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그놈의 낙지가 문제였다.
모처럼 초딩 동창과(것도 여친인디) 양산 토곡산에서 만나 어곡산을 돌아
오봉산까지 봄빛에 취한 춘향이와 눈자위 게게풀린 방자되어 폼나게 걸어
보자는 약속이 그놈의 낙지 두어마리에 하릴없이 도로아미타불 되었더라.
토요일,
모처럼 온식구가 모여 마악 저녁술을 들려는데 덕진풍이 자지러지며 자반
뒤집기를 한다.
"멀대(객)가..  여기 묵고죽자 횟집인데 니캉내캉 낙지 한죽 오붓하게 조지
삐자.  쪼매있다가 하수들도 몇놈 올끼다마.."   철커덕.


찰나에 뒤꼭지에 벼락을 맞은듯 찌르르 하더니 입가에 신침이 절로 고인다.
들었던 술을 슬몃 놓으니 곁의 지청구가 허리춤을 움켜쥔다.
"내일 산에 간다 카는 양반이 그것도 여자친구 만난다 카면서 술냄새 풀풀
거리면 엔간히도 좋겄다. 막실(그만두고)하고 밥이나 잡수소 ."
허나 그 봄내음 알싸한 낙지와 똘똘거리는 맑은이 생각에 식욕은 씻은듯
사라져 괜히 여기저기 얼쩡거리다 틈보아 메기등에 뱀장어 타넘듯 슬그머니
줄행랑을 놓는다.


그러나 애시당초 두어병만 거들어 주자던 작심은 헤일수 없는 수많은 병을
가뭇없이 넘어 낙지인지 지렁이인지 구분이 안갈 즈음에야 겨우 마무리가
되나 했더니 자발없이 주접떨기  좋아하는 넘이 석개(조선조 천비 출신의 명창)
에 버금가는 절창이 지놈과 친분이 자별하다며 그리가자 소매를 끈다.
시러베 장단에 호박죽이요, 상추쌈에 된장궁합으로 그만 배가 맞아 결국
인사를 짐작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더라.
이렇듯 토곡산 -오봉산 종주는 낙지 두어마리에 팔려 깨어지듯 지끈 거리는
숙취를 남겨둔채 일장춘몽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산성산 -자굴산 종주기>2


억새에 흰구름 나부끼는 산성산 정상은 향골의 조망으로만 따진다면 자굴산
보다도 뛰어나 질정찮은 객과 만만찮은 짐방놈의 걸음을 쉽사리 풀어주지
않는다.
한참이나 무릎을 치다 억새능선을 노저어 외초고개로 천천히 나설제 몸집이
부대한 장끼 한놈이 풀섶에서 벼락치듯 치솟아 고단한 길손을 놀래킨다.
춘치자명이라더니 봄은 봄인가부다.
외초고개로 내려서는 길에는 다복솔과 참나무 낙엽이 제법 약이오른 봄볓에
질척거리는 길을 때타지 않게 발동무 해주어 편안하기 그지없다.


티끌하나 뵈지 않은 시리도록 맑은 하늘엔 흰비단에 먹물 몇점이 틘듯 까마귀
서너쌍이 유유자적이고 여리게 부풀어 오른 두견화 망울은 밤이라도
덮칠량이면 귀촉도  아린 울음에 실려 집집마다 고운 봄소식을 뿌려줄듯 정겹다.
신경수님이 탈출로로 사용하셨던 외초고개를 한구비 감아 올리니 온몸을 매운
칼날에 난도질 당한 한우산의 아픔이 찬기운되어 이마우에 서늘하고 이름조차
찰비골 (찬비골) 일까..


자굴산이 남성의 강인함을 지녔다면 한우산을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도드라진다.
정상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곱게 물결치는 정수리는 더욱이나 친근하고 자연
스러워 넉넉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한우산은 슬픔의 산이다.
건너 응봉산 자락까지 인간의 알량한 이기로 허리를 잘리고 가슴을 썸벅 베어내여
산주릅 치마에 핏물이 흐르고 흘러 숨조차 쉬기 힘들게 아픈 산이다.
또 아래 쇠목재에도 뼈를 갈아내고 살을 후벼파니 남명 선생과 홍의 장군을 낳은
신령한 지기는 어디서 찾으란 말인고.


응봉산을 왼편으로 떨궈논 길은 쇠목재로 쏟아지듯 내려선다.
유명한 천하장사 이만기씨의 고향이 오른편으로 내다뵈고 임도는 둠배기 만당까지
깊숙이 뻗어있다.
만만찮은 짐방놈은 화려한 경공으로 어느새 시야에서 종적이 묘연하고 늙은형은
다리를 끌고 된비알을 추슬러 천천히 오른다.
길은 암팡진 바위턱을 만나 밧줄을 드리우기도 하고 또 그 바위가 디딤돌이 되기도
하며 텁텁한 막걸리 같은 풍취를 자아내는데 무명색한 산골 고라니의 걸출한 나뭇짐이
금새라도 예있소 할듯도 하고 휘영청 달빛이 부서지는 밤이라면 유려한 퉁소 선율에
산촌 과수댁 가심에 바람 구멍이 날법도 하것다.


빈바랑에 마지막 겨울온기 가득담아 정상에 오르니 땀식은 짐방놈의 마뜩찮은
기색이  썰렁하고 왁자한 사람들 속엔 시산제라두 지냈는지 떡에 고기에 제법
산중 진미가 걸판진데 아무래두 고기에 회가 동한 듯한 짐방놈은 김밥 두어줄로
상전행세 하는 객이 못마땅한 빛이 역력한데 팔자에 없는 고기 동냥을 구걸할
처지가 되어 입맛이 쓰다.
정상석에 기대어 턱짓으로 지리산을 가리키니 저게 진짜 지리산이냐며 딴죽을
걸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젠장 망하는 집구석 머슴 밥이나 많이 주더라고 하산에서 목살이나 한번 뜯재니
그때서야 비릿한 웃음으로 의뭉을 떤다.
있어봐야 편육한점 얻어 걸릴게 없는터라 걸망 두러메고 하산밟으려는데
혹시 진맹익씨 아닌지 하며 초로의 신사가 말끝을 사리며 면을 줏어 묻는다.
언제든가 황매산에서 어느 여성분이 객의 성명 삼자를 들이대며 따지듯 묻기에
혹 술값탓인가 싶어 혼비백산 했던적이 있어 좀은 떨떠름한데 알고보니 의령에서
의령 산우회 산행 대장님을 맡고 계시는 박희식 님이셨다.


한산에 자주 들러는데 수영 선배님과 히어리님의 산기 애독자라시네..
반가운 만남을 뒤로하고  절텃샘으로 내려서는 길엔 한적했던 산성 한우산과는
달리 끓임없는 산꾼들이 몰려온다.
보기에도 오금이 저려 소금 두어됫박은 빌어야 될것 같은 급경사 철계단을 지나고
홀할너덜 밟아 산죽 바라지를 밀치니 전에 없던 정자가 아담허니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샘에서 물한바기지 길어 머금으려니 서편 하늘에서 오색 구름과 서기가 뻗쳐와
정자를 은은히 감싸더니 허리에 방울을 차고 일척의 검을 품에 안은 선비가 지리산을
고요히 바라 단정히 좌정하고 있다.


일찌기 자기 친형 마저도 척살한 천하 난신 윤원형도 어쩌지 못했고 돌아가시매
나라가 텅비고 말았다며 선조대왕께서 대성통곡하셨다는 남명  선생..
문득  한줄기 청량한 바람 일어 구름도 서기도 간곳 없고 봄볓에 늘어진 짐방놈만
정자에 퍼대져 한가롭다.
시각은 중화를 넘겼건만 자굴산을 오르는 행렬은 그칠줄을 모르더라.


            2005년 3월15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