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 가득한 자굴산 (의령 897m)

 

2008. 4. 20.

 

홀로 산행

 

 

코스 :  자굴티재(5코스) - 써래봉 - 자굴산 - 중봉 - 달분재 - 614봉 - 질매재 - 자광암

 

 

 

 

 

 

<의령의 아침>

 

좋은 지도는 산으로 이끌게 한다.

자굴산 안내로는 기존의 어떤 지도보다 다양한 코스와 주요지점 표기가 잘된 지도가 지난 4월 월간山

의 부록으로 내재되어 다시한번 자굴산을 찾으리라 이미 결정한 지 오래다. 선배 선생님들이 주를 이

루는 단체의 산행코스로도 적합할 것 같아 몇 번 더 이곳저곳으로 다녀도 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의령읍내는 사람 없는 아침이었다. 그렇지만 축제기간인지라 지난 주말 밤의 상기된 표정이, 즐비한

청사초롱과 길가에 펄럭이는 옛날 군사깃발과 하늘을 덮는 무수한 현대식 현수막에 고스란히 남아 있

었다. 의령읍내 군청 부근의 유명한 소고기 국밥집. 작정하고 비워둔 아침의 공복상태를 따끈하게 채

운다.  오랫만에 아내랑 타지에서의 아침 식사다. 방안 한쪽 구석에 있는 가마솥(아마 원래 부엌이었던

곳을 온돌방으로 만들었나보다.)이 뜨끈뜨끈한 김을 올리고 그 곁에 후덕한 주인마님이 편안하게 앉아

서 삶은 쇠고기를 고르고 있다. 식사 중 문득 둘다 엊저녁부터 휴대폰을 꺼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

한다. 그런데......  

 

 

혼자 아침잠에 빠져 있던 막내가 영문을 몰라 전화를 했었고, 모르는 연락처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찍혀있고 직원 전화번호도 박혀있다. 밥을 넘기다말고 전화를 했다. 사연인 즉, 이른 아침에 사무실 자

동문의 바닥잠금장치를 부수고 도둑이 들어, 보안업체와 경찰이 즉각 출동했다는 것이다. 휴대폰을 꺼

두지 않았으면 출발 중에 산행도 포기했을 지 모르는 일인데 되려 다행이고 고맙다. 산이 그리 좋은지

어이없어하는 아내의 등을 도닥이며 오후 세시 쯤 주차장에서 내조리 주차장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자굴티재에서 아내랑 헤어진다.         

 

 

 

 

 

<자굴티재>

 

진양기맥 상의 자굴티재, 지도상 제5코스의 기종점이 오늘의 들머리다. 고개는 잘 포장되어 자굴산 관

광 순환도로가 한우산 8부능선까지 잘도 깔려져 있다. 몇 해 전, 한우산 활공장 바로 아래 임도에서 자

굴산까지 산행을 해보았을 때는 늦은 가을이어서 산을 파서 닦은 길들이 황량하고 팍팍하기만 했다.

오늘 봄기운 저민 들머리에 서서 바라보니 윤기나는 검은 아스팔트 굽이친 길마저도 그 곡선이 생동감

있게 보인다.  

 

 

  

 

자굴티재에서 시작되는 등로는 지속적인 경삿길이다. 그리 급하지 않는 경사지만 걸음을 느리게 한다.

게다가 주위에 어찌 그리도 꽃은 많이 피었는 지..... 땅에는 초록 풀섶에 노란 물을 들인 양지꽃, 갖은

종류의 제비꽃, 이따금씩 눈에 띄는 선명한 꽃무늬의 붓꽃, 무엇보다 군락을 이루듯 사방에 퍼져있는

줄딸기 (덩굴딸기, 덤불딸기)꽃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잘 생긴 소나무는 푸른 솔그림자를 드리우고, 참나무(갈참, 굴참, 졸참, 떡갈나무.....의 구분은 아직도

확실한 자신이 없다.)의 새순은 거친 수피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파리 돋운 진달래는 때로는 연분

홍으로 때로는 자홍빛으로 다양한 컬러로 숲을 채색하고, 하얀 산철쭉은 연분홍 꽃멍울과 함께 화사

하고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있다. 아! 생명의 봄이란 이런 것인가. 새소리는 영락없이 봄 속의 즐거움인

양, 너도 즐겁고 나도 즐거우니 이 나무 저나무 옮겨 다니며 나와 숨바꼭질 하자고 하는 듯하다.

  

 

춥지도 않은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대 땀을 흘릴 여지가 없다. 게다가 꽃구경에 정신이 나간 듯, 연신

쪼구려 앉아 이곳 저곳을 살피니 새조차도 어서 가라고 아우성이다. 상황을 수습한 직원의 연락을 받

고 남은 염려마저 털어버린다.

 

 

 

 

 

< 써래봉 775m >

 

써래봉에 올라보니 조망이 좋다. 일대의 사방팔방이 훤하고 온통 봄물이 물씬한 산야를 조망하는 즐

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바람덤에서 자굴산 오르는 능선에 아기자기하게 솟은 암봉과 진달래 듬성듬

성 핀 모습이 조화롭다. 건너편 한우산과 진양기맥으로 뻗어나는 능선과 , 바로 눈 앞에 솟은 자굴산

정상으로 부터 중봉으로 이어져 계속 나아가는, 내 갈 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전에는 정상부에 산불감시탑이 있었는데 중봉에다 옮겨 두었는다는 것을 한참만에야 알게 되었다.

써래봉에 올라 지도를 보고 초소있는 봉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니 도무지 맞질 않았던 것이다. 정상에

높다란 감시 초소가 있었다는 기억자체가 틀린 것일까???? 

 

   

 

바람덤은 (지도상) 2코스라고 이름된 길과 만나는 암릉 지점이다. 바로 위에는 서쪽 조망이 좋은 암

봉이 이어져있다. 능선을 고집해 짧은 암릉을 오르니 걸음마다 시원한 조망이 터진다. 내조리를 내

려다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케른 지대를 지나니 바로 정상이다.

 

 

 

 

 

 

 

  

 

  

 

<자굴산 정상 897 m>

 

자굴산 정상석이 그 사이 큰 사이즈로 변모하여 동쪽으로 치우쳐 세워 두었다. 자굴산의 의미와 배

경에 대해 따로 새겨두었다. 연무에 먼 조망이 잘 안되니 지리산은 고사하고 비슬산도 잘 가늠되지

않는다. 다만 가까운 황매산의 실루엣은 북서쪽 10시 방향에서 조망된다. 황매산 보다 직선거리가

가 조금 더 멀어서 그런지 화왕산 조차 가늠이 어렴풋하다. 언제나 화왕산에서는 이곳 자굴산이 잘

보였는데...... 아쉽다. 북쪽으로 산릉에 둘러싸인 갑을리와 양성리가 평온한 그림을 이루고 있다. 

이전에는 갑을리로 하산을 하였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정상에서 두어바퀴 돌면서 기념촬영하는 산님들이 비켜나길 기다렸으나 좀체 틈이 없다. 한참을 기

다려 한 컷을 얻고는 중봉 방향 헬기장으로 내려서서 처음으로 목을 축였다. 일대의 지도를 펴놓고

방향과 산세를 가늠하면서 따사로운 봄빛 아래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너럭바위를 지나  중봉의 산불감시 초소와 통신안테나가 있는 능선을 이어갔다. 베틀바위 쪽 산님들

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틀바위 - 달분재>

 

소나무와 진달래가 잘 어우러진 암봉과 베틀바위 사이의 짧은 구간도 그림이 좋다. 배틀바위에서

세가례 갈림까지는 방화선처럼 능선 길이 열렸다. 폭신한 흙길을 따라 달분재 쉼터까지는 갖가지

꽃나무와 야생화로 한순간 눈길을 뗄 수 없다.

 

 

베틀바위에서 능선을 바라보니 연한 진달래가 아직도 힘을 발하고 있고, 소나무 그늘아래서 바라

본 산벚꽃도 여전히 낙화를 미루고 있다. 바알간 꽃망울과 확짝 핀 철쭉꽃은 격조 넘쳐 보인다. 언

젠가 무리진 철쭉꽃을 중년 아낙들의 방자한 웃음소리에 폄하한 것을 슬며시 후회한다.

 

 

 

 

 

멀리 산벚꽃이 초록 이파리와 함께 햇살에 빛나고, 마지막 진달래와 생기넘치는 철쭉이 소나무 그

늘아래 어우러져 있는 모습. 얼핏 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의 각도를 잡느라 한참을 서 있으니

지나가던 나이 지긋한 타지의 산님이 하도 이상했던 지 가까이 다가와 기어코 한마디 비평을 하신

다.

 

 

- 무슨...... 관찰을 하시나벼~!

 

 

관찰이라..... 그 참 오랫만에 듣는 단어다. 피식 웃음이 나왔으나 챙이 긴 모자에다 햇빛차단 안면

마스크까지 하고 있는 터라 내 표정은 들키지 않았을 터. 묵묵부답!

 

  

 

 

< 도봉산에서 >

 

도봉산에 올라, 봄볕아래 누운 내 벗으로부터 화상 사진과 함께 문자가 들어왔다. '현재 나는 잘 있

다'는 것은 벗에 보내는 최대의 안부인사다. 하물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는 소식이야 얼마

나 반갑고 기쁜 소식인가. 언제나 그리운 벗......

 

 

 달분재에 핀 복사꽃은 벗 향한 그리움의 빛깔이고, 그리움은 진달래 꽃길처럼 편안하고 하염없다.

 

 

 

 

 

< 달분재 - 질매재 >

 

달분재에서 614봉을 넘어 쉼터를 지나 600 봉 까지는 화원의 길이다. 봄 능선에 이만한 길이 또 있

을까 싶을 정도다. 달분재에서 4 코스로 내려가는 길이 흔히 이용되다 보니 그나마 간간히 보이던

산님들의 흔적이 완전히 끊긴다. 600 봉 오르막부터는 조금 성가신 잡풀의 길이라 녹음기에는 진

행이 쉽지 않겠다. 600 봉에서 내리막길은 조금 지겹다. 야트막한 무덤이 나타날 때까지 메마른 경

사길에 발끝이 조심스럽다.  묘에 이르니 조푸샘 갈림길이 보이고 길은 다시 솔 숲 그늘 길이다.

 

 

 

 

 

 

질매재에 다다른다. 어느 산에서나 정겨운 이름의 질매재. 쉼터 바위하나 없지만 바닥에 퍼질고 앉

아 물만 들이키고 지나온 길을 지도로 더듬어 보았다. 5시간 느린 산행에 물만 마시고 먹은 거라고

는 헬기장에서 손가락만한 길이의 오이 2쪽이 전부다. 산에서는 정말 기막히게 다이어트를 잘하는

데 하산하면 매번 엉망이다.^^   나의 식욕은 정서적으로 집중하면 무 말랭이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무료하거나 이완되면 한없이 부풀어지는 고무풍선과 같다.

 

 

 

 

 

 

< 질매재 - 자광암 >

 

질매재에서 자광암 까지는 들꽃의 전시장 같았다. 그 흔하디 흔한 어릴 적 온갖 들꽃들이 죄다 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꽃들이, 심지어 꽃 같지도 않은 풀꽃들이 모두다 제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

이라 생각하니 발자욱마다 무수한 이름들이 밟혀 부숴지는 것 같다. 빛깔 좋은 붓꽃, 노오란 양지꽃

길섶, 작은 꽃이 예쁘기도 한 주름잎.......

 

 

한편 부질없는 이름들. 하지만  이름없이는 그와 나사이에는 은밀하게 존재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 사

이에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들. 이름없이는 타인들과 공감과 교류될 수 없는 것들......

그러나 제 스스로에게는 부질없기만 한 인간의 의지. 

 

 

 

  

 

 

 

 

 

그런 이름의 요란한 축제는 자광암 지난 보리밭에 이르러서야 보리라는 이름 하나로 진정이 되었

다. 봄바람에 수그러드는 보릿대의 연초록 물결은 언듯 하얀 빛깔을 일시에 내며 파도처럼 눕는다.

별스럽고 요란한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없다는 듯 보리는 일제히 한 몸으로 율동을 보인다. 그것은

다름아닌 '봄바람'이라는 이름이었다. 보리는 그렇게 개념이 아닌 색깔을 온몸으로 이름해보였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