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화요일) 오전은 비가 온다던 어제의 일기예보와는 달리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맑은 날씨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늦은 산행을 하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12시 40분에 집을 나서서 도봉구민회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수유역으로 가서 170번 버스로 갈아탄다. 오늘은 인왕산과 안산, 백련산을 가 보기로 한다.

 홍지문에서 하차하니 13시 30분. 버스로 오던 길로 7분 정도 되돌아가니 조선시대 숙종의 친필이라는 현판이 걸린 홍지문이 나온다. 홍지문 건너편에도 등로가 있는데 초행길이라서 그 길을 모르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다 보니 홍지문에서 12분 정도 걸어서 유원 하나아파트 106동 뒤의, 등산로로 통하는 철문을 지나서 오르게 된다.

 호젓한 등로를 오르다 보니 어제 비가 와서 맑은 대기 속에 북한산의 비봉능선이 선명히 바라보인다. 그리고 등로를 오른지 20분 만에 용천약수터와 기차바위능선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닿는다. 기차바위 쪽으로 직진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10분을 내려가서 용천약수터에 닿는다. 인왕산은 물이 풍부한 산이다. 약수터가 많아서 별도로 수통을 준비해 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수통에 가득 채운다. 다시 오던 길로 되올라가서 나아가니 솔냄새가 향기로운 솔밭의 지릉길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 암릉길의 운치있는 소나무들도 멋지다.



홍지문.



인왕산 들머리 - 유원 하나아파트 106동 뒤의 등산로 철문.



인왕산 오름길에서 바라본 북한산 비봉능선.



삼거리의 방향표지판.



용천약수터.


 마침내 기차바위에 닿는다. 좌우로 경사진 절벽인 암릉의 양쪽에 쇠기둥과 로프로 보호철책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에서 출입이 통제된 북악산이 코 앞에 보이고 남산도 우뚝이 솟은 남산타워와 함께 서울의 심장부를 차지하고 있다. 기차바위를 내려와서 나아가다가 수분 후에 되돌아보니 기차바위는 한 개의 바위라기보다는 큰 암봉의 모습이다. 차라리 기차봉이라고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기차바위.



기차바위에서 바라본 북악산.



기차바위에서 바라본 남산.



지나온 기차바위를 돌아보면서...


 인왕산은 인위적으로 암반을 깎아서 길을 만들어 놓은 곳과 철계단이 많다. 그런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바위산이지만 이런 인공구조물 덕에 노약자들도 오르기 쉬운 친근한 산인데 부근에 청와대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곳곳에 전경들이 배치돼 있어서 일면 살벌한 느낌도 들지 않을 수 없다. 광화문 로터리에서 경복궁 쪽으로 걷다 보면 딱딱하게 서 있는 전경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무능하다는 말로 대변되는 김 영삼 전대통령이 이 산을 개방했다는 것 하나 만큼은 잘 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338 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서울의 거의 한 복판에 이 만큼 멋진 명산이 있다는 것은 감탄할 만한 일이다.

 바위를 깎아 놓은 돌계단과 험로의 철계단을 오르니 마침내 인왕산 정상이다. 도심의 조망이 멋지게 눈에 잡힌다. 고층빌딩과 아파트의 콘크리이트숲 - 늘상 보는 단조로운 모습이지만 이렇게 초행길의 산 위에서 내려다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나무의자에 앉아서 커피와 간식을 먹고 나서 하산을 서두른다. 내리막길 한 복판의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헬리포트를 지나서 사직공원과 독립문 쪽으로 내려선다. 이 쪽에는 암반에 홈을 파서 발을 디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좌우로 보호철책을 만들어 놓았는데 굳이 암릉에 홈을 파서 돌계단까지 만들어 놓아야 했을까. 노약자들을 위한 배려라고 해야 할까. 인명보호를 위한 자연훼손은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는데 지나친 흠집내기라는 생각이 든다.



인왕산 오름길.



인왕산 정상 - 해발 338 미터.



인왕산 정상 밑의 소나무.



하산로 1.



하산로 2.


 유서깊은 서울의 성곽 위를 밟으며 걷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곽이 조선시대의 것이 아니라 근래에 다시 축조한 것이다. 그러니 고풍스러운 옛 성곽을 바라보며 조선시대를 돌이켜 본다는 것은 무리라고 하겠다.

 등로에 보도블럭이 설치돼 있다. 아마 출입이 통제됐었던 예전에는 대통령의 전용산책로였나보다. 권력자에 대한 아부의 극치를 느끼게 된다. 보도블럭의 끝에는 철계단이 설치돼 있고 이 철계단을 오르면 범바위다. 범바위에 올라 시원한 조망을 바라보니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

 범바위를 내려와서 범바위와 인왕산을 뒤돌아본다. 비록 높이는 낮지만 동네 주민들만 이용하기에는 너무 멋있는 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범바위를 지난 하산로에는 인공적으로 만든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새로 축조한 서울 성곽과 함께 남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상쾌한 마음으로 돌계단길을 다 내려오니 좌측의 사직공원과 우측의 독립문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안산으로 가기 위해 우측으로 간다. 안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산도 봉수대까지 올라갈 수 밖에 없고 시설물 때문에 비록 295 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부는 오를 수 없는 곳이다.



범바위.



뒤돌아 본 인왕산 정상과 범바위.



하산로의 인공적인 돌계단길.



서울 성곽을 낀 돌계단길과 남산.



인왕산 하산길에서 바라본 안산.


 인왕산 산행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안산으로 가는 내리막길에서 인왕산 인왕사의 일주문을 본다. 출입이 통제된 군부대의 뒤편에 위치한 곳이라서 이 곳을 보려면 다시 올라가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올라서 일주문을 지나 선바위약수터에 닿는다. 이 약수터는 특이하게 바위 밑에서 샘 솟아 오르는 물을 바가지로 퍼서 마시게 돼 있다. 한 바가지 떠서 마셔 보니 물이 차면서도 꽤 맛있다.

 약수터를 지나서 돌계단을 올라 선바위를 본다. 몇 사람이 치성을 드리고 있다. 선바위에서 암릉길을 오르니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린 바위가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 부처바위와 기암괴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군부대의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서 더 이상 오를 수 없게 된다. 인왕산의 선바위 쪽 암릉은 전에도 서너번 와 봐서 눈에 익다.



인왕산 인왕사 일주문.



선바위약수터.



선바위.



구멍이 뻥뻥 뚫린 바위.



부처바위.



기암괴석.


 다시 오르던 길로 내려간다. 기암괴석과 새로 축조한 서울 성곽, 경복궁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거의 반세기를 살아 온 내 고향이다. 서울 사람은 고향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왜 이 좋은 곳에서 살면서 고향이 없다는 말을 할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서울의 동북부에서 반생을 보낸지라 서울의 산을 오르면 특별히 감회가 깊어진다. 너무 가까운 곳에 있는 아름다운 산하의 정겨운 모습이 내가 살아온 삶과 오버랩되기 때문일까.

 다시 눈 앞에 기암괴석이 나타나는데 발을 디디고 올라설 수 있는 홈이 파져 있어서 올라 보니 서울의 주변 경관이 손에 잡힐 듯이 눈에 들어 온다. 선바위를 지나서 일주문으로 내려가지 않고 우측으로 내려서니 관음암의 마애불이 나타난다. 암벽에 조각된 코믹한 모습이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 곳에서 주택가의 내리막길을 내려가서 횡단보도를 건너 무악재 쪽으로 걷는다. 난간이 설치된 콘크리이트 포장도로를 오르니 주택가의 골목길이 나타나고 자연스럽게 안산의 등로로 올라서게 된다.



기암괴석과 서울 성곽, 경복궁.



기암괴석.



선바위의 뒷모습.



관음암 마애불.


 안산도 인왕산처럼 바위산이다. 20분 정도 등로를 오르니 암릉길이 나타나고 안산의 바위산으로서의 면모가 여실히 보여진다. 암봉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암릉길을 올라서 안산의 봉수대에 오른다. 옛날에 북방의 경계상황을 불이나 연기로 서울까지 알렸다는 곳이다. 최종의 봉수대는 남산의 봉수대라고 한다. 안산도 해발 295 미터의 정상은 시설물로 인해 출입이 통제돼 있고 이 곳보다 약간 낮은 봉수대가 산행시에 정상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안산 오름길.



안산의 전경.



올라온 암릉길을 내려다 보며...



안산 봉수대.



안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인왕산.



안산 봉수대의 전경.


 봉수대에서 조망을 즐기다가 정상부의 시설물 쪽으로 나아가서 우측의 길로 내려간다. 안산 하산길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모습이 애처롭다. 등로를 한참 내려와서 차도까지 내려와 사거리를 대각선 방향으로 두 번 건너 직진하다가 서대문 문화체육회관 방향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꺾어져서 올라간다. 시각은 이미 해가 지고 난 후인 17시 30분 경이지만 육산인 백련산은 그리 험하지 않은 산으로 판단되어 서대문 문화체육회관을 지나 오르니 아스팔트 포장도로 건너편에 백련산의 들머리가 나타난다. 나무계단이 설치된 등로를 올라간다.



안산 하산길에서 바라본 석양.



백련산으로 가는 길.



서대문 문화체육회관.



백련산 들머리.



백련산 오름길의 나무계단.


 솔 냄새가 물씬 나는 육산의 지릉길을 오르다 보니 나무벤취가 나타난다. 이 곳에 앉아 잠시 쉬며 간식과 코코아차를 먹는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다. 이 곳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배낭에서 후래쉬를 꺼내 들고 다시 걷는다. 십분을 더 걸으니 KBS 송신중계소가 나타난다. 하늘 높이 솟은 세 개의 특이하게 생긴 철탑이 인상적이다. 이 곳이 정상인 줄 알았는데 15분을 더 걸으니 체력단련장이 나타나는데 이 곳이 조금 더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 곳도 정상은 아니고 수분을 더 걸으니 은평정이라는 이름의 팔각정이 나타나고 그 팔각정 뒤에는 밑에 지적삼각점이 설치된 철탑이 있다. 이 곳이 해발 215 미터의 백련산 정상이다.



백련산 오름길의 나무벤취 앞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야경.



백련산의 KBS 송신중계소.



백련산의 체력단련장.



백련산 정상의 팔각정인 은평정.



백련산 정상의 철탑 - 해발 215 미터.


 백련산 정상은 난간이 설치된 훌륭한 전망대이다. 서울의 휘황찬란한 야경이 서럽도록 낭만적으로 눈 앞에 펼쳐진다. 이렇게 산 위에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 보기도 오랜만이다. 더구나 초행길의 백련산에서...

 백련산 정상에서 5분간 머물면서 서울의 야경을 찍다가 돌부리를 피해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15분 만에 날머리에 닿는다. 노점의 선반이 설치돼 있는 날머리는 백련근린공원(논골) 입구다. 공원이라서 가로등을 밝게 켜 놓았다. 공원의 멋스러운 야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십여분 정도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큰 차도변에서 좌측으로 꺾어져서 걷다가 나오는 사거리에서 우측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 더 걸으니 홍제역이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온다.

 무릎의 통증을 의식하며 가벼운 산행을 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귀중하고 아기자기한 산행을 했다는 흐뭇함을 집에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백련산 정상의 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야경 1.



백련산 정상의 팔각정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야경 2.



백련산 날머리 - 백련근린공원입구.



오늘의 산행로.