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봉 산행기

 

              *산행일자:2006. 8. 27일

              *소재지  :충북 괴산/경북 문경

              *산높이  :장성봉956미터/막장봉857미터/아기암봉747미터

              *산행코스:제수리재-막장봉-장성봉-아기암봉-옷나무골-완장리주차장

              *산행시간:9시48분-16시15분(6시간27분)


 

 

  200미리가 넘는 호우가 중부지방에 집중적으로 쏟아 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발해진 어제 아침 잠실 역에는 그 많던 산악회 버스가 겨우 두서너 대  밖에 없어 마냥 썰렁했습니다. 종주산행 시에는 능선만 타면 되고 계곡을 건널 일이 전혀 없어 웬만한 비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산 나들이를 나섰지만 이번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을 어우르는 막장봉-장성봉-아기암봉을 잇는 암릉길을 산행하는 것은 하산 길에 몇 번이고 계곡을 건너도록 되어 있어 예보된 200미리의 강우량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한참을 고심한 끝에 위험을 무릅쓰고 한번 우중산행을 해보자고 뜻을 세운 후 잠실에서 버스에 올랐는데 어떠한 악천후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산을 오르기로 뜻을 굳힌 분들이 저를 빼 놓고도 서른 분이나 되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함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어제는 고맙게도 제우스신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200미리 호우주의보를 발하게 한 주인공인 구름의 신 제우스가 암릉 길에 오르는 저희들에 길을 열어 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굵은 빗줄기가 계속해 뿌렸고 제수리재에서 하차하여 들머리에 발을 들일 때에도 먹구름이 하늘을 뒤 덮어 결심만 서면 언제라도 200미리는 간단히 채울 수 있다는 제우스신의 전의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우스신이 하늘을 찌를 듯한 산님들의 강렬한 산행의지에 감동하여 기꺼이 길을 열어준 것은 그가 하늘나라에서만 살고 있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놀고 때로는 심술도 부릴 줄 아는 인격신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제우스신이 모처럼 마음먹고 펼쳐 보이는 구름의 산상 공연을 한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침 9시48분 해발 510미터의 제수리재를 출발해 막장봉으로 향했습니다.

머지않아 먹구름이 비를 뿌릴 것 같고 밤새 내린 비로  나뭇잎에 옷이 다 젖을 것 같아 우의를 꺼내 입고 들머리에 들어섰는데 예보했던 비는 오지 않고 대신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오늘 하루는 아예 이 몸을 제우스신에 맡겨버리자는 심사로 십 수분 후 우의를 벗어던졌습니다. 된비알의 가파른 길을 14분간 올라 조난 시에 구조위치를 알려주는 “속리12-01”의 표지봉이 세워진 주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여느 산과 다를 바 없는 육산의 능선을 걸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속리12-02” 봉에 올라서자 서쪽 건너 산자락에 걸친 구름들이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비를 뿌렸던 난층운이 서서히 힘을 잃고 안개구름의 층운으로 변화해가는 듯싶었습니다. 산길에 들어선지 42분이 되어 제수리재 1.8키로/막장봉 1.8키로의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났습니다. 


 

  10시35분 안부에서 5분을 걸어 삼형제바위로 보이는 “속리12-4”의 암봉에 올랐습니다.

이곳에서 코끼리봉까지 1시간 10분 동안 펼쳐진 여러 형상들의 바위를 지나면서 저 암봉들이 어떠한 지각변화를 거쳐 이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해서는 “바위전시장”에 선보인 달팽이바위, 대 슬라브 암벽, 분화구바위와 통천문등의 바위들을 빚어낸 하느님의 오묘한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속리12-06”에서 로프를 붙잡고 내려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뾰족봉에 오르자 막장봉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오른쪽 경사면이 커다란 바위로 되어있는 대 슬라브 암벽 상단 길을 걸어 통천문을 통과했습니다. 통천문이라하여 이 문과 같이  모두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정상 바로 아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리산과 월출산은 정상 가까이에 위치해 있지만 해발 1,638미터의 금강산은 350미터 대에 자리하고 있어 통천문을 통과하고도 산마루에 올라 하늘에 고하기까지는 한참을 걸어 올라야 했습니다.


 


 

  11시55분 해발887미터의 막장봉을 올랐습니다.

통천문을 빠져나가 3분후에 마지막 암봉인 코끼리봉에 닿았고 다시 9분 동안 산길을 걸어 막장봉에 올라섰습니다. 막장봉을 오르며 “바위전시장”을 떠나기가 아쉬웠던 것은 암릉지대를 걷는 짜릿한 묘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암봉 전부가 앞이 탁 트인 전망대여서 구름들의 몸놀림을 온전하게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후세의 기상학자들이 제우스신이 빚어낸 구름을 높이와 그 모양에 따라 크게 10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지상 5천-1만3천미터에 분포하는 권운, 권적운, 권층운의 상층운과 지상 2천-7천미터 고도에 걸쳐있는 고적운과 고층운 등의 중층운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산 전체를 가득 메운 운해의 층적운, 산자락에 걸쳐있는 안개구름의 층운,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비를 뿌리는 난층운 등은 지상 2천 미터 이하의 하층운이고, 장마가 끝나고 국지적으로 소나기를 퍼붓게 하는 적란운과 뭉게구름의  적운은 상승기류가 수직으로 발달되어 형성된 구름입니다. 이번 산행에서 운해와 안개구름 외에도 먹구름의 적란운과 고층운 및 난층운도 관찰되어 마치 제우스신으로부터 “구름전시장“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우스신이 기상청이 예보한대로 들입다 200미리의 폭우를 이 능선에 쏟아 부었다면 아무리 좋은 암릉 전용 릿지화를 신고 왔어도 별 소용이 안됐을 터인데 비를 뿌리고 싶은 심술을 잠재우고 온전하게 길을 열어주어 모처럼 신은 릿지화가 유감없이 성능을 발휘하도록 도와준 제우스신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막장봉에서 9분을 걸어 ”장성봉 1키로“의 이정표가 세워진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2시28분 해발915미터의 장성봉에 다다라 점심을 들었습니다.

안부에서 올라선 무명봉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약 20분간 편안한 산길을 걸어 작년 7월 대간 종주 차 밟았던 장성봉에 올라섰습니다.  바람이 숨을 죽이자 표지석이 서있는 정상에 잠시 들은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습니다. 정상에서는 나무들이 시야를 막아 전망이 좋지 않아 식사를 끝내고 바로 아기암봉으로 향했습니다.


 

  12시44분 아기암봉을 향해 장성봉을 막 뜰 즈음에 산 밑에서 구름을 몰고 온 골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정상에서 버리미기재 방향으로 4-5분을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확 틀어  아기암봉 행 산길로 들어서자  골바람에 실려 온 안개구름이 살포시 옷을 적셔 한낮의 더위를 잊게 했지만 봉우리를 우회할 때는 이 안개구름으로 산 속이 어두웠습니다.  장성봉에서 아기암봉까지는  마루금이 칼날능선으로 이어지어 오전에 오른 투구봉에서 막장봉까지의 암릉길과는 전혀 달랐고 봉우리를 옆찌르는 우회 길도 많았습니다. “속리”에서 “장성봉”으로 바뀐 긴급구조용 표지봉이 이 길을 따라 연이어 세워져 있어서 혼자 걸어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13시38분 아기암봉을 바로 앞에 둔 암봉에 올라섰습니다.

두 곳의 옷나무재를 언제 지났는지 몰라 옷나무골로 내려서는 B코스 진입로를 그냥 지나친 것 같았습니다. 로프 줄을 잡고 내려서기도 하고 올라서기도 해 암봉에 다다르자 정 동쪽으로 깎아지른 희멀건 암벽의 희양산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암봉에 오르는 길에 후미을 위하여 나무에 로프를 걸고 무전으로 통보해주는 산행대장의 세심한 마음씀씀이를 본데다가, 잠시 후 앞서간 한분으로부터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연락을 받고 이리저리 전화를 넣어 휴대폰을 주은 사람과 연락이 닿아 결국에는 찾아주는 등 주어진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 대장으로서 제 일을 120% 해내는 분이다 싶어 믿음이 갔습니다.


 

  14시23분 까만 페인트로 아기암봉/까막봉이라고 쓴 작은 돌을 정상석으로 세운 해발 740미터의 아기암봉에 올라섰습니다. 북동쪽의 희양산과 남서쪽의 대야산(?)을 연결하는 직선상에 위치하는 아기암봉에 다다르자 제우스신은 그 사명을 다한 듯 날씨가 쾌청했습니다. 제수리재에서 막장봉과 장성봉을 거쳐 여기 아기암봉에 이르는 길을 큰비를 쏟아 부어 가로막지 않고 저희들이 산행하는 동안 비를 멈추고 길을 열어준 제우스신에 감동했습니다.


 

  14시32분 아기암봉을 떠나 하산 길로 들어섰습니다.

“장성봉 11”의 표지봉에서  황장목 숲을 지나 계곡물을 만나기까지 경사가 급했고  옷나무골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문경시 가은읍의 완장리주차장에 이르는 길도 멀었습니다. 한 시간을 거의 다 걸어 합수점으로 내려섰고 개활지를 지나 계곡물을 다섯 번이나 건넜습니다. 큰비가 내렸다면 이 길을 포기하고 장성봉에서 버리미기재로 내려가고자 했던 산악회의 하산계획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가을이 논 뜰에 내려앉기 시작해 벼들이 패었고 어떤 논은 벌써 황금색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훤칠한 키에 노란 미소를 짓고 있는 길섶의 마타리와  눈인사를 나누며 걸어 온 시골 길도 정감이 갔습니다.


 

  16시15분 완장리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귀경 길 버스가 여주를 지날 즈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몇 시간만 계속된다면 강우량이 200미리를 간단히 넘기겠다 싶어지자 하루 종일 저희들에 길을 열어주고 그동안 참아왔던 비를 이제야 내려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우스신이 또 다시 고마웠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을 깨달은 이번 산행이 제게는 7주 만의 명산 순례였습니다.  큰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많은 분들이 산행을 포기해 그동안 못 뵈었던  산님들을 다시 두주가 지나야 만나 뵐 수 있겠기에 다음 두주 동안은 기다림의 미학을 익혀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