목요일
날씨 : 흐림 시계불량


 전라도에는 "무진장" 이란 말이 있다. 무주,진안,장수 이 세 고을을 일컬어 부르던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오지 중의 오지, 지독히도 산골에 파묻혀 있고 오죽 세인들의 왕래가 뜸했으면 무진장 이란 말이  아주, 많이라는 의미를 뜻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더더욱 오지였던 장수군. 장수군 내에서도 특히 외지고 인적 뜸한 골짜기가 장안산 아래 덕산,방화동을 휘감아도는 덕산계곡 일대이다. 장수읍에서 논개사당을 지나 동촌리 밀목재를 넘어서면서부터 용소로 유명한 장안산의 덕산계곡이 시작된다. 영화 "남부군"에서 이현상 휘하의 빨치산 부대가 옷을 벗고 목욕하는 장면을 촬영한 계곡이 바로  이곳이다. 폐교된 장수초등학교 덕산분교를 지나면 길은 다소 거칠어진다. 차를 세워두고 구불구불 계곡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걷다보면 팔각정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등줄기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으로부터 막 가지쳐 나온 장수 장안산(1237m)의 웅장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장안산은 가을철 억새와 단풍으로 특히 유명하다. 팔각정에서 다시 계곡을 따라 1시간 가량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면 가족단위 휴가객을 위해 장수군에서 조성해놓은 방화동 가족 휴가촌에 다다른다. 휴양 단지내에는 자동차야영장, 물놀이장, 캠프화이어장 등이 갖추어져 있고 일반 배낭여행객의 야영지로 적합한 곳도 많이 마련되어 있다. 민박집도 다수 있어 가족단위 뿐 아니라 동호회, 친구, 친지들과의 즐거운 휴가여행 대상지로 삼기에 적합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흔적 : 무령고개-억새밭- 장안산-중봉-하봉-어치재-범연동-연주(2시간50분)



* 길찾는 어려움은 없습니다만 어치재에서 법년동으로의 길이 진행방향 왼쪽으로 있는데
길이 곧 무너질 것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아버지!
이 세상 버리던 날이 가슴 속을 문득 스칩니다
제 나이 스물 아홉이었지요
4남매 중 맏딸로 아버지를 어려워만 하였지 참한사랑 드려본 적 없었다는 회한이 오늘따라
밀물 되어 아니 해일이 되어 온몸을 덮칩니다

무령고개를 오르면서부터 거센 바람의 무차별 공격을 받습니다
왜 그 바람 속에도 유독 아버지께 냉정했던 일들이 뒤섞여 오는지...

때 늦은 반성이라도 실컷 하라는 뜻인지 엎어지지 말라고 길은  내내 비단 길입니다
오름길 4.0 키로나 되는 괴목마을 길을 버리고 다 오른 무령고개에서 시작한 걸음이므로
폐활량이 남아돌아 바람을 맞서면서도 50분 걸음으로 고스락에 닿게 됩니다

뒤돌아보니 영취산릉이 등 뒤에 우뚝합니다
백두 대간의 한자락이면서 금남, 호남 분기점이 되는 저 산을 뒤에 두고 가는 길은
산길치곤 너무 호사스러워 그래서 장수군의 군립공원이 되었나 싶습니다

억새밭을 오르니 연로하신 분들이 평상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나들이 나오신 것 같습니다
하산길에 접어드는 어르신들 보내고 느긋하게 걷는 길
아버지 살아계시면 아직 일흔 다섯이신데...

빤하게 나 있는 길의 양 옆에는 억새와 난쟁이산죽들이 떼를 지어 앉아있습니다
대나무를 떠올리니 아버지의 혼을 담아 오죽으로 만들어내시던 똥장군 지게와 멋진 죽배가 생각나네요
아버지는 그림도 참 잘 그리셨고, 요즘 같으면 아버지도 맥가이버 반열에 들었을텐데...

남쪽으로 비라도 퍼붓는지 오를수록 사위가 캄캄해서 오늘도 멀리 볼 요량은 꿈도 꾸지 말라합니다

텅빈 고스락에 세 사람이 먼저 몸 얹었습니다
아니 아버지의 혼도 함께 오르셨으니 넷이군요

 대낮의 어둠 속에서 피사체가 된 산님 활짝 웃고 계시지만
어둠과 바람이 그 웃음을 덮어버립니다

그리고 많이 춥습니다
사진 몇 장 그리는 사이에 대장님을 앞세운 님들이 들이 닥치고
썰렁하던 고스락은 웅성거림으로 잠시 술렁이더니  미련 없이 모두 범연동으로 몸을 돌립니다

앞서 진행하던 대장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점심상을 펼치자합니다
추위 때문에 퍼질러 앉지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먹는 밥은 불편하지만
솜씨 좋은 산님의 깻잎절임과 땅콩조림, 멸치조림, 총각김치 덕분에 기분마저 거나해집니다

참 아버지는 젓갈 냄새만 맡아도 극도로 싫어하셔서 우리는 늘 간장으로 맛을 낸 담백한 김치를 먹었었지요
부추김치 드실 때 그 길기만 한 것을 목젖을 한껏 뒤로 젖혀 드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젓가락은 허공에 있는 듯 했구요

뜨거운 모과차 한 잔으로 마무리하면서 뒤에 오시는 분들께 자리 내어 드리고 등짐을 맵니다
내림길에서도 아무런 미련없이 갑니다 돌아볼, 마주할 조망도 없습니다
그저 욕심을 몽땅 벗어내린 나목들을 바라보는 일 밖에...

망자의 모습과도 흡사하지만 저들은 봄이 오면 다시 몸을 일으킨답니다
사람이 죽어서도 단 한 번만이라도 저 나목들처럼 몸을 일으킬 수 있다면...
괜한 망상을했나봅니다

길바닥에 맛있는 여러 가지 매운탕 이야기 깔며 내리는 길이라 사방에서 좋아라 킬킬대는 소리로 시끌벅적합니다
깔깔한 성미 탓에 잘 어울리지 않던 저도 오랜만에 저자거리 속에 포함 되어 하산합니다

덕분에 초반부터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어둡던 마음이 많이 밝아졌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제게서 떠나셨기에 애틋한 마음을 담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주름조차 거의 없었던 아버지는 지금의 저보다 훨씬 젊은 나이였으니까요
49세에 저 세상 가셨으니... 


아무도 없는 산정에서 소리내어 울고 싶어서 건너편 산자락 날등을 칼바람 맞받아치 듯 오릅니다
끙끙거리며 다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버스 찾아 도로를 따르는 산님들
무딘 걸음새로 눈에 닿지 않는 마지막 구비로 흘러갑니다

마음 속의 일부를 늘 차지하고 있던 아버지의 생각 꺼내면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산 안에서 내 생각의 끈은 잘 감아진 자세의 실처럼 끊임없이 풀려나오다가
아버지의 생각으로 목이 메일 뿐입니다
이제 다시 실을 감아야 할까 봅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이 세상 산 자들이여!
아버지께도 효도하시기를 강권합니다
때 늦은 후회하지 마시기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무령고개 오름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억새밭 지나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백두 대간을 왼쪽에 끼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바람천국에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고스락으로 향하는 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어두워서 불을 밝혔는데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사위는 캄캄하고 바람만 난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아직 정오도 안되었건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어둠과 바람에 떠밀려 범연동으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범연동 마을


 후미의 걸음에 간이 맞는 산행이었다 합니다
모두의 입맛을 맞추기는 힘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