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굴산

 

몇 걸음을 하지도 않은데 벌써 얼굴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어제와 달리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숲속 새들의 지저귐은 어느새 내가 이제 내 산길을 가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숲 속의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 평화로움 속에 온갖 상념은 꼬리를 물어 그 생각의 끝에 걸음이 되지 않고 푸르런 하늘 속으로 긴 숨만 내어놓고...

 

한 고개 넘어서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에 올라서니..
가지런한 나뭇가지 앉음 터를 만들어 가는 걸음을 잡는다.

그래..

시간은 많고  생각도 많으니 걸음을 생각 말자 ..
앉아 가지고 간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또 끝없는 생각에 잠긴다.

 

살아오면서 뭘 하였나....

얼마나 많은 날들을 보내며 오늘처럼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평정심을  몇 날이나 가져가며 내 삶을 위하였나...  이런저런 욕심에  부질없는 걱정에 철없고 어린 날에 격정의 시간들은 또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과 후회를 한짐 가득 등에 업었나..

오늘 맨 가방처럼 저렇게 속 비워 가볍게 살아오지 못함의 후회가 물 밀 듯이 밀려온다....

 

참으로 오랜만의 호젓한 홀로 산행에 세상의 찌든 욕심을 한없이 부려놓고 있다..

내 앉은 이 평화로운 자리에서..

저 지저귀며 하늘을 날고 있는 어린 새 만큼도 안 되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자신에게 긴 숨을 주고는 툭툭 자리를 일어선다....

 

어린 싹에 물이 올라 연초록의 옷을 입은 산은 어지럽게 살은 이몸에게 쉽게 길을 주지 않아 많은 땀을 드리고야 가슴속 시원한 물줄기를 주시고..

 

 

절터샘..

예전에 절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휘 돌아보지만 절터 같지는 않고 그저 저 평화로운 사람 사는 세상 바라볼 수 있게 정자 하나 앉아있다.

 

어제 밤늦게 까지 마신 술만 아니었으면 잠깐 목 축일 술 한잔 들고 올 건데 오늘은 그저 몸뚱아리 하나만 달랑 자리에 앉아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히 소리내는 키 큰 산죽과 하늘 날면서 지지배배 울고 지는 저 새소리에 그저 평화롭고 졸립기만 하다..

한숨을 자고 갈까 생각을 하다가 바로 위에서 등산로 보수 작업으로 수고하시는 분들께 누가 될까 다시 자리 들고 일어선다..

 

 

바람재..

시원히 터지는 전망에 술 탓에 방구들 지지 않고 길을 나섬이 스스로 대견하여 빙긋이 미소를 짓는다.

반년만에 느끼는 산 속에서의 나를 보니 역시 나는 내 길이 따로이 있는가 싶다...

 

바람재 능선에 핀 진달래를 보며 대견사의 진달래가 이제 곧 망울을 열어줄 것이고 우리네 인간은 그저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춤을 출 것이라..

 

정상에 서서 사방팔방 산 파도에 다시 한번 가슴속 망망함을 느낀다.
손 뻗으면 잡힐 듯 보이는 황매산의 느름한 모습과 올망졸망 늘어선 악견과 금성 허굴산이며 ..  지리 연봉의 늘어선 긴 능선 모습이 아스라이 하고 멀리 의령과 군북의 너른 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